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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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책의 미래를 말하는 책으로 오해를 하고 구입했는데 그런것은 아니였다. 
그보다는 전자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종이책은 소멸할것이라는 내용
은 담고 있지 않다.  근래에 들어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니 구입한것이기
도한데 그면에서는 만족할만 한것 같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그렇고 보론에서도 이야
기되듯 가장 중요한건 플랫폼이다. 소비자들은 언제나 읽을 수 있고 어디서다 읽을수
있으면 거기다 콘텐츠도 많고 싸면 그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와 같은 환경으로 가
기 위해서는 빠른 변환이 필요 할텐데 현재 한국출판계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자책 문제 이전에 과연 그걸 즐길 인구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들어서는 도리어 활자를 더 접하게 되었다 하는 소리와는 다른건 같다. 그것이야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고 곱씹는 행태와는 차이 가 있지 않나? 그냥 편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독서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다면  전자책까지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까지도 가
능하지읺을까?  책을 나름 좋아하는? 사람으로 종이책의 질감은 포기 할수도 그것이 없는 세
상은 상상도 할수 없으므로 종이책의 종말은 믿지 않는다. 다만 공간의 문제 무게의 문제로 
보완재 정도의 역할만 바랄 뿐이다  사적으로는 그렇다. 물론 도서관인으로 생각 해볼 지점은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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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2-1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으로 올렸더니 손목 어깨도 아프고 줄맞춤도 그렇고 오타도 .. 엄청 많다 역시 이이폰으로는 댓글이나 나을성 싶다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 사료와 함께 읽는 장애인사
정창권 지음 / 글항아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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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출간되었을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읽게 되었다. 생각외로[부제에서도 보이듯]여러 사료들 중에서 장애인들과 관련된 기사들만 가져와 해제를 다는 식이었다. 왜 엮고 지음이라고 적어놓았는지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주로 조선시대의 문헌이 주를 이루고, 간혹 고려사, 삼국사기까지 가긴 하지만 뒤로 갈 수록 주로 조선시대의 사료에서 뽑아 낸 것이 눈에 띈다.

 

 처음의 시작은 장애인을 어떻게 불려졌는지 언급하는 기사부터 시작했는데, 보통 독질자, 폐질자, 잔질자등으로 불렸다. 이 책의 저자의 선택때문인지는 몰라도, 거의 시각장애인 관련 이야기들이 많고, 조정에서의 지원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명통시라는 장애인 단체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 명통시라는 단체는 조정에서도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주로 시각장애인은 점복업, 음악, 독경 등의 일에 종사를 했는데, 이 책에서 유명한 맹인 점복가의 이야기가 유독 많이 언급된다. 그리고 관현맹인, 명과학등에 들어가서 관직을 제수 받기도 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른 장애인들보다는 살길이 더 여유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죄에 묶였을때도-연좌제- 감형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활동보조인에 해당되는 보조인도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긴, 옛날이라고 장애인이 없었을까, 선천적인 것도 있었을 것이고, 후천적인 것도 있었을 것이니 이들을 완전 없는 양 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왕들과 사대부들만의 여론이 중요했더라도.  

 

 어떠하든 사료들 속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닐텐데, 정말 대단하다. 일단 저자의 열정에 감복(?)하고 들어가는 수 밖에...[그렇게 되면 몇가지 사소한 불만은 내뱉기에는 뭐해진다.]

 

잘 읽었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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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순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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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준의 국보순례를 읽었다.   요근래 들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책이 제법 많이 읽히는 것 같기도 하다(많이 팔리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신문지상의 칼럼들을 묶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순례를 다니느 횟수는 엄청 많은데 분량은 도판까지 포함해서 250페이지 정도다. 짤막한 글이 더 어렵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성공했는가 여부는 관계없이 결론을 말하면 영 재미없게 읽었다.  

