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이든 오천만원이든



백온유,   [반의반의 반

2025 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외, 문학동네, 2025-04-02.


  아버지가 그랬다. 폰지갑에 있던 5만원이 없어졌노라고. 어디에서 없어진 건지는 알지만, 아니 그렇기에 누군가를 의심하지만 자신이 폰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기에 따지지 않을 거라고. 오천만원도 아니고 오만원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이 의심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강하게 하기보다 아버지의 과거 행동까지를 소환하며 뭔가 점점 거리를 두게 되고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건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다.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속 영실처럼 오천만원이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그 말을 한 곳은 병원이었고 나는 심각하게 나타났던 섬망을 떠올리며 정말 치매가 진행되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점점 아프고 병들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에서 소설에서 잃어버린 오천만원의 행방은 영실이 잃어버렸다고 할 수 없다. 잃어버렸다면 영실은 그 돈을 찾아야 하는데 찾지 않는다. 딸인 윤미와 손녀인 현진은 오천만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두 모녀는 오천만원을 요양보호사 수경이 가져갔다고 의심한다. 정작 수경은 영실이 자신에게 준 것이라 하고 영실은 수경을 감싸며 더 의지한다. 요양보호사가 영실을 돌보고 있는 것처럼 영실은 인지능력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 환자다.

  오천만원은 각자에게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그리게 한다. ‘윤미현진이 떠올리는 과거 속에서 영실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현진을 낳고 젊은 시절 이혼하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살아온 윤미는 결정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조차 영실의 외면으로 딸인 현진과 오래도록 헤어져 있어야 했다. 이때, ‘영실윤미에게 한 말은 현진이는 내가 돌볼 테니 죗값을 잘 치르고 와라˝였다. 그렇기에 점점 윤미는 마음이 자꾸만 차가워지고 오한처럼 다가오는 원망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어머니의 모성에 의문을 가진다. 계속 어머니에게는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이런 어머니의 인색한 사랑을 서운해하는 것조차 부질없을 정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현진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현진은 자신의 외할머니가 남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할머니를 조금도 닮지 않은 엄마를 바라보며 줄곧 아쉬움을 느꼈다“. ”오십대 중후반까지도 할머니에게는 영화배우 같은 아우라가 있었고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를 풍기며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어느 정도 위안을 가지기도 했다. 강인한 할머니, 하지만.

 

현진은 할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로 어느 정도는 자신과 엄마에게 위악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발음이 어눌해질 때,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다리에 힘이 없어서 손녀의 작은 등에 억지로라도 업혀야 할 때, 그럴 때마다 정신이 온전한 건 너무 괴로우니까. 자기 자신이 초라해질수록 말을 함부로 하고 노망을 가장한다고 이해했다. 할머니는 천부적으로 연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어디까지가 위악이고 어디까지가 노망인지 알 수 없어졌다.

 

  애정과 사랑이라는 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상호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 DNA에 박힌 것처럼 맹목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거나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따위로 복잡미묘한 마음을, 현실적인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손녀 현진이 바라보는 영실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는다. ”위악이란 말이. 내가 느낀 지점이기도 하다. 분명히 아픈 노인은 위악을 부릴 줄 안다. 아픔을 과장할 줄도 안다. 그리고 영실처럼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이 현실적인 치료를 하게 하고, 아픈 몸을 의탁할 자식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일 테니까.

  또한 윤미처럼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가 된 아버지를 보며 점점 많이 힘들고 지친 아픈 환자’, ‘늙은 아버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아버지로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셨느냐, 내게를 따져가게 되는 것을 본다. ‘도리에 매몰되어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빠져 있다가 점점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간다. 미래를 그리기보다 과거의 일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잦다. 돌봄이란 끝나지 않을 일이다. 멋지고 다정한 아버지가 아니었던 과거를 계속 떠올리며 반의반의 반으로 줄어드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게, 아픈 부모를 돌보는 많은 이들이 겪게 되는 일일까. ‘영실이 잃어버렸다는 오천만원이, 아버지가 잃어버렸다는 오만원이 실제하는 힘을 작용하긴 할까. 이 불편한 감정적 소모가 반의반의 반이라도 줄어들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있을까. 삶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는데, 소설에 대해 삶을 묻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문 넘어 도망치기



  최근 재활용센터에서 절단된 다리가 발견되었다. 이 뉴스 이후 그 다리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다리가 심하게 부패하여 절단한 것이라는 뉴스가 이어졌다. 어느 요양병원 환자의 입에서는 구더기가 나왔다는 뉴스가 전해진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을 보면서, 다시금 요양병원에 대한 노인들의 두려움과 기피가 크겠구나 생각했다.

  요양병원을 가는 것은 이제 끝이 아니겠느냐는 인식, 심각한 몸 상태에도 요양병원을 꺼리는 아버지에게 요양병원을 가라고 더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알란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더더욱.

