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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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옮김, 이끌리오, 2003.



  이 책은 캠벨과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방송용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처음 기획에서부터 책으로 엮을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인 캠벨 사후 대담의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서문에서 빌 모이어스는 캠벨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집약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마다 모이어스의 질문에 캠벨이 답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현대 세계에서 신화가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고 있으며 2장은 궁극적으로 신화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3장은 과거의 신화와 의례에 대해서, 4장은 희생과 천복(天福)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5장은 영웅의 모험의 여정에 관해 이야기함 6장은 우주의 어머니인 여신의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7장은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8장은 영원의 가면에 관한 신화의 이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담 형식을 취함으로써 캠벨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이어스가 명료하게 요약하거나 의문점을 질문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어 읽으면서도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캠벨이 이야기하는 형태는 안타깝게도 나에게 아주 명료하거나 구체적인 각인을 주기 보다는 그 전체적인 아우라로 나를 감탄시켰다. 물론 문장 하나하나에 매료된 구절도 분명 있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분명 모자랐기에 그가 던지는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크다.

  하지만 비교적 내 삶과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천복에 관한 것, 내면의 길에 관한 내용들은 쉽게 와 닿았다. 천복을 좇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모이어스의 질문에, “천복에 이르게 된다”는 그 말. 참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고 인디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수집한 그 답게 인디언 추장이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지는 인디언들의 삶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더욱 되씹어 보게 된다.

  또한 캠벨을 신화학자로 부각하다 보니 간과했던 부분이다. 그 또한 종교학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종교와 신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내가 종교인이 아니기에 주의깊게 읽혀지기도 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두려움, 신에 대한 이야기..다시 보니 마음에 드는 글들이 많다. 신화의 힘은 두고 두고 되씹으며 읽어 봐야 할 듯하다.


  이 책은 대담의 기록이다. 즉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글로써 전달한 것이 아니라 질문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태로 캠벨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 글과 말이라는 것은 전달형태면에서 여러 가지로 다르다. 그렇기에 글로써 읽어내려갈 때에는 전달력이란 측면에서 약한 면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힘으로 온전히 이야기를 엮어 갈 때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추어 내용을 정리할 수 있으나 대담은 질문자의 의도 또한 개입되어 때론 반복적이고, 때론 부연적으로, 때론 흐름과는 조금 동떨어진 형태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빌 모이어스가 적절히 질문의 형태를 조절하며 대담을 이끌고 있다지만 이 책이 대표적인 신화입문서, 신화개론서 이야기된다는 것을 볼 때 보다 쉽게 일반인의 눈높이의 질문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 즉, 개론서라는 것이 많은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핵심적인 부분을 간결하고 쉽게 정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 책이 캠벨이 저술한 초기 저작물이 아니라, 캠벨이 많은 저서를 출간하고 생에 마지막 즈음 자신의 모든 저술에서 말한 바를 총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이미지, 신화와 인생, 신화와 함께하는 삶, 신의 가면 등의 내용이 각 장마다 조금씩 자리한 요약서의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서 오히려 다른 저서들을 살펴보아야 신화의 힘에 겨우 접근이 가능하다고나 할까.

  한편으론 저자가 살아 이 책의 출간을 주도했다면 지금의 형태와는 다른 정말로 신화의 개론서로서의 책을 서술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쉽기도 했다. 의도적인 질문과 반박을 접어둔 채 오로지 그의 이야기에 대한 수용적인 자세로 책을 읽으려 하면서도 이해가 어렵거나 더한 답변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저 신화에 대한 메타포, 그가 자신의 일생을 바쳐, 그의 천복으로서 임했던 신화에 대한 생각과 신념으로서 글들을 이해하며 읽었기에 책을 읽고 난 이후의 몽상적인 상태가 지속되다. 캠벨의 저작들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근하기 위한 대담으로서는 오히려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좀더 '신화'의 의미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들 뽑아내어 그것을 중심으로 한 질문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방대함은 깊이에 대해 부족하게 한다. 이 책이 신화에 대한 이해, 개론서가 되어야지 조셉 캠벨이 그동안 쓴 책들의 요약 정리본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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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신화 조셉 캠벨



