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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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장일까

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arte(아르테), 2017.


  『크루얼티』에서 보여주듯 국가를 위한 직업군의 삶은 위험이 가득하다. 액션과 스릴이 가득한 첩보 스타일의 이야기는 무수히 반복되어 왔고 이야기의 구조도 줄거리도 결국은 유사하기 그지없는데 지속적으로 양상된다. 이번에는 열일곱 고등학생, 그웬돌린이 외교관 아버지의 납치범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화되기로 했다는데 ‘영화관’이 좋아할 이야기구나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CIA 비밀요원이란 흥미진진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웬돌린은 CIA요원이 아닌 열일곱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여학생일 뿐이다. 그 어떤 비밀훈련을 받은 적 없는 그웬돌린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넘나들며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닥뜨리는 일과 같다. 그 일을 겪으며, 아니 아버지를 찾기 위해 범죄조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그웬돌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새삼 다른 의문이 들었다.

  우와, 그웬돌린, 정말 멋져!

  이런 반응은 들지 않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의 정점을 밀레니엄의 마라가 가지고 있기에 그웬돌린의 매력이 비교되었을 수도 있고 작가의 그웬돌린의 창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바비’와 ‘공주’로 국한되는 여성성에 반발해서 그웬돌린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여성성의 제거가 곧 남성성의 극대화인가, 바비 공주 캐릭터도 여전사 캐릭터도 지나치게 안이하고 소비주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찌감치 사라진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가 보여주었다. 그 시절의 어린 소년이 엄마를 찾아가던 여정과 최근의 소녀가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섭게 변화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그웬돌린은 더욱 더 무장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그웬돌린은 범죄와 폭력을 주요업무로 삼는 이들을 제압한다. 짧은 순간의 수련으로 오래도록 폭력을 쉬이 사용하던 남자들에게 신체적인 열세 없이 맞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가 아니라 오버다. 그웬돌린의 강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랄하다고 해야 할 범죄조직들, 인신매매단의 보스부터 말단 조직원의 숙련된 전문성은 사라져버린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당연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는데 다른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웬돌린은 아버지가 표면적으로는 외교관이었지만 CIA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알고서 아버지를 절대 선의 위치에 놓는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납치한 일당들은 모두 가 ‘나쁜’ 사람이 된다. 이 전제는 나쁜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된다’라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웬돌린이 만나게 되는 일당들은 마약거래, 인신매매, 무기 밀매를 일삼는 확실히 악한 이들이긴 하다. 범죄조직의 잔혹성에 맞추어 그웬돌린 또한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해진다. 더 악한 일들을 처단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고 더 큰 잔혹성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열여덟이 된 그웬돌린의 활약상은,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해진다. 이건 성장일까.

   

“생각해보면, 이 애들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들거든. 어쩌면 저 빨간 머리는 페테르부르크에 계속 살면서 학교 선생님이나 뭐 그러게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저 애를 창녀로만든 거잖아.“ 에밀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 앞으로 펼쳐진 길을 쳐다보았다. 생각에 잠긴 철학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거야.“


  5개 국어를 하는 그웬돌린 역시도 통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왕따로 기억되는 학교에서 만난 테렌스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다. 세상이 그웬돌린을 잔혹한 여전사로 만들어 버리다니. 그럼에도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고 있다니. 나도, 생각을 아예 안해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럴 리가 없어요. 클라디보는 괴물이잖아요, 아빠. 클라디보는 인신매매범이에요, 여자들, 어린 소녀들을…….”

하지만 아빠도 이미 알고 있겠지, 직접 겪어보았을 테니까.

“맞아, 하지만 CIA는 상관하지 않지.”

“하지만 클라디보가 CIA 요원이라면 어째서 아빠를 인질로 잡고 있었던 거예요?”

“돈 때문이야, 그웬. 언제나 돈 때문이지.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야. 클라디보의 보스였던 조릭은 거액의 계좌를 남기고 죽었어. 클라디보와 다른 CIA요원이 그 돈을 가로채려고 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거야.”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야. 오늘 밤에 네가 한 일이 바로 정의야. 정의의 얼굴은 추하고 비열하거든.


   세상은 가치와 신념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가장 잘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라는 이 씁쓸한 말, 모든 범죄의 이유는 돈이고  CIA 요원이라면 악인이 아닐 거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일 또한 잔인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며 달려왔던 그웬돌린의 아버지는, 믿을 수 있는 CIA 요원인 걸까. 미심쩍어하면서도 그웬돌린에게 처음부터 믿고 의지하는 이들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결단을 해야 했던 그웬돌린의 활약의 정점은 인신매매로 잡혀 있던 소녀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오로지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으니, 아버지를 찾고 난 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달려간 그웬돌린은 이제 이전의 그웬돌린으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범죄의 잔혹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그 세계를 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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