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 몸짓의 예술인가 억압의 기제인가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3
박종천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구성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은 禮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장이고, 2장은 각종 고전[예기, 논어 등등...]의 원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3장은 2장에서 인용한 원문들을 보여주고, 기타 읽어볼만한 참고할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에서 나온 나머지 2권의 책들도 같은 구성인 것 같다.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예가 단순히 억압의 기제만은 아니만은 아니란 것은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禮 라는 것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물론 이것은 외면화/내면화 과정을 통한 것으로 연속선상에 있기는 하다. 우선 禮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제사, 각종 의례의식이다. 우리의 의식 속[예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각종 편견들?]에 있는 것과 같이 예의 시작은 제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기원과 뿌리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쓰이는 용어로 이른바 ‘문화영웅’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인 것이다. 일례로 피겨라는 대한민국에서 변방에 있었던 피겨를 국민들 눈앞에 보이게 만든 ‘김연아’선수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이 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제사에서 그런 의식을 하는 동안에는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행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몸짓 속에는 당연히 경건한 마음이 깃들 수 밖에 없고, 이러한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사회적 관계에 놓인, 그러니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몸짓이 禮다.

 

 

책머리에서 가장 먼저 논어 태백 편에서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이렇다.:

“詩에서 감흥이 일어 禮에서 자립하며 樂에서 완성한다.

 

 

 

어떤 인간에게는 정서적 반응이 있다.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플 것이고,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쁠 것이다. 그러나 과하거나 모자라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 이러한 넘치듯 하거나 모자란 듯 하다 인정을 조율하는 행동규범이 禮이다. 이런 예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껏 이러한 예가 허례라며 비난하고 마음속으로 조롱했지만, 생각해보면, 상을 당한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주고 싶어도 예라는 절차에 의해서 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위해서는 일정한 분별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친구가 친구끼리 하는 소통의 몸짓을 하는 것이랑,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하는 몸짓은 달라야 한다. 분명히 이 것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예는 에티켓 혹은 매너라고 흔히들 부르는 것처럼 구체적인 예의범절을 지칭하기도 한다. 임산부와 어르신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사실 자동반사적인 경우가 많지만, 다른 도덕적 실천은 평소에 습관으로 베여있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옷가짐을 단정히 하고, 행동하는 것과 언행을 조심히 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자기 밥벌이에 바쁜 각자의 현대인에게 이같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더 힘든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선비들처럼 할 수는 없어도, 행동은 반듯하고 말은 도리에 맞게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기를 잊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껏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경망스럽거나 경우에 없는 행동과 말을 한 것도 이런 삶의 자세를 못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예의 역사는 이러한 분별에 근거를 두고, 서로에 배려하고 소통하기 위한 몸짓이였던 예가 제도화 되고, 그것이 다시 사람들에게 투영되는 진자운동을 겪으면서, 차별의식을 고착화 시키기도 했다. 이건 주변에서도 그렇고, 긴 세월의 역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황時에 따라 만들어졌던 형식이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그 것. 현재에 와서 삼강에서 언급되는 인간의 도리라는 것은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예라는 것이 지금의 사람들이 문화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낸 문화영웅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제사의 의미를 되새겨, 항상 상황에 따라 재정립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예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배려하기 위한 몸짓에서 나왔다는 것은 잊으면 안된다. 그걸 잊어버린다면, 예의 비판자들의 말들처럼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악 정도로 전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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