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등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희재의 에세이. 이해인 수녀는 정희재 저자의 글에 대해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빛깔을 띤 축제가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하며, 바빠서 잠시 밀쳐 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찰하게 하는 아름답고 고요한 힘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 또한 인생의 변화를 바란다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보길 권하는 책들과 다르다. 해야 할 생각은 많지만 잡념만 분주할 때, 또는 일상에 떠밀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 이럴 땐 일단 '몸'을 움직여 자신의 좌표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책에는 저자가 연필의 철학적인 생애와 삶을 연결시켜 풀어내는 이야기들과 친구도 가족도 함께해줄 수 없는 고독의 순간이 올 때마다 연필 덕분에 버텨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

 

프롤로그 연필을 사랑하는 이유

제1장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연필을 마련하다

연필 한 자루에 경전 한 권
시간을 건너는 소녀
연필로 기억하고 회복하기
침대 위 연필 한 자루
빈틈이 도착했다, 쓴다
잔잔한 침잠, 고요한 공감의 소리
《굶주림》과 몽당연필 한 자루
연필의 가장 극적인 쓰임새

제2장 마음을 내려놓으려 연필을 들다

처음 뵙겠습니다, 연필이나 한 자루 깎을까요?
연필 깎기 입사식
한밤의 연필 테라피
연필 실종사건
1부터 300까지 쓰면서 알아차리기
하마터면 연필을 놓을 뻔했다
내 인생의 책받침
연필을 입에 물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제3장 인생도 연필처럼 다듬을 수 있다면

연필 깎아달라고 엄마를 불렀네
연필로 뗏목 만들기
텅 빈 방 안에 라디오
전무후무한 이 순간을 위한 낙서
연필 소믈리에의 연필 선물하기
당신의 왼손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싶을 때
손을 귀에 댔더니
흑연 향기 바람에 휘날리고

제4장 미치지 않은 사람은 깊은 정이 없다

연필수집가를 위한 변명
작은 사치에 빠져드는 시대
동네 문방구점을 순례하다
좌절한 사람들의 연필깎이
연필을 사랑하면 우체국에 갈 일이 많아진다
백퍼센트 연필을 만나는 일
연필은 의외로 힘이 세다
예술가의 연필을 품은 숲
사랑하는 사람 속에는 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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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갔다가 표지에 이끌려 구경하게 된 책.

알고보니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정희재 작가님 신작이었다.

블로그에서 꾸준히 하시던 연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

 

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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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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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에세이가 책의 제목처럼 밤 열한시에 읽기 좋은 책이었다면, 고백하건대 이 책은 자정을 넘겨서 세시나 네시 즈음에 읽기 좋은 에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작가의 전작 생각이 나서를 참 좋아해서 출간되는 책들을 꾸준히 챙겨 읽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집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작가의 감성이 변했다기 보다는 책을 읽는 내 감성이 변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게 되면,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p.15)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p.17)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각자가 만들어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p.269)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던 잊지 못할 구절처럼, 그게 그렇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문장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심리를 문장으로 표현한 그녀의 글들을 참 좋아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그런 글보다는 좀 더 몽환적인 글이 많아서 읽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난 책들로 그녀의 감성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한 것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힘겹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글의 다양하다면, 반응도 다양한 법이니까.

 

위에 좋아하는 구절을 모아봤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구절이다.

 

약간 변명 같지만 그때만 쓸 수 있는 글도 있다고,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때의 글이 지금의 내 성에 차지 않아도, 뭐 별로 상관없지 않나, 지금도 흘러가는 인생, 이다. (중략) 이제와서 족해도 부족해도, 언젠가 존재했던 마음이고 기억이다. 그러니 그건 그것대로 소중히, 작은 그릇에 담아 선반 위에 올려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힘으로 인해 여전히 흘러가는 인생, 이다. (p.308-311 그리고 남은 이야기 중에서)

 

이 구절을 구절대로 공감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약간 변명 같지만 그때만 읽을 수 있는 글도 있다고,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때의 글이 내 성에 차지 않아도, 뭐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고. 작가의 말처럼 지금도 흘러가는 인생이며 나는 내일도 또 다른 글을 읽을 테니까. 애석하게도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아주 잘 맞는 책일 수도 있다. 내게도 그런 책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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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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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등 뒤엔 천 개의 엇갈린 기억이 존재한다는 문구를 내세운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 미스터리 등 뒤의 기억은 감성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이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 히나코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물론, 히나코의 과거와 히나코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미스터리하게 풀려서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데,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이 더해져서 감성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걸까 싶었다.

 

책 소개에서, 이번 소설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를 고수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설적 구도는 기존 작품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랬다.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소설을 읽어온 건 아니지만, 보통은 적은 수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의 시점에 충실했던 것 같은데 이번 책은 많은 수의 인물의 등장과 시점이 나온다. 인상 깊은 구절을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메모를 하며 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인물들 간의 개연성 덕분이었다. 자칫 집중하기 어려웠던 낯선 구성이 집중력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행복했던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히나코를 중심으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사나오, 과거에 얽매여 히나코 주변을 맴도는 단노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얽혀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여기저기 던져놓은 미스터리들은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이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얽혀있으므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역시 연장선상이겠구나 싶어서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겐 꽉 닫힌 결말보다는 이런 열린 결말이 해피엔딩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 인물을 콕 집어 이야기해보자면, 역시 히나코다. 히나코를 보고 있으면 에쿠니 가오리의 또 다른 소설 하느님의 보트속 요코가 자주 떠올랐다.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언제나 거기에 있다며,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라던 요코 역시 행복했던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히나코와 요코, 두 사람의 공통점이 눈에 밟혔던 건 최근에 읽었던 에세이 속 구절 때문이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162)

 

히나코를 살게 하는 건, 동생 아메코와의 기억이었고 그 기억이 가상의 여동생을 만들었다. 요코는 딸 소우코와 함께 살아가지만 요코를 살게 하는 건 애석하게도 소우코 아빠와의 기억이었다. 이런 둘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짠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게 맞겠지만, 때때로 부럽기도 하다. 한 사람을 살게 할 만큼, 그 사람을 위로한 다른 사람과의 시간이란 대체 어떤 시간일까 싶어서.

 

그러나 글을 여기서 끝내긴 싫다. 히나코도 요코도 혼자인 것 같지만, 결국 혼자가 아니니까. 물리적으론 떨어져있어도 히나코를, 요코를 생각하는 가족이 있지 않은가. 지금껏 두 사람을 살게 한 기억도 좋지만, 그 기억은 이만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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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비디오로 촬영해도 한 번 지나간 뒤의 일들은 더 이상 내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내 인생이 저마다 다른 나날들로 이뤄진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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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의 책탑 부터 올해 7월의 책탑까지.

9장 말고도 더 있지만, 손 가는대로 모아봤다.

책등으로나마 내가 읽은 책들을 이렇게 남겨놨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보람차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쌓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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