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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신간페이퍼라니T_T 9월은 좋지만, 마지막은 늘 아쉽다.

그래서 9월에도 5권 꽉꽉 채워서 신간페이퍼를 쓴다.

 

 

1. 김서령 <참외는 참 외롭다>

 

 

신문과 잡지에서 인터뷰 전문기자로 오래 일한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산문집. 발랄한 제목만큼이나 경쾌한 그의 산문들을 한데 모았다.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만큼 그의 시선은 언제나 오래된 것, 사소한 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향해 있다.

이제는 모두 없어지고 마지막 남은 성냥공장에 작지만 굳센 믿음을 보내는 것, 동네 길가에 누가 내다버린 낡은 대바구니를 냉큼 집어들고 돌아와 마당 한켠을 내어주고는 그 안에 손님처럼 찾아든 여린 야생화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는 것, 어릴 적 유난히 약한 손녀를 대추나무에게 딸로 주며 대추나무 같은 억셈과 장수를 두손 모아 빌던 할머니의 간절함을 잊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저자 김서령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

 

 

 

2. 오카자케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대략 장서 3만 권을 가진 오카자키 다케시가 장서의 괴로움에 지친 나머지 헌책방을 부르거나, 책을 위한 집을 다시 짓거나, 1인 헌책시장을 열어 책을 처분하는 등 '건전한 서재(책장)'를 위해 벌인 처절한 고군분투기. 또 자신처럼 '책과의 싸움'을 치른 일본 유명 작가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책에는 저자처럼 "그래, 이제 마음을 바꿔보자"고 생각하는 장서가를 위한 열 네 개의 교훈이 차근차근 단계별로 펼쳐진다. 천천히 책더미와 이별을 고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부터 손을 놓기 시작하면서 헌책방에 보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과연 나는 올바른 독서가인지 반성하면서 장서의 괴로움을 낳는 원천을 찾아내며, 도서관에서 위로를 받으며 결국 나의 책을 처분하기까지. 장서가라면 맞아, 맞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눈물겨운 이별과정이 그대로 펼쳐진다.

 

*

 

내게 '장서'라는 단어는 굉장히 두근두근한 단어인데,

그 뒤에 붙인 '괴로움'이라니. 공감 백배다ㅋㅋㅋㅋㅋ

책장은 이미 책으로 꽉찬지 오래고, 여기저기 책탑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책이 쌓이는 즐거움을 떠나 괴로움이 되었다.

이런 걸 두고 행복한 비명이라고 하려나.ㅎㅎ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오면 장서의 괴로움에 한 몫하는 책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다.

장서가라는 건 곧, 애서가이기도 하니까.

 

 

 

3. 정철 <한 글자>

 

 

언제나 '사람'을 먼저 이야기해 온 카피라이터 정철의 에세이. 오로지 1음절로 이루어진 글자들만으로 책 한 권을 꾸렸다. 한 글자로 시작해 한 글자로 놀다가 한 글자로 끝난다. 사람 사는 세상, 우리네 인생을 오로지 1음절 글자들에 비추어 읽고 또 썼다. '똥', '헉', '꽝' 같은 예상외의 글자도 있고, 'A', 'B', 'C' 등 알파벳부터 '1', '2', '3'과 같은 숫자들도 포함한다.

꿈, 별, 꽃, 밥, 물, 봄, 집, 나, 힘…. 저자는 한 글자 말을 추렸다. 그리고 하나하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글자 하나에서 생각 하나를 끄집어냈다. 마음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것을 이렇게 책으로 엮었다.

 

*

 

지난 책 <인생의 목적어>를 재밌게 읽었다.

저번엔 단어, 이번엔 1음절이다.

한 글자로 시작해서 한 글자로 놀다가 한 글자로 끝난다는 말이 참 재밌다.

이번 책에선 어떤 글들이 담겨있을지 궁금하다.

 

 

 

4. 이노세 아츠코 <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3권.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날들 속에서 찾는 행복 아이디어 64가지. 저자 이노세 아츠코는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이자 요리연구가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직업은 주부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집은 모든 시간의 중심이다. 가족과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휴식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소중한 공간이다.

