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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주변 - 중국의 확대와 고대 중국인의 세계 인식
홍승현 지음 / 혜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중국과 주변>은 중국과 주변과의 관계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책봉조공체제라는 제도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것에 비하여, 중국이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인식에 준하여 어떠한 관계를 요구하고 그에 따른 제도를 만들었고 그 제도의 속성은 어떠하였는지 살피는 것은 상당히 소략했다며, 이전의 중국이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살핌으로 인하여 중국 왕조의 이적 정책의 원칙을 고찰하는데 이 책의 목표가 있다 하였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중화사상 혹은 화이사상은 중국이 자신과 주변을 분리/사고 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화이론의 시작을 알아보기 위하여 춘추시기를 서술하는 춘추삼전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다. 우선, 이적에 대한 초기의 인식은 단순히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상대를 연합도 정벌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좌전>에서는 제후국들과 융적과의 군사적인 대립, 맹약의 반복이 보이며, 주천자 역시 동성 제후국인 정나라를 적과 연합하여 공격하고자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변과의 습속과 문화, 정치적 수준에 차이를 보임에 따라 차츰 분리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전국시기 의식이 반영되었다는 <국어>의 기사에는 성왕이 기양에서 제후들과 맹약 할 때, 초를 만이로 구별하여 함께 회맹하지 않았던 일을 서술했다.
“옛날 성왕께서 기양에서 제후들과 회맹하실 때 초는형만에 불과하여, 띠풀을 엮어 자리를 설치하고 망표를 세우고 선비와 같이 화톳불을 지키는 고로 함께 맹약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적은 금수와 승냥이, 이리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리의 의식에서 모멸의 의식으로 넘어 간 것은 당시(춘추전국) 중국 국가들이 가지게 된 위기의식 때문이며, 그러한 의식이 생긴 까닭은 자신들과 잡거하던 이적 집단들이 강성해짐에 따라 중국을 침범하고, 멸망을 시킨 탓이 크다. 거기에 더하여 주천자의 세계질서가 붕괴가 되면서 제하 서로간의 공벌이 그치지 않게 되자 그에 따른 방어기제로 생긴 것이라 보았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지배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국어>에서 주목왕이 견융을 정벌하고자 하니, 제공 모보가 만류하였는데, 중국인은 이적을 정벌하여 직접 지배하기 보다는 오복제에 의해 다스리고자 하였다. 이는 무리한 균질적 지배를 거부하는 차등의 세계관이 반영된 질서다.
이렇듯 이적은 중국의 천자에 의해 지배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이러한 원칙이 수정이 가해 진 것은. 최초로 황제지배체제가 성립돤 진시황의 진나라에서 부터 였으며, 이러한 이적에 대한 직접 지배의 원칙은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허상을 만들어 유지하고자 하였다.(“땅에는 사방의 경계가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가 없다.”)
실질과 허상이 교차되는 과정상에서 중국과 주변의 경계지역은 달라졌고, 중국의 확대를 가져왔다.
읽다가 문득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동양고대사 강의에서. 강사님이 약간 유머를 가미하여 설명해주시던게 생각이 났다. 그때 수강하여 들었던 것은 희미해져 갔지만, 그 이야기는 내게 살아남아 중화사상에 대한 이해에 포함되기는 했는데 다시 이렇게 확인하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