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이야기 사슬
정영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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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를 매우 흥미롭게 읽어 이이의 다른 책도 꼭 한 권 읽어야겠다, 싶었다가 마침 눈에 띄어 골랐다. <어떤 작위……>가 장편소설이었던 반면 《검은 이야기 사슬》은 무려 마흔다섯 편의 단편 또는 이야기, 혹은 메모를 모은 책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사실 보통의 단편집인줄 알았다. 45편이 245쪽에 실려 245÷45=5.4, 평균 5.4쪽 분량의 손바닥 소설이란 걸 알았다면 과연 ‘선뜻’ 집어 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온라인 구매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현상. 오프라인이었으면 선 채로 몇 편 읽어보고 그냥 살포시 놓고 나와 버렸을 듯.
  그러나 단정하지 마시라. 여전히 정영문은 내 기호에 근접한 우화와 문법과 특유의 문자 유희를 즐기고 있으니. 문자 유희? 그렇다. 예를 들어 스물아홉 번째 소설 <막연한 공포에 대한 상상>의 피날레는 다음과 같다.

 

  “다만 그는, 이것은 내가 그 전모를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알 수도 없는 공포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을 뿐이었다.” (208쪽)

 

  “알지 못하는”, “알 수도 없는”, “알 수 있을”의 연속과 “뿐이야”와 “뿐이었다.”의 반복. 이를 통한 독자의 혼돈과 집중을 유도하고, 동시에, 작가가 의도 했든, 하지 않았든, 문장을 발음할 때의 음악성까지 부여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문자 유희는 책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의 빈번한 사용은 심지어 전에 읽은 <어떤 작위……>에서도 이런 형태의 문자 유희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기억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이 정도면 가히 정영문 문장의 한 특징으로 봐도 되겠다 싶지 않을까. 물론 이런 유희가 언제나 즐거운 건 아니다. 가끔 짜증도 나긴 한다.
  제일 먼저 ‘문자 유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책의 분위기가 유희적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책의 제목을 왜 《검은 이야기 사슬》이라고 했느냐 하면, 마흔다섯 개의 단편 또는 이야기나 메모의 색조가 대부분 ‘검은 이야기’, 상복의 색깔, 죽음과 유사한 자리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짭쪼름한 소금의 맛을 탐하는 할머니가, 하나 있는 손자가 자신의 품을 떠날까봐 손자의 눈을 파내는 소설을 떠올렸다. 이 작품이 제목은 잊었지만 아마 박상륭의 단편집 《열명길》에 나오는 이야기일 듯하다. 하여튼 이 탐욕스러운 노파를 떠올린 순간 정영문의 다른 책은 모르겠고 하여튼 《검은 이야기 사슬》은 박상륭이 집중적으로 탐구한 죽음과 (종교라기보다는) 신god의 문제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앞에 실린 작품 <임종기도>는 말 그대로 죽음을 앞에 둔 환자를 위하여 임종기도를 하는 목사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다. 한겨울의 오밤중에 신자들도 소명의식도 별로 없는 목사를 찾는 난쟁이가 그를 이끌고 역시 난쟁이인 아내의 죽음의 침상으로 데려간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가는 길엔 분명히 있었던 사과 과수원도 없어지고, 교회도 없어지고, 자기 집의 침대 위엔 예의 난쟁이가 누워 있는 우화. 이걸 ‘우화’ 말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 작품 <장의사>도 그로테스크의 극치를 달려, 역시 밤중에 내가 전화해서 방문했다고 하는 장의사가 처리해야 할 시신이 바로 나 자신이다. 장의사는 이미 죽은 나의 내의만 입은 시신을 발가벗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능숙한 솜씨로 내 몸에 딱 맞는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관에 넣지도 않고 그냥 둘러매고 나가 나귀가 모는 마차에 싣고 미리 파 놓은 무덤에 던져넣은 후 흙을 덮어버린다는 이야기. 주인공 ‘나’는 작품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죽어 있는 상태다. 세 번째 작품에서도 장애인이 등장한다. 이번엔 제목 자체가 <곱사등이>다. 화자이며 작가인 ‘나’와 단둘이서 신과 죽음에 대해 토의하다 저 까마득한 높이의 다리 위 난간에 서더니 자신을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곱사등이의 등을 기꺼이 밀어 추락시키는 ‘나’.
  이어서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작품이 이렇듯 다 어두운 죽음과 이미 죽음 비슷한 자리로 추락해버린 신, 장애, 유령상태 등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거나 애초에 상상하기를 거부하는 저 어두운 두려움 너머의 세계를 천착했다.

  나는 1980년대 중반에 학교를 졸업해서 직업을 얻는다. 기억하는가,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무근로자 착취를. 퇴근은 아무리 빨라야 아홉 시고, 토요일 야근은 기본이며, ‘ㅇㅇ절’은 휴일 ‘ㅇㅇ날’은 근무일, 일요일 출근이 미덕이었던 시절. 나도 이런 블랙홀에 빠져 2010년이 지나서야 희망퇴직 대상자 신분이 되어 기어 나온다. 그러니 20년 넘어 책은 무슨 책. 내 독서에도 이렇게 큰 공백이 있다. 《검은 이야기 사슬》의 해설을 쓴 평론가 김춘식은 딱 나의 공백기, 1990년대의 소설적 지형을 “해가 저문 낯선 숲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피는 것 같은 불안감이 배어 있다.”고 묘사하면서 이들의 대표선수로 장정일, 배수아, 송정아, 백민석과 함께 정영문을 들며, 이들을 정의하기를 “굳이 집단을 버리고 탈주한 소수인, 정신병원을 탈주한 이들”이라 했다. 심지어 나는 대표선수 가운데 송정아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다. 뭐든지 흐름이 있는 즐길 거리에 일정기간 단절이 생기면 그건 치명적이다. 그리하여 정영문의 소설 가운데 몇몇은 도무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자화상

 

  내가 그린 나 자신의 자화상에서 나의 얼굴은 나의 발바닥에 눌려 일그러져 있다. 그 그림을 보며 나는 발에 좀더 힘을 싣는다. 그러자 그림 속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고, 그때서야 나는 발에서 힘을 뺀다. (전문)

 

 

  이것이 한 편의 작품이다. 근데 이 책의 표지엔 “정영문 소설”이라 쓰여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한 편의 소설이라 주장해 서른세 번째 소설로 목차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오, 소설에선 1990년대에 벌써 소설의 해체와 개별화, 파편화를 시작했다는 말일까? 근데 조금 의심이 들긴 한다. 예컨대.

