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추 왕국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0
장 끌로드 그룸베르크 지음, 신현수 옮김 / 연극과인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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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에 유대인 아버지 슬하에 파리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건 몰라도 초장 신세 하나는 제대로 조졌다. 사생활을 극도로 공개하지 않는 그룸베르크 역시 프랑스 숫자로 구구단을 외우기도 전에 아버지가 나치의 죽음의 캠프에서 높은 굴뚝을 통해 흰 연기로 솟아 탈출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양장 재봉 일을 하며 식구들을 부양했는데 힘겨운 시절을 잘 견뎌냈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은 제대로 시킬 수 없어서 청년이 된 장-클로드도 한 시절 어머니로부터 재봉을 배워 견습 재단사, 우리가 한때 ‘시다’라고 부르던 직업에 잠깐 종사하며 짬짬이 무명 배우 생활을 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나이 서른에 접어들어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1970년대부터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이 책 <꼽추 왕국>, 원래 제목은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Amorphe d'Ottenburg>도 1971년에 세계 초연을 했다.
  우리나라엔 1989년에 이 책의 역자 신현숙이 번역하고, 현대예술극장이 이병훈의 연출로 공연해 그해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선 원래 제목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대신 <꼽추 왕국>으로 불리기 시작해 책의 제목도 <꼽추 왕국>로 뽑았다고 역자는 해설의 각주에서 독자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했다. 1989년인지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이 연극을 하면서 대사가 딱 두 마디인 주인공 아모르프 역할을 하던 배우가, 아모르프의 극중 역할이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극도로 살의를 느껴 견갑골 사이를 푹 찔러 죽이는 그로테스크한 배역이었는데, 당연히 진짜 칼을 사용할 수 없어서 나무칼을 가지고 찌르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너무 몰입을 해서 상대의 뒷목을 그대로 푹 찔러버렸단다. 순간 암전이 되는 장면이어서 칼을 맞는 상대역도 몰입을 하는 바람에 전혀 아픈지 몰랐다가 나중에 보니까 피가 철철 흘러 병원에 가서 일곱 바늘을 꿰맸다고 한다. 먹고 살기 참 쉽지 않다.
  공연 예술은 이런 뒷이야기가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캐나다 테너 존 비커스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돈 호세 역으로 출연했다가 4막, 이미 변심한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에서 극에 너무 몰입을 하는 바람에 카르멘 역을 노래한 크리스타 루트비히를 진짜로 찔러 상처를 입히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에피소드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서핑을 해보시라. 노다지가 들어 있을 터이니.

 

  <꼽추 왕국>을 읽으면 번쩍 떠오르는 그룸베르크의 선배 극작가가 있다. 바로 알프레드 자리. 몇 주 전에 읽은 <위비 왕>이 저절로 생각난다. 백작의 작위를 받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열병식을 열었다가 축하해주기 위하여 참석한 폴란드 왕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열네 살 먹은 도망간 왕자를 뺀 나머지 왕가 식구들을 몰살하고 왕의 위에 오르는 위비. 몇 년 후 성년이 된 적통 왕자 부르그라스가 연이은 폭정으로 민심을 저버린 위비에게 쳐들어가 왕국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를 어찌 연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지.
  <꼽추 왕국>은 좀 더 복잡하다. 원작의 타이틀 롤은 아모르프 도텐부르크. 정신박약이다. 자기 이름도 제대로 발음할 줄 몰라서 가정교사인 꼽추로부터 배운 살인, 주로 늙은이, 병자, 장애인, 부녀자, 아이들이 뒤 돌아 서있을 때 단검으로 견갑골과 견갑골 사이를 내리 찔러 죽이고는 감격에 겨워 아……모……르, 아……모……르, 몇 번을 하다가 나중에야 휘파람을 불 듯 프, 겨우 뱉듯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죽고 싶은 사람들은 이 세자 저하의 앞에서 뒤를 돌아 있으면 성공적으로 즉각 죽을 수 있다. 아모르프 도텐부르크는 오텐부르크 왕국의 아모르프라는 뜻으로, 오텐부르크의 현재 왕과 왕비는 한스와 베르타 도텐부르크인데, 이 부부에겐 아들 셋, 딸 하나가 있지만 오직 정신박약의 아모르프만 사랑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죽든지 살든지, 누구하고 결혼하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꼽추. 머리 하나가 특별하게 좋다. 그리하여 극이 끝날 즈음에, 일국을 결정적으로 망하게 만든 죄에도 불구하고 후임 왕이 차마 자신을 죽일 수 없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던져주는 바람에 목숨을 건지는 건 물론이고, 여전히 왕의 측근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연극을 이끌어가는 추동 역할을 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이건 스토리를 이어갈 경우 그렇고, 내가 읽으며 열심히 머릿속으로 연출을 해보니까, 암만해도 제대로 꼽추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지막 순간을 포함해서 어떻게 이 미물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연극 티켓 판매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꼽추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큰 스포일러 하나를 제공했으니 더 자세한 스토리 소개를 할 수는 없지만, 극에 드러나는 모든 살해는 딱 한 경우만 빼고 전부 아모르프 세자 저하에 의하여 저질러진다. 따라서 등을 보이고 서있는 등장인물을 바라보고, 눈이 희번득 돌아가면서 희생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동안 칼집에서 칼을 빼들고 스테인리스 칼날에 조명이 비치는 어둠 속의 반짝거림도 그로테스크하지만, 아모르프에게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제공하고 그걸 바라보는 꼽추의 시선처리와 순간의 포즈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이건 이 극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상상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꼽추 왕국>이 알프레드 자리에게 영향을 받아 그로테스크 코미디라고만 생각하면 좀 섭섭하다. 작가 장-클로드 그룸베르크는 절반의 유대인으로 살인과, 우월하다고 믿는 특정 인종에 의한 지배, 다른 종족의 노예화 등은 틀림없이 나치의 은유라고 봐야 하겠다. 그렇다고 흔히 읽고 본 작품들과 달리 이 메타포가 노골적이라 특정 부분이나 특정 등장인물 전부를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어떻게 읽으면 1970년대 초, 서구 자본주의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라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자본의 비정한 구조조정으로도 볼 수 있는 장면도 특히 앞부분부터 중간 이후까지 돋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처음부터 마음먹고 시도한 그로테스크, 심지어 아방가르드로도 볼 수 있는 것들까지, 1970년대 근방의 ‘모든’은 아니고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마디로 이 희곡 또는 연극을 규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 권하기는 쉽지 않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눈에 띄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는 정도로 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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