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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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가 아니야덕질메이트지.”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 나오는 대사다덕질이 일상인 나로서 격하게 공감했던 대사였다취향이 남다른 덕분에 주로 홀로 하는 덕질에 바쁜데때때로 취향이 맞으면 덕질메이트와 함께할 때가 있다혼자도 즐겁지만 함께하는 덕질은 얼마나 즐거운지!

 

쓰루타니 가오리의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에서 사야마 우라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우라라처럼 BL 만화 덕질을 하는 건 아니지만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홀로 덕질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모습도 이럴까 싶었다그런 우라라의 앞에 덕질 메이트가 나타나는데, 3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75세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다.

동네 서예 교실을 운영하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예쁜 그림체에 홀려 <너만 바라보고 싶어>라는 만화책을 구매한다집으로 돌아와 여느 날처럼 시간을 보낸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맞다그거 샀었지.”하고 만화책을 꺼내 읽는데... 한 남학생이 또 다른 남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 안 해계속 좋아했었으니까…… 싫어해도 괜찮아.” ……아이고야어이쿠그렇다유키 할머니가 구매해 온 책은 Boys Love 만화였다.

 

약만 받는데 반나절이 걸리는 병원에서 할머니는 책을 꺼내드는데그 사이 구매해서 챙겨 온 <너만 바라보고 싶어> 2권이다할머니는 본인 이름을 호명하는 것도 모르고 책에 빠져든다뒷이야기가 궁금하니 3권을 사러가지 않을 수 없다병원에서 빠져나온 할머니는 그 길로 서점에 간다그때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우라라를 만난다.



서점에는 3권이 없었고할머니는 주문표를 작성한 뒤 돌아갔다우라라는 집에 돌아와서 박스에 숨겨두었던 BL만화를 꺼내 읽는다. “빌려드릴까요라고 할 뻔했다” 생각하면서.

 

시간이 흘러 서점에 주문서가 입고되었고 이 책은 제가 전화해도 돼요?”하고 우라라가 책을 챙긴다입고되었다는 전화를 했고할머니와 통화를 했을 뿐인데 우라라는 즐거웠다. 3권을 찾으러 온 유키 할머니와 우라라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할머니는 우라라에게 차 한 잔 할래요?” 하고 제안한다.

 

나는요집에서 서예 교실을 하는데 아이랑 노인밖에 안 와요줄곧 누군가와 만화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우.”

 

그건 우라라의 로망이기도 해서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다내가 그리던 친구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차 한 잔 하고 돌아가는 길이번에는 우라라가 먼저 입을 뗀다. “저기… 오늘 얘기를 하나도 못해서… 죄송해요저는누구랑 이런 얘기한 적이 거의… 없어서” 미안해하는 우라라에게 할머니는 마음 써 주지 않아도 돼요무리도 아니지갑자기 이런 할머니가” 하고 답한다. “저기진짜로 전혀… 그보다 오히려 기뻤거든요.” 서툴지만 진심을 전한 우라라의 말에 할머니는 이렇게 받아친다. “그럼… 이거 읽고 문자 보내도 되나?” “!”

둘은 밝은 표정으로 번호를 교환한다.

 

쓰다 보니 1권의 반절 분량을 이야기하고 말았다여기부터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백문이 불여일견직접 읽어야 한다전자책으로는 1권까지 나왔고종이책으로는 2권까지 출간되어있다로 마무리하면 영업하는 글에 지나지 않으니 좀 더 이야기 해보자.

 

우라라와 유키 할머니의 나이 차이만큼은 아니지만내게도 덕질메이트가 있다블로그로 연이 닿아 5년째 알고 지내는 별언니가 그렇다우리가 그해 만날 수 있었던 주제 이상으로영화와 뮤지컬전시·공연 등등 취향에 있어 비슷한 면이 많다종종 만나서 함께 덕질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돌아온다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가 아니라 덕질메이트라는 덕미의 대사에 공감했던 것도 별언니 덕분이었다오는 7월에도 별언니와 즐거운 덕질 두 건을 계획하고 있는데요즘은 이 힘으로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유키 할머니의 말이 오래 남았다.