 

 

  방안에서

 

  이 방의 사물들이 감히 내게 대들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죽은 듯이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기세에 눌려서라고, 나는 믿고 싶다. 하지만 점차 나는 그 믿음을 잃으며, 오히려, 내가 방안의 사물들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그것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

 

 

  이 서른아홉 번째 작품 같은 것은 내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작가 메모로, 이런 메모들이 합종연횡을 거쳐 단편이나 장편으로 발전해가는 거 아닌가 싶은데, 아, 난 아마추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묻지 마시라.
  (사이)
  독후감 쓰는 중에 오랜만에 작은 아이가 오는 바람에 등심 구워 쐬주 마셨더니 지금 제정신 아니다. 후진 독후감 읽어주시는 분들의 이해를 앙망할 뿐.
  (다음 날 오후)
  다시 평론가 김춘식이 말한 90년대 한국소설. 이 가운데서도 정신병원을 탈출한 몇 명의 작가들의 경우, 당시 소설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라서 <방안에서>나 <자화상> 같은 단편斷片 또는, 단장斷章이 하나의 단편短篇소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두 단편 또는 단장은 소설책이 아니라 시집에 싣고 ‘시’라 주장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시나 소설 같은 장르의 구분이 별 의미는 없으나, 만일 시인 민영이 “외로울 땐 눈을 감는다. 바람에 삐걱이는 사립을 닫듯.”이라 쓰고 그걸 소설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난 책을 읽는데 진보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작가 메모는 여전히 작가 메모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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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1-04 1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송정아는 저도 처음 듣네요. 장정일, 배수아, 백민석은 20대 때는 좀 읽었는데, 배수아 정도 빼고는 이젠 손도 안 가네요. ㅎㅎ 그래서 정영문도 손이 안 가나 봅니다.

Falstaff 2021-11-04 10:34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거 읽자마자 검색해봤더니 시를 쓰더라고요. 시집 두 권이 나왔는데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는 걸로.... 장정일도 시 썼지만 안 읽은 것처럼요. ㅎㅎㅎ
전 배수아 포함해서 이젠 정신병원 탈주자들은 좀 멀리 해야겠습니다. 백민석도 두 권 읽은 걸로 충분했어요.

stella.K 2021-11-04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걸 두고 소설의 해체라고 하는군요.
정말 메모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래서 유독 저 시대 때 소설가들 욕을 많이 먹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뭐든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걸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팔님의 일상을 슬쩍 넣으셔서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Falstaff 2021-11-04 19: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재미나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근데 그 시절 사는 게 다 그랬어요. ㅠㅠ
이 책 읽고 소설의 해체라는 건 전적으로 제 생각으로 쓴 거예요. 다른 곳에서 혹시라도, 안 하시겠지만 정말 혹시라도 인용하시면 크게 창피하실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제 입이 싸서 고민이 큽니다. 흑흑흑....

coolcat329 2021-11-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설의 해체...처음 듣는 말이고 저도 저게 어떻게 소설일 수가 있지? 싶습니다.
<어떤 작위의 세계>는 찜해둔 책인데 작가 특유의 문자 유희를 기억해둬야겠네요.
오늘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1-11-04 20:30   좋아요 1 | URL
에이... 설마 처음 들으실라고요. ㅋㅋㅋ
하여튼 재미나게 읽으신 거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한 번은 읽을 필요가 있는 우리 작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

바람돌이 2021-11-05 0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90년대 제가 소설을 거의 읽지 않던 시기군요. 이름만 간간이 들은 사람들이네요. 폴스타프님 글을 보다 보니 제 취향과는 좀 떨어진 듯해서 저는 폴스타프님의 독서력과 글에만 감탄하고 갑니다. ^^

Falstaff 2021-11-05 08:30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처럼 책 좋아하시는 ˝다양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늘 다른 분들의 서평, 리뷰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님도 물론이고요! ^^

그레이스 2021-11-05 0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흔 다섯개... 기억은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작위의 세계 저도 갖고 있어요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11-05 08:33   좋아요 1 | URL
작품들이 그로테스크해서 이 책은 권하지 못하겠지만, <어떤 작위...>는 미국의 사막과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습니다. 아니면 좀 덜 그렇던가요. ㅎㅎ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8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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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의 저택>을 재미있게 읽고 서슴없이 주문한 단편집. 그랬더니 두 번째 작품으로 실린 <4월의 마녀>가 바로 <시월의 저택>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을 하는 정령 세시다. 또 저 뒤에 실린 <에이나르 아저씨> 역시 <시월의 저택>에 출연한 바 있다. 초록 날개가 달려 알프스에서 살다가 밤에 미국의 상공을 날다가 고압선에 걸려 정착해버린 남자 돌연변이. 하긴 <시월의 저택>이 장편소설이기는 하지만 특징적인 등장인물이 한 챕터 씩 담당해 서로 연결시키는 연작의 형태를 띠어 단편으로 쓴 몇 작품을 묶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정령이나 영화 <엑스맨>에서 무수하게 등장하는 돌연변이를 다루었다거나, 작가의 본령인 SF 소설이라고 단정했다가는 브래드버리 팬들에게 타박을 받기 십상이겠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괴기나 SF라는 아주 특색 있는 방법으로 사람 심성의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인류의 지속continuousness 의무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일리노이 주면 알 카포네의 도시 시카고를 품은 미국의 중서부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와 일곱 시간을 운전해가도 똑같은 밀밭이 펼쳐진다. 브래드버리는 이 동네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별과 우주, 로켓 등에 경도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진짜로 이런 사람들 있다. 나도 한 명 아는데, 경북 영천 사람으로 이이의 파티션에는 화성표면 사진을 우정 돈 주고 사서 붙여놓았고, 2013년에 고흥반도에서 나로호를 쏘아올릴 당시엔 실장으로 있다가 그만 물을 먹어 대기발령 상태였는데도 그저 연신 로켓 발사 이야기에 정신을 놓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후에 희망퇴직 해서 고향으로 내려가 우애 좋은 형제들과 뭉쳐 즐겁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렇다고 별 볼 일 있는 전공인 천문학을 공부한 건 아니고,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걸로 기억한다. 딱 브래드버리가 이런 과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이이가 김실장과 다른 점은 엄청난 독서와 갈고 닦은, 절차탁마! 문장력, 그리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자신의 관심사에 소설의 영원한 주제인 인간 내면을 절묘하게 얹어놓을 수 있었다는 점.

 

