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비처럼 훨훨


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문예출판사, 2018.


  도리스 알름이 세상을 떠났다. 혼자서는 먹지도, 걷지도 못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흔 여섯의 할머니. 그럼에도 아흔 여섯이라면 죽음이 덜 억울할 거라 생각하기도 할 듯한 그런 나이. 눈물 흘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위로라고 건네고, 당장 죽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고 무심히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 나이.

  간호사의 실수로 소변주머니가 터져 도리스 할머니의 온 몸에 소변이 묻는다. 하지만 간호사는 씻기지 않고 소변을 닦아 내기만 한다. 일정에 의하면 도리스 할머니가 ‘씻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티슈 몇 장을 더 뽑아 닦기만 할 뿐이다. 제니가 지적한 끝에 간호사는 실수를 인정하고 할머니를 씻기지만 보호자 없는 노인은 얼마나 무심하게 다뤄질까, 생각하게 한다. “혼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아무도 혼자 죽어서는 안 돼.” 제니의 이 말이 마음을 적신다.

  아흔여섯의 도리스 할머니가 마냥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이 어떠했었는지를. 그러나 도리스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많은 이름들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고 그들의 삶이었다. 그녀에게 유일한 가족으로 남은 조카 제니에게 남긴 빨간 수첩을 남긴다. 모든 이름 뒤에 사망이라 적힌 수첩. “살아온 삶 전체를 바라보고 싶어” 쓴 글에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일생 동안 너무도 많은 이름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지. 제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오고 가는 그 모든 이름에 대해 말이야. 어떤 이름은 우리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또 어떤 이름은 사랑하는 이가 되거나 혹은 적이 되고. 나는 이따금 내 수첩을 들춰본단다. 수첩은 내 삶의 지도 같은 것이 되었어. 그래서 나는 네게 그것에 대해 조금 얘기하고 싶어. 너, 날 기억해줄 유일한 사람일 네가 내 삶도 함께 기억해줄 수 있도록. 일종의 유언과 같은 거지. 네게 내 기억들을 줄게. 그 기억들은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어떤 이름은 우리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눈물을 흘리게 하지.”

  그 어떤 이름에 김복동 할머니가 있다. 28일 두 명의 위안부 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 참으로 죄송하게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한다. 다만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만은 또렷하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접한 후에 모든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느껴졌는데 현재는 스물 세분이 생존해 계신단다.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 하셨다기에 마음이 무겁다. 위안부로 끌려간 때는 1940년, 14살이었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세계 곳곳으로 끌려 다닌 끝에 돌아왔을 때는 22세였다.

  도리스 할머니 또한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 속에서 고향 스웨덴을 떠나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생존을 오간다. 기억 속에는 그리운 이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과 끔찍하고 슬픈 일이 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벌어지는 일이 성폭력일진대 전쟁통이라면 더더욱 맹렬하게 일어났을 그 일. 그렇게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낳은 도리스는 그런 모든 기억들을 수첩에 기록한다.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이었기에. 도리스의 삶에 도움을 준 이들이 없지는 않다. 그런 그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모습들로 가득하다. 가족을 잃은 아픔, 가족과 화해하지 못하는 삶, 방황하고 우울하고, 숨어 살거나 성소수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리스는 만났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하는 헤어진 사랑하는 이의 이름 또한 수첩 속에 자리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 중엔 실존 인물이 있다. 실제로 작가를 돌봐 준 도리스 할머니가 수첩을 남겼고 그 수첩에 ‘사망’이라 적힌 줄이 그어진 이름들이 있었단다. 소설 속 제니는 도리스의 빨간 수첩을 보며 할머니의 삶과 조우했던 자신의 삶을 떠올린다. 약물중독자 엄마에게서 버림 받은 상처가득한 자신의 삶과 현재의 무기력한 삶까지도. 그러나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고픈 제니의 마음은 살아 움직이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찾아간다. 사랑과 용기를 북돋워 준 도리스 할머니의 힘이다.

