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코리 스탬퍼 지음, 박다솜 옮김 / 윌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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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전을 만드는 일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코리 스탬퍼, 2018.


  “세상에, 그렇게 재미없는 일도 있군요.”

   책 속 10대인 딸 친구가 말했듯이 매일 단어를 만드는 일이란 재미없는 일이고 기대를 크게 가져서인지 단어를 만드는 일은, 아니 단어를 만드는 일에 관한 코리 스탬퍼의 이야기는 재미있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일이 매우 재미있고 이 일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무려 20년을 웹스터 사전 편집자로 살아온 코리 스탬퍼가 차근히 보여주는 사전 편집자로서의 일상은 아, 막연하게 상상하는 이미지는 사라져버리고 그냥 직장인의 모습으로 남았다. 직업적인 면보다 단어에 관해 더 알고자 했으니 말이다. 사전 편집자의 일을 기술하고 있으니 그 세계에 관해 잘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그 일은 고체로 분류될 만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고 새뮤얼 존슨에 의하면 “무해한 노역자”다.

   그렇다. 단어를 찾는 일도 역시 재미있지 않다. 나이듦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강하고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를 찾는 일이 재미없는 건, 그렇게 사용된 단어의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은 대체로 차이를 두기 위해, 그리고 차별하기 위해, 혐오하기 위해 생산된 말이 많아지니까 더욱 단어를 찾는 일은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떤 단어는 사전에 올라가지만 어떤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 종이 사전을 쓸 때보다 사전을 검색하는 일은 훨씬 쉽고 빠르게 되었다. 물론 그때보다 사전을 찾을 일도 무진장 많아졌지만 찾지 못하는 단어가 훨씬 더 많아졌다.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들을 감으로 맞추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쩌면 그 이유를 사전편집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단어는 빠르게 변하고 무수히 생성되지만 사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한달, 심지어는 아홉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한 단어의 의미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문법과 쓰임들에 관해서도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 어원에 관해서도 기록한다. 어원을 안다는 것은 단어가 만들어지던 시기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어’를 만드는 일은 단지 세상에 생성된 말을 사전이라 불리는 곳에 옮겨다 놓는, 모아 놓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무해한 노역자들은 칸막이 책상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가장 적확한 단어와 쓰임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매일 이 일을 반복하고 있다.


사전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단어가 뜻하는 바와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릴과 로맨스를 기대하며 사전을 펼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편집자들은 단어와 사전과 사랑에 빠지고 인해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며 일한다. 심지어 천국의 직업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어떤 면에선 이 일에 관해서만큼은 전류가 통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지 직업적으로만 회사원으로서 사전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진행할 수 있을까.

 

사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에 관한 귀하의 질문은 저희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사전 편찬자들이 할 줄 아는 일은 단어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깊은 인간적 감정의 속성과 영구성에 관한 질문은 저희가 다루는 범위를 약간 벗어납니다. 더 큰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의 편지에 답에서 사전편집자들에게 단어를 정의할 뿐 단어가 지닌 ‘깊은 인간적 감정의 속성’에 관해서는 멀리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인간적 감정을 담은 단어들이 수없이 생성되고 있고 그 단어의 의미를 기재하기 위해 의미를 찾고 어원을 찾고 쓰임을 찾고 있지 않나. 사전에 등재되는 단어는 모든 단어가 아니라 깊은 고뇌와 논의 끝에 편집자들에 의해 걸러지고 합의된 단어라는 점, 그 행위에 감정적 속성이 개입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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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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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로 전진하다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2018.