  나는 ‘세시’라는 이름의 정령이 물속의 아메바를 숙주로 촌 동네 아가씨의 몸에 들어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춤을 추고 즐거움이 도대체 뭔지, 서로의 피부를 만지는 것이 무슨 기분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에 더욱 관심이 갔으나 이런 그건 <시월의 저택>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아, 오늘은 시선을 브래드버리 표 SF로 돌려보겠다.
  SF라고 해서 멀리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 읽지는 않는다. 그래 브래드버리의 SF가 정말로 브래드버리 ‘만’ 이렇게 쓰는 건지, 다른 SF 작가들도 마찬가지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이의 SF적的 모험에 대하여 내가 거칠게 두 가지 주장하는 점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마음, 소설이 줄기차게 탐구하는 인간 심성을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멸종해야 하는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현존하는 인류는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겠지만 종의 연속을 위한 노력과 희생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두 번째 주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그리하여 이이가 로켓을 타고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에 기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황량한 삶을 살거나, 심지어 태양의 화염 속으로 탐험하거나,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무시무시한 자기장에 노출되어 1분에 천 번의 맥이 뛰고 인생이 겨우 8일밖에 안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의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다 이런 의식, 인간의 영속을 위한 기지 건설이나 정착지 발견과 관련이 있다.
  내가 흥미를 느낀 색다른 단편은 <여기 호랑이가 출몰한다>였다. 84번 항성계의 7번 행성에 착륙한 탐사우주선 이야기인데, 포레스터 선장과 인류학자 겸 광물학자 체터턴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단편소설의 주요 스토리는 공개하지 못하겠지만(더구나 내가 흥미롭게 읽었으니), 브래드버리가 지구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우주의 한 행성에 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광물학자는 우주 탐사의 비용 거의 전부를 댄 회사에서 파견한 학자라서 일단 행성에 도착하면 거대한 굴착기를 사용하여 행성에 어떤 광물이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그리고 오래도록 뽑아올 수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물론 채터턴은 빠를 속도로 행성의 자원을 약탈할 것이며, 자원이 거덜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수할 것이다. 전형적인 식민주의자들의 시선이며, 북아메리카의 백인들이 인디언을 향했던 시각이다.
  실제로 식민주의자들은 식민모국을 코즈머폴리탄cosmopolitan, 피 식민지를 플래넛planet이라 칭한다. 브래드버리도 당연하게 이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서, 아무리 무한한 우주의 한 행성에 불과할지라도 무차별한 착취, 채굴에 반대하고 있다고 봤다. 물론 자신있게 이런 시선이다, 라고 주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작가의 양식이라면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그냥 SF라고 간단하게 말하기 쉽지 않은 작품들. 일찍이 나는 이이의 <화씨 451>에서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 <시월의 저택>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몇 권 되지 않지만 그간 읽어본 SF와는 아예 접근 자체가 다르고, 무엇보다 이이의 이색적인 접근이 나와 합이 맞는다는 것이 기쁘다. 다만 서른두 편의 단편 모두 마음에 든 건 아니라서 만점이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열 용의가 있다.
  한 번 더 강조하자. 특별한 SF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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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1-03 08: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씨451은 제게도 실망스러웠는데요, 그래도… 하는 심정으로 책을 몇 권 챙겨두긴 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빠져있군요;;;;
정령 ‘세시’는 circe 키르케의 다른 표기인지 좀 궁금하고요.

Falstaff 2021-11-03 08:38   좋아요 3 | URL
앗, 그러고보니 세시가 키르게하고 연결이 되는군요!
저도 막 궁금해졌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1-11-03 09: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는 <화씨451>을 아직 안 읽어서 레이 브래드버리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제 그 책을 읽어도 전 계속 레이를 좋아할 것 같은데요. ㅋㅋ

저도 SF를 많이 읽은 건 아니라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작가는 다른 SF 작가들과 좀 결이 다른 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고요. 그 면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또 많은 듯합니다. 폴스타프 님이 좋아하시는 작품 분위기를 보니 이이의 다른 작품 중 <민들레 와인>(황금가지) 추천드려 봅니다. ㅎㅎ

Falstaff 2021-11-03 10:24   좋아요 6 | URL
민들레 와인이라... 고맙습니다. 제목도 마음에 드네요. ㅋㅋ

공쟝쟝 2021-11-03 1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 듄 보고 와서 너무 실망한 저로서는 앞으로 구 sf 는 읽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내심 생각 했는데 ㅋㅋㅋ 뭐여 퐐님 소개 재밌어벌임😤 큰일났네??

잠자냥 2021-11-03 11:16   좋아요 5 | URL
와~ <듄> 나만 실망한 거 아니군요! *덥석* 난 그 영화 음악이랑, 이미지로 사람 압도하려는 건 알겠는데.... 내용은... 솔직히 1편만 말해서 사막에서 그냥 태양초 고추가루 얻으려고 서로 박터지게 싸우는 그런 내용 아닙니까? (영화가 이미지랑 음악으로 관객 압도하려는 거 뭔가 반칙 같음....모두가 아이맥스로 영화 봐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것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 아무튼 서사주의자...올림 ㅋㅋㅋ)

공쟝쟝 2021-11-03 11:44   좋아요 5 | URL
태양초 고추가루랰ㅋㅋㅋㅋㅋㅋㅋ 저 진짜 드니 영화 즐겁게 보는 편이고 티모시 얼굴이랑 사막물 좋아해서 동생들꼬셔서 갔는데 동생이 저 죽일라고 했음… (동생아 미안하다) 내용이 너무 촌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몇만년 뒤에 가문이 가문이 가문이 가문이 공작이 공작이 공작이 웬말이냐….. 상속을 폐지하라 증여를 폐지하라 혈연을 폐지하라 앗싸리 인류를 폐지하라

Falstaff 2021-11-03 11:23   좋아요 4 | URL
ㅋㅋㅋ 전 <듄> 안 봤어요. 대강 분위기 보니까, 거 참 잘했네요.
이 책도 좋지만 전 <시월의 저택>이 조금 더 좋았던 걸로.... ㅎㅎ

공쟝쟝 2021-11-03 11:28   좋아요 3 | URL
퐐님 그렇지만 사막을 좋아하시면 보는 맛은 있습니다 ㅋㅋㅋ 컨택트, 시카리오 감독이라 아주 시야가 훤~~~하긴 해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11-03 12:24   좋아요 4 | URL
쟝쟝/ 아 그러니까요. 그리고 그 만 몇 년에 태양열 가리려고 쓰는 게 고작 손으로 드는 양산이냐고!!! ㅋㅋㅋㅋㅋ 난 거기서 정말 빵터졌어요. ㅋㅋㅋ 극장에 달랑 4명 있었기에 망정이지..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1-03 23:43   좋아요 3 | URL
듄이 그러하군요. ㅠ ㅠ
그래도 난 햇고춧가루 확보해놔서 든든하구요.(????)

mini74 2021-11-04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애가 sf광입니다.펜심으로 듄 2번 본 ㅎㅎ 시월의 저택이랑 이 책. 민들레 와인 담아봅니다 ㅎ

Falstaff 2021-11-04 19:4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SF광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문장도 참 예뻐요!

coolcat329 2021-11-04 2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f는 참 부담스러운 장르에요. 제 머리가 그 넓은 상상력을 좇아가질 못하거든요.ㅠㅠ 읽으면서 참 힘들더라구요.
이 책은 도서관가서 한 번 맛을 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1-11-04 20:55   좋아요 1 | URL
옙! SF 친하지 않으시면 (저도 안 친합니다. ㅋㅋ) 도서관 이용 강추합니다!!!
 
모두 다 예쁜 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9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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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맥 매카시는 최근에야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윌리엄 포크너와 허먼 멜빌의 명맥을 잇는 최고의 작가로 오래전부터 비평계와 대중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다.”