  창문 넘어 도망치는 대신 자식들에게 소리부터 지를 아버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점차 변화하는 상황에서 요양병원을 믿고픈 마음이 가득한데, 현실에서 나타나는 요양병원 사건을 접하고 보면 이로 인해 안타깝게 욕을 먹는 병원도 존재하겠지만 안타깝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09-02. /

 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다산책방, 2025-02-18.

 

 

  절대 혁명할 수 없는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그 개와 혁명 속 아버지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창문 넘어 도망치신 100세 노인이 더! 아버지도 100세가 되면 달라지려나.

  죽음이 유쾌할 수는 없겠으나 삶을 보다 긍정적인 마무리로 그리고 세상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그리하여 엄숙하거나 혹은 형식적인 장례식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그런 것을 생각해봤는데 안될 일이다. 좀더 편안하게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한편으로 그것은 내가 삶에 가지는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가 삶에 대하여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아버지와 그 개와 혁명 속 아버지는 닮아 있다. 그래서 두 소설이 너무 닮은 느낌이었다. 두 소설 속에 나타난 혁명. 전위적인 분위기, 무엇보다 두 아버지들의 성격이나 행동들이 너무나 같다. 그러나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생애에 더 초점을 두고 보니 내게 이 두 소설은 낯설게, 그리고 멀게만 느껴지던지.

  새삼스레 아버지의 생애가 어떠했다고 해도 마지막 즈음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해방하고 죄고 있던 것을 좀더 놓기를 바랐건만. 그렇게 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좀더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너무 오래 생각해보지 않은 부모님의 노후. 죽음을 향해 가는 나이에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돌봄이란 것이 사회화로 대체되고 있지만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될 일이 없다. 돌봄은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힘겨운 일이 되고 있다. 아니, 죽음이 그런 건가.

  소설 속 부녀 관계가 낯설어서인지 더더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들의 별점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 김세라, 은빛, 2026-03-25.

 


 

  희한한 광경을 봤다. 그것도 이 있는 곳에서, ‘독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이 광경에 놀라 흔한 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기가 막혀 탄성도 튀어나왔다. 참 애달프다 싶기도 하고 짜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정 시기부터 집중적으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의 연장선이겠거니 해도…… 유럽 도시 기행 3편이 출간되기 전이었으니 집중될 곳이 여기였나?

  내게 이 책은 강순희의 삶이었다. 특별히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아내 강순희도 아니었고 그냥 강순희였다. 그건 강순희 삶의 일부였을 뿐이다.

  발단은 이 책은 강순희의 이야기이니 강순희에 대해 더 검색하다 출판사 소개글도 읽고 스크롤을 더 내리던 과정에서 본 텅 빈 별점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는 별점을 작성토록 하고 있는데 별점을 매기는 게 탐탁지 않아 서재에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거의 페이퍼로 작성했다. 어느 순간 리뷰로 몽땅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내 서재는 페이퍼 수가 더 많다. 타인의 글에 별점을 매기는 건 쉽지 않다. 좋았어도 별로였어도 편하지 않다. 내 별점이야 내 기준에 따라 부여하는 건데도 신경쓰인다. 어차피 내 감상을 적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공개된 공간에 작성하는 마당에 내 기준의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보면 소심하게 대충, 어떨 땐 신중하게 대충 별 수를 클릭하고 별점이라는 게 없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부여할 별점에 대해 항상 조심스럽다는 말이 더 맞다. 아무튼, 별점!이 어떤 상품을 평가하는데 가시적이긴 하다만, ‘테러라는 말처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순수한 상품의 가치를 난도질하는 데도 직빵이긴 하다.

  그래서 별점. 뜬금없이 책의 별점과 리뷰, 나아가 좋아요를 이렇게 들여다보기도 처음이다. 한편으론 그건 또 타인의 이 책에 대한 의견이고 감상이니까. 그런데, 별점이 너무 낮은 리뷰가 연속적이라 어떤 부분들이 별로였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보았는데, 이런!

어떻게 서로 다른 리뷰어들의 서재 구성이나 리뷰의 수, 리뷰를 작성한 시기, 리뷰의 글자체와 글자 줄간격, 내용들이 거의 같을 수가 있지? 별점에 색깔이 있는 이들의 리뷰를 보면 각각 개성있는 서재 구성과 글자체가 보였다. , 그럴 수도 있다 싶다만. 그럴 수 있지.

  좋아요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클릭해봤다. 좋아요를 누르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목록이 뜬다. 딱히 서재의 글이 없기도 하지만 좋아요 누른 사람들의 서재 구성과 글자체나 글의 내용이 왜 다 비슷한 걸까.