조셉 캠벨[Joseph John Campbell] 에 대하여


금주법의 시대, 술을 만들어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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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as a young man at the University of Paris (1928)

Working on A Skeleton Key to Finnegans Wake (1944)

At home in Hawaii (1985)

 

At the National Arts Club receiving Medal of Honor (1985)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는 정말로 어찌할 수 없다. 내겐 아무런 철학도 없었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우리는 함께 존 듀이를 공부했다. 카멜 도서관에서 나는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두 권짜리 『서구의 몰락』을 꺼내 들었는데, 이런, 세상에! 거기 적힌 내용은 벼락과도 같았다. 슈펭글러는 말했다. “젊은이여, 만약 그대가 미래의 세계에 있고 싶다면, 자신의 그림붓과 시 쓰는 펜일랑 선반 위에 얹어 두고, 멍키 스패너나 법전을 집어 들어라.” 나는 스타인벡에게 말했다. “저기요, 이것 좀 한번 읽어 보세요.” 나는 책의 제1권을 다 읽은 다음에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잠시 후에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아, 나는 이 책 절대 못 보겠는걸. 아, 내 예술은 어쩌나.” 그는 거의 2주 동안이나 한방 먹은 사람처럼 넋이 나가 좀처럼 글을 쓰지 못했다.

        - 신화와 인생, p92~93 -


   

   캠벨이 말하는 '아무런 철학도 없었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말이 한편으론 미심쩍긴 하지만 가만히의 생을 들여다보면(물론, 그렇다고 그의 생을 충분히 알 것 같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 라는 말이 나오려 한다. 그의 생을 조금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는 그는 샌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잘 자란 가정에서 소위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는 청년의 모습. 일견 반듯하고 이성적인듯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차갑고...

  그러나 내가 보게 되는 캠벨은 자유주의자적 기질이 다분하고 인생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위트가 있고 경쾌함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다.


 슈펭글러의 책을 읽은 것이야말로 내겐 중요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나는 에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요, 에드.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껏 평생 삶에 대해 ‘아니’라고 말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그래’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그래, 근데 그렇게 하려면 술에 취해야 되니까 일단 파티를 열자고.” 그 당시는 대공황의 시대일뿐만 아니라 금주법의 시대이기도 했다.  -신화와 인생, 93.


    금주법의 시대, 신나게 술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의 그 기질에 동참하고프다. 주위 사람도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줄 듯하다. 더불어 신화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말이다. 그래서 그가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캠벨은 미국인이다. 뉴욕에서 태어났고 게다가 상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의 지원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의 긍정성은 어릴 적부터 이런 포용적 가정에서 자란 이유도 있을 듯 보인다. 특히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자연사박물관을 구경갔다가 아메리칸 인디언에 대해 매료된다. 이후 인디언에 관한 신화와 민담들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신화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던 그는 14세 때에는 병으로 집안에 머물며 자연과학을 공부하였고 대학에서도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하였다.



참고 자료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신화의 이미지, 살림, 2006.

•신화의힘, 이끌리오, 2003

•조셉캠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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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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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꾸 내게 이야기하려 한다...

 

 

   아, 살구. 알 수 없는 이해와 감정이입으로 나는 거듭 그녀의 여행에 함께 했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소제목처럼 돌고 돌아 되돌아오는 그 여정에 그녀가 거두고 그녀가 만들어낸 살구와 함께 했다. 아이슬란드의 기후처럼 차가운 살가움, 서리진 추위가 빚어내는 정화(淨化)의 기운이 그녀의 글 속에 스며있었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이 흘러나왔다.