 

  역자 김시현이 쓴 세 페이지 분량 “역자해설”의 첫 번째 문장이다. 아, 절망이다. 이것으로 문학, 특히 소설책을 읽는 나의 소양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 백일하에 밝혀지는 순간이다. “허먼 멜빌과 윌리엄 포크너와 명맥을 잇는다.”라니. 어떤 미국 작가가 있어서 이런 광휘에 찬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인류의 문화유산인 <모비 딕>과 저 거대한 모더니즘의 만개를 이룬 <음향과 분노>, <압살롬, 압살롬>의 전통을 <모두 다 예쁜 말들>이 이어받았다니. 읽고도 그런 눈치, 눈치는커녕 기미도 알아채지 못한 나의 우둔함이 그저 한심할 뿐이다. 미국의 명문 가운데서도 명문인 예일 대학의 가장 존경받는 테뉴어이며 문학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은 매카시를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더불어 현대 미국의 4대 작가로 꼽았다고 하는데, 그가 어느 책이나 어떤 페이퍼에서 그렇게 얘기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미국에선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작가인 것은 확실한 거 같다. 그건 이해가 간다. <모두 다 예쁜 말들> 역시 미국인이 아니라면 결코 쓸 수 없는 20세기 말의 서부극 자체이니까.
  근데 김시현의 해설이 좀 의아한 건, 최근에 코맥 매카시의 이름이 알려졌다고? 책 좀 읽는 우덜이 알기로 코맥 매카시의 책이 나온 것이 벌써 이십 년 비슷하게 되지 않았나 싶게 익숙한데, 이게 최근? 정신 차려 확인해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9번에서 말하는 ‘최근’은 2008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13년 전인 2008년에 김시현의 번역으로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번으로 찍었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 책 껍데기 그림만 바꿔 2011년에 모던 클래식 43번으로 번호를 바꿔 나왔다가, 다시 10년 만에 세계문학전집 379번으로 판갈이를 하면서, 13년 전에 썼다고 짐작할 수 있는 “역자해설”을 수정 없이 그대로 복사해온 것 같다. 와우, 놀래라. 그래 김시현은 13년 동안 이 책의 의미를 독자에게 새롭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나? 아니면 있었기는 한데 출판사에서 얼른 찍어야 하니 있더라도 좀 참으라고 해 입 꾹 했나.
  그리고 좀 보시라. 2008년에 찍은 책을 그대로 복사하니까, 교정 교열이 얼마나 좋은가 말이지. 내가 몇 번을 얘기하지만 민음사가 당시만 해도 꽤 괜찮은 출판사였다니까 그래. 고인이 된 박맹호 사장께서 책 하나는 똑바로 찍으라고 했거든. 그래서 ‘훈민정음’으로부터 글자를 따와 출판사 이름을 ‘민음民音’이라 지은 거 아니냐고. 박사장께서 늙어 힘 빠져 두 아드님의 공동 경영체로 넘어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분명히. 혹시 능력 있지만 월급 많이 줘야 하는 고참 교정, 교열 담당자를 잘라버린 거 아닌가 몰라.

 

  책 뒤에 작가 연보가 나온다. 여기에 재미난 것이 있어서 소개한다. 1961년에 대학 동창인 리 홀먼과 결혼해 1962년에 아들 컬런이 태어나는데, 매카시는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창작에 전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내에게 일자리를 구해 자기가 소설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아기 엄마 리는 이 말에 너무나도 빡쳐서 그냥 서류로 말하자고 하더니, 이혼 청구를 해버렸다. 매카시 참 불쌍하게 됐다. 창작에 전념하기 위하여 자기만의 방과 연 수입(이라기보다 마누라한테 받는 연간 용돈) 5백 파운드를 원했다는 죄명 하나로 이혼당하고, 꼬박꼬박 양육비 송금하고, 심지어 와이오밍으로 이사까지 가야 했으니.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일단 먹어야 사니까, 몇 년 후 시카고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오퍼레이터 일을 하며 장편소설을 써 랜덤하우스에 보냈고, 이걸 마음에 들어 한 편집자가 이때부터 무려 20년 동안 매카시를 찜해버렸다니 처음부터 미국적으로 잘 팔리는 소설을 쓴 거 같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은 1992년에 20만 부 가까이 팔렸고, 그 해에 전미 도서상과 전미 비평가협회상을 휩쓴 작품으로 이어 발표하는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과 합해 국경삼부작이라고 일컫는다. 코맥 매카시라고는 <카운슬러>만 읽어봤을 뿐인데, <카운슬러>가 얼마나 충격적으로 정이 떨어지든지, 내가 다시는 코맥 매카시를 읽나 봐라, 했다가 글쎄 다른 이도 아니고 허먼 멜빌과 윌리엄 포크너의 명맥을 잇는 작가라는 말에 혹해서, 어쩌다 재수없게 제일 언짢은 책 <카운슬러>를 제일 먼저 읽는 바람에 정나미가 똑 떨어졌을 수 있다고 여겨 독자평점 10점 만점에 10점짜리, <모두 다 예쁜 말들>을 골라서, 의미심장하게 읽었다는 거 아닌가.
  10점 만점에 10점에 동의한다. 단, 텍사스 남부와 멕시코 북부 지역의 사막과 황량한 벌판, 크고 작은 메사 지형(레슬리 마몬 실코, <의식> 참조)의 야생마들 같은 자연의 광막한 풍경 묘사에 관해서만 그렇다. 아, 이 책에서도 메사 지형이 나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레슬리 마몬 실코의 <의식>이 떠올랐으며, 그런 황량한 지역으로 추방당해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생각했는데, 이게 자연스럽게, 현대화의 광풍 속에 이제 농장경영으로는 돈이 벌리지 않아 농장을 때려치우는 바람에 아직 대농장을 유지하고 있는 멕시코로 길을 떠난 미국 소년들의 이야기인 것도 마땅하지 않았고, 명예로운 건국혁명의 역사를 가진 미국과 달리 부패와 배반이라는 터전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역사 속에서 아직도 19세기 라틴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멕시코와 멕시코 사람들을 가비얍고 비아냥거리며 바라보는 눈초리도 심히 마땅하지 않았다.
  시대는 1949년 이후, 50년대 초까지 특정 시기로 짐작할 수 있다. 1872년에 지은 집에서 77년 후에 주인공 존 그래디 콜의 외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죽음을 맞는다니, 일단 1949년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죽어서 집에 실려 오거나, 그저 죽었다는 소문만 들려오거나, 다른 곳에 묻혀 있단다. 이 외할아버지 그래디 씨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농장을 경영하고자 했던 이다. 이제 법적인 상속인은 외손자인 존 그래디 콜이 아니라 엄마 콜 여사인데, 농장을 해봤자 현상유지도 힘들고 관리하기에도 신경만 쓰이는데다가, 외할아버지가 죽기 몇 주 전에 남편과 깔끔하게 이혼을 해버려 세상에 걸릴 거 없는 서른여섯 살의 돌싱으로 여전히 피가 뜨거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텅 빈 황무지가 아니라 도심 한 복판의 연극 무대 위라고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말을 타고 소를 몰고 다니는 카우보이가 평생소원(이 부근에서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났다.)인 우리의 주인공 존 그래디 콜은 당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한 살 위인 동네 친구 레이시 롤린스와 뜻을 같이 하여, 1949년, 고속도로엔 거대한 트럭이 맹렬한 소음과 매연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시기에 각기 말 잔등에 올라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멕시코의 거대 농장을 향해 떠난다. 20세기 말에 쓴 서부영화답게 이들은 가는 길에 열네 살이나 먹었을까 하지만 스스로 열여섯 살이라고 우기는 또 다른 소년 지미 블래빈스를 만나 셋이 한 팀을 이룬다. 그런데 서부영화라면 당연히 나와야 되는 거 하나 있지? 그렇다. 지미 블래빈스는 낡아빠진 콜트 비슬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롤린스도 애초에 소총 한 정을 품에 가지고 있었고. 소설을 읽다가 작가가 조금의 의도를 가지고 총을 등장시키면, 그건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불을 뿜는다. 이건 진리다. 그러나 이 독후감에서는 총이 불을 뿜는 일까지는 소개하지 않을 터이다.
  어쨌든 이 지미 블래빈스라는 이름의 소년이 문제아. 길을 가다가 저 남쪽에서부터 검은 먹구름과 천둥 번개가 몰아치기 시작하니, 집안에 유독 번개에 맞아 죽은 인간들이 많아 유별나게 공포심이 있는 지미가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하천 둑(이라고 하자) 근처에 거의 헐벗은 상태로 숨어버린다. 말은 이미 도망가고, 단추나 후크 같은 금속 때문에 옷도 훌렁 벗어버린 채. 진짜로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난리를 부리고 지나가고 보니까, 부츠도 한 쪽이 없어지고, 옷도 누더기가 되고, 무엇보다 덩치가 산 만한 말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지미는 존의 말을 얻어 타고 길을 가다가 멕시코 작은 마을에서 마침내 자기 말을 발견한다. 그러니 어떻게 말을 포기하겠는가. 이윽고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고, 밤이 거의 물러날 새벽 시간이 오자 지미는 말을 보관하고 있는 집에 몰래 들어가 마치 도둑질을 하듯 말을 타고 도망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모두 다 예쁜 말들>에서 가장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  하여간 우리의 주인공 존 그래디 콜과 레이시 콜린스는 예정대로 목장에 취직을 하고, 어려서부터 배운 말 조련 기술로 특별한 인정도 받고, 열여섯 살의 청춘에 어울리는 연애도 하려는데, 저 멀리서 말을 되찾은 어린 지미가 말과 함께 잃어버렸던 낡은 총 콜트 비슬리마저 되찾으려 하다가 이야기는 삼마처럼 엉클어져버린다.
  아무리 1949년이나 50년 초라고 해도 그렇지, 세상에나. 이들의 나이 열넷, 열여섯, 열일곱 아닌가 말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중2, 고1, 고2. 이렇게 세 명의 청소년이 하는 일, 행동, 사고방식 등등. 이게 어떻게 청소년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저 소년이라고 읽고, 완력이 필요할 때는 25세, 지능이 필요할 때는 40세, 사랑을 할 때는 30세, 인생을 논할 때는 60세이니 도대체 얘네들, 이 가운데서도 존 그래디 콜이 글쎄 사람이야, 화성인이야, 아니면 안드로메다인 거디야?
  아주 정확하게 미국적인 작품. 아메리칸 웨스턴.
  저 앞에서 얘기한 레슬리 마몬 실코의 <의식>과 비교 불가. 현대 미국의 4대 소설가이고, 멜빌과 포크너의 명맥을 이었다니 내 입장엔, 말.잇.못. 이기는 한데, 근데, 도대체 내가 누구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코맥 매카시일까, 역자 김시현일까. 아니면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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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2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이 책 읽고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그래서 코맥 매카시 다 읽겠다 하고 책을 사모았더랬어요. 집에 그래서 안읽은 코맥 매카시 몇 권 있고 읽은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카운슬러>는 읽고 약간 정신적 충격(?) 받았었고요. 자동차 섹스신 너무 까무라쳐서.. 이건 미친놈이다 했었어요. 아무튼 엄청 좋아했는데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바, 폴스타프 님 리뷰를 읽으면서 나는 어디에 반했던가 돌이켜보려 했는데, 아니, 내용 왜이렇게 새로운가요. 전혀 읽지 않은 책인듯 하네요. 지금 읽어도 제가 코맥 매카시를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안 읽은지 꽤 되어서요. 그런데 제가 한창 좋아하던 때에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어요. 로드, 모두 다 예쁜 말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선셋 리미티드 이렇게 네 권 읽었는데 늘 우아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조만간 코맥 매카시 아무거나 하나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1-11-02 09:52   좋아요 4 | URL
아 글쎄 저도 안타까운 거예요. 읽은 사람 백퍼센트가 다 좋다고 하는데, 어찌 저만 이렇게 삐딱하게 읽었느냐, 이건 책과 궁합이 맞지 않거나, 처음 읽은 <카운슬러>가 워낙 지저분해서 그때 기분 잡쳤던 선입견이 아직까지 영향을 끼쳤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양보하지 않을 것은, 주인공인 16세 소년 존이 불굴의 의지력을 갖춘 수퍼 히어로로 나오는데, 아이고, 이런 아들 키우는 부모 속이 얼마나 썩었을까, 하는 겁니다.