 

 국보순례는 제목과 같이 '국보'문화재는 물론이고, '국보급'이라고 할만한 문화재를 소개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백자에 대한 감흥은 거의 일지 않았다. 아마 도판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아마 예술을 보는 눈이 없는 모양이다.  대신 눈이 많이 가는 건, 백제의 문화재들이 많았다.  예전부터 감탄해 마지 않던, 백제 금동대향로 부터 해서   미륵사 서탑  순금사리호, 미륵사 출토 금동향로 등...  고려불화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감탄과 감동의 언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달될만하다. 비록 사진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리고 1박 2일등에서 이야기한 부분이 겹치는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종묘도 그것인데,  TV화면에서 영 요란스럽게 구니 오히려 영 느낌이 안왔는데, 오늘에서야 책을 통해서 사진으로나마 접하니 그가 이야기한 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의 미학적 지향성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고 하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의 글을 인용한 것인데, 과연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삼국시대(삼국시대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대)부터 해서 조선시대까지 그 특징은 달랐을지라도,  하나의 일관된 지향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특히 뒷부분에 공감을 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직접 눈으로 본 문화재는 별것도 없고, 거의 사진으로 접했으나]화려하긴 해도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이 그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약탈문화재등을 반환할때 임대 형식으로 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다. 처음에 외규장각 의례반환될때 영구임대는 또 뭔가, 기분나쁘게 했었는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를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우리에게도 반환을 요청받은 외국문화재를 2년 대여형식으로 반환(??)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재보호법상 그렇게밖에 안된다는데, '아무런 조건없이 반환하는 국제적 사례를 남기면 국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국제적 관례나 흐름에서 엄청 무지하긴 하지만,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문화재라는 것은 원래 있었던 자리에 가야 제대로 된 빛을 보는 법인데, 관광자원으로 쓴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참 한심하다.  얼마전에 외규작강 반환 관련하여 프랑스 '사서'들이 절대로 줄수 없다며 했다고 성명을 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적이 있다. 같은 직업의 종사자로서 괜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기행에서나 보면 프랑스 사서들은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프랑스 인들 자체가 어떤 자부심이랄까 그런게 강하기는 하지만, 여튼 사서 혹은 사서 관련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보면 그렇게 이해 할 수 있지만,  직업윤리중 하나인 '정직성'에는 영  꽝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도 안하고 화만 냈다. 그때 기사 났을때  화는 나면서도 가뜩이나 국내에 사서들 위상이 높지 않는데, 좋지 않을 쪽으로 이야기가 나니 불편한 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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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를 고하여라 -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 지음 / 산처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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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서 저자는 조선시대의 형법체계에 대한 편견과 형벌에 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형법에 대한 편견이라면 아무런 체계도 없고, 잔인한 형벌들이 판을 치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고는 할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형법은 대명률을 근간으로 했다.

 

 

대명률도 그렇고, 당률은 상당히 체계성을 갖춘 법률이라고 한다. 당률에서는 극도의 잔인성을 가진 고대의 육형(코를 베고, 뒤꿈치를 자르고, 생식기를 절단하고, 몸에 문신을 새겨넣는 등의 잔인한 여섯가지 형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의 유럽에서는 16세기까지 잔인한 형벌들이 존재했다고 하니, 잔인성은 유럽의 형벌이 더하면 더했지, 그리 차이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중국의 법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조선의 형법체계 역시 체계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형구의 규격에서부터, 형구의 용도와 사용주체도 규정되어 있었다. 가령, 곤장의 경우가 그런데, 태형, 장형에서 쓰이는 형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을 가졌던 곤장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형구로 일반 지방수령은 쓰지 못하였고, 군사권을 가진 변방의 수령정도만 쓸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먹구구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법률이라 한들 지금으로 바라보면 잔인성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사극에서 쉽게 보이긴 하지만, 현재에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조선에는 없었고 거열형만 있었지만, 살점을 조금씩 뜯어서 마지막에야 목숨을 끊어 버렸던 능치처사의 형의 이야기를 듣자면 등골이 오싹하다.