  김복동 할머니 역시 우리에게 할머니의 수첩을 남기셨다. 끝까지 싸워달라고. 여전히 일본은 사과하지 않고 위안부 합의를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당당히 ‘일본편’이라 외치고 있는 현실에서 아프게 가신 할머니의 유언. 고통스런 자신의 삶의 기억을 펼쳐놓으며 일본의 만행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인권활동가로 활동해 오신 김복동 할머니의 사랑과 용기에 감사하며 힘을 얻은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새삼 어느 나라이든 100세 즈음의 노인의 삶엔 전쟁의 기억이 가득하구나 싶다. 그들 삶이 곧 근현대사의 기록이다. 급격한 세상의 변화에서 힘겹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모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 - 소설가가 되는 길, 소설가로 사는 길
박상우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만큼 키가 컸을 거야


소설가-소설가가 되는 길, 소설가로 사는 길, 박상우, 해냄, 2018.


 하루에도 수백권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모든 책들을 다 따라잡아 읽을 이유는 없음에도 어떤 날은 감격에, 어떤 날은 버거움에 벅차오르기도 한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시대, 시간 중고 거래가 활성화되는 시대, 작가 수입은 0으로 수렴해 갈 텐데도 끝없이 책들은 쏟아지고 작가 또한 탄생하고 이내 사라진다. 에세이에 대한 대중 반응은 높아가며 누구나, 저자가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점은 굳이 좋지 않게 볼 이유는 없겠지만 이런 시장을 보고 있을 때마다 시인, 소설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직업으로서의 시인, 소설가들을.  


책이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10년, 20년, 30년 묵묵히 소설가로 정진하는 사람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책을 많이 팔아 돈을 벌진 못하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선 보이지 않는 재물을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인간과 인생의 뿌리를 들여다보며 그 스스로 뿌리가 되어가는 소설가들.


  ……그래도 경제적으로 힘들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되진 않을까. 아무리 ‘좋은 소설’을 쓰리라는 마음으로 정진한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힘겨움을 디디고서 정신의 재물이 차곡차곡 쌓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현실적인 꿈을 꾸고 실행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나 3년 동안 노래연습 하루도 거른 적 없고, 뮤지컬 오디션도 빠짐없이 다 봤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없지만 내안에서 뭔가가 이만큼 키가 컸을 거야. 꼭 통장잔고가 늘고 취직을 해야만 발전하는 건 아니다.”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 中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귀를 뚫고 지나가는 드라마 대사, “내 안에서 뭔가가 이만큼 키가 컸을 거야.” 이 말은 머리를 때리고 심장에 묵직함을 주었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는 것에 반성했지만 드라마가 나온 만큼의 세월이 지나서 내 안에서 ‘커진 키’보다 쌓이지 못한 통장 잔고에 집착하게 된다. 어쩌면 소설가가 못되는 이유, 또는 무언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서 커져갈 무엇을 키우는 일보다 늘어가는 숫자에 대한 욕구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쉬이 ‘자기 부정과 비관’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자기 부정과 비관은 인생의 어느 분야에서도 생산적인 길을 가지 못하게 만든다. 깊이와 넓이와 높이의 인생이 아니라 퇴보와 정체와 나락의 삶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끊임없는 질문이자 끊이지 않는 탄식이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판단과 결단이 명쾌해지지는 않는다. 자아는 혼란에 빠지기 일쑤다. 어떻게 하면 살에서 ‘무아’에 이를 수 있을까.


어떻게 살건 문제의 관건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예술가적 삶에 최대의 적이 되는 건 말하나 마나 ‘나’라는 망상체이다. 그것과 싸워 이기지 않는 한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부수고,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도 도를 닦는 행위와 하등 다를 게 없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설파한 ‘무아(無我)’를 소설 창작의 정신적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섬뜩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소설가’가 되는 길에 관한 글이다. 소설을 써야 소설가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쓰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소설가의 자세나 소설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이 많다. 소설가로 산다는 일은 어떤 이들에겐 멋있어 보이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는 몇몇에게 해당되는 천운이 필요한 일로 대체로 고난과 고독의 길임을 알려준다. ‘소설가’라는 제목에 맞게 소설가로서 경험을 알려주지만 굳이 소설가가 아니라 세상에 어떤 ‘꿈’을 가진 이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선배의 경험담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 인생의 진로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담겨 있다. 또한 소설독법에 대한 안내도 되어 있는데 소설 읽기가 어려운 이들이 참고하면 독서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홉 번째 파도가 왔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


  내가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 더해진 안타까움이 자크 레니에를 향한 것인지 로맹 가리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싶을 즈음 책을 읽기도 전에 쓸쓸함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결론은 쉽게 지어졌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제목이 한껏 그러한 감정을 고조시켰고 ‘사람을 숨 쉬게 해주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고독’에 가득찬 자크는 로맹 가리와 일체가 되어 버렸는데.