프레이야 2021-11-02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리뷰 재미나게 읽었어요 ^^
맥카시 좀 읽어봐야겠어요. 며칠전 본 페이퍼 다른 분도 맥카시 전작주의자시던대요. 전 로드만 읽었네요. 이혼남으로 힘들게 산 게 훅 ㅠ 양육비 잘 보냈나 봅니다 그래도. 얼마전 듣기로 우덜 나라에선 양육비 너무 밀린 남자 운전면허증 압수했다고 합니다. 그럼 당장 대개는 연체한 거 보낸다네요. 법이 그렇게 조정 들어가나 봅니다. 삼천포로 빠졌네요. 민음사 의미가 그거였어요? 그거도 이제 알았네요. 이 리뷰 좀 보고 반성해야할건데요.

Falstaff 2021-11-02 10:26   좋아요 2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아이고, 전 맥카시하고 이젠 끝났습니다. 처음부터 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나 만화에 어울릴 만한 내용과 배역을 글쎄 16세 소년한테 주었다니, 한편으론 괘씸하기도 하더라고요.

청아 2021-11-02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 (60세까지 넘나드는 아이들의 능력)정말 충격적인데 표현이 너무 재밌어요!!! 폴스타프님은 북플의 촌철살인자입니다~♡ 다락방님 댓글읽으니 <카운슬러>가 너무 궁금해요. 저 지금 코맥 매카시의 <신의 아이>읽는 중인데 폴스타프님 추천으로 산 허먼 멜빌(모비딕)과 윌리엄 포크너도 빨리 읽어야겠네요!

Falstaff 2021-11-02 10:36   좋아요 2 | URL
저는 이렇게 등장인물을 함부로 다루는 작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장을 바라보면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속에 있어요. 제가 글을 쓰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인물을 만들었으면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16세 청소년이 타인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은 다음 박힌 칼을 비틀고, 허벅지에 총을 맞아 빨갛게 달군 파이프를 관통한 상처에 쑤셔넣어 불소독을 하고, 매일 잔혹한 싸움을 연달아 하게 만들면 되겠느냐고요. 16세 소년을 말입니다.
불량소년들이 부모한테 하는 말이 있잖아요.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냐고. 작가도 자기가 만든 인물한텐 책임을 져야 하는 거.......에휴...... 아닌갑쇼?