  재밌는 건 리뷰에는 구매자도 뜬다는 거다. 구매하지 않은 이들의 별점은 왜 또 그렇게 하나같이 낮게 나타나는지. 물론 책을 사는 곳이야 오프라인도 있고 다른 서점도 있으니 꼭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는 경우도 많을 테다. 이 책의 경우 출간되고 나서도 몇 달 내내 계속 지역의 전 도서관 대출현황을 보았을 때, 작은 도서관에서도 쉽게 대출이 되지 않을 만큼 인기도서였던 걸 생각하면 책을 빌려 읽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읽고 싶은 책도 무수히 많은데, 시간들여 공들여 굳이 맘에 안 드는 이의 책을 읽는 심리는 뭘까. 아니, 적극적으로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감상을 공유하려는 그 마음의 기저는 뭘까.

  물론, 안다. 왜 그러는지

  그냥 너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고 그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오늘부터 또 계속 여기저기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굳이 이 곳을 찾아와 다시 들여다보았다는 거다. 어제 이후 날짜로 업데이트 된건 없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그게 잊혀지지 않아서, 이걸 굳이 글로 남긴다. 나도, .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수십 명 이름이 일렬로 뜨는데 하나같이 마치 유령들이 줄지어 선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름 옆에 프로필 이미지가 하나같이 텅 빈 채 있어서다. 마치 유령들이, 귀신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영혼없이 흔들리고 있는것 같아서, 갈 곳 모르고 자꾸 엉뚱한 길로 가는 것 같아서, 이 잔상이 너무 깊게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 서재의 많은 이들이 서재명에 따라 프로필 이미지를 정체성처럼 나타내며, 수많은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 이야기 하는데, 책을 토대로 삶을 이야기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무엇 꺼낄 것이 있다고 나를 감추고 영혼없는 모습으로 적의만 가득한 걸까.

, 그러고보니 나도 프로필 이미지가 없다. 그건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뭘 넣어 알라딘 서재의 가 될까 확정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새삼 유령처럼 보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보니 프로필 이미지를 채워넣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또한 나의 것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문학동네, 2025-09-30.

 

 

 어떤 형태의 직업을 가진 이든 평생 그 일을 이어온 사람의 생애는 비슷하지 않을까. 거기에 내게 조금 익숙한 세상엔 적절한 동조나 차별성을 찾아내려 할 테고, 내게 낯선 세상의 이야기는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며 바라보게 될 터이다. 편집자의 삶이란 잘 안다고도 낯설다고도 할 수 없는 세계, 이 책을 펴고 읽는 순간에도 페이지가 몇 장을 넘어가는 순간에도 이 책이 이런 내용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출판계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엄청난 사건을 바탕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을 주요 소재로 소소한 업무와 함께 제 삶을 이야기하는 회고록이나 자서전 형태의 일기와도 같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일 중에서 왜 그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인연들, 그 과정에서 일에 대해 자신이 가지는 감정과 태도들을 담고 있어 어쩌면 후배들에게 또는 어떤 직장의 신입들에게 일하는 자세를 들려주는데 적합한 이야기처럼도 느껴진다. 사회초년생에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올라선 이가 들려주는 어쩌면 직업에서 성공한 이야기처럼. 그래서, 그녀는?

  그녀, ‘석주가 조금이나마 목적을 가지고 생기있게 활동한 건 대학 시절 문학 창작 동아리에 가입한 것, 거기에서 나아가 소설 창작 수업을 청강한 것이다. 이후로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에 맞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스물 넷에 교한서가에 교열자로 입사한다. “크게 보면 오탈자와 문법적인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 교정이고, 문맥과 흐름을 파악하여 표현과 문장을 다듬는 것이 교열교열자는 교정자로 원고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교열자로서 석주는 상사 오기서아래에서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어 보였고, 과도하게 수용적인 자세는 태만하게보여 원고에 어느 정도로 관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점차 교열 업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후 오기서의 추천으로 부서를 이동하여 인문교양부 편집자로 일하면서 편집자의 마음 같은 것이 자리하며 편집 일에 대한 열정이 셩겨난다. 편집자 소모임을 찾아가기도 하며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닮은꼴의 꿈을 좇는 듯보이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으며 소속감을 느낀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편집자 조원호와 매일의 산책같은 사랑과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고요.