 

 

저자의 책머리에서 오해가 쌓여 엉뚱한 역사 해석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잘못알고 있던 역사상식을 수정하게 하는 맛도 상당했다(왜 그런지 2장은 재미가 없었다). 위에 소개한 곤장도 그렇고(조선 후기에서야 쓰인 형구이므로, 조선전기나 그 이전의 시대에 보이는 것은 분명 오류다), 춘향이가 찬 칼이 사실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남자죄수에게만 칼을 차도록 규정이 있었지만, 물론 항상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 예외적인 상황으로 가정 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리고 연좌제라고 하면 삼족을 멸한다라는 문장이 생각나는데, 이 삼족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외가, 친가, 처가 등을 칭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5대를 칭하는 것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연좌제에서 제외 되는 대상도 있었고, 물론 예외는 있긴 했지만, 나이를 많이 먹은 노인이나 열다섯 이하의 아이에게는 사형이 면제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예외는 있다. 신하들의 나라였다고는 해도 결국 조선의 최정점에는 왕이 있지 않은가? 연좌제 규정에서의 예외는 연산군때에 특히 심했다고 한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이에게도 스스로 자결하게 했다니, 이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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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 몸짓의 예술인가 억압의 기제인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3
박종천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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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구성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은 禮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장이고, 2장은 각종 고전[예기, 논어 등등...]의 원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3장은 2장에서 인용한 원문들을 보여주고, 기타 읽어볼만한 참고할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에서 나온 나머지 2권의 책들도 같은 구성인 것 같다.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예가 단순히 억압의 기제만은 아니만은 아니란 것은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禮 라는 것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물론 이것은 외면화/내면화 과정을 통한 것으로 연속선상에 있기는 하다. 우선 禮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제사, 각종 의례의식이다. 우리의 의식 속[예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각종 편견들?]에 있는 것과 같이 예의 시작은 제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기원과 뿌리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쓰이는 용어로 이른바 ‘문화영웅’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인 것이다. 일례로 피겨라는 대한민국에서 변방에 있었던 피겨를 국민들 눈앞에 보이게 만든 ‘김연아’선수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이 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제사에서 그런 의식을 하는 동안에는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행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몸짓 속에는 당연히 경건한 마음이 깃들 수 밖에 없고, 이러한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사회적 관계에 놓인, 그러니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몸짓이 禮다.

 

 

책머리에서 가장 먼저 논어 태백 편에서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이렇다.:

“詩에서 감흥이 일어 禮에서 자립하며 樂에서 완성한다.

 

 

 

어떤 인간에게는 정서적 반응이 있다.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플 것이고,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쁠 것이다. 그러나 과하거나 모자라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 이러한 넘치듯 하거나 모자란 듯 하다 인정을 조율하는 행동규범이 禮이다. 이런 예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껏 이러한 예가 허례라며 비난하고 마음속으로 조롱했지만, 생각해보면, 상을 당한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주고 싶어도 예라는 절차에 의해서 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위해서는 일정한 분별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친구가 친구끼리 하는 소통의 몸짓을 하는 것이랑,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하는 몸짓은 달라야 한다. 분명히 이 것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예는 에티켓 혹은 매너라고 흔히들 부르는 것처럼 구체적인 예의범절을 지칭하기도 한다. 임산부와 어르신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사실 자동반사적인 경우가 많지만, 다른 도덕적 실천은 평소에 습관으로 베여있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옷가짐을 단정히 하고, 행동하는 것과 언행을 조심히 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자기 밥벌이에 바쁜 각자의 현대인에게 이같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더 힘든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선비들처럼 할 수는 없어도, 행동은 반듯하고 말은 도리에 맞게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기를 잊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껏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경망스럽거나 경우에 없는 행동과 말을 한 것도 이런 삶의 자세를 못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예의 역사는 이러한 분별에 근거를 두고, 서로에 배려하고 소통하기 위한 몸짓이였던 예가 제도화 되고, 그것이 다시 사람들에게 투영되는 진자운동을 겪으면서, 차별의식을 고착화 시키기도 했다. 이건 주변에서도 그렇고, 긴 세월의 역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황時에 따라 만들어졌던 형식이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그 것. 현재에 와서 삼강에서 언급되는 인간의 도리라는 것은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예라는 것이 지금의 사람들이 문화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낸 문화영웅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제사의 의미를 되새겨, 항상 상황에 따라 재정립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예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배려하기 위한 몸짓에서 나왔다는 것은 잊으면 안된다. 그걸 잊어버린다면, 예의 비판자들의 말들처럼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악 정도로 전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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