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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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 그로테스크

흉가, 조이스 캐롤 오츠, 민음사, 2018.


  원제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가 여기 담겨 있다.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이 그로테스크함은 점점 물리학적인 시간과 공간을 연결시켜 전개된다. 공포란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자극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건 심리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흉가>는 자매같은 두 아이의 흉가체험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엔 왜 그다지도 무서워하면서도 흉가에서 나올 유령을, 그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기운들을 경험하고파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흉가란 유령보다는 부랑꾼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늘 잊고 만다.  어릴적 흉가를 찾는 행동들은 그렇게 하고픈 마음은 단지 옛날 옛날의 이야기만일까. 공포와 스릴러를 탐닉하는 것 또한 흉가를 돌아다니고픈 마음과 같은 것이라 본다. 흉가가 간직한 사연들, 그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자리잡아 현재를 잠식한다. 어쩌면 미래까지도. 

    

옛날 옛날에라는 말과 함께 동화는 시작된다. 그런데 동화가 끝나고 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단지 우리가 들은 이야기와 그 말들이 암시하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흉가」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이 어울린다. 심장을 뜯어내는 듯한 공포보다는 익숙한 이야기가 변형되어 기괴하다. 피와 폭력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중점으로 하기보다는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무섭다보다는 괴랄과 흉측 등등 딱히 꼬집어 말하지 못할 감정을 갖게 된다. 단 하나, 강렬하게 내비치는 피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건 생리혈이다. 소설에서 공포,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등장인물은 “미혼모, 유린당한 처녀, 불명예와 연민과 수치를 짊어진 여자” 들이다. 그렇기에 종종 불안의 전조 단계로서 비치는 강한 생리혈이 소설속에 잔뜩 깔린다. 남자에게 혹은 아버지에게 맞은 아내와 아이의 피가 아니라 여성들 자신의 필연적인 신체적 특징으로서의 피. 그 비릿한 피는 불안과 폭력과 욕망의 전주처럼만 들린다. 또는 그런 것들이 오로지 ‘여성’의 것임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신세 망친 여자, 망가진 여자, 모욕당한 여자, 타락한 여자, 돌이킬 수 없이 ‘여자’가 되어 버린 여자.

제셀은 이 시간과 공간에 있는 모든 처녀는 “히스테리 기질”이 있다고, 특히 장로교회 가정교사라면 누구보다도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쏘아붙인다. 만약 그녀가 운 좋게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런 처량한 동물들은 전염병 보듯이 피했으리라고. -「블라이 저택의 저주받은 거주자들」


  그렇다. 마치 이 세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블라이 저택이고 여성들은 저주받은 거주자들인 것처럼 비극적 상황의 주인공이 된다. 공포와 불안 심리는 여성만의 지극히도 ‘감정적’인 ‘비이성적’ ‘몰이성적’인 것처럼 반응하는 남성들이 있고 그들은 그런 여성을 혐오한다. 기껏해야 생리시 갖는 히스테리, 여성의 본질적인 성격적 결함으로 인식한다.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가해자’이자 ‘포식자’로서의 그들은 여성들의 생리혈에 대해, 꿈으로까지 나타나 죄어오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폭력의 공포를 알 리 없다. 심지어 그 폭력은 시공간을 넘어서까지 쫓아온다. 이런 불안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 ‘내가 과연 자격이 있나?’ 이런 죄책감에서 거듭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에 기껏 “나를 못 믿는 거예요? 응?”이라 말하는, “중요하지 않은”일로 치부되며 “남성적인 짜증을 부리는 태도”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알 리가 있을까.

  조이스 캐롤 오츠는 SF와 페미니즘의 세계를 잘 그리는 작가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는 매우 고전적으로 느껴지는데 ‘고딕 호러’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SF의 세계가 이 소설집에서도 상당히 등장하는데 물리적인 이론들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속에서 그런 이론을 내세우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 이론적 세계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지만 그 물리적 틀을 바탕으로 폭력당하는 직접적 체현이 여성현실이다.

  적어도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감흥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진도는 더디고 답답했다. 소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작품의 소재와 스토리와 구성이 왜 이럴까를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는데 뒷장 작품 지면수록을 보고 다른 연도에 쓴 작품들을 묶은 소설집임을 알았을 때의 허망함이란. 거듭 찾아보았는데도 왜 굳이 장편으로 여겨졌는지 생각해보면 책의 정보를 미리 알지 않으려는 이유와 목차 구성 때문이었다. 단편이라면 굳이 4부로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단독 스토리임을 그대로 나타냈으면 될 것을 굳이 연결성이 없는데 4부라 나눈 편집에서 끝까지 장편이라 여기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연도별, 주제별, 소재별, 다른 스토리를 이렇게 묶은 의도가 있을까. 작가의 의도는 아닌듯하다. 각각의 단편들은 서로 다른 잡지에 다른 연도에 출간되었다. 다양한 발표지에 수록된 것을 한번에 읽는 독자로서는 매우 기쁘지만 묶음의 이 카테고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제와 형식적인 면을 따진다고 해도 분류의 이유와 목적이 수긍되지 않는다. 공포와 스릴의 순간이 얼마나 자주 깨져버렸는지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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