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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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불쌍타의 시절을 지나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문학동네, 2018.


  그러고 보니 영미소설의 대다수, 수많은 작가의 책을 정영목 작가의 번역으로 읽었다.   저자는 27년간 200여 권을 번역했다고 하니 놀랍고도 가늠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떤 작가보다도 기억에 남는 번역가 정영목의 번역의 방법과 번역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다. 독자들이 말하는 ‘번역투’ 문장에 대한 생각, 번역의 역할과 번역가로서의 자세, 번역과 글쓰기 등에 관한 저자의 고민과 생각 등은 번역 작가들 덕분에 여러 나라의 저작을 편하게 읽어왔으면서도 쉽게 ‘아, 번역투’라고 하던, 책이 흥미롭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으면 쉬이 ‘번역탓’으로 돌리던 것을 쑥스럽게 한다.

  레미제라블이 처음 번역되었을 때, “너 참 불쌍타”라고 번역되었다고 김영하 작가의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윤기 작가의 신화관련 책에서 도대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고 영어 원문을 기재하지도 않은 ‘육준강대의’의 정확한 뜻을 찾아 원서찾기 전쟁을 벌였던 일이 생각난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은 가장 머리를 아프게 했던 번역서였고 배수아 작가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로베르트 발저, 페르난두 페소아와 같은 작가들이 국내에 소개·번역되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작가의 맛, 느낌을 알고 싶어 원문을 애타게 읽어보고자 했던 적도 있고 영미권이 아니라 동구권, 아랍권,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에 끌리는데 번역되어 있지 않아 읽지 못하고 있을 때의 기분은 답답함을 넘어선다. 그나마 영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하여 나온다면 환호하게 되는데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번역의 세계는 가야할 길이 멀고 고달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 세계에 알릴 기회가 적다는 것, 또한 노벨상 후보로서의 위상을 얻는 일이 힘들다는 것,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오역 논란 등이 지속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냥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류 양식의 번역이라면 모르지만 소설의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배우처럼 불가분의 육체성이 번역에 붙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교환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개입하거든요. 아닌 척하고 싶지만, 투명한 체하고 싶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번역가의 무엇인가가 책 속에 남을 겁니다. 


  AI가 바둑 세계 제패에 이어 번역과 창작에까지 진출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저자는 기계의 번역에 대해, 특히 소설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 AI가 멋진 번역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에 안심했던 사람으로서 번역이 사람의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계속 사람의 일이었으면 한다.


기계에게는 인간처럼 읽는다는 것, 즉 해석을 통하여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히려 읽지 않는 쪽이 효율이 좋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고, 따라서 기계는 텍스트를 읽는 길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그 나름의 우회로를 거쳐 인간번역과 같은 수준, 혹은 더 나은 수준에 이를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우회로는 인간의 길과는 다를 것이다.


   저자는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문체를 우리말로 잘 옮기는 것을 중시하는 저자의 생각이 책 한권 한권을 번역하는 동안 번역의 원칙과 방법이 되었다. 이 책은 번역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겠다. 번역이란 무엇인지 번역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고민들, 나만의 원칙과 방법을 찾아가기까지의 저자의 노하우와 깊은 생각들이 같은 직업을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생각할 때는 자기 학대적인 면과 과대망상적인 면이 공존하는 듯하다”는 저자의 말이 확, 와닿는다. 그래서 일이란 언제나 힘들다. 내가 하는 일에서 원칙과 방법을 세워 나가는 일이 비록 자기학대를 부추기는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함으로 일을 대한다면 때론 과대망상쯤은 허용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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