   맨스플레인의 창시자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을 통해 그녀를 알고 그 책의 문체와 어조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아는 작가가 맞는지를 거듭 확인했다. 마치 오전에는 에너지 넘치는 강의를 듣다가 늦은 밤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는 그녀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더 깊은 인생의 대비가 통찰의 환희가 사유의 고뇌가 이해의 갈망이 그녀의 문장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흑백 사진의 여백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고 까닭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먼 나라의 그녀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의 그녀를 듣는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책다발을 한아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나비가 살짝 와서 머무를 것이다. 그 가벼운 위로의 날개짓을 보지 못한 채 그녀는 두려움을 안고서 더 깊이 더 깊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 헤매었을지언정 미로 속에서 길로 인도하는 끝없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다시 되돌아 나오면 되었다. 그 되돌아오기를 결정하는 때가 그녀가 말한 그 순간은 아닐까.

 

유한한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p223)."

 

   그녀는 많은 슬픈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그녀의 슬픔은 미로 속에서 같이 헤매었고 저 먼 아이슬란드 바다 위에서 서린 얼음 위에 올려놓고 마주한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는 시초가 되었을지 모를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와의 관계와 애증의 더미가 얼음 위에서 점차 소멸해 간다. 거울과 같이 투명한 그 얼음 속에서 그녀가 자아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노력이 있었기에 그러하다. 그녀는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선택하기 위해 살구더미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녀의 삶에서 좋은 기억들을 촘촘히 만들어냈다.

 

 

우리가 보기에 다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걷기에 필요한 기술과 확신, 그리고 걸으려는 의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천천히 알려지지 않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술이나 사실들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자아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p337).

 

   그녀의 사유는 우리가 삶에서 겪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 어느 누구도 삶의 이 내용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말할 수 없다.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질병과 고독과 이별과 단절과 반목들. 또한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단지, 우리와 그녀의 사유의 방식과 사유의 방향이 조금 달랐달까. 어느 누구나 삶을 바라보는 생각의 방식은 있다. 그것에 반응하는 감정의 반향은 있다. 어떠한 결론을 만들어가든, 그녀가 걷는 사유의 길을 같이 걸어 보기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다.

 

  누가 당신의 말을 듣는가. 할 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들려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듣는 이의 귀에서 머리까지 이어진 미로를 여행하는 공기의 울림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두운 통로에서는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욕망과 필요 혹은 관심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하여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세상은 삶을 온통 편안한 것과 익숙한 것만 비춰 주는 겨울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고, 그 반대의 세상에도 마찬가지로 위험은 있다.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자(p283~284).

 

   그녀는 계속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이야기처럼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정화의 힘을 믿는다. 그녀는 내게도 이야기하라고 건넨다. 그녀의 이야기를 건네며 너도 감정의 정화 속에 참여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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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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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의 관념을 지배하고


  시대를 떠나 결혼과 도덕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으리라는 것,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에 관한 ‘절대적’인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 1929년의 사회에서 결혼과 도덕에 대해 생각한 러셀은 ‘절대적’이라 간주되어 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결혼과 도덕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 왔으며 왜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말한다. 다양한 방면에서 탁월한 활동으로 업적이 드높은 러셀이 1929년이라는 시대적 혼란의 시기에 다른 무엇보다 결혼제도에 관해 진지하게 고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풍요와 낭만의 시대가 아닌 전세계에 우울과 상흔이 휩쓸던 그 시기에. 

  어쩌면 혼란과 위기의 사회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선 개인, 가정(가족) 단위의 힘에서 발전될 수 있으리라 여겼을지 모른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p253)”라고 말하는 러셀이라면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나 러셀이 사회(고대이든 현대이든)는 경제와 가족 또는 성적인 요인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회의 발전과 가족제도의 발전이 상호적이며 그렇기에 가족제도에 대한 고찰은 사회적 고찰과도 연계된다. 그러니까 이에 관한 논의는 협의적이라기보다 광의의 의미를 가진 성찰이었다.