   한 나라의 정상이 갈라진 국경을 넘는 방법은 발자국 한번 떼면 되는 일이었고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일은 발자국 한번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서로간 교류가 없이 흘러간다면 그 차이는 더더욱 커지며 의사소통을 위한 통역가와 전문번역가가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육십여년의 단절은 반만년 역사의 언어를 갈라놓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국경을 넘는 일은 어렵고 더디게 흐른다. 여전히 우리 국경을 넘지 못한 언어가 있고 언제 올 지 기약도 없다.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은 정영목 번역가가 국경 너머의 글들을 불러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읽고 생각하고 느낀 세상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작가들과 작품세계는 책 뒷페이지 역자의 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와 작품세계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었던 글을 생각나게 한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지만 저자에게 인상깊은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여―필립 로스, 주제 사라마구, 헤밍웨이, 존 업다이크, 이창래, 알랭 드 보통, 오스카 와일드, 존 밴빌, 코맥 매카시, 윌리엄 트레버, 커트 보니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가들의 생애와 글쓰기 특징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들과 그들의 평가, 저자 자신의 평가가 더해져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읽고프게 만든다.

  특히 낯설지 않으면서 낯선 작가 이창래의 이름을 보고선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이 위안부의 삶을 다룬 글을 썼다는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기억의 주인공이 바로 이창래 작가임을 알았다. 매해 노벨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는데 번역본으로 읽어야 하는 한국인이었던 작가. 저자는 인종은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미국인이며 영어로 글쓰는 이 작가의 글을 번역하면서 느낀 소회를 이렇게 말한다.


억측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창래 같은 작가―영어를 사용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를 다른 외국의 작가들보다 더 거북해하는 것 같다. 아주 얕은 수준에서 보자면, 미국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한국과 관련된 사항―상황이든 등장인물이든 간판이든- 이 나왔을 때 받는 왠지 편치 않은 느낌(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역된 ‘외국’ 소설에서 기대하는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설사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외국 언론에서 한국 상황을 보도하는 기사를 읽을 때처럼 그 묘한 객관성이 가지는 시원치 않은 느낌, 남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우려가 남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입술의 움직임과 말의 부조화로 20%는 생각을 곁으로 흘려보내며 보게 되는 더빙 영화처럼. 이제는 이런 기분을 멀리 던지고 이창래 작가의 책을 편케 읽을 수 있을까. 

  정영목 작가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번역하면서 보통의 까칠한 성격을 매끈한 성격으로 바꾸어 번역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한다. 번역을 하게 되면 그들의 음영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한다고 하니, 나 또한 정역목 작가의 글이 자신의 음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정영목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이 분의 결이 섬세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정갈하고 맑게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인상도 그렇다. 갑자기 정역목 작가의 책이 연달아 출간되었을 때 잠시 놀랐다. 어떤 신변의 변화가 있어서 책을 낸 것은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어딘가 아프다거나 더 이상 번역일을 하지 않겠다거나 뭐 그런.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아서 편하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인생의 한부분에 대한 정리이자 자신의 일에 더 전진하리라는 다짐이리라 생각하며 나도 ‘전진하다’가 자동사라 여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세상을 겪을수록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전진이냐 퇴행이냐 하는 흐름의 결정은 평지가 아니라 비탈에서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전진이란 늘 비탈을 올라가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낸 모든 인간적 성취도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함께 안간힘을 써서 밀어올린 것이어서 사실 그 자리에서 간신히 지탱하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전진하다’가 자동사라고 믿고 두 손을 내려놓는 순간 그간의 성취는 내리막길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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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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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없는 식탁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2018.


  제목을 본 순간부터 ‘네 이웃’의 ‘네’는 자동적으로 인칭대명사로 인지됐다. 소설을 읽으면서 식탁을 둘러싼 네 가족의 이야기임을 알았으니 ‘네 이웃’은 숫자 4의 의미도 있다. 내 이웃이 넷이라는 건 축복일지 악몽일지 모를 일이다. 살아보지 않는다면, 겪어보지 않는다면.

  EBS 한국기행은 한국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다룬다. 이런 이야기에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웃과 더불어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모습을 이상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럴 때면 그 모습에 현혹되어 그 삶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그것은 좋은 것 이면에도 그냥 사람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것은 잊어버리고픈 꿈꾸고픈 아름다운 꿈, 삶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역할이 있음을 간과한 채로 그저 모든 것이 아름답게 꾸며놓아진 식탁일 거라고 기대하는.

