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노래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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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석상은 누워 있어야 했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 배봉기, 푸른책들, 2009.


  오래도록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은 미스터리였다. 다양한 연구와 가설이 모아이 석상을 신비화 하는데 기여했다. 2019년 새해가 되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미국 뉴욕주립대 빙엄턴대 연구팀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에 모아이 석상은 마실 수 있는 물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스터 섬에 수백개의 모아이 석상이 존재하는데 대체로 석상은 민물(fresh water)이 가까운 위치에서 발견되었고 물이 없는 지역에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팀도 전적으로 식수위치가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11601007&wlog_tag3=daum]


  모아이 석상은 거대한 높이와 무게로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이동시켰는지에 관한 궁금증은 지속되었고 지금까지 조상숭배, 종교의식, 부족간 세력형성을 이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이스터 섬의 황폐화, 몰락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모아이 석상 운반을 이유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내면서 바다로 나갈 카누를 만들 나무도 없을 만큼 섬의 자원이 급격히 고갈되었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섬은 식인 풍습이 있었고 석시 시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다.

  이스터 섬은 태평양 남동부 칠레령으로 칠레로부터 3,500km나 떨어진 섬이다.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침입하는 이민족에 대처해야 했던 이스터 섬 사람들. 아니 그들 자신의 명칭으로 라파 누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는 모아이 석상보다도 궁금해진다. 전해지기를 처음 정착한 이들은 단이족(短耳族)이었다. 히바 섬에 살던 이들은 장이족(長耳族)과의 전쟁에서 패해 섬으로 왔지만 또다시 장이족의 침략을 받고 패함으로써 장이족의 석상 만드는데 동원되었다 한다. 장이족의 식인 풍습으로 아이들을 잡아먹었고 이것을 참지 못한 단이족이 전쟁을 일으켜 장이족을 몰아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전설에 의하면 모아이 석상이 장이족처럼 커다란 얼굴, 길다란 귀를 가지고 있음이 설명된다.

  이런 전설과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사실들에 상상력을 더하여 만든 이야기, 그것이 이 책 『사라지지 않는 노래』이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골계는 익숙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원주민의 땅에 이방인이 침략하여 약탈하는 이야기. 이 세상 어느 터전이든 식민지를 건설하는 침입자들의 행태는 같고 그들에 대항하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도 같으니까.

  작가는 원주민을 ‘제비갈매기족’으로 이방인을 ‘회색늑대족’이라 명명했다. 실제 이스터 섬에는 조인상(Bird man) 조각이 많은데 라파 누이는 마케마케라 불리는 새의 머리를 하고 있는 창조의 신을 섬겼다 한다. 축제 때면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오는 모투 누이 섬에서 제일 먼저 알을 찾아오는 이에게 조인이라 하여 1년을 왕과 같은 권위를 주었다고 하는 만큼 제비갈매기족이 이스터섬, 라파 누이를 상징하는 부족임을 알 수 있다.

  당연 전설처럼 이 두 부족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갔고 반목한다. 제비갈매기족이 나눔과 배려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회색늑대족은 투쟁과 탈취였다. 영원히 지배하고자 하는 회색늑대족은 자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거대 석상을 만들고 제비갈매기족을 노예로 부린다. 두 부족 간의 갈등이 첨예하고 경계가 뚜렷하단 해도 사랑이란 스며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이들은 이들 혼혈족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존재했던 보다 평화롭던 시대에 대한 갈망은 강해지고 그들은 노래하기 시작한다. 섬의 아름다운 역사를. 노래가 가지는 강한 힘이 모두의 마음속을 적시어 가며 마침내 모든 부족이 갈등과 반목, 증오와 분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방법이 있음을 깨달으며 그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노예도 전쟁도 없는 삶, 차별이 없는 삶으로, 그것을 없애기 위해 같은 귀고리를 달고 석상을 세우지 않고 석상을 편히 눕히며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평화와 행복.


그리하여 섬은 하나의 부족으로 바다처럼 평화로우니

해와 달 아래에서 영원하여라!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이것이 청소년 소설이기에 어쩌면 희망을 보여주며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스터 섬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인 것을, 사실과 다른 결말이래도 상관없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나아간다 한들 어떠랴.

  섬에는 일곱 번의 침입이 있었다. 이스터 섬에 사는 두 부족과 그들의 혼혈족들이 사랑과 평화를 알아가는 때에 침입한 일곱 번째의 이방인. 그들은 어느 부족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노예였으니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노예선에 태웠다. 평화를 원했던 마지막 족장 ‘큰 목소리’도 피하지 못하고 오클랜드 농장으로 팔려간다. 이곳에서 ‘큰 목소리’가 끊임없이 부르는 노래, 이스터 섬의 역사가 가득한 이 노래는 농장주의 아들 헨리에게로 전해진다. 헨리가 자라서 언어학자가 되었으니 이는 곧 침략자의 언어로 인해 기록된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전해지는 노래, 이스터 섬의 역사.  

  처음 모아이 석상에 대해 들었을 때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꼈다. 식인의 섬, 외계인이 만든 석상 등등의 이야기가 깊게 자리잡아 있었던 것인지 오래도록 무인도인 줄만 알았다. 그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 뒤였다. 새삼 이 섬에 관한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두려움보다는 슬픔이 더 크게 자리한다. 거기에 소설이 얹은 결말은 씁쓸함과 분노를 더한다. 생각해보니 하와이 섬의 비극도 이스터섬 일곱번째 침략과도 닿아 있다. 인간 탐욕이 스스로의 자정 작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은 탐욕의 크기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짓밟히고 마는 절망의 역사. 인간이라 부르기 역한 족속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탐욕의 인간이 기어이 승리하고 마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은 영원한 사실적인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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