  러셀에 따르면 모든 나라의 성 윤리와 제도는 어느 정도 미신과 전통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즉, 꼭 합리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한 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제도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낡은’ 것에 대해서는 수정이 필요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인식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러셀에게 있어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지만, 분명 제도가 사람의 관념을 형성하는 측면이 있기에 타당치 못한 인습이 어째서 그런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낡은 도덕률을 새로운 도덕률로 교체하는 경우에는, 의식적 사고를 구성하는 인격의 최상층에서만이 아니라, 인격의 모든 구성 부분에서 새로운 도덕률이 수용될 때에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년기 내내 낡은 도덕을 접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유년기부터 새로운 도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새로운 도덕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p277).


  그런 점에서 “빵을 굽는 유일한 이유가 사람들이 케이크를 훔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든 성 바울의 성윤리에 대한 관점은 무엇을 낡은 것으로 보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결혼은 마냥 낭만적인 것이 아니며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지역의 사례를 보건대 모성이나 부성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며 성행위 또한 그렇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성윤리가 사랑을 오히려 구속하고 억압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특히나 종교가 금욕주의를 강요하며 성은 죄악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피임법의 발전과 여성해방사상 등의 사회변화에 맞물려 사람들의 인식은 점차로 변화되어 가고 있고 가족제도에서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하는 상황도 증가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미신적인 사고로 인한 제도적인 제약이 가해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과 결혼을 저해함과 동시에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셀이 자유로운 사랑과 결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적인 방종과 책임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러셀은 오히려 ‘자녀출산’이라는 면에서 결혼과 이혼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보며,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남녀가 자식을 낳지 않고 살기로 결정한 경우라면 타인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당시 린지 판사의 우애결혼compnionate marriage에 동조하는데 이 결혼이 일반적인 결혼과 구별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분간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편리한 피임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둘째, 출생한 아이가 없고 아내가 임신한 상태도 아닌 경우에는 합의에 의한 이혼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이혼을 할 경우 아내가 이혼 부양료를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이 제도가 법률에 의해서 확립되면,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주신제와 같이 난잡한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공동생활을 수반하는 상당히 지속적인 배우자 관계를 맺으리라고 주장한다(p147).


  이러한 주장을 하는 러셀이 생각하는 행복한 결혼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행복한 결혼 생활의 정수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p281).


  사소한 부분, 방법이나 인습수준 등에서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행복한 결혼에 대해서 굳이 견해를 달리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공감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방법적인 측면이다. 러셀이 이미 보편적인 의견에 자신의 견해를 더해 행복한 결혼을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제 그 의견에 동의하거나 또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 그 방법적인 부분은 다양한 논의를 통해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낡은 ‘제도’의 수정이 필요하리라는 그리고 그 제도에 고착화되어 버린 ‘낡은’ ‘비합리적’ 인습에 수정이 필요하리라는 것 또한 공감하리라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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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 대한민국 보통 가족을 위한 독서 성장 에세이
김정은.유형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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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꾸고 싶어-엄마는 바뀔까요?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독서습관을 길러줘야 하고 권장목록과 유명인의 추천도서 목록을 행복을 향한 열차 티켓을 거머쥐는 것처럼 수집한다. 하지만 이것도 한때다.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대망의 대학교를 입학하기까지가 대한민국의 최종 독서의 종착역인 까닭이다.

  독서에 대한 열의가 정말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한국인의 독서량과 독서시간은 가히 참담하다. 또한 책읽기 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거나 방송에 등장한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다거나 베스트셀러니까 읽어야 한다는 형태의 독서가 전반적인 흐름이다. 유명인이 추천한 책의 줄거리를 읽고 그들의 감상을 내 것인 양 하는 어느덧 과시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독서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무화되고 강박에 휩싸인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점점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우리의 책읽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은 아닐까. 