잠자냥 2021-11-02 1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코맥 매카시 책 많이 안 읽었지만, 읽었을 때마다 사람들이 크게 좋아하는 것만큼 좋지 않더라고요. 늘 뭔가 불쾌한 기분.... 내가 뭔가 부족한 거겠지 싶어서 이번에 출간된 <신의 아이> 읽어봤는데, 역시나 저는 이 작가랑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 이 사람 묘사 방식이 기분 나빠요. 이 작품에서는 마침내 시간(屍姦)까지.........

참, 최근 제가 읽은 민음사 책 <불만의 집>에도 교정교열 틀린 것 종종 보이더라고요.

Falstaff 2021-11-02 10:45   좋아요 4 | URL
아휴. 저도 두 권 읽고 두 번 망했습니다. 이젠 맥카시 안 읽을 겁니다.
읽고나서 기분 나쁘면, 독자는 안 읽으면 되는 것이지요.
<신의 아이>에 뭐가 나온다고요? ㅋㅋㅋㅋ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합니다. 헤럴드 블룸은 정말 이름난 평론가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토머스 핀천과 이 양반을 합쳐서 미국의 현대 4대 작가라고 했다는 게.... 아이고.... 이런 것이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봅니다.

민음사 교정교열은 이제 끝났어요. 간혹 오탈자 보이는 <나는 고백한다>는 거의 기적적으로 좋은 교정교열이라니까요.

새파랑 2021-11-02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느낌이 드는 책에도 이렇게 엄청난 리뷰를 쓰시는 폴스타프님은 대단하네요~!! 폴스타프님 글 보니 저도 왠지 꺼려지네요 😅

Falstaff 2021-11-02 12:16   좋아요 1 | URL
에휴. 엄청나긴요. 여기 알라딘은 이 정도 갖고는 구겨진 명함도 디밀지 못하는 곳이랍니다.

mini74 2021-11-02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읽다 만 책 ㅠㅠ 앞부분 읽다가 왜 이리 진도가 안 나가는걸까했는데. 그냥 내탓이로소이다하고 있었는데 ㅎㅎ 폴스타프님이 이렇게 써주시니 뭔가 숙제면제권 받은 기분입니다 ㅎㅎ

Falstaff 2021-11-02 19:35   좋아요 2 | URL
아휴... 이 양반이 완전히 서부 쌍권총 미국인이더라고요.
ㅎㅎㅎ 저하고 뜻이 비슷하시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만, 이런 일은 좀 드물었으면 좋겠습지요? ^^;;

coolcat329 2021-11-0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13년전에 쓴 역자해설을 그대로 쓰다니 참 분노하실만 하네요.ㅠ

저는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 두 권 읽어봤는데, 노인이 너무 재미가 없더라구요. 대신 영화는 아! 음악이 없는 영화가 그렇게 살떨리게 하다니 너무 인상깊었죠. 로드는 재밌었구요.
국경삼부작 다 쟁여놨는데 손이 안가네요. ㅎ

Falstaff 2021-11-02 20:18   좋아요 1 | URL
아이고, 우선 재미나게 읽어주셨다니 참 고맙습니다. ㅋㅋㅋ
제 하찮은 독후감때문에 10점 만점에 10점 받은 작품을 멀리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더구나 책을 미리 사 놓으셨으면요!
ㅎㅎㅎ 근데 고생 좀 하십시요. ㅋㅋㅋㅋ (전 언제나 사람이 될까요?)

잠자냥 2021-11-02 20:55   좋아요 1 | URL
골드문트여, 나에게 한 싸대기 백 대 맞으면 그대 인간이 될 터이니. 내일 함께 고행의 길을 떠나지 않겠는가.

Falstaff 2021-11-03 07:52   좋아요 1 | URL
와우....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골로 가겠네요!
이래봬도 내가 까방권이 있는디, 우짜 싸다구 얘길 허십니까 그래! ㅋㅋㅋ

yamoo 2021-11-03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운슬러 괜찮게 봤습니다. 그래서 국경 3부작 대기해 놓고 있읍죠~
헌데 이상하게도 폴스타프님이 혹평한 책들 중 8할 정도는 정말 좋더라구요~ 해르만 브로흐 작품도 그렇고^^
물론 좋다고 추천해 주신 책들 중 상당부분은 저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만~~^^

Falstaff 2021-11-04 08:3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 취향 차이 아니겠습니까.
아, 전 정말 잘 몰라요. 이 책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독자가 10점 만점에 10점으로 평가한 책이잖습니까. 그저 제 감상만 솔직하게 쓴 겁니다. 진지하게 말씀드리는데요, 전 잘 몰라요. 심지어 괴테도 싫어한답니다. 문학 따위는 살면서 즐기는 여흥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고요. ㅎㅎ

야무님, 참 오랜만입니다. 보잘 것 없는 독후감에 댓글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고맙지요.
특히 이 양반 매카시 같은 겅우엔 호오가 극으로 갈리지 않겠어요? 전 넘지 못할 고속도로 반대편에 있을 뿐이지요 뭐. 아오, 감상이 다 같으면 재미 없잖아요. 야무님 같은 그룹도 있고, 저하고 비슷한 감상도 있고, 그래야 살 맛이 나는 거... 아닙니까. ㅋㅋ
브로흐의 <현혹>은 제가 2020년에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으로 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다만 몽유병자들이 많이 어려워서 꺼린 것이고요.
 
꼽추 왕국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0
장 끌로드 그룸베르크 지음, 신현수 옮김 / 연극과인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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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에 유대인 아버지 슬하에 파리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건 몰라도 초장 신세 하나는 제대로 조졌다. 사생활을 극도로 공개하지 않는 그룸베르크 역시 프랑스 숫자로 구구단을 외우기도 전에 아버지가 나치의 죽음의 캠프에서 높은 굴뚝을 통해 흰 연기로 솟아 탈출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양장 재봉 일을 하며 식구들을 부양했는데 힘겨운 시절을 잘 견뎌냈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은 제대로 시킬 수 없어서 청년이 된 장-클로드도 한 시절 어머니로부터 재봉을 배워 견습 재단사, 우리가 한때 ‘시다’라고 부르던 직업에 잠깐 종사하며 짬짬이 무명 배우 생활을 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나이 서른에 접어들어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1970년대부터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이 책 <꼽추 왕국>, 원래 제목은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Amorphe d'Ottenburg>도 1971년에 세계 초연을 했다.
  우리나라엔 1989년에 이 책의 역자 신현숙이 번역하고, 현대예술극장이 이병훈의 연출로 공연해 그해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선 원래 제목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대신 <꼽추 왕국>으로 불리기 시작해 책의 제목도 <꼽추 왕국>로 뽑았다고 역자는 해설의 각주에서 독자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했다. 1989년인지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이 연극을 하면서 대사가 딱 두 마디인 주인공 아모르프 역할을 하던 배우가, 아모르프의 극중 역할이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극도로 살의를 느껴 견갑골 사이를 푹 찔러 죽이는 그로테스크한 배역이었는데, 당연히 진짜 칼을 사용할 수 없어서 나무칼을 가지고 찌르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너무 몰입을 해서 상대의 뒷목을 그대로 푹 찔러버렸단다. 순간 암전이 되는 장면이어서 칼을 맞는 상대역도 몰입을 하는 바람에 전혀 아픈지 몰랐다가 나중에 보니까 피가 철철 흘러 병원에 가서 일곱 바늘을 꿰맸다고 한다. 먹고 살기 참 쉽지 않다.
  공연 예술은 이런 뒷이야기가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캐나다 테너 존 비커스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돈 호세 역으로 출연했다가 4막, 이미 변심한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에서 극에 너무 몰입을 하는 바람에 카르멘 역을 노래한 크리스타 루트비히를 진짜로 찔러 상처를 입히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에피소드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서핑을 해보시라. 노다지가 들어 있을 터이니.