  열여섯 개의 이야기는 냉소와 허무를 자극했고 자크가 그러했듯 마지막까지 품었던 희미한 희망이 온전한 절망에 부딪치도록 내버려두었다.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까지 남은 희망이 저주로 귀결되어 버리는 버전인 양. 떠오르는 해에 이제 폭풍우가 끝났다 싶어 안도하는 순간 덮치는 가장 치명적인 파도라 일컫는 ‘아홉 번째 파도’, 그 또한 같다.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절망의 크기는 달라졌을 터이니.

 

하지만 그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세계의 끝, 새들이 페루의 외딴 바닷가 해변으로 찾아와 죽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전쟁, 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자크는 영혼의 위안이 되는 장소로 ‘시적이고 몽환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적막하고 고독한 그곳에서 그가 받은 위안은 깊지 않아 보인다.  새들처럼 그곳에 뛰어든 그녀는 “왜 이곳 모래언덕까지 와서 죽으려는 것인지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새”다. 이때 죽음의 이유는 곧 살아야 할 이유와 같은 말로 여겨진다. 그녀는 고독에 빠진 그를 구원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할 존재다. 그렇기에 그녀가 떠나고 희망이 사라진, 의미를 잃어버린 터전에 더 이상 남아 있을 것은 없다.

  분명 깔끔한 문체임에도 로맹 가리의 글은 마음을 질척이게 한다. 단편만큼 엽편이 가득한 이 소설집에서 연이어 인간의 양면성을 확인하고 나면 ‘인간의 성정(性情)에 민감’해진다. 끝내는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속 금발머리 여인이 느꼈던 것처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이 밀려들어온다. 어쨌든, 버티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류트」속 백작 부인이 지켜내는 외교관 남편의 명예와 권위처럼 하찮아지는 기분이다.

  백작은 사교적이지도 않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으로서의 직업적인 수행을 잘 이뤄낸다. 이 모든 것은 ‘모범적이고 관례적인 모든 것을 지켜내는’ 생의 동반자 아내 덕분이다. 외교관 생활을 완료하기 전에 백작은 강렬한 예술에 대한 욕구로 골동품점에서 류트를 구매하고 젊은 류트 연주가에게 레슨을 받는다. 레슨을 거듭 받는다한들 서투른 백작의 연주 솜씨는 백작의 완벽한 예술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장롱 속 류트를 꺼내와 연주하는 백작 부인.

자신의 예술혼을 묵혀둔 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헌신적인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인듯 싶었던 「류트」는 묘한 의혹으로 거듭 읽게 된다.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미묘함이 과한 상상이 아닐까 싶어 백작의 행동 하나하나, 아내의 말 한마디한마디, 골동품 상점 주인의 미소를 눈여겨보게 되는 맛. 로마, 지중해, 예술가, 16세기의 류트…. 로마 시대 카이사르에게 따라다녔던 그 의혹을 부추기는 이 단어들.


마치 그가 어떤 은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위한 그녀의 기도는 열렬하고 간절했다. 결혼생활 삼십오 년에 아이들도 다 자랐고, 자신이 말없는 애정―내밀한 부부생활에서도 표출하지 못하는 은밀하고 고통스러운―으로 감싸고 있는 그를 아무것도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며 모범적인 삶의 절정에 오른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스탄불 페라 호텔 내에 있는 프랑스 식 소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레이스 손수건을 쥔 채, 운명이 인간의 마음속에 탄생과 동시에 장치해두곤 하는 시한폭탄이 그의 내부에서 갑자기 터지지 않게 해달라고 몇 시간이고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완전히 노출된 햇빛 찬란한 긴 하루처럼 평생을 천직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느릿하고 차분하게 꽃피우듯 살았을 뿐인 사람을 어떤 내적 위험이 위협할 수 있단 말인가? ― 「류트」