 

다시 덕미의 대사를 떠올린다. 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일 수도, 덕질메이트일 수도 있다. 소울메이트와 덕질을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함께여서 더 즐겁고, 좋아하는 것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일, 덕질메이트를 만나는 것 역시 삶에 있어 커다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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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안의 열정이 어느 순간 식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배우고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온종일 그 생각만 나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때도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쭉 이어지진 않는다(이어져도 곤란하다). 영원히 절절 끓지 않는다. 위로 쭉쭉 치솟던 열정 그래프의 각도가 어느 순간부턴가 완만해져 수평에 가까워지다가, 때론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20대엔 열정이 버글버글 끓고, 30대엔 그 열정의 원석을 캐내고 잘 다듬어 값을 올린다. 그리고 40대로 접어들면... 슬슬 더는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내 인생 끝이냐, 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냐, 더 이상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냐, 전혀 아니죠. 슬슬 또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가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니,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던 걸 그만두는 게 곧 패배와 실패를 뜻하진 않는다. 그동안 쏟아부은 열정, 노력, 시간 돈이 아깝고 억울해 '억지로 계속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 내가 내 발목을 잡는 셈이다. 고냐 스톱이냐,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나와 합의를 봐야 한다.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됐어, 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끝낸다. 끝을 내야 그다음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하던 걸 계속하되, 내 자세가 달라진 것을 받아들인다. 20대, 30대에 거친 파도를 짜릿하게 타고 달렸다면 이젠 잔잔함을 즐길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게 꾸준히 내 페이스로 가겠다는 것.
결국 우리는 길게 가야 한다. 굵냐, 가느냐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길게 가기 위해선 탄력과 복원력이 필요하다. 손으로 꾸욱 누른 자국이 다시 쑤욱 솟아올라야 한다. 푹 자고 일어나 어제의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시작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 내 속도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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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132-134

2019.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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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예찬