 

  <꼽추 왕국>을 읽으면 번쩍 떠오르는 그룸베르크의 선배 극작가가 있다. 바로 알프레드 자리. 몇 주 전에 읽은 <위비 왕>이 저절로 생각난다. 백작의 작위를 받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열병식을 열었다가 축하해주기 위하여 참석한 폴란드 왕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열네 살 먹은 도망간 왕자를 뺀 나머지 왕가 식구들을 몰살하고 왕의 위에 오르는 위비. 몇 년 후 성년이 된 적통 왕자 부르그라스가 연이은 폭정으로 민심을 저버린 위비에게 쳐들어가 왕국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를 어찌 연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지.
  <꼽추 왕국>은 좀 더 복잡하다. 원작의 타이틀 롤은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정신박약이다. 자기 이름도 제대로 발음할 줄 몰라서 가정교사인 꼽추로부터 배운 살인, 주로 늙은이, 병자, 장애인, 부녀자, 아이들이 뒤 돌아 서있을 때 단검으로 견갑골과 견갑골 사이를 내리 찔러 죽이고는 감격에 겨워 아……모……르, 아……모……르, 몇 번을 하다가 나중에야 휘파람을 불 듯 프, 겨우 뱉듯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죽고 싶은 사람들은 이 세자 저하의 앞에서 뒤를 돌아 있으면 성공적으로 즉각 죽을 수 있다. 아모르프 도텐부르크는 오텐부르크 왕국의 아모르프라는 뜻으로, 오텐부르크의 현재 왕과 왕비는 한스와 베르타 도텐부르크인데, 이 부부에겐 아들 셋, 딸 하나가 있지만 오직 정신박약의 아모르프만 사랑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죽든지 살든지, 누구하고 결혼하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꼽추. 머리 하나가 특별하게 좋다. 그리하여 극이 끝날 즈음에, 일국을 결정적으로 망하게 만든 죄에도 불구하고 후임 왕이 차마 자신을 죽일 수 없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던져주는 바람에 목숨을 건지는 건 물론이고, 여전히 왕의 측근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연극을 이끌어가는 추동 역할을 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이건 스토리를 이어갈 경우 그렇고, 내가 읽으며 열심히 머릿속으로 연출을 해보니까, 암만해도 제대로 꼽추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지막 순간을 포함해서 어떻게 이 미물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연극 티켓 판매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꼽추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큰 스포일러 하나를 제공했으니 더 자세한 스토리 소개를 할 수는 없지만, 극에 드러나는 모든 살해는 딱 한 경우만 빼고 전부 아모르프 세자 저하에 의하여 저질러진다. 따라서 등을 보이고 서있는 등장인물을 바라보고, 눈이 희번득 돌아가면서 희생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동안 칼집에서 칼을 빼들고 스테인리스 칼날에 조명이 비치는 어둠 속의 반짝거림도 그로테스크하지만, 아모르프에게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제공하고 그걸 바라보는 꼽추의 시선처리와 순간의 포즈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이건 이 극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상상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꼽추 왕국>이 알프레드 자리에게 영향을 받아 그로테스크 코미디라고만 생각하면 좀 섭섭하다. 작가 장-클로드 그룸베르크는 절반의 유대인으로 살인과, 우월하다고 믿는 특정 인종에 의한 지배, 다른 종족의 노예화 등은 틀림없이 나치의 은유라고 봐야 하겠다. 그렇다고 흔히 읽고 본 작품들과 달리 이 메타포가 노골적이라 특정 부분이나 특정 등장인물 전부를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어떻게 읽으면 1970년대 초, 서구 자본주의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라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자본의 비정한 구조조정으로도 볼 수 있는 장면도 특히 앞부분부터 중간 이후까지 돋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처음부터 마음먹고 시도한 그로테스크, 심지어 아방가르드로도 볼 수 있는 것들까지, 1970년대 근방의 ‘모든’은 아니고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마디로 이 희곡 또는 연극을 규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 권하기는 쉽지 않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눈에 띄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는 정도로 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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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보다 매혹적인 오페라의 세계로”라고 띠지를 단 책이 나왔나 봅니다. 이 책을 읽을 의향은 없지만, 많은 알라디너께서 에이, 진짜 드라마보다 매혹적인 오페라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섣불리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매혹적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재미’라는 측면으로 시각을 좁혀보면 확실히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재미있습니다. 적지 않은 고상한 시청자들을 제외하고 제 수준의 일반인들이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막장 드라마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양보해도 21세기 우리나라의 TV 드라마보다 19세기 유럽에서 작곡하고 공연한 오페라가 훨씬 더 엽기, 잔혹, 막장 드라마적 성격이 짙습니다.


베를리오즈, <트로이 사람들> 디동과 애네의 이중창 "가없는 환희의 밤이여"


  벨리니와 도니제티, 감탄할 수준의 절묘한 선율로 벨칸토의 정점에 선 작곡가들의 18번은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헤까닥 미쳐버리게 만드는 건데요, 거품 물던 소프라노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해 풀리고 남자 주인공하고 시집 장가들어 잘 먹고 잘 사는 해피엔드요, 끝까지 미쳐 있으면 아무 잘못도 없는 새신랑을 신혼 첫날밤에 칼로 푹 쑤셔 죽여놓고 피칠갑 한 잠옷 바람에 헤어진 애인 이름 부르며 노래하다가 죽어버리는 엽기, 잔혹, 막장의 비극 드라마가 됩니다.

  가장 웅대한 오페라라고 일컫는 <니벨룽겐의 반지>의 중요한 주인공인 지그린데와 지그문트는 같은 부모를 둔 쌍둥이 남매이면서 보자마자 뜻과 몸을 맞추어 아들 하나를 낳습니다. 이들의 아들 지크프리트는 고모 브륀힐데와 정식 부부가 됩니다만, 이런 복잡한 족보는 계약의 신이면서 계약을 합법적으로 깨뜨릴 주신 보탄의 잔머리에서 만들어집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오페라가 고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20세기 들어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만든 <장미의 기사>는 바람난 유부녀가 애인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고급은커녕 그냥 사는 수준도 안 됩니다. 즉, 음악이 없다면 누가 비싼 돈 들여 극장 티켓을 사겠느냐는 것이지요. 음악의 하위장르이면서 극작품일 뿐입니다. 여기서 작곡가들이 딜레마에 빠진다더군요. 음악이 먼저냐, 극이 먼저냐. 베르디는 결국 극이 먼저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페라는 한 시간 동안 졸다가 아리아 하나 듣고, 또 한 시간 동안 졸다가 다른 아리아 하나 듣고 집에 가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 저는 한 명이 심각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음악의 꽃은 둘 이상의 악기나 둘 이상의 화성이 섞여 빚어내는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리아보다는 이중창, 트리오, 사중창, 심지어 팔중창 같은 것을 더 좋아합니다. 훨씬 더. 같은 선율을 따라 각기 다른 내용을 노래하는 감정의 뒤섞임 같은 건 오직 오페라 한 장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지요. 물론 가오싱젠은 <버스 정류장>에서 사성이 확실한 중국어 발음을 이용해 희곡/연극에서도 오페라의 중창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만(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다른 곳에서 인용하시면 심하게 창피당하실 수 있습니다).

