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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불안 불완
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문학동네, 2018.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오, 올라갈 줄만 아는 사람들.”
<유행병> 속 인물은 당대 유행하고 있는 병의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잠든 동안』이라는 표제 아래 16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퍼레이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한가지 밖에 몰라 다른 것에 대한 면역성이 없는 이들의 삶은 복잡하지 않지만 결코 단순하진 않다. 단순성, 하나에 대한 집착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복잡해질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단편집인줄 몰랐다가 단편 하나가 끝날 때마다 아참, 작가가 누구였지 확인하게 되었다. 뭐라고, 커트…보니것이라고? 정말? 이런 생각한지 얼마되지 않아 또다시 작가가 누구더라,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진짜 보니것 작품이 맞아?라는 의문과 설마 내가 보니것의 문체를 모를 리가라는 당혹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보니것 작품은 그의 사후에 출간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집도 마찬가지다. 따져보자면 뭘 그렇게 보니것 작품을 많이 읽었기에 읽으면 ‘나는 보니것의 작품이오’를 알아챌 거라고 그러냐 싶었지만 보니것의 작품에서 느꼈던 매혹이 덜해서, 아주 덤덤하게 책장을 넘긴듯하다. 나 또한 보니것 문체의 한가지밖에 모르는 사람이겠다 싶다.
어쩌면 단편집이 가지는 같은 소재와 패턴의 반복 때문에 받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특정한 한가지에 집착하는 인물들 외에 이 책속에는 ‘돈’이라는 소재 또한 반복적이다. 마치 자본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한 찰리 채플린의 작품이 연상된다. 유행병의 대사와 잇는다면 결국 이 이야기 속엔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삶이 주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돈에 집착한다는 것은 곧 돈을 욕망한다는 것인데 대체로 돈에 대한 욕망의 과정도 결과도 거의 모든 작품은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니것은 그것을 좀더 유하고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이 만든 기계 여인에 집착하는 천재 공학자, 남성 잡지 속 여인에 빠진 남자, 모형 기차 만들기에 빠진 남자, 전통과 관습에 충실한 모범생 소년이 몰두한 그것으로 인해 외면하며 잃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다. 반면 돈에 몰두하는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거나 유행처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돈이 없다면 굶어야 하고 예술을 하는 일은 멀고 험난하지만.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타인으로 만들려고 하죠.”
<루스>는 아들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며느리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안타깝게도 며느리는 패배를 절감하는 순간 저 통렬한 말을 남긴다. 그렇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과 며느리의 싸움, 왜 어머니들은 아들에 집착하며 모든 여자들을 타인으로 만들려 하는지 세월이 흘러도 알 수 없는, 궁극의 의문점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 며느리를 두지 않은 탓인지 며느리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서다가도, 깨달음에 힘입어 어머니에게로 간다.
자기에 비해 포크너 부인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들떴다. 포크너 부인이었다면 자신의 좁은 삶 속 비극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대합실에 그냥 앉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통쾌하지만 그것으로 머물렀어도 좋겠다고, 돌아서서 가지마라고 그냥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루스는 ‘자신의 좁은 삶 속 비극’을 살게 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발을 돌린다. 이런.
한때 신이 당신에게 사랑하라고 주셨던 불완전한 사람을 봐줘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조금이라도 좋아해보도록 해요. 그리고 여보, 제발, 다시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어줘요.
한가지 생각을 가치관, 신념, 중독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쪽으로 기운다면, 물론 이미 지나치게 치우쳐 있지만, 그것은 모든 이들을 타인으로 나아가 적으로 돌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들이 이기적이라는 말로 내버려두고 싶은데 굳이 또, 루스처럼 그들을 어여삐 여기며 그 삶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어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싶다. 그들은 올곧이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제니>속 천재 공학자의 아내가 남기는 편지는 그들에게 남기는 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그들을 포용하라며 남기는 메지지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