  오래도록 감춰뒀다가 이제 폭발한 백작의 예술성은 거듭된 류트 레슨을 통해 완벽해질 법 하지만 백작 부인의 계획 아래 잘, 감춰진다. 백작 속에 있는 예술가 기질은 류트를 연주하는 것에서는 발현되지 않을 것이니까. 서투른 남편의 류트 연주를 완벽하게 포장해주는 아내의 성실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아내들의 꾸준하고 경직된 성실함이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데 더없는 기여를 했음이다. 남편의 지위와 명예를 곧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며 지내온 아내의 불안과 초조로 일관된 기도의 이유는 가늠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지켜가는 것이 행복인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예술성’이 폭발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오직 신께만 드러냈을 백작 부인의 그 마음처럼 작가는 직접적인 단어나 묘사없이 이 코드를 그려낸다. 작가가 그려내는 대로 따라가며 그저 나는 절망하거나 냉소하거나 한번씩 웃기만 하면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20-04-1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저도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로맹 가리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가 이 작가의 전기를 읽고 직접 만든 영상도 있으니,
재미삼아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vKy0n0XDJMM

모시빛 2020-04-13 12:50   좋아요 1 | URL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생은 참 인상적이죠.
그 생애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그렇고요.
마침 로맹 가리의 생애가 생각나는 날이네요.
oren의 영상으로 마음을 채우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아이 석상은 누워 있어야 했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 배봉기, 푸른책들, 2009.


  오래도록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은 미스터리였다. 다양한 연구와 가설이 모아이 석상을 신비화 하는데 기여했다. 2019년 새해가 되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미국 뉴욕주립대 빙엄턴대 연구팀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에 모아이 석상은 마실 수 있는 물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스터 섬에 수백개의 모아이 석상이 존재하는데 대체로 석상은 민물(fresh water)이 가까운 위치에서 발견되었고 물이 없는 지역에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팀도 전적으로 식수위치가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11601007&wlog_tag3=daum]


  모아이 석상은 거대한 높이와 무게로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이동시켰는지에 관한 궁금증은 지속되었고 지금까지 조상숭배, 종교의식, 부족간 세력형성을 이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이스터 섬의 황폐화, 몰락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모아이 석상 운반을 이유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내면서 바다로 나갈 카누를 만들 나무도 없을 만큼 섬의 자원이 급격히 고갈되었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섬은 식인 풍습이 있었고 석시 시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다.

  이스터 섬은 태평양 남동부 칠레령으로 칠레로부터 3,500km나 떨어진 섬이다.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침입하는 이민족에 대처해야 했던 이스터 섬 사람들. 아니 그들 자신의 명칭으로 라파 누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는 모아이 석상보다도 궁금해진다. 전해지기를 처음 정착한 이들은 단이족(短耳族)이었다. 히바 섬에 살던 이들은 장이족(長耳族)과의 전쟁에서 패해 섬으로 왔지만 또다시 장이족의 침략을 받고 패함으로써 장이족의 석상 만드는데 동원되었다 한다. 장이족의 식인 풍습으로 아이들을 잡아먹었고 이것을 참지 못한 단이족이 전쟁을 일으켜 장이족을 몰아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전설에 의하면 모아이 석상이 장이족처럼 커다란 얼굴, 길다란 귀를 가지고 있음이 설명된다.

  이런 전설과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사실들에 상상력을 더하여 만든 이야기, 그것이 이 책 『사라지지 않는 노래』이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골계는 익숙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원주민의 땅에 이방인이 침략하여 약탈하는 이야기. 이 세상 어느 터전이든 식민지를 건설하는 침입자들의 행태는 같고 그들에 대항하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도 같으니까.

  작가는 원주민을 ‘제비갈매기족’으로 이방인을 ‘회색늑대족’이라 명명했다. 실제 이스터 섬에는 조인상(Bird man) 조각이 많은데 라파 누이는 마케마케라 불리는 새의 머리를 하고 있는 창조의 신을 섬겼다 한다. 축제 때면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오는 모투 누이 섬에서 제일 먼저 알을 찾아오는 이에게 조인이라 하여 1년을 왕과 같은 권위를 주었다고 하는 만큼 제비갈매기족이 이스터섬, 라파 누이를 상징하는 부족임을 알 수 있다.