내향적인 사람들이 모두 책벌레는 아니지만, 책벌레 치고 내향인이 아닌 사람은 많지 않다. 나 또한 활자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한다. 읽는 즐거움에 쓰는 즐거움까지 보태져 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한대로 발전했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한다. 서점, 도서관, 헌책방, 물성 있는 책, 물성 없는 책, 신문, 잡지, 오디오북, 문자, 북카페... 책과 글이 있는 수만 가지의 연결고리들에 빠짐없이 애착을 느낀다. 책이 있는 공간은 어디든 언제까지든 머물 수 있다.
방학을 한 학교 도서관은 늘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고요하고 포근한 이 공간은 무더운 여름과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언제나 나만의 아지트가 된다. 나는 부지런히 그곳에 발도장을 남겼다.
왜 그렇게까지 책을 좋아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아마 종이의 질감, 책의 향기, 책이 주는 생각의 빈 공간, 마음의 안식이 되는 부드러운 말과 글 때문일 것이다. 적막 속 고요히 읽는 시간부터 종이 넘기는 소리까지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성을 오감으로 세세하게 기억하고 싶다.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방식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어치우지만, 역시 손에 잡히는 종이책을 가장 좋아한다. 누런 바탕을 빽빽하게 또는 드문드문 작가 입맛대로 채운 글자들이 빚어내는 조화는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도 책과 함께라면 무난하게 한 해의 절반 정도는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여가 시간을 가장 성실하게 보조하는 오락은 언제나 '독서'다.
형체 없이 저장되는 정보를 물성 있는 대상 속에 담았으니, 책이란 실로 오묘한 존재다. 책은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나를 위로하고 웃게도 울게도 만든다. 마음 맞는 책 한 권과 보낸 시간은 소중한 벗과 보낸 시간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알차다. 그 어떤 스승보다 나를 강하게 흔들어 일깨우고 나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시 한 편을 읽다보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그 속에 잔잔하게 보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도둑맞은 듯 책에서 벌거벗은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슬픈 단어가 없어도 마음을 후벼파는 순간을 맞아 눈물 번진 시야로 책장을 넘긴 적도 많다. 책들은 하루에 몇 번씩 변변찮은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라고 수없이 권한다. 책이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책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내가 완전하고 내 하루가 더 윤택하게 빛난다.
책은 교류의 도구이자 큐피트의 화살이 되기도 했다. 책 속 좋았던 구절을 옮겨 적어 슬그머니 책 사이에 마음을 담은 쪽지를 끼워넣기도 하고, 책을 선물하며 간접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그와 나의 취향을 비교하며 서로간의 마음을 확인하는 매개체로도 사용하고, 돌려 읽은 책 한 권을 안주 삼아 몇 시간씩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책은 냉소적이고 무신경한 나에게 감성을 불어넣고 자기 중심적인 나에게 연민을 가르쳐주었다. 타인의 삶에 한 번 더 고개를 돌릴 호기심을 던져놓고 가기도 했다.
세월의 풍파에 취약한 만큼 읽은 자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는 책은 그만큼 사연 가득한 신비한 존재가 된다. 가끔 중고서점으로 책사냥을 떠나는데, 타인의 손때 가득한 헌 책들 가운데 구하고 싶어도 더는 구할 수 없었던 책들을 운 좋게 만날 때가 있다. 절판 도서, 몇 차례 중쇄를 한 베스트셀러의 초판, 이미 타계한 작가의 귀한 친필 사인본을 발견하노라면 그 기쁨과 행운에 형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고서이지만 출간 년도가 의심될 만큼 상태가 좋은 책을 발견하면, 왠지 모를 경외심이 드는 한편 책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괜스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나는 집에서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책이 있으면 언제나 충만하다. 해마저 저버린 어둡고 쓸쓸한 오후도 책이 있으면 오후 2시의 맑은 기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불빛마저 희미해진 적막한 시간에도 오래된 수필 한 권, 너덜너덜한 공책과 연필 한 자루면 읽는 나와 쓰는 나로 시간은 완전해진다.
퀴퀴하고 타분한 종이 냄새와 책 넘기는 소리,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는 쓸쓸한 시간과 공간을 온기로 채우는 최고의 땔감이다.

2019.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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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양말 -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무튼 시리즈 18
구달 지음 / 제철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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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8시면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디즈니 만화동산>을 시청하던 어린이는 귀여운 캐릭터라면 환장하는 어른으로 자랐다나이를 먹으면 시들해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외려 월급이라는 총알을 장전해 화력이 더 세진 느낌이랄까회사에서 인간관계에 치여서 그런지 귀여운 무생물에 대한 집착은 날로 심해졌다라이언 마우스 패드는 날 배신하지 않으니까올라프 볼펜은 본인 일을 내게 떠넘기지 않으니까보노보노 탁상용 선풍기는 입방정을 안 떠니까그렇게 하나둘씩 온갖 귀여운 얼굴들이 사무실 책상 위를 점령했다. (p.73)

 

회사에서 인간관계에 치여서 그런 건지그냥 귀여운 캐릭터가 좋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나는 캐릭터 양말이 참 많다.

   



(사진에 3배 정도 되는 양말을 가지고 있다. 1-2켤레를 제외하면 전부 캐릭터 양말이라는 게 함정)

   


이런 식으로 캐릭터 양말 덕후임을 고백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 책 아무튼양말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나의 이런 캐릭터 양말 사랑은 비정기적으로 무비올나잇(메가박스에서 진행하는 이 세상 모든 올빼미족을 위한 심야영화패키지로 21,000원에 3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토요일 밤 11~12시 경 시작하는데마지막 영화가 새벽 6시반-7시 즈음에 종료된다영화를 보고 돌아가면 주말의 반나절이 빛의 속도로 삭제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을 함께하는 친구 원이만이 알고 있다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하는 무비올나잇을 보기 때문에 날을 잡으면 어김없이 동대문에서 만나는데그때마다 내 손에는 새로 산 양말이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양말 중에 왜 캐릭터 양말만 고집하냐고 묻는다면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기 때문...... 아니 적어도 나만큼은 구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캐릭터를 소비해도 크게 구속받지 않는 아이템이라 그렇다캐릭터가 발목 위에 프린트된 양말의 경우바짓단을 걷지 않는 이상 단색의 양말로 보일 때가 많아서 평범한 양말을 신은 덕후로 보여서 일석이조다나는 아침저녁으로 귀여움을 신고 벗으며 양말로부터 에너지를 얻고지인들은 나의 캐릭터 양말에 대해 굳이 한 마디 거들 일이 없으니 말이다.