  하여튼 오페라의 전성시대는 확실히 저물었습니다.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오페라는 사망선고를 받아놓은 거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에 이탈리아 사람 몇 있(었)는데, 오페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릎 위에 대본(리브레토) 올려놓고 길고 긴 시간동안 졸며 들으며 감상하는 재미없는 예술형식으로 선을 딱, 그어버리더라고요. 이제 이탈리아에서 축구만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핸델, <롱고바르디의 왕비 로델린다> 로델린다와 베르타리오의 이중창 "한 번 안아봅시다."


  <루살카>에서 루살카의 아리아 “하늘 높은 곳의 달님이시여”를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드보르자크는 실내악과 교향곡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아홉 편의 오페라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열 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는데, <성 루드밀라>는 오라토리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거 같습니다). 세계에서 배우기 가장 힘든 언어가 체코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에겐 큰 아픔입니다. 뛰어난 오페라를 많이 만들었는데 체코 외에서 공연을 자주 하지 못하니 서구 작품들과 비교해 무지하게 큰 핸디캡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드보르자크의 몇 오페라는 제가 참 애정을 갖고 있어서 작품이 거론되는 것이 반가워 그의 오페라 목록을 소개합니다.


드보르자크 오페라 음반

왼쪽부터, <자코뱅 당원>, <반다>, <루살카>, <영리한 농부>, <고집쟁이 연인들>, <아르미다>, <왕과 숯쟁이>, <카챠와 악마>, <디미트리>

<자코뱅 당원>, <루살카>, <디미트리>가 명작이고, <고집쟁이 연인들>, <카챠와 악마>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루살카>의 “하늘 높은 곳의 달님이시여”는 르네 플레밍을 많이 들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필이면 칼라스하고 동시대에 활약하는 동구권의 체코 소프라노라 실력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밀라다 슈브라토바의 노래가 제 귀엔 훨씬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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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31 19: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페이지를 찜해서 오페라에 무지한 저에게 짙은 밤 손전등과 나침반처럼 활용해야겠습니다👍

Falstaff 2021-10-31 19:15   좋아요 4 | URL
에고, 손전등이나 나침반으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

mini74 2021-10-31 19: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에서도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같은 존재가 된건가요 ㅠㅠ 오페라는 잘 모르지만 알고싶은 일인~ 저도 미미님처럼 찜해놓고 검색하며 읽어봐야겠어요 *^^*

Falstaff 2021-10-31 19:32   좋아요 4 | URL
거의 그꼴이 났다고 봐야 하는데, 우리보다 상황은 더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솔아~ 할아버지가 부르셔, 녜~ 아니, 너 말고, 이 노래의 예솔이, 이자람을 비롯한 젊은 소리꾼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젊은 관객들도 꾸준히 있는 반면에 이탈리아에선 오페라 구경가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야, 이태리에서 오페라 전공하는 성악가 지망생도 아시아, 동구권, 러시아 학생들이 더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파랑 2021-10-31 1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드라마도 낯설지만 오페라는 미지의 세계 같아요 😅
폴스타프님우 역시 오페라도 전문이시군요. 막장드라마가 재미있기는 한가 봅니다 ㅋ

근데 요즘 이탈리아는 축구도 그닥 잘하지는 못하던데 ㅜㅜ

Falstaff 2021-10-31 19:56   좋아요 4 | URL
ㅎㅎㅎ 그래도 축구는 아직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와 함께 이탈리아입니다!

붕붕툐툐 2021-10-31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오페라 진짜 막장의 원조인 내용들 많죠~ 그래서 전 오페라 좋아라 하는데~ 드보르작 오페라도 찜해놨다가 공연하면 보러 가고 싶어요! 어차피 다 자막인데도 체코어는 공연이 어렵나 봅니다~~

Falstaff 2021-10-31 20:48   좋아요 4 | URL
ㅎㅎㅎ 예. 이탈리아 쪽은 치정, 살인, 복수 빼면 몇 남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아마 <루살카>는 국내 공연을 했었던 걸로 아는데, 나머지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음반으로나마 찾아 들을 수밖에 없어요.
체코 오페라는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좋은 품질로 나왔었는데, 요즘엔 음반 값이 워낙 올라서 후덜덜합니다.

페넬로페 2021-10-31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페라는 스토리와 음악이 함께 있는 것인데 저는 음악 위주로 감상하는것 같아요~~음악이 넘 좋으니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고요.
막장은 우리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인가요 ㅎㅎ
올려주신 영상의 음악 넘 좋아요.
소장하신 오페라 음반을 보니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으시다는것이 느껴집니다^^

Falstaff 2021-11-01 08:41   좋아요 1 | URL
아, 그럼요. 음악이 없으면 세상 누가 오페라 따위를 보겠습니까!
베르디와 이후 작곡가들은 스토리보다 ˝드라마˝라는 극적 요소를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무대미술 같은 장치와 가수들의 연기도 굉장히 중요하다, 뭐 이런 수준으로. 사실 저도 잘 몰라요. ^^;;;

링크 올린 베를리오즈와 핸델의 이중창은 대중적이진 않지만 숨어있는 명곡이랄 수 있습지요. 핸델의 것은, 왕과 왕비가 부르는 노래인데요, 카운터 테너 두 명이 부르고 있잖아요. 근데 대머리가 왕비 역할입니다. ㅋㅋㅋㅋㅋ 베를리오즈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프랑스 말로 디동)와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바야흐로 첫날밤을 치루기 전에 분위기 잡는 것이고요.

공쟝쟝 2021-11-0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역시 문외한이라 오페라는 되게 고상한 고급 비싼 문화(?)라고 생각했는 데, 곁들여진 설명과 유튜브 살짝 보니까 오페러는 웅장한 스케일과 다양한 협동(?)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현대의 영화와 비슷하게 대중들이 즐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심리적 허들이 낮춰진 듯 하옵니다.

Falstaff 2021-11-01 09:13   좋아요 1 | URL
극의 내용만 미리 알고 입장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근데 워낙 많은 연주자와 성악가가, 그것도 있는 집에서 돈 처들여가며 배운 악기와 성악으로 폼을 잡으니 입장료가 비싸서 문제지, 오페라 자체는 그냥 오락거리예요. <아마데우스>의 뒤부분에서 <마술피리> 공연장면 나오잖아요. 일반 시민들도 막 미쳐 날뛰고 소리지르고, 따라부르는 거. 그게 진짜 오페라아니겠습니까.
요즘 오페라, 뮤지컬은 너무 엄숙주의, 뭐라더라, 관크. 아이고 저도 그거 드러워서 공연 구경하러 안 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