  이 소설을 통해서 그 식탁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더했고 꿈꾸기가 다소 파괴되었다. 그러나 분명 내 가정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지역의 공동체 또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격하게 깨닫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웬만한 소음은 배경음악으로, 어수선한 광경은 손닿지 않는 액자 속 풍경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꿈미래공동실험주택.” 어딘가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 같은 이 공동주택은 저출산 국가에서 세 명 출산을 조건으로 입주가 가능한 곳이다. 저출산 사회이기에 TV에서는 연일 다자녀 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아이 세 명은 굳건한 결심이 있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또한 이 나라는 내 집 하나 마련키 어려운 곳이니, 안정된 주거를 갖춘다면 행복은 덤이 될 것만 같은 내 집 없는 설움과 고통에 놓여 있으니, 어떤 방법이라도 깨끗하게 새로 지은 내 집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아이 셋쯤이야, 하며 아직은 교통이며 제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도심에서 벗어난 이 주택에 입주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요진과 은오, 단희와 재강, 효내와 상낙, 교원과 여산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네 가족이 그랬다. 각각의 생활방식이 다르지만 공동주택에 놓인 커다란 식탁 위에서 그들은 연신 ‘함께’ ‘같이’를 외치며 공동체 생활의 첫 활동과제로 공동 육아를 시행한다. 공동 육아의 현장에서의 역할만큼 각자의 삶을 채워야 하는 이들은 일터로 나간다. 네 가족 중 세 명의 아빠와 한 명의 엄마가 일터를 향하고 식탁엔 세 명의 엄마와 한 명의 아빠가 앉는다. 한 명의 엄마 효내는 어린 아이를 돌보고 며칠을 밤새워 하는 일로 인해 공동육아 시간에 딱 맞게 참석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 한 명의 엄마 요진은 멀리 일을 하러 가기 전 공동 육아에서 해야 할 일을 담당하느라 힘들고 지친다. 남편 은오는 집에 있지만, 가사일을 도맡아 하지 않는다. 공동 육아에 찬성한 은오는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공동체 생활의 일이고 빠질 수 없노라 얘기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단희는 은오에게 기대하는 바는 낮고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효내에게는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는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여섯 살 시율이가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모습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길들여진 것일지도,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같이의 역할에서도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성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관절과 같은 것이라 활액이 없이는 삐걱거리며, 그에 따른 통증과 불편을 실제로 느끼고 감당하는 쪽이 으레 따로 있다는 게 단희의 주된 불만이었다. 어디까지나 뭔가 인사를 못 얻어서가 아니라 공동주택에 살면서 그 정도가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라고 단희는 믿었다.


  각자의 가족이 지닌 생활의 무게, 그것이 각자의 문지방을 넘어 식탁으로 오르는 일은 순식간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잘 해나가려 하지만 요진도, 단희도, 효내도, 교원도 타인의 행동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공동체라는 이름하에 각자가 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는 무엇이고 얼마만큼일까. 각각의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과 타인에게 느끼는 친밀감의 속도와 정도가 다를 진대 우리는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


요진이 불편하고 불쾌하면 곧 그것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진은 가능한 한 ‘누가 봐도 이상하며 그럴듯하지 않은’ 일에 반응하고 싶었다. 해석의 방식과 범위에 따라 불쾌지수가 널뛰는 일에 낱낱이 발끈함으로써 서로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피곤한 여자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예민한 이웃으로 간주되기 싫었다. 좋은 게 좋은 줄 알며, 사소한 농담에 호응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인이 되는 게 바람직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 가족들의 공동체에 대한 열의는 공동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공동체에서의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가정에서의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가정은 공동체라는 보이는 식탁을 장식하기 위한 꽃이 아닐진대 보여지는 면에 의식을 두다 보면 정작 잘 가꾸어야 하는 가정은 조용히 이지러지게 된다. 내 가정의 안락한 삶을 무시한 채 타인의 가족과 어우러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 가족에게 배려가 부족한데 타인에 대한 무한 배려와 이해가 가능할 수 있을까.


