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장이 짜장이 되도록
언어의 줄다리기-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2018.
말은 인격을 나타낸다는 말이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에도 지극히 저급한 인격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그래도 전혀 괘념치 않아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이 표출하는 집단적 품격과 인격은 무지가 아니라 ‘이기’에서 나온다. 무지라면 좀더 알려주면 되지만 저 표독하고 끝없는 이기의 언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을 믿기에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말이 세상을 울릴 때마다 환멸이 쌓여간다. 이런 감정을 의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꽤 익숙하게 사용해온 언어일지라도 특정 집단에 의해 지속적으로 사용될 때면 그 단어가 가진 뜻과 뉘앙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게 어느 때부턴가 새롭게 생각하게끔 되는 단어들이 늘어간다. 지양되어야 할 언어가 확산되는 것은 특정한 집단의 ‘이기’적 생각을 담은 개인미디어의 확산도 영향이 클 것이다. 언어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려는 그 지독하고 지난한 노력들. 그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무용한 일이겠지만―던져주고 싶다.
이 책 『언어의 줄다리기』는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선정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에 매우 쉽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단어를 선정하고 있기에 오히려 그 점이 아쉽다. 가령 미망인이나 ‘여류’ ‘여교사’ ‘미혼-기혼’ 등에 담긴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익숙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롭게 등장한 언어나 은어가 담고 있는 표현을 다루었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작용하고 있는, 작용하려 하는 이데올로기를 더 잘 알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언어 사용에 민감할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언어감수성을 높일 것을 권고한다. 언어가 사고체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각하’다.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뜻에서부터 언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정확하게 따진다면 잘못된 표현이지만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어 왔고 권력은 그것을 선호했고 별칭을 법적으로 강요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 단어는 지양해야 할 단어로 꼽고 있다. 아니 명백히 틀린 단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각하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사람의 신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신분제를 전제하는 이 표현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인하는, 반민주공화국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부르기를 강요당함으로써 언어사용에 사고체계에 남아 있는 이 단어는 은연 중 여전히 신분제를 옹호하는 단어가 아니고 무언가. 특정한 집단이 특정한 인물에게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해진다.
우리나라 언어의 장점으로 꼽히는 높임말 사용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그토록 나이에 민감한 이유, 그것은 호칭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히딩크 감독이 경기진행시 호칭에 존대를 없앤 일을 우선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누군가를 부르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호칭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항상 필요했고 그것이 ‘나이’를 알고 나서 이루어졌다.
호칭의 문제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사실은 모두 언어 사용과 관련이 있다. 한국어 사용자들은 대화 상대자와 호칭과 서열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대면하여 말을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어 작동방식이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체계를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선조들은 위아래 열넷 정도는 모두 벗으로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동일한 해에 태어난 경우만을 오로지 친구로 편하게 말을 하고 선후배의 엄격한 위계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잔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저자는 크게 여덟 개의 단어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중 많은 부분은 차별요소를 가진 단어다. 특히 성차별적 언어다. 미망인, 여교사, 여검사 등등의 단어. 매우 익숙한. 이 외에 ‘자장면’ 투쟁사와 더불어 ‘자장면‘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짚는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짜장면‘을 발음하지 못하고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자장면‘의 세월 동안 자장면의 매출 또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람들은 왜 그토록 ’짜장‘을 허하기를 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재미있다.
언어 규범은 언어 사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언어 사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언어 사용자들의 사용에 기반해야 한다. ‘관’으로 대표되는 몇몇 사람들이 만든 규정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규범은 관이 만들고 ‘민’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민이 만들고 관이 정리하는 것이다. 즉 관이 해야 할 일은 규정을 만들어 민의 사용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민의 언어 사용을 관찰하여 민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현실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짜장면’은 되는데 왜 다른 표현은 안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 자연도태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재방법 또한 필요한 일이다. 넘쳐나는 혐오표현을 바로잡는 일은 왜 안되는지, 언어가 가진 힘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이 책을 읽어가며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