하지만 매일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 책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더 행복해질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약간의 노력을 더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매일을 보다 풍성하게 즐겁게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추억이 담긴 물건은 집의 중심에 두기, 집안일을 주로 하는 곳에 꽃을 두고 보기,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음식 만들어 나눠 먹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때는 글 쓰는 시간 가지기 등 일상에서 찾아낸 그 즐거움들을 위한 64가지 지혜와 노력을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학교 아니면 집이었고 직장 아니면 집인 나로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순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남들은 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집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약간의 노력을 더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매일을 보다 풍성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건 '집' 역시 그러하다.

 

 

 

 

5.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저니맨>

 

 

변화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수련 여행기.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는 실내건축학을 전공한 독일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졸업논문을 마치고 모두들 구직활동에 여념이 없을 때, 파비안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스펙과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1~2년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탕진하는 멍청한 짓이었다.

그는 우연히 중세의 장인들이 떠났던 수련여행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수련여행이란 중세시대 기술교육을 마친 수련공들이 자신의 기술을 단련하기 위해 반드시 떠나야 하는 세계 여행이었다. 아무리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도 의무적인 여행 그랜드 투어를 통해 문화적 식견과 폭넓은 지적 체험을 하고 돌아와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괴테, 헤르만 헤세, 비틀즈, 스티브 잡스 등 근현대의 걸출한 인물들 또한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 책은 스물여덟의 청년 파비안이 단돈 30만 원을 들고 떠난 수련여행의 기록이다. 그는 2년 2개월 동안 10개국을 여행했으며, 먹을 것과 잠자리만 제공받는 조건으로 현지에서 일을 구해 비용을 충당했다.

이 기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끼니를 거른 적도 있으나 세계적인 유명인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무엇 하나 계획한 것 없이 떠났지만, 수련여행이 끝났을 때 그는 자기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

 

그간 읽어온 여행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여행에세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감성적인 여행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정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 이름도 강렬한 '수련여행'이다.

무엇 하나 계획한 것 없이 2년 2개월 동안 10개국을 여행한 그는

수련여행이 끝났을 때, 자기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당연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정말이지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안되는 여행이니까.

 

얼마 전에 본 예능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이 청춘은 '용기'라고 말하던데,

이 책의 저자가 행한 수련여행을 두고 나는 청춘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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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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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과 정말 취향이 다르구나, 하고 새삼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자주 찾던 공간이 사라졌을 때다. 자주 찾던 밥집이 없어졌을 때 특히 그렇다. 내 딴에는 오랜만에 가는 구나생각하면서 밥집을 다시 찾으면, 폐업을 한 적이 많았다. 한 번, 두 번 그럴 땐 그러려니 했다. ‘, 가게 목이 안 좋았나? 손님이 없긴 없었지.’ 그러던 게, 대여섯 번이 되고 열 손가락을 손에 꼽을 정도로 문을 닫자 점점 두려워졌다. 오늘 가는 밥집도 문을 닫았으면 어쩌지, 하면서 말이다. 신기한 건, 그렇게 문을 닫은 가게들 앞에서 내가 찾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는 거였다. ‘이 가게, 분위기 참 좋았는데.’라던가 누구랑 온 게 마지막이었더라?’라던가 하는 생각.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에서의 기억은 이렇게 남는 구나 싶었다.

 

이 책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으며 나 역시 이런 저런 공간들을 여럿 떠올렸다. 생애 첫 방문이었으나 내가 좋아라하는 구단의 경기가 아니었던지라 낯설었던 목동 야구장, 멋있는 풍경 덕분에 먹고 있던 비빔밥이 더 맛있었던 고속도로의 한 휴게소, 과학 수업보다는 도서 바자회가 열려서 더 좋아했던 초등학교 과학실, 처음으로 해 본 즉흥 여행이었고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강원도 묵호, 인연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동네 투어로 기억되는 동인천, 한 여름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지금은 없어진 삼청동의 카페 등등. 내게는 어떤 공간이 있나 떠올리기 시작한 글에 점점 살을 붙여서 이 책만큼은 못하더라도 좀 더 글다운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본격적으로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특정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기억에 관한 책이 참 많구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글을 써보니 왜 많은지 알 것 같다. 작가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공간과 시간을 통해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았듯 나 역시 잠깐이지만 내 생을 되돌아본 기분이었다. 작가가 작가만의 공간이 있듯, 나는 나만의 공간을 손에 꼽아 가면서.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월간 현대문학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한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는 이 글의 성격이 연재라는 기획과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아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면서 작가가 영원의 순간과 마주하던 바다를 읽고, 외출 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 같다는 작가의 도서관을 읽는 것이다. 나만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작가만의 각기 다른 공간을 읽는 것. 그래서인지 나는, 부엌이었으나 바다에 있는 것 같았고 버스 정류장이었으나 도서관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공간들 그리고 기억 속에서 나는 작가가 밀라노 중앙역에서 만난 한 사람의 지나가는 독자와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 그럼 이제 가봐야겠어요. 곧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거든요.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만난 기념으로다가 악수 한 번 하면 안 될까요?”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근데, 1분만 손을 잡고 있고 싶은데, 너무 긴가요?”……그럼, 59초로 하죠.”