  독서에 대한 순수한 열의를 방해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할 책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과 맞물려 ‘학습’으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독서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형성된 탓이기도 하다. 학습을 떠나서도 책이 인생의 진리이며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얘기되는 현실에서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을 때 오는 참담함도 더해진다면 독서에 대한 열망은 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헬조선이란 ‘생계’를 위한 지극히 전투적인 사회에서 책에서 위로받기엔 책과 함께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어쩌면 타인의 독서경험과 추천목록을 찾아 읽기는 이렇게 형성된 독서습관 탓에 아직도 ‘내 경험’을 찾지 못한 이들의 독서습관 형성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느낀 이들의 진정성있는 경험을 공유하고픈 이유일지도 모른다. 왜냐고, 여전히 독서에 대한 울렁증과 강박증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그 강박을 완전히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독서를 하고 싶은 열정의 첫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린, 어떤 형태로든 정말로 책을 ‘잘’ 읽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엄마 바꾸고 싶어!' , 큰 아이의 절절한 외침


  강박적으로 독서의 필요성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절절하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가족의 독서 경험을 공유하기를 권한다. 한 가족이 함께 독서를 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가족도 심상치는 않다. 아빠는 파업 중이고 엄마는 직업병으로 백수이자 병원을 오가고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아이들은 엄마와의 거리감에 힘들어하고, 마침내 엄마를 바꿨으면 좋겠다라고 하기까지. 헬조선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들 가족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정말로 독서에서 이루어졌다. 이 경험은 이 가족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차별적이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 ‘이 가족이 특별한 것일 뿐이야’라는 생각은 책을 읽으며 은연 중에 전혀 특별한 그들만의 경험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어내고 소통하는 탁월한 엄마, 아빠의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전전긍긍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가족 모두가 저자이다. 아빠와 엄마와 두 딸이 함께 읽고 나눈 독서의 경험이다. 그들이 읽은 책을 통해 현재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을 책 속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들 가족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탁월한 것이기도 하겠다. 책 속의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대체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리고 마침내 가족이 ‘가족’으로 똘똘 뭉치는 광경은 오히려 파업이 해결된 지 아닌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만큼 큰아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과 엄마가 아이의 재능과 관심을 아이의 기준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나 작은 아이가 언니와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꿈과 자신감을 길러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고나 할까. 가족생활에서 중요한 요인이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지만 그래서 위기인 아빠의 ‘파업’은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나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수많은 위기의 한 요인일 뿐이며 이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알아 가기에 더 이상 위협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하는 아빠, 아픈 엄마, 서로가 낯선 가족들"


  책의 서술자는 엄마인 것 같다. 문체나 이야기의 흐름이 그렇다. 주제에 맞추어 그들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주제마다 아빠의 편지가 따로 있기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가족 토크쇼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의 ‘서술자’ 측면에서 아빠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며 책이 출간되기까지 직접적인 집필자인 엄마에게 공이 크다라고 한다고. 하지만 저자인 엄마는 이 책의 전반적인 기획과 출발이 아버지에게서 나왔고 문체의 통일성을 위해 톤을 맞춘 것이라며 아빠의 역할이 적지 않음을 강조했다. 흐뭇한 광경이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하게 글쓰기로 엄마, 아빠, 아이들의 공을 구분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농담반 진담으로 이 책은 다 엄마가 한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아빠의 지분이 커져가고 있었다. 아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얼까. 그것은 이 가족의 전체적인 가치와 철학을 이끌어가는 데 아빠의 생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국가나, 핵심적인 가치와 목표 아래 다양한 형태의 일들이 이루어진다.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느냐가 한 가정을, 한 나라를 만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이 집안의 큰 가치가 흔들리지 않게 올곧게 지켜갈 수 있도록 하는데 흔들림없었던 ‘아빠’에게 박수를 건넨다. 아빠의 기본적인 가치와 엄마의 가치와 행동력이 맞물려 이 가정의 독서관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각자의 역할들을 충실히 해내고 그리고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들이 만들어 낸 결실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이 가족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가족들의 경험이 녹여나 그들이 읽은 책들이 더욱 빛나는 듯하다. 유쾌하고 독특한 이 가족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강박이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얼마나 큰 소통이 되는지를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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