  당연 전설처럼 이 두 부족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갔고 반목한다. 제비갈매기족이 나눔과 배려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회색늑대족은 투쟁과 탈취였다. 영원히 지배하고자 하는 회색늑대족은 자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거대 석상을 만들고 제비갈매기족을 노예로 부린다. 두 부족 간의 갈등이 첨예하고 경계가 뚜렷하단 해도 사랑이란 스며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이들은 이들 혼혈족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존재했던 보다 평화롭던 시대에 대한 갈망은 강해지고 그들은 노래하기 시작한다. 섬의 아름다운 역사를. 노래가 가지는 강한 힘이 모두의 마음속을 적시어 가며 마침내 모든 부족이 갈등과 반목, 증오와 분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방법이 있음을 깨달으며 그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노예도 전쟁도 없는 삶, 차별이 없는 삶으로, 그것을 없애기 위해 같은 귀고리를 달고 석상을 세우지 않고 석상을 편히 눕히며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평화와 행복.


그리하여 섬은 하나의 부족으로 바다처럼 평화로우니

해와 달 아래에서 영원하여라!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이것이 청소년 소설이기에 어쩌면 희망을 보여주며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스터 섬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인 것을, 사실과 다른 결말이래도 상관없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나아간다 한들 어떠랴.

  섬에는 일곱 번의 침입이 있었다. 이스터 섬에 사는 두 부족과 그들의 혼혈족들이 사랑과 평화를 알아가는 때에 침입한 일곱 번째의 이방인. 그들은 어느 부족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노예였으니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노예선에 태웠다. 평화를 원했던 마지막 족장 ‘큰 목소리’도 피하지 못하고 오클랜드 농장으로 팔려간다. 이곳에서 ‘큰 목소리’가 끊임없이 부르는 노래, 이스터 섬의 역사가 가득한 이 노래는 농장주의 아들 헨리에게로 전해진다. 헨리가 자라서 언어학자가 되었으니 이는 곧 침략자의 언어로 인해 기록된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전해지는 노래, 이스터 섬의 역사.  

  처음 모아이 석상에 대해 들었을 때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꼈다. 식인의 섬, 외계인이 만든 석상 등등의 이야기가 깊게 자리잡아 있었던 것인지 오래도록 무인도인 줄만 알았다. 그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 뒤였다. 새삼 이 섬에 관한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두려움보다는 슬픔이 더 크게 자리한다. 거기에 소설이 얹은 결말은 씁쓸함과 분노를 더한다. 생각해보니 하와이 섬의 비극도 이스터섬 일곱번째 침략과도 닿아 있다. 인간 탐욕이 스스로의 자정 작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은 탐욕의 크기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짓밟히고 마는 절망의 역사. 인간이라 부르기 역한 족속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탐욕의 인간이 기어이 승리하고 마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은 영원한 사실적인 결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널리스트의 근자감은 샤덴프로이데 정신?!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18.


  잠에서 깨어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르지 않는 걸 알게 되면 당연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꽤 기민하게 반응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때는 무언가를 꿈꾸기도 했을 테지만 이제는 변변찮은 글을 쓰며 살아가는 콜론나. 간밤 폴터가이스터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까지 가늠하는 이 남자가 4개월 전, 모든 일의 시작점을 회상하고서야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 차라리 유령출몰, 폴터가이스터 현상이 낫다. 두려움 가운데 재미라고 있으니까.

  1992년의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있다면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좋겠다. 모른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다. 소설은 현재에도 익숙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언제든 소환해 낼 사건, 이야기가 넘친다. 최근 더 극심한, 그 본질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언론의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 발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행되지 않을 기사를 대비하여 예비로 만들고 있는 기사. 그러므로 제0호. 제목이 가진 뜻이 이렇게 풀린다. 창간호 이전의 제호.


「그래요, 책을 한 권 낼 겁니다.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입니다. 우리 신문은 창간하기로 해놓고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지만, 그 신문을 내기 위해 1년 동안 준비하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책이죠.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그 신문의 제호는 <도마니>, 즉 내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슬로건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내일 얘기하기로 해요. 아무튼 내가 내려는 책의 제목은 <내일을 알려면 어제를 보라>가 될 것입니다. 멋있지 않아요?」


  끝내 창간하지 않을 신문을 기획하는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 건가. 그러다보면 언론이 되고픈 이유는 또 뭔가라는 물음이 함께 한다.

  어디서부터가 시작되어야 하나. 발단은 마니 풀리테가 되나? 마니 플리테(Mani Pulite)는 깨끗한 손이라는 뜻으로 1992년 2월 17일 당 간부 집에서 거금을 압수수색한 계기로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부정부패 척결 작업을 말한다. 대대적인 부정부패의 척결이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이 정권을 쥐는 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당시에 막대한 재력가가 승리했고 언론을 장악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소설은 신문을 창간하려는 막대한 재력가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의 뜻에 따라 실무를 담당하는 편집부의 신문사 제작과정을 다룬다.