그건 왜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

 

한 사람의 소설가와 한 사람의 독자가 밀라노 중앙역에서 만난 인연도 소설 같았지만, 대화는 짧았으나 강렬했던 둘의 작별이 너무도 소설 같아서 책을 읽는 내가 다 설렜다. 누군가의 공간과 그 기억이 내게도 이렇게 인상 깊을 수 있다는 것에 설레며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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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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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책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사랑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나만 알고 싶은 책들도 있다. 전자는 사랑한책이었다며 기분 좋게 공개하는데 반해, 후자는 대부분 나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책들보다 강해서 그런지 선뜻 공개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하는 것이려나?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괜찮게 읽은 그 책을 공개한다고 해서 그 책이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괜찮게 읽었다고 다른 사람도 그 책을 괜찮게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일생에 한 번쯤 나만 알고 싶은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만 알고 싶을 만큼 그 책에 대한 소중한그 감정을.

 

유럽도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두 가지 유럽은 대한항공과 33만 여행자가 선정한 유럽과 만나 두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이 바로 그 책이다. 두 권 모두 챙겨 읽은 나의 솔직한 감상평은 확실히 유럽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하는 책이다. 실린 사진들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각 도시에 대한 글이 대부분 짧은 점에서 이 책의 구성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본래 그렇게 기획된 책이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쓴 저자가 문학평론가 정여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 이어 이 책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에서도 책 곳곳에 문학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녀가 읽고 메모해뒀을 책 구절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뒤마 피스의 <춘희>에 나타난 파리의 이미지라던가 런던의 뒷골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는 글을 읽고 있으면, 파리와 런던에 있는 그녀의 곁에서 문학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특히 이 책의 여덟 번째 챕터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에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하면 괴테, 덴마크의 오덴세 하면 안데르센, 스위스의 몬타뇰라 하면 헤르만 헤세 등 유럽 곳곳으로 기억되는 그녀만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여행에세이만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며칠 전 이 책에 대한 독자의 기대평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저에게 힐링을 줄 것 같은 책이에요.” (중략)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당신의 외로움을 향해, 내 글이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마음의 기차표가 되어주기를. (p.16)

 

이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나 역시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권은커녕 인천공항 한 번 가보지 못한 내게 여행에세이는 글로만 배울지라도늘 가슴 벅찬 책이다. 여기에 문학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만족하게 만드는 책이니 적어도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행에세이다.

 

이 책의 표지에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는 글이 담겨있다. 꿈만 꾸는 것보다는 당장 떠나는 쪽이 더 좋은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꿈만 꾸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무엇을 수확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판가름하지 말라.

당신이 어떤 씨앗을 심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평가하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녀가 10년 전에 뿌린 여행의 씨앗이 10년 후에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처럼, 오늘의 내가 읽은 이 책의 씨앗이 10년 후에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기차표가 되어 나올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

 

 

* 인상 깊은 구절

 

선배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항변 같았다. "인생은 항상 자로 뚫려 있어. 자꾸 억지로 자로 메우려 하면 꼭 에러가 나."디귿과 미음이라니.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매혹적인가. 선배의 속 깊은 은유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선배를 다그쳤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선배는 눈치 없는 나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를 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사람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있는 사람의 충만함을 부러워하잖아. 모든 걸 완전한 자로 채우려 하면, 삶이 너무 피곤해지거든. 뭔가 살짝 모자란 자가 좋은 거야. 자는 이루지 못할 이상이지." 욕심 많은 나는 갑자기 내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언제나 자로 꽉 채우려 하다가 은커녕 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p.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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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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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는 기획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 깨물기. 익히 알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를 비롯해서 이노우에 아레노, 가와카미 히로미, 고데마리 루이, 노나카 히라기, 요시카와 도리코 등 일본의 대표 여류 작가들의 쓴 여섯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로 초콜릿이 등장하는데,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초콜릿을 주제로 한 사랑 이야기. 여섯 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초콜릿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기억이 되었으며 그들은 초콜릿을 깨무는 것처럼 기억을 깨무는 것이다 라고나 할까.