 

양말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네 콘테스트였다작가님이 꽤 오래전부터 애정해 온 양말 브랜드이름부터 마음에 쏙 드는 아이헤이트먼데이에서 어느 날 재밌는 이벤트를 열었다가지고 있는 아이헤이트먼데이의 양말을 찍어 SNS에 인증하면 개수로 순위를 매겨 선물을 증정하는데, 1등에게는 겨울 신상 양말 14종을 몽땅 주는 이벤트였다작가님은 생각했다. 1등은 못 해도 20등 안에는 들겠지내 발(양말)이 88갠데 아무렴책을 읽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웬걸. 1등을 차지한 분은 169켤레를 인증했단다심지어 작가님은 20등 안에도 들지 못했다니캐릭터 면양말 밖에 모르던 내게 이렇게나 많은 양말의 종류와 브랜드를 알려주신 분이 우물 안 지네였다고 하면나는 지네의 자 근처에도 못 따라가는 덕후아니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산수가 아니었다지네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분이 왼발 더하기 오른발이 169발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했듯이 말이다인간의 욕구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종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가서 누군가가 대신 나서 명쾌하게 더하거나 빼줄 수 없었다그러니 내 집 마련을 꿈꾸든세계 최고의 지네발을 꿈꾸든옳네 그르네 정신을 못 차렸네 마네 훈수를 둘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거였다모두가 1+1=2만을 추구하는 세상이었다면애초에 각자 가진 양말을 꺼내 순위를 겨루어보자는 즐거운 이벤트 아이디어 같은 건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이 재미난 걸. (p.43)

 

1+1=2만을 추구하는 세상이었다면 이런 재미난 이벤트를 여는 사람도 참가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어떤 영화를 너무 재밌게 본 나머지 영화관에서 수십번을 넘게 봤다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어떤 드라마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드라마 DVD를 하나는 감상용으로 또 하나는 소장용으로 구매한 나의 과거도 없었을 것이다작가님이 지네 콘테스트로 얻은 깨달음처럼 인생은 산수가 아니니 말이다.

 

 

외출이 즐겁다오로지 양말을 사기 위한 목적만으로 나선 외출이 즐겁다이 원고를 쓰기 위해 미뤄둔 밥벌이를 재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이렇게 별것 아닌 일로 잠깐이나마 외출을 감행하니 세상 행복하다아무리 바빠도 이런 마음을 잃어버린 채 살고 싶진 않다제철 양말을 고르는 티끌만 한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행복은 양말이다양말과 함께라면 행복은 언제나 제철이다경복궁을 따라 걸으며 마지막 가을 단풍을 감상하고삼청동 양말 가게에서 올해 첫 겨울 양말을 고르는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그래서 오늘 사버린 티끌이 도합 얼마냐 하면.

(p.158-159)

 

 

지금까지 이런 양말 덕후는 없었다, 이것은 양말 이야기인가 행복 이야기인가. 위 구절에 따르면 행복이 된 양말 이야기가 될 것이다.

