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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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밀기 

경애의 마음, 김금희, 창비, 2018.


  양희와 필용이 다시 등장한 듯했다. ‘반도미싱’ 팀장과 팀원, 공상수와 박경애. 양희같고 필용같은 경애와 상수의 너무한 남의 연애사. 옆에 이들이 있으면 참 재미있겠다, 생각들만큼 그들의 그네밀기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소설의 필연이 주인공들의 운명적 연결고리이기에 경애와 상수도 과거부터 이 줄을 서로 쥐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사건보다는 사건의 이후의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랄까.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만 열어보면 어떤 일들에 대해서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그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호프집 화재사건에서 친구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경애와 그 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상수에게는 이때부터 이미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상실에 상실이 더해진 경애가, 그러니까 오랜 연인과 이별하고 무력감에 빠진 경애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페이스북에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형의 학대와 일찍 어머니를 잃은 상수의 상처, 직장에서의 냉대와 배제, 낙하산이라는 굴욕이 더해진 상수가 하는 일은 ‘언니’로서 페이스북에 상담 솔루션을 해주는 일이었다.

  7~80년대의 공장과 오버랩되는 ‘반도미싱’은 그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당연하게 부당한 운영들을 일삼고 이에 맞서 파업하는 이들 속에 경애가 있다. 부당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연애와 사랑, 관계에 관해서도 경애는 부당함을 말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을까.

  경애의 흘러가고 복잡하게 오가는 이 마음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상실의 기억에서 같은 마음으로 절절해진다. 내면의 섬세한 감정들이 작가의 독특한 문체의 결에 얹어져 『경애의 마음』은 명쾌해지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포근해진다. “아무리 꽉 엎드려 있어도 경애가 만들 수 있는 어둠에는 한계가 있는” 경애의 힘인가.


그러자 세상은 어느 맥락에서 그렇게 순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영은 복날이 되면 야산의 개들도 그때쯤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러 다니는 걸 알아서 더 깊은 산속으로, 도시의 외곽으로 달아난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름의 고비가 지나면 도로 밑으로 내려와 무리를 지어 달리면서 일영 같은 외부인들을 경계하면서 쫓고 그사이 또다른 개들을 낳기도 하다가 문득 일영이 건네는 먹이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개들도 순해지고 수도검침원도 순해지는 시간.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한계 경애의 힘이 그런 시간을 찾아낼 것이다. 본질적으로 내재한 경애의 힘이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으로 접목하고자 하니까. 흐르는 경애의 마음이 常數로서의 존재, 질서가 있는 상수에게로 수렴하는 시간이면 더 이상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시간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최선인 생각과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결을 찾아갈 것이다. 사는 건 시소가 아니라 그네밀기라고, 그저 각자 발을 굴려 공중을 느끼다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들은 결국 서로의 그네를 밀어주며 오를 수 있는 최대의 공중을 자주 느껴가는 것이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 그것이 언제나 ‘언니’의 마음으로 살뜰히 상처받은 이들을 챙기던 상수의 마음이 가닿는 순간일 것이다.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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