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위로가 될만한 에세이를 추천해달라는 댓글을 받았다.

나 역시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영화를 챙겨보고 온 화요일이었다.

내가 종종 위로받는 책들을 소개해드리는 소소한 일이지만,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글을 쓴다. 

1.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스무살, 수필론 시간에 처음 접했던 장영희 작가님의 에세이.

글에서 맑은 느낌이 전해져서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좋다.

박완서: 뭔가 유별나거나 기이하기까지 하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글쓴이의 반듯함과 착함이 나에게는 더 믿음이 간다.
핸디캡을 숨기려고도, 그렇다고 과장되게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 성숙함에서 오래된 문학의 향취가 배어난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투리 조각천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안목에 따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각보가 되듯이……. 따뜻한 난롯가에서 이런 글을 읽는다면 더없이 마음이 훈훈해지리라.

내가 이 책에 대해 그 어떤 말을 더하는 것보다 박완서 작가님의 추천사를 덧붙이는게 제격일 것 같아서 담아보았다. 


2.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세상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처럼 인생은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이치코의 엄마처럼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 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p.9)

책과 영화에 대해 쓴 칼럼을 묶은 책이라 읽지 않은 책이, 보지 못한 영화가 줄줄이 등장하면 다소 낯선 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마음에 드는 나머지, 저 책을 읽어봐야지 저 영화를 챙겨봐야지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산문집이다. 특히 서문의 저 문장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는다'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머지 소리내어 읽곤 한다. 작가님의 또 다른 책 《온전히 나답게》도 함께 추천하고 싶다.



3. 성수선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가끔 내가 물어보기 전에, 누가 먼저 말해주면 좋겠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넌 참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계속 하라고. (p.151)

이 중 한 권만을 추천해달라면 두말 않고 이 책을 고르겠다. 정말이지 마음이 싱숭생숭할 땐 이 책을 펼쳐 차례만 읽어도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때 그렇게 안 했더라면 하는 생각만 안 하고 살기/ 혼자인 네가 아플 땐 잠시 쉬어가라는 뜻이야/ 꼭 이유가 있어야 하니? 그냥 재밌으면 해/ 못 이룬 꿈이 있으니 카프카도 우리 편이야

등등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제목들이 차례에서부터 나를 위로
한다. 내게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되는 것처럼 지원님께도 좋은 책이 되었으면 한다. 


4.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세상은 두 가지나 세 가지로 구성돼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더냐!) 세상은 대략 5억만 개(너무 적나?) 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일 뿐이다. 스무 살 때 그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보았을 것이다. 실패가 행복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p.167)

나는 이 책으로 중혁작가님의 세계에 입문했고,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중혁작가님의 특별한 세상이 온전히 녹아든 이 책을 최고로 애정한다. 기분이 좋아서 읽고, 몇번이고 다시 읽어도 재밌어서 읽고, 기분 전환용으로도 제격인 책이라 싱숭생숭할 때도 읽는다. 괜히 내 인생에세이가 아니다. 

 


5. 노희경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 1,2》

 

  


그사세 대본집은 에세이는 아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사세 속 대사를 담기 위해 함께 소개한다.

지오(N)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뒤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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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에 사둔 교보문고 미니샵 2탄(feat.옥스포드)을 새해 벽두부터 맞춰보았다.

설정한대로 코멘트를 달아보자면,

 

 

북트럭으로 입고된 책 옮기는 직원

 

 

회전문으로 막 들어온 아이

 

 

검색대에서 찾는 책 검색하는 아저씨1

 

 

먼저 도착한 여친 창문으로 바라보는 남친

(요건 막내꺼 레이 옥스포드)

 

 

먼저 도착해서 장강명 작가님의 <한국이 싫어서> 읽고 있는 여친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인문,종교 분야 살펴보는 학생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읽는 아저씨2

 

 요러고 놀았다.

 

 

블록 맞추다가 여기에 조그맣게 있는 책들 실물로 모아보자 싶어서

집에 있는 책들 모아봤더니 8권이나 있었다. 허허.


이기호 작가님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랑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은 전자책으로 있으니까 총 10권이 있는 셈.


위 사진 속 책들 아래에서 찾아보기


▼▼▼

 

 

커서 맞추는 옥스포드가 이렇게 꿀잼이라니...

다음 옥스포드는 어떤 걸로 장만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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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패터슨'은 토요일에 보려고 예매해뒀었는데, 영화 시간을 고려해 애써서 일했음에도 제 때 퇴근하지 못하여 취소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너무 우울했다. 우울하다못해 사나웠다는 쪽이 맞겠다. 내가 제 아무리 애써도 월말 업무량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시간이 오래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과 영화는 왜 예매해서 안 그래도 멜랑꼴리한 연말에 사서 우울하나 싶었다.

사나웠던 마음은 다음 날 아침 '패터슨'을 보면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짐자무쉬의 영화는 패터슨이 처음이라 음악이 다소 낯설긴 했지만 패터슨씨를 보고 있으면 모든게 다 괜찮았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반복되는 업무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위로하고 다시 내일을 맞는 우리네 삶.

 

 

건조한 표정의 패터슨씨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패터슨씨의 일상이 내 일상인양 빠져들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그가 '시'를 좋아한다는 것. 그가 단순한 일상을 지루해하고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건,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와 '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기를 보는 것 같은 일상적인 소재와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담백한 문체로 그는 '매일' 쓴다. 그가 운전하는 23번 버스가 차고에서 출발하기 전에 쓰고,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을 먹으며 쓰고, 귀가해서는 자택 지하에 위치한 그의 작은 서재에서 쓴다. 그가 시를 기록하는 비밀 노트는 한 마디로 '아지트' 같았다. 다소 건조한 그의 일상에 단비가 되어주고,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시가 있는 공간.

내내 외면해오다 연말에 조우한 어떤 일로, 나를 기쁘면서도 울적하게 만든 '글쓰기'. 그런 글쓰기로 행복하고, 게을러하지 않는 패터슨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반성했다. 월화수목금토일 그리고 다시 월요일.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건 나도 패터슨씨도 다르지 않다. 올해는 핑계 대지 말고 '내 글'을 쓰는, 패터슨씨처럼 비밀 노트에 쓰더라도 매일 같이 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연말에 영화 결산 하면서 다시금 느꼈던 생각. '내 삶의 가치를 달리하는 건, 느낌표를 채우는 게 아니라 느낌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요 밑줄은 《메모 습관의 힘》중에서) 채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기록하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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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순간


­
사업을 하며 이리저리 물건을 팔러 다니던 때였다. 어느 쇼핑몰 지하에서 며칠간 진행된 판매 행사가 끝난 날이었다. 팔다 남은 짐을 챙겨 파김치가 된 몸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는 강변도로를 타고 달렸다. 그 덕에 한강 주위의 근사한 야경을 내내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그 불빛 하나하나 속에 어떤 우울한 사연들이 있을지 상상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방금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와 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빚쟁이의 독촉 전화를 받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상습 폭행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엔 그저 반짝이는 불빛일 뿐이다. 연달아 행사하느라 고된 내가 타고 있는 택시의 불빛도 강 건너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야경의 일부일 것이었다.
멀리서 봐야 빛나는 달과 별처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위로받는다. 저마다 다른 슬픔을 가진 채, 단지 밤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느 밤 내가 서러운 일로 목 놓아 울고 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방의 불빛을 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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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요.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
- 백영옥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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