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패터슨'은 토요일에 보려고 예매해뒀었는데, 영화 시간을 고려해 애써서 일했음에도 제 때 퇴근하지 못하여 취소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너무 우울했다. 우울하다못해 사나웠다는 쪽이 맞겠다. 내가 제 아무리 애써도 월말 업무량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시간이 오래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과 영화는 왜 예매해서 안 그래도 멜랑꼴리한 연말에 사서 우울하나 싶었다.

사나웠던 마음은 다음 날 아침 '패터슨'을 보면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짐자무쉬의 영화는 패터슨이 처음이라 음악이 다소 낯설긴 했지만 패터슨씨를 보고 있으면 모든게 다 괜찮았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반복되는 업무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위로하고 다시 내일을 맞는 우리네 삶.

 

 

건조한 표정의 패터슨씨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패터슨씨의 일상이 내 일상인양 빠져들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그가 '시'를 좋아한다는 것. 그가 단순한 일상을 지루해하고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건,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와 '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기를 보는 것 같은 일상적인 소재와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담백한 문체로 그는 '매일' 쓴다. 그가 운전하는 23번 버스가 차고에서 출발하기 전에 쓰고,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을 먹으며 쓰고, 귀가해서는 자택 지하에 위치한 그의 작은 서재에서 쓴다. 그가 시를 기록하는 비밀 노트는 한 마디로 '아지트' 같았다. 다소 건조한 그의 일상에 단비가 되어주고,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시가 있는 공간.

내내 외면해오다 연말에 조우한 어떤 일로, 나를 기쁘면서도 울적하게 만든 '글쓰기'. 그런 글쓰기로 행복하고, 게을러하지 않는 패터슨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반성했다. 월화수목금토일 그리고 다시 월요일.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건 나도 패터슨씨도 다르지 않다. 올해는 핑계 대지 말고 '내 글'을 쓰는, 패터슨씨처럼 비밀 노트에 쓰더라도 매일 같이 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연말에 영화 결산 하면서 다시금 느꼈던 생각. '내 삶의 가치를 달리하는 건, 느낌표를 채우는 게 아니라 느낌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요 밑줄은 《메모 습관의 힘》중에서) 채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기록하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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