기중기를 동원하지 않고는 어려워 보였을 뿐더러 왠지는 몰라도 이 공간은 이렇게 활용해야 마땅한 곳 같았다. 어떤 효용이나 합리보다는 철저한 당위가 지배하는 장소.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에 대한 의지없이 ‘공동체’라는 단어 자체에 함몰되어 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그것 자체로서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이루어가는 각각의 주체들을 배제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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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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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픽션을 읽을 때의 곤란함

여름, 스피드, 김봉곤, 2018.


  여섯 편의 중단편은 전체적인 틀에서 연결되게 느껴졌다. 소설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사랑과 글쓰기였는데 사랑을 해서 글쓰기가 된 것인지 글쓰기를 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인지 애매할 정도로 둘은 분리되기 어려웠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된다고 했다. 사랑을 하면 세세한 것 하나라도 기억되고, 잊히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모든 사랑하는 자의 심리가 아닐까. 또한, 사랑하다 헤어진 이들의 마음도. 사랑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글쓰기, ‘글을 쓰고 그를 쓰는’ 이야기라서 독립적인 서사가 애매한 모든 ‘그와 나’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에게 몰개성이 느껴지게 했다. 

  또 이런 말들이 있다. 모든 사랑하는 연인들은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유치하고 그저 그런 연애사라고. 그래서 여기, 소설속 사랑이야기가 그저 그런 연애사로 보인다. 그 연애사를 절절하게 묘사하지 않기에 작가의 심리에 다가가지 못함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작가의 의도라고 봐야하는 걸까.

  이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스피드하게, 그리고 가벼이 읽혔다. 공부중인 '나'의 현재 고뇌는 ‘그와의 사랑'에 집중되어 있고 ‘그’와 사랑하기 전에도 사랑 중에도 사랑 후에도 '나'는 허세가득한 글에 매몰되어 있다. 섬세한 사랑의 결은 어디로 흘러가고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이는 일기 같은 기록이 남는다.


그는 나의 거짓 과제를 보고서도 나의 글쓰기에 대해 비난했다. 넌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해. 그건 너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길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신물나는 애정,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기본인 행동하기, 보여주기, 외화(外化).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가 선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강요했고,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결코 굽히지 않았으며, 그것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보여주기보다 말하는, 행동하기보다 의식을 좇는 나의 글은 그의 눈엔 그저 멋부림에 불과했다. 교수 자신은 거리낌없었던 전위나 실험을 내가 하는 것은 객기였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무릅쓴 것에 대해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분명한 오만이며 강요라고 생각했다.


  나도 일종의 ‘교수’가 되려나. 이 전위와 실험의 글쓰기를 객기로 보는. 그러나 나와 같은 ‘교수’만 있었다면 작가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신춘문예 등단작 「Auto」의 심사평―“퀴어의 사랑과 이별, 기억, 시간, 장소, 글쓰기 등의 다양한 무늬를 점프 컷과 소격효과 등의 기법을 통해 노스탤지어라는 캔버스에 개성 있게 그려낸 작품”―은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으며, 홀로 이 소설에 대한 이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 스탈이 아냐”를, “문장과 서사들이 나에게는 맛깔스럽지 않았어”, 이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이 문장 하나를 쓰기 전에 변명같은 말들을 먼저 꺼내게 되는 이유에 대해.

  소설의 차별점이 무언가를 생각한다. 사랑과 글쓰기가 소설 전반의 내용이라 했지만 그보다 이 여섯편의 소설을 지배하는 건 퀴어, 라는 단어 아닐까. 시작부터 끝까지 ‘보편적이지 않은’ 퀴어의 사랑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 그리하여 자전적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소재의 차별화라고 할 수 있지만 소설의 매력이나 색다름과는 구별되는 것이고 소재를 어떻게 ‘소설적 형상화’ 하여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가는 다른 문제이니,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남동생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토픽션을 쓸 때의 부끄러움은 사생활이라 여겨지는 나의 내밀한 삶과 생각을 밝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실된 문장과 이야기인지, 어떠한 감정을 추출하고 획득해내기 위한 작위가 없었는지―나와 독자에게 모두―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꾸밈을 유혹받는 데서 오는, 혹은 필연적인 착오를 무릅써야 한다는 한계에서 생기는 부끄러움이다. 또 언제나 문학과 남자로 수렴되고 마는 나의 편협함에서 생기는 가벼운 수치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글 읽기/쓰기와 남자, 절대 끊을 수 없는 것.)