제0-1호, 제0-2호하는 식으로 12호에 걸쳐 창간 예비 판을 낼 예정입니다. 그 발행 부수는 소수로 제한하되, 기사 내용은 콤멘다토레가 직접 검토합니다. 그런 다음 콤멘다토레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몇몇 인사들에게 그 기사들을 읽어 보라고 권할 겁니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금융계와 정계의 이른바 성역에 있는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죠. 그러면 그 거물들은 신문 창간 계획을 중단하라고 콤멘다토레에게 요청하겠지요. 그 요청에 응하여 콤멘다토레는 『도마니』라는 신문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거물들의 성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 겁니다.


  이를 테면 신문 『도마니』는 볼모다. 재력가 콤멘다토레의 세력 강화를 위한 협박용이다. 그렇다면 제0호는 발행되지 않을 『도마니』를 예견한 협박용이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 시메이 주필로부터 콜론나는 고문으로서 <제0호>를 위해 일한다. 기사가 협박용이 되려면 그 색깔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황색으로 도배될 수밖에 없는. 그러므로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은 어떻게 특종을 ‘만들어 내는가’에 중점을 둔 자극적이고 허접한 기사 작성법에 할애된다.


<샤덴프로이데>,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그런 비참한 사건에 관심을 가질 의무가 없어요. 불의에 분개하는 것은 좌파 신문에 맡깁시다. 그게 그들의 전문이니까요.


  요즘은 그런 것만도 아니네요, 라고 말해 주고 싶다. ‘불의에 분개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우쪽에 붙어 있는 자들에게는 모두가 좌쪽에 있어 보이는 것일 뿐이며,  ‘좌파’가 불의에 분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불의와 사명감(?)에 따라 좌파 언론이 취하는 기막힌 역할 또한 황색 저널리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정의는 기계적 중립이 아닐뿐더러 불의에 참고 무력했던 자들의 뒤늦은 코스프레는 어제와 오늘의 논조가 다르기에 지속적으로 진정성을 의심하게끔 한다.

  어쨌든 소설 속 브라가도초 기자가 실종됐고 마침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가 취재하고 있던 기사는 기자 자신의 ‘가설’이다. 무솔리니가 로마 교황청의 도움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무솔리니의 흔적을 추적한다. 브라가도초가 만나야 할 이들은 교황, 많은 정치가, 마피아, 테러리스트, 프리메이슨, CIA 등등, 무수하다. 그러나 브리가도초는 매춘업계를 취재하다 포주에게 공격받아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등장했으니 콜론나로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에도 놀라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이 언론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느니만큼 말이다. 콜론나는 도피했고 결심한다.

  “1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제 남들이 말하도록 그냥 버려두고자 한다.”

  어차피 황색 저널리즘을 준비했던 기자로서 그런 종류의 것들을 그만두는 것은 아쉬울 데가 없다. 그러나 조금은 반성하는 자라면, 진실한 보도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이 말이 주는 허탈함은 알려나.

  새해가 되었고 올해도 가짜뉴스는 넘쳐날 것이다. 개인방송이 넘쳐나고 있지만 자신이 퍼뜨리는 말의 무게에 대한 자각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럴 의도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음에도 이것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기 하고 있으니 ‘언론인’이라는 명명이 어디에다 정착되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도마니 신문>이자 <제0호>와 같은 기사·뉴스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때때로 가장 보기 싫은 기사·뉴스는 <단독>이 붙은 것일 때도 있다. 어쨌든 오늘은 신년기자회견이 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을 보는데 웃음이 났다. 올 한해 그들이 작성한 기사의 면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까. 눈감고 귀막고 쓰는 기사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을까. 언론사를 손에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콤멘다토레 같은 인물의 현실 등장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제법의 재벌이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라도 정의와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은 채 노골적인 황색 저널리즘을 당당히 주장하는 언론사의 존재 이유를 소설을 통해 보면서 왜 이탈리아가 아직도 마니 풀리테가 진행 중인지 알겠다. 우리에게 마니 풀리테와 같은 이름은 적폐청산이 되는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