행복은 양말이다.’는 문장에서 양말의 자리에나는 어떤 것으로 채워 넣게 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책장을 덮으려고 했는데 마지막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작가님이 그날 사버린 티끌의 도합이 얼마였을까.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글 덕분에 읽는 내내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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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 -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키미앤일이 지음 / 가나출판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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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신작을 기다려온 작가의 책믿고 보는 출판사의 책드라마 속 주인공이 읽었던 책취향 코드가 맞는 인친이 읽었다기에 관심이 간 책제목에 눈길이 간 책표지가 발길을 사로잡은 책 등등이 책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의 경우 제목과 표지에 마음을 빼앗겨서 찾아 읽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제목이었다부제는 또 어떤가.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라니두 번째는 이국적인 그림체와 색감이었다제목과 그림체와 색감의 조화에서 어쩐지 뚝심이 느껴졌다이 책을 읽지 않고는 나 역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파도 치는 소리가 너무 좋고바닷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바다를 좋아합니다."라고 이야기해 버리면 그것이 없어졌을 때 바다를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그래서인지 바다도 바다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를 붙인 적이 거의 없다실제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이유를 만든 적이 더 많다일종의 좋아하기 위한 노력처럼 말이다.

 

붕어빵에 팥이 없으면 붕어빵이 아닌 것처럼이유가 있는 것에 이유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 싫다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에 이유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이유가 사라져 버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슬픔을 맛보고 싶지 않다.

 

그게 바다든 사람이든.

(p.104)



이 구절을 읽는데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에서 완의 대사가 오버랩됐다.

 

생각해봤어왜 당신이 좋은지못 찾았어왜 당신이 좋은지이유가 없어근데 이유가 없어서 사랑인 것 같애근데 그게 맞아이유가 없는 게이유가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이유가 사라지면 그 마음은 변할 거라는 말이잖아이유 같은 거 없이 좋아해그냥 당신이당신이라서.”

 

이 대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단번에 눈에 들었던 구절인데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 이유를 만든 적이 더 많다일종의 좋아하기 위한 노력처럼 말이다.’는 구절 때문이다전 직장에 다닐 때 힘들고 지쳐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닌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돌아보니 그곳을 좋아하기 위해 노력했던 거였다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며 살고 싶은 동시에좋아하지 않는 것에 이유를 만드는 것 역시 달갑게 여기며 살고 싶다.

 

 

나는 하고잡이(뭐든 하고 싶어하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일 욕심이 많은 사람)라 그런지 항상 하고 싶은 게 다양하게 많았다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것은 그 무언가를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더 크게 일어난다사람이라는 게 할 수 없으면 더 하고 싶다. (저만 그런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그런데 정작 할 수 있을 때가 되면또 안 하게 된다. (이건 저만 그럴지도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뤄 버린다그러다 또 하기 힘든 시기가 오면굳이 꾸역꾸역 하고야 만다이건 도대체 무슨 심리일까?

(p.190)

 

 

책에서는 등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는데나는 블로거 해밀로서의 나를 두고 쓴 글 같았다뭐든 하고 싶어하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일 욕심이 많은 사람하고잡이수많은 카테고리들은 뭐든 하고 싶어 했고 조금씩은 건드려봤던 과거를 여실히 보여주고앞으로도 하고 싶은 포스팅이 백만개쯤 된다그런데 할 수 없으면 더 하고 싶고할 수 있게 되면 세상 미루다가 마감일에야 겨우 하는 청개구리가 나다이 리뷰 역시 마감일을 앞두고 쓰고 있으니 말 다했다이 구절이 담긴 산문의 제목 또한 청개구리 심보인데세상에 이런 청개구리가 최소 둘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구절이었다정말 무슨 심리일까?

 

좋아하는 것이 생업이 되어버린 우리의 이야기(60), 작은 상점에서 선물을 샀는데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던 것을 보고 포장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된 이야기(63), 드라마 괜찮아사랑이야에 대한 감상(132)등 리뷰에 담고 싶은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쯤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구절을 소개해야겠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것은 사실 간단하다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상상했던 것들을 조금씩 실천하면 된다.

사실 말이야 쉽지실천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참 많다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단언컨대 ''이나 '상황같은 녀석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큰 방해꾼이다그러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시작하면 어떻게든된다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사람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작은 것부터 조금씩 열심을 더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p.188-189)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도 그랬다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그는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기 위해 떠났고상상은 현실이 되었다스케일이 좀 다르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나의 상상 역시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씩 실천하자고다시금 다짐한다. ‘해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끝판왕 빌런은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작은 것부터 조금씩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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