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의 별점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 김세라, 은빛, 2026-03-25.
희한한 광경을 봤다. 그것도 ‘책’이 있는 곳에서, ‘독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이 광경에 놀라 흔한 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기가 막혀 탄성도 튀어나왔다. 참 애달프다 싶기도 하고 짜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정 시기부터 집중적으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의 연장선이겠거니 해도…… 유럽 도시 기행 3편이 출간되기 전이었으니 집중될 곳이 여기였나?
내게 이 책은 ‘강순희의 삶’이었다. 특별히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아내 강순희’도 아니었고 그냥 ‘강순희’였다. 그건 강순희 삶의 일부였을 뿐이다.
발단은 이 책은 ‘강순희’의 이야기이니 ‘강순희’에 대해 더 검색하다 출판사 소개글도 읽고 스크롤을 더 내리던 과정에서 본 텅 빈 별점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는 별점을 작성토록 하고 있는데 별점을 매기는 게 탐탁지 않아 서재에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거의 페이퍼로 작성했다. 어느 순간 리뷰로 몽땅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내 서재는 페이퍼 수가 더 많다. 타인의 글에 별점을 매기는 건 쉽지 않다. 좋았어도 별로였어도 편하지 않다. 내 별점이야 내 기준에 따라 부여하는 건데도 신경쓰인다. 어차피 내 감상을 적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공개된 공간에 작성하는 마당에 내 기준의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보면 소심하게 대충, 어떨 땐 신중하게 대충 별 수를 클릭하고 별점이라는 게 없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부여할 ‘별점’에 대해 항상 조심스럽다는 말이 더 맞다. 아무튼, 별점!이 어떤 상품을 평가하는데 가시적이긴 하다만, ‘테러’라는 말처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순수한 상품의 가치를 난도질하는 데도 직빵이긴 하다.
그래서 별점. 뜬금없이 책의 별점과 리뷰, 나아가 좋아요를 이렇게 들여다보기도 처음이다. 한편으론 그건 또 타인의 이 책에 대한 의견이고 감상이니까. 그런데, 별점이 너무 낮은 리뷰가 연속적이라 어떤 부분들이 별로였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보았는데, 이런!
어떻게 서로 다른 리뷰어들의 서재 구성이나 리뷰의 수, 리뷰를 작성한 시기, 리뷰의 글자체와 글자 줄간격, 내용들이 거의 같을 수가 있지? 별점에 색깔이 있는 이들의 리뷰를 보면 각각 개성있는 서재 구성과 글자체가 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싶다만. 그럴 수 있지.
좋아요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클릭해봤다. 좋아요를 누르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 목록이 뜬다. 딱히 서재의 글이 없기도 하지만 좋아요 누른 사람들의 서재 구성과 글자체나 글의 내용이 왜 다 비슷한 걸까.
재밌는 건 리뷰에는 구매자도 뜬다는 거다. 구매하지 않은 이들의 별점은 왜 또 그렇게 하나같이 낮게 나타나는지. 물론 책을 사는 곳이야 오프라인도 있고 다른 서점도 있으니 꼭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는 경우도 많을 테다. 이 책의 경우 출간되고 나서도 몇 달 내내 계속 지역의 전 도서관 대출현황을 보았을 때, 작은 도서관에서도 쉽게 대출이 되지 않을 만큼 인기도서였던 걸 생각하면 책을 빌려 읽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읽고 싶은 책도 무수히 많은데, 시간들여 공들여 굳이 맘에 안 드는 이의 책을 읽는 심리는 뭘까. 아니, 적극적으로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감상을 공유하려는 그 마음의 기저는 뭘까.
물론, 안다. 왜 그러는지.
그냥 너무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고 그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오늘부터 또 계속 여기저기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굳이 이 곳을 찾아와 다시 들여다보았다는 거다. 어제 이후 날짜로 업데이트 된건 없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그게 잊혀지지 않아서, 이걸 굳이 글로 남긴다. 나도, 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글을 좋아요 한 사람들’ 수십 명 이름이 일렬로 뜨는데 하나같이 마치 유령들이 줄지어 선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름 옆에 프로필 이미지가 하나같이 텅 빈 채 있어서다. 마치 유령들이, 귀신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영혼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서, 갈 곳 모르고 자꾸 엉뚱한 길로 가는 것 같아서, 이 잔상이 너무 깊게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 서재의 많은 이들이 서재명에 따라 프로필 이미지를 정체성처럼 나타내며, 수많은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 이야기 하는데, 책을 토대로 삶을 이야기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무엇 꺼낄 것이 있다고 나를 감추고 영혼없는 모습으로 적의만 가득한 걸까.
아, 그러고보니 나도 프로필 이미지가 없다. 그건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뭘 넣어 알라딘 서재의 ‘나’가 될까 확정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새삼 유령처럼 보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보니 프로필 이미지를 채워넣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