 

  물론 연애만큼이나 일에 대한 석주의 열정과 애정 또한 깊어간다. 직장생활을 해본 이라면 반복된 일 속에서도 혼을 쏟아가며 일을 해내고, 소진이 오기도 하는 반복된 업무의 일상을 보낸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트러블이 있으면 일은 더 힘들어지기도 하고 보상처럼 승진이 걸려 있다거나, 주어진다면 더욱 열정적으로 그 일에 매몰되기도 한다는 것을. 출판사의 편집자인 석주에게는 어땠을까.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고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은 이라면 이후 업무와 관련하여 석주가 맡게 되거나 하게 되는 일이란 건 예측이 된다. 또한 1990년대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성 편집자라면 당시에도 당연하게 흘러갔을 노동하는 여성, 전문직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을 지도 짐작된다. 일과 사랑이란 왜 이분법처럼 나눠지는 선택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석주가 말하는 것처럼 닮은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와 같다.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스토리. 하지만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오는.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여기에서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오직 그녀의 것. 업무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름에도 석주의 서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석주가 하는 일을 다른 업무로 대체한다고 했더라고 보편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얼마간 자신과 닮은 듯했고 때때로 자신처럼 느껴지는이야기. ‘석주가 그 마음까지를 모두 알려주는 꽉 닫힌 엔딩.

 

특별한 사건도, 감정의 동요도 없는 그 이야기에 어째서 마음이 끌리는지 석주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읽는 건 작가가 상상한, 현실에는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인물은 얼마간 자신과 닮은 듯했고 때때로 자신처럼 느껴졌다. 석주는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라는 것 또한.

 

  이것이 오직 그녀의 것나의 것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날의 햇살


달걀의 온기,  김혜진, 창비, 2026-04-08.

 


  넌 봄날의 햇살같아.”

  우영우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분명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빛나는 언어 표현도 우영우를 대하는 봄날의 햇살행동도.

  한국인은 이라는데, 최근에는 외국인에게 어필하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부담스럽게 여겨지거나 의심부터 하게 되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오랜 시간 뼈 속에 박힌 이 정서가 쉬이 사라지진 않겠지 싶으면서도, 개인주의를 넘어 점점 이기주의로 치닫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정인지, 오지랖인지, 범죄를 위한 미끼인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 서글프다. 달걀의 온기이런 마음을 모듬은 소설집이 아닐까.


삶에서 사소한 정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는 생각을 그녀는 자주 했다._빈티지 엽서

 

관심도 지나치면 병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세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_관종들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그건 애실이 평생 노력했으나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현서로 인해 잠시 잊었던 일상이었다. …… 애실씨, 혹시 걔한테 돈 빌려줬어?” _하루치의 말

 

  그러니까 타인의 호의에 반신반의하게 되고 선뜻 타인의 손을 잡기 힘든 불편한 기류들이 흐른다. 그래서 내가 행한 단순한 선의가 타인에게 불경한 것으로 치부되며 뒷담화의 소재로 사용될 때, 빈티지 엽서는 자기변명과 자기합리화로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내 일상을 변화시키며 그 안으로 스며들어 좋은 기운을 전하는 이, 그래서 좀더 삶을 애착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행복할 수 있을 듯한 순간, 호의가 목적을 위한 것, 거짓임을 알았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 하루치의 말속 애실이 경험하는 감정이다. 아마, 다시는 사람에게 호의도 삶의 환희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집의 제목은 달걀의 온기.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마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관종들정해는 가까운 이들에게서도 모진 말을 듣지만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걸 거두지 않는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불안과 걱정을 나누는 데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일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니까. 작가는 이처럼 최소한의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더 소망하는 듯하다.

  닭이 갓 낳은 달걀은 따스하다. 그 달걀을 맛보려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온기를 느끼는 것 또한 조심스러울 일인데, 그 온기를 나누려면 따스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더 세심해야 할까. 달걀의 온기에서 선희가 청란 두 알의 따뜻함을 느끼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선희는 아이가 건넨 청란 두알을 받아 들었다. 따뜻했다. 그건 바깥의 열기와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였다. 아니, 바깥에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온기인지도 몰랐다_달걀의 온기


  내부, 속으로만 흘러 들어가서는 깨닫지 못할 온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마도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관계맺음 속에서 나누는 온기일 것이다.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살던 고향집을 처분하기 위해 내려와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마음이나 행동이 까끌까끌한 상태이다. 혼자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며 살아가는 소녀 민지를 보며 선희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이 얼마나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지, 그만큼 타인에 대한 원망을 하고 있는지를.

  「푸른색 루비콘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고, 새로운 만남이 기대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부류가 아닌 의 관심사는 늘 내부로 향했는데 교회에서 만나게 된 남자와 엮이며 차가 구덩이에 빠지는 일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그의 얼굴에 따뜻하게 와닿는 것을 느끼고 남자가 준 꿀물 한잔은 에게 입안에 달콤한 내음이 감돌게 하고, 나른한 졸음을 주며 잠깐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하나의 세계는 필시 다른 세계와 엮일 수밖에 없다. 홀로, 내부로만 집중해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다 실망하고 문을 닫아버리기도 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선의를 줄 수도 있음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봄날의 햇살처럼 무심히 행하는 보살핌과 애정을 받게 되면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게한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따스한 햇살의 온기처럼 조용히 퍼져나갈 온기를 잊지 않기를,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감각하기를 소설은 전하는 듯하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_달걀의 온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