 

어차피 에쿠니 가오리를 제외하고 다른 작가들은 몰랐던지라- 처음부터 읽자고 생각해서 첫 단편인 <전화벨이 울리면>부터 읽기 시작했다. 여기서의 초콜릿은, 대학생인 와 불륜 관계에 있던 유부녀 교코가 항상 핸드백에 넣고 다니던 초콜릿이다. 자신의 남편을 감시하던 교코와 그런 교코를 돕는 ’. 그들의 일에 성과아닌 성과가 있던 날, 교코는 핸드백에서 초콜릿 대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는 그런 교코 씨의 핸드백에서 초콜릿을 꺼내 은박지를 벗겨 교코 씨의 입술 사이에 밀어 넣는다. 한 개, 또 한 개. 씁쓸한 초콜릿인 동시에, 위로의 초콜릿이기도한 <전화벨이 울리면>을 읽으면서 ,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구나싶었다. 초콜릿이 주제인 것 같지만, 초콜릿은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에 가까울 뿐이라는 사실. 우리네 이야기 속에 녹아든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의 기억이 이 책의 진짜 주제인 셈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인상 깊지 않았던 단편 <늦여름 해 질 녘>을 지나, 가와카미 히로미를 기억하게 만든 <금과 은>을 지나고 두 편의 단편을 더 지나서 마지막으로 만난 요시카와 도리코의 단편 <기생하는 여동생>은 이 책을 고른 내 선택을 보람 있게 만들어주었다.

 

<기생하는 여동생>은 정반대 성격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다. 매사에 계획적이고 성실한 언니 가야노의 시점으로 쓰여진 이 단편은, 제멋대로에 뻔뻔하고 생각 없이 사는 듯한 동생 리미코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서 시작한다.

원룸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종합병원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 가야노와, 친구가 경영하는 레게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리미코, 생활 리듬이 완전히 다른 둘. 리미코는 가야노가 겨우 잠이 들 때 즈음에 들어와서 부산스럽게 야식을 먹기도 하고, 가야노 입장에서는 비상식적인 선물한 잎 깊숙이 베어 먹은 도넛, <반액 세일> 딱지가 붙은 딸기 찹쌀떡을 덜렁덜렁 들고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아이였다.

나란히 TV 앞에 앉아 NHK 홍백가합전을 보고 있으면, 출연진들에 대해 삐딱하게 말하는 가야노와 달리 편을 들어주는 리미코. 그런 리미코의 말에 폴리애나를 능가한다는 가야노의 말에 리미코는 뭐야, 그거, 좋은 점 찾기 놀이?”라면서 발을 버둥거리고 깔깔거린다. 그런 리미코를 두고, 가야노는 애당초 그런 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험담을 하지 않는, 선한 아이. 리미코의 긍정적이고 선한 면을 볼 때마다 얘한테는 진짜 못 당하겠다싶은 가야노는 그런 마음이 든다. 50억 호화 주택에서 사는 셀러브리티에게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보를 장식하는 패션모델에게도, 제 돈으로 버킨백을 구입한 친구에게도 가져본 적 없는 부러움을, 이 사회의 밑바닥을 벅벅 기고 있으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이 제대로 취직도 하지 않고 연금도 건강보험료도 내지 않은 채 마냥 부초처럼 흐늘흐늘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리미코에게 말이다.

 

이성간의 사랑 이야기만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을 훅, 깨고 들어와서 잊지 못할 단편으로 남은 <기생하는 여동생>. 동생이 있긴 해도, 리미코 같은 동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가야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가야노의 시점이 여러모로 공감이 갔다.

 

가야노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야노가 말하는 리미코 이야기는 비단 리미코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미코의 이야기 속에 가야노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누군가와 함께 한 나 자신을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 밑줄 친 구절

 

하지만 젊은 애들이 북적거리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햄버거 정식을 먹고 있는 사이에, 가야노는 뭔가 자신의 인생이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아무 보람도 없는 듯한 허망함을 느꼈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햄버거가 예상 밖으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가야노가 항상 먹어온, 두부 집 콩비지에 닭고기 다짐육을 넣어 직접 만들었던 수제 햄버거보다 훨씬, 단연, 압도적으로.

