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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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며 이리저리 물건을 팔러 다니던 때였다. 어느 쇼핑몰 지하에서 며칠간 진행된 판매 행사가 끝난 날이었다. 팔다 남은 짐을 챙겨 파김치가 된 몸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는 강변도로를 타고 달렸다. 그 덕에 한강 주위의 근사한 야경을 내내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그 불빛 하나하나 속에 어떤 우울한 사연들이 있을지 상상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방금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와 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빚쟁이의 독촉 전화를 받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상습 폭행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엔 그저 반짝이는 불빛일 뿐이다. 연달아 행사하느라 고된 내가 타고 있는 택시의 불빛도 강 건너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야경의 일부일 것이었다.
멀리서 봐야 빛나는 달과 별처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위로받는다. 저마다 다른 슬픔을 가진 채, 단지 밤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느 밤 내가 서러운 일로 목 놓아 울고 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방의 불빛을 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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