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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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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꾸 내게 이야기하려 한다...

 

 

   아, 살구. 알 수 없는 이해와 감정이입으로 나는 거듭 그녀의 여행에 함께 했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소제목처럼 돌고 돌아 되돌아오는 그 여정에 그녀가 거두고 그녀가 만들어낸 살구와 함께 했다. 아이슬란드의 기후처럼 차가운 살가움, 서리진 추위가 빚어내는 정화(淨化)의 기운이 그녀의 글 속에 스며있었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이 흘러나왔다.

   맨스플레인의 창시자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을 통해 그녀를 알고 그 책의 문체와 어조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아는 작가가 맞는지를 거듭 확인했다. 마치 오전에는 에너지 넘치는 강의를 듣다가 늦은 밤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는 그녀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더 깊은 인생의 대비가 통찰의 환희가 사유의 고뇌가 이해의 갈망이 그녀의 문장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흑백 사진의 여백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고 까닭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먼 나라의 그녀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의 그녀를 듣는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책다발을 한아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나비가 살짝 와서 머무를 것이다. 그 가벼운 위로의 날개짓을 보지 못한 채 그녀는 두려움을 안고서 더 깊이 더 깊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 헤매었을지언정 미로 속에서 길로 인도하는 끝없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다시 되돌아 나오면 되었다. 그 되돌아오기를 결정하는 때가 그녀가 말한 그 순간은 아닐까.

 

유한한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p223)."

 

   그녀는 많은 슬픈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그녀의 슬픔은 미로 속에서 같이 헤매었고 저 먼 아이슬란드 바다 위에서 서린 얼음 위에 올려놓고 마주한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는 시초가 되었을지 모를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와의 관계와 애증의 더미가 얼음 위에서 점차 소멸해 간다. 거울과 같이 투명한 그 얼음 속에서 그녀가 자아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노력이 있었기에 그러하다. 그녀는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선택하기 위해 살구더미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녀의 삶에서 좋은 기억들을 촘촘히 만들어냈다.

 

 

우리가 보기에 다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걷기에 필요한 기술과 확신, 그리고 걸으려는 의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천천히 알려지지 않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술이나 사실들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자아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p337).

 

   그녀의 사유는 우리가 삶에서 겪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 어느 누구도 삶의 이 내용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말할 수 없다.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질병과 고독과 이별과 단절과 반목들. 또한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단지, 우리와 그녀의 사유의 방식과 사유의 방향이 조금 달랐달까. 어느 누구나 삶을 바라보는 생각의 방식은 있다. 그것에 반응하는 감정의 반향은 있다. 어떠한 결론을 만들어가든, 그녀가 걷는 사유의 길을 같이 걸어 보기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다.

 

  누가 당신의 말을 듣는가. 할 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들려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듣는 이의 귀에서 머리까지 이어진 미로를 여행하는 공기의 울림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두운 통로에서는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욕망과 필요 혹은 관심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하여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세상은 삶을 온통 편안한 것과 익숙한 것만 비춰 주는 겨울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고, 그 반대의 세상에도 마찬가지로 위험은 있다.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자(p283~284).

 

   그녀는 계속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이야기처럼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정화의 힘을 믿는다. 그녀는 내게도 이야기하라고 건넨다. 그녀의 이야기를 건네며 너도 감정의 정화 속에 참여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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