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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8
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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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에서 인상 깊었던 곳

1. 제이비 류의 아내가 대신 사과하는 장면

내 말에 깜짝 놀란 모니카는 모든 영국인을 대신해 사과하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우리 세희>, 142쪽

가끔씩 유튜브에서 우리나라에서 겪은 차별이나 불편에 대신 사과한다는 댓글들을 볼 때가 있다. 즐거운 경험을 하기 위해 모르는 나라에 온 그들이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반면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무얼 경험하든 관심 없다는 사람도 있고 일부 못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경험과 관심 없음 사이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

모니카는 차별을 할 사람이 아니고,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떤 잘못도 없지만 스스럼없이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공동체)으로서의 최소한의 연대감이다. 차별하는 사람이 발생하는 이런 사회를 만든 일말의 책임이 있는 사람(구성원)이 가지는 미안함. 모두가 다 좋을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나쁜 건 없는 게 좋다.

2. 외가댁에 갔을 때의 환대

그들은 내가 인사를 하면 웃으면서 나를 덥석 안았고, 헤어질 때쯤엔 눈물이 흥건히 밴 눈동자로 엄마를 건너다보다 무턱대고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 세희>, 114쪽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공동체의 연대는 찐득하다. 깊고 오래간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자식, 손주라는 이유로 그들은 환대받는다. 잘 왔다. 누구도 그 사이의 어둠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오직 오늘의 기쁨만을 즐긴다. 그 모습이 나는 왠지 가슴 따뜻해지면서도 슬펐다. 그들이 겪은 아픔 때문 같기도, 지금은 없는 모습이라는 아쉬움 때문 같기도 했다.

이 책의 화자는 ‘욘주’지만 이 책의 제목은 <우리 세희>다. 욘주의 모든 관계는 세희, 즉 자신의 어머니로 인한 것이다. 전 세대가 만든 모든 것을 우리는 오늘 만난다. 그들도 그 전세대가 만든 세상을 살아갔듯 우리가 만든 세상을 우리 자식 세대가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아득하고 무섭다. 걱정되고 불안하다. 걱정되고 불안한 세상을, 우린 지금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시대는 가고 이제 ‘나’의 시대로 가고 있다. 우리로 살았던 삶이 마냥 다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를 버리고, 우리를 고치고, 우리를 해체하는 것을 선택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우리를 버리고, 우리를 고치고, 우리를 해체하는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한 반작용과도 함께 살아간다. 거듭 말하지만 늘 좋은 건 없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사건에 더 가깝다면, <우리 세희>는 삶에 더 가깝다. 그래서 뭔가 더 먹먹하다. 조해진 작가님의 세계가 더 깊어진 거 같은 느낌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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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로켓
기노시타 유키 지음, uwabami 그림, 장하린 옮김 / 이아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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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질은 즐거워요. 양치질은 나에게 이로운 놀이에요. 이야기가 있는 놀이라면 하기 싫은 일들도 두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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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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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원하는 게 과연 나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원하거나 필요해서 이것을 욕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 원하거나 욕망해야하기 때문에 욕망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때 말이다.


석주의 선택은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모호 하다. 하지만 일생의 모든 선택을 어느 누가 '전적으로 내가 한 선택'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석주는 고민하고, 주저하고,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지만 성실하고 끝까지 애쓰는 사람이다. 특출나지는 않지만 꾸준하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단단하다. 평범한 사람이 주는 이야기는 범상찮은 사람이 주는 격정적인 감동과는 다른 은근한 감동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무엇'이 되어있다. 그 무엇도 그녀의 선택이 아닌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가 그녀의 선택이었다. 오직 그녀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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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세계사 - 문명의 탄생부터 국제 정세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김도형(별별역사)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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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지만 새롭지 않은, 무난한 내용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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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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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님은 얼마 전에 시몬 베유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신에 대하여>를 쓰게 된 배경을 밝힌다. 그렇다면 시몬 베유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할 거 같았다.

 

시몬 베유는 초기에는 혁명적 사상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녀는 억압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을 비판했다. 직접 공장 노동을 경험하며 노동자가 단순히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파괴되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시몬 베유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은 행사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모두 사물로 만든다고 말하며 정치철학에서 존재론적인 문제로 확장한다.

 

그녀는 인간은 왜 착취하고 착취당하며 살아갈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이렇게 현실을 깊이 직시한 결과 초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 주신 바른 상태에서 너무 멀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즉 인간 임의대로 해석하고 행위 되어 원래의 원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를 자기중심에 놓았고 이 자기중심성이 힘의 구조를 낳았다. 힘의 구조에서 벗어나 파괴된 인간을 복구하고 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회복할 수 있는 지점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회복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malheur)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다. 육체적 파괴, 사회적 추방, 나아가 영적 침묵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무력화된다. 하지만 이 무력화된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중심(자아)이 붕괴되면 그 사이로 빈 공간이 생기고 은총이 들어올 수 있다고 보았다. 은총은 위에서 내려오는 힘으로 인간 스스로는 초월할 수 없다. 초월은 받아들임이다. 그것은 초월자가 주는 것이고 줄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총을 얻지 못한다. 다만 은총이 들어올 수 있도록 비워질 뿐이다.” 한병철 님도 <신에 관하여>에서 인간 쪽에서의 찾아나서기는 탈진으로 이어질 따름이”(23)라고 시몬 베유의 말에 동의한다.

 

기다림은 무위이고, 주의이며, , 읽기, 바라봄, 처분 불가능, 수줍음이다. “‘중력은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중력은 과 멀어지게 한 과학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과학은 오늘날의 또다른 신이다.”(26) 시몬 베유는 신의 개념을 기독교적 구조에서 빌려왔지만 완전한 신자는 아니다. 그녀는 어떤 집단도 배타적일 수 있다고 보았고,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신은 플라톤적 선에 가깝고 존재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근원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선(good)으로 자리한다.

 

신은 긍정할 수 있다. 나 역시 신은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초월적 존재들은 늘 선, 사랑, 자비, 나눔을 말한다. 그것을 인간이 착취, 억압, 독식으로 오독할 뿐이다. 한병철 님은 <신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내려놓고 가만히 기다려라.’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 포기하며 세계의 흐름에 그저 동조하며 주일의 기도로 티끌 같은 변명을 보탤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데 그건 아마도 시몬 베유가 말한 자기중심성때문인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신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신의 말씀과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신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조차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신을 내가 왜 믿어야하는가. 그럼에도...

 

삶을 한낱 생존이상으로 만드는 최고의 아름다움은 앞으로도 늘 과거의 종교적 아름다움일 것이다.”(34)

 

p.s. 사물을 향한 주의에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15)가 들어간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오타인 거 같다. 앞부분에서는 처분 불가능성이 주의를 심화한다고 했는데 주의를 심화한다는 건 주의를 깊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와 처분 불가능성은 서로 부딪힌다. 그러므로 처분 가능하게 만들기처분 불가능하게 만들기로 수정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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