  이 소설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아라는 말을 하기에 왜 이다지 껄끄러운 느낌이 드는가 했는데 거듭 소설에서 작가를 분리하기가 어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전혀 아는 바 없는 작가인데도 ‘오토픽션을 쓸 때의 부끄러움과 곤란함’을 느끼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오토픽션을 들여다볼 때의 곤란함이 솟구쳐서인지도. 그리하여 나는 이것이 소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자칫 작가에 대한, 평가로 비쳐지는 건 아닌가 우려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을 천천히 음미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를 한입 가득 집어넣고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것이 쓰든 달든 아주아주 천천히, 이번에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첫 소설집이니 다음에 작가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 ‘스피디하게 읽어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쓰든 달든 아주아주 천천히’ 읽을 수 있을까. 다음번에는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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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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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밀기 

경애의 마음, 김금희, 창비, 2018.


  양희와 필용이 다시 등장한 듯했다. ‘반도미싱’ 팀장과 팀원, 공상수와 박경애. 양희같고 필용같은 경애와 상수의 너무한 남의 연애사. 옆에 이들이 있으면 참 재미있겠다, 생각들만큼 그들의 그네밀기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소설의 필연이 주인공들의 운명적 연결고리이기에 경애와 상수도 과거부터 이 줄을 서로 쥐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사건보다는 사건의 이후의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랄까.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만 열어보면 어떤 일들에 대해서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그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호프집 화재사건에서 친구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경애와 그 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상수에게는 이때부터 이미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상실에 상실이 더해진 경애가, 그러니까 오랜 연인과 이별하고 무력감에 빠진 경애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페이스북에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형의 학대와 일찍 어머니를 잃은 상수의 상처, 직장에서의 냉대와 배제, 낙하산이라는 굴욕이 더해진 상수가 하는 일은 ‘언니’로서 페이스북에 상담 솔루션을 해주는 일이었다.

  7~80년대의 공장과 오버랩되는 ‘반도미싱’은 그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당연하게 부당한 운영들을 일삼고 이에 맞서 파업하는 이들 속에 경애가 있다. 부당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연애와 사랑, 관계에 관해서도 경애는 부당함을 말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을까.

  경애의 흘러가고 복잡하게 오가는 이 마음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상실의 기억에서 같은 마음으로 절절해진다. 내면의 섬세한 감정들이 작가의 독특한 문체의 결에 얹어져 『경애의 마음』은 명쾌해지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포근해진다. “아무리 꽉 엎드려 있어도 경애가 만들 수 있는 어둠에는 한계가 있는” 경애의 힘인가.


그러자 세상은 어느 맥락에서 그렇게 순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영은 복날이 되면 야산의 개들도 그때쯤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러 다니는 걸 알아서 더 깊은 산속으로, 도시의 외곽으로 달아난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름의 고비가 지나면 도로 밑으로 내려와 무리를 지어 달리면서 일영 같은 외부인들을 경계하면서 쫓고 그사이 또다른 개들을 낳기도 하다가 문득 일영이 건네는 먹이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개들도 순해지고 수도검침원도 순해지는 시간.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한계 경애의 힘이 그런 시간을 찾아낼 것이다. 본질적으로 내재한 경애의 힘이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으로 접목하고자 하니까. 흐르는 경애의 마음이 常數로서의 존재, 질서가 있는 상수에게로 수렴하는 시간이면 더 이상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시간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최선인 생각과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결을 찾아갈 것이다. 사는 건 시소가 아니라 그네밀기라고, 그저 각자 발을 굴려 공중을 느끼다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들은 결국 서로의 그네를 밀어주며 오를 수 있는 최대의 공중을 자주 느껴가는 것이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 그것이 언제나 ‘언니’의 마음으로 살뜰히 상처받은 이들을 챙기던 상수의 마음이 가닿는 순간일 것이다.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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