한 입, 또 한 입, 햄버거를 베어 먹을 때마다 허망함은 점점 더해갔다. 누군가 정해놓은 룰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뭔가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괌보다 하와이 쪽이 레벨이 높다니, 그건 대체 어느 누가 정했는가. 페키니즈보다 미니어처 닥스훈트 쪽이, 프랜차이즈 라면집보다 고집불통 영감님이 근근이 꾸려나가는 수제 라면집이 더 고급이라고 대체 어느 누가 정했단 말인가. (p.182)

 

하지만 나는 항상 너한테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보다 엄청 불성실하고 마구잡이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네가 훨씬 더 풍성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듯한, 그런 마음이 항상 든다고.”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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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아니었으나 문단의 별이었고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이자 줄리언 반스의 아내였던 팻 캐바나. 20081020, 거리에서 쓰러진 후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그 후 37일 만에 사망했다. 반스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침묵했다. 다만, 작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여 맨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함께 묶은 <그림자를 통해>를 펴냈다. 그리고 5년 만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그가 자신의 아내에 관해 쓴 유일무이한 회고록이자 개인적인 내면을 열어 보인 에세이다. 또한 동시에 이 작품은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담은 소설이자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이기도 하다.

 

라는게, 이 에세이의 대략적인 소개인데 나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한 단어 사별(死別)로 요약했다. 그러고 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 만화 중에 좋아라 해서 전권을 소장 중인 <후르츠 바스켓>. 4년 전에 처음 접한 내용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16권에서 주인공의 어머니 쿄코의 과거가 펼쳐지는데, 나는 이 쿄코라는 인물을 통해서 간접적이었지만 사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쿄코의 남편이자 주인공 토오루의 아버지인 혼다 카츠야는 감기가 악화되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뜬다. 카츠야의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한 쿄코는 생각한다. ‘어째서 날이 밝는 거지? 어째서 저 사람들은 즐겁게 웃는 거지? 어째서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는 거지? 어째서? 카츠야가 죽은 날 세계도 함께 멸망한 거 아니었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쿄코의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그랬는지, 나는 줄리언 반스가 1인칭으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3깊이의 상실을 가장 몰입해서 읽었다.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를 지나, 비로소 자신과 아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반스.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르페우스에 대한 반스의 생각 변화였다. 그가 본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다르게, 오르페우스가 방심해서 뒤돌아 본 것이 아니라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설득해 뒤를 돌아 자신을 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속에서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비판한다. 제정신 가진 남자라면 그 누구도, 어떤 결과가 올지 알면서도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보지 않았을 거라며. 반스는 이때까지 만해도 오르페우스를 과소평가 했던 것이다. 이 오페라에 대해 사별의 고뇌에 시달리는 사람을 목표로 삼는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오페라라고 생각하며. 그러면서 덧붙인다. 물론 오르페우스는 간청하는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돌아볼 것이라고.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냐고. 왜냐하면 제정신 가진 어떤 인간도그럴 리가 없겠지만, 정작 오르페우스 자신은 사랑과 비탄과 희망 때문에 정신이 나간 상태라며 오르페우스를 이해한다.

 

한번 흘긋 보기만 해도 세상을 잃는다고? 물론이다. 세상이란 그렇게, 바로 그와 같은 환경하에 잃어버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느 누가 서약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p.153)

 

반스 역시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서약을 어기고 뒤를 돌아봤을 테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반스는 거래에 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김없이 날은 밝고 누군가는 즐겁게 웃으며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니까. 우리는 상상의 지하세계로 내려갈 수 없는 현대인이니까 말이다.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저 우주가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헛된 희망과 무의미한 방향전환으로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말했다는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이해하지만 오르페우스가 될 수 없는 강한 남편이었던 반스. 그런 그의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통은 당신이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다. (p.187)

 

반스 역시 쿄쿄처럼쿄쿄가 비록 만화 속 인물이라 할지라도배우자가 부재하는 세상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일절 관심을 끄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고, 3년이 넘도록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대본에 따라 아내의 꿈을 꾼 반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것처럼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고통은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지난 5년간 그 어떤 이 못지않게 경험한 반스였으니까 말이다.

 

사랑의 증거인 고통을 묻어두고, 쿄코는 쿄코대로 반스는 반스대로 내일을 맞았다. 반스의 말마따나 우리 쪽에서 먼저 구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구름을 흩어지게 할 힘도 없으니까.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산들바람이 갑자기 불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p.195)

 

슬픔은 영원하겠지만,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영원할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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