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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못된 놀이 - 따돌림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27
김경옥 지음, 문채영 그림 / 소담주니어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 그 순간까지 씁쓸했던 책 『마녀의 못된 놀이』. 그 이유는 이 책이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시리즈 중 ‘따돌림’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이란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못된 놀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돌릴 땐 영원히 모르지만,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야 ‘놀이’가 아니었음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못된 놀이.

 

따돌림에 관해 이야기 한 많은 책이 있겠지만, 이 책이 재미있었던 건 화자인 ‘나리’의 입장에 있었다. 따돌림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어서 따돌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여차저차해서 따돌림 당하고, 따돌림으로 슬퍼하고, 따돌림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정을 찾는 나리.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워서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차마 잘못이라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 따돌림 받는 여느 아이가 그러하듯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 받고, 따돌림을 받고 우울해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따돌림 당해서 외로웠을 아이를 이해하고, 겉모습보다는 친구의 감춰진 면을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우정을 찾게 되는 나리를 통해 나 역시 그러했고 요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할 따돌림에 관한 심리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리만 했을 시절에도 따돌림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따돌림에 단순한 문제는 없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정도의 폭력이 되어버린 문제가 아닌가. 따돌림이 그 어떤 폭력보다 무서운 건, 육체적인 폭력은 없다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따돌림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새 스마트폰을 자랑하기에 잠깐 만졌는데 확 빼앗아가서 정말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완전 미친 공붓벌레처럼 학원밖에 몰라서, 학습 능력이 모자르고 늘 학교에 와서 큰 볼일을 본다는 이유로, 뒷담화가 와전되어서 등등.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했으나 가해자 아이들에겐 위와 같은 이유들이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부가 전부가 아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다섯 마리였는데 요 파란색 열대어가 두 마리나 죽여 버렸어.”

“왜?”

“이놈은 성질이 사나워서 그런지 순한 애들을 계속 괴롭히더라고. 괴롭힘에 시달린 애들은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 버렸어. 아마 어항이 작아서 영역 싸움 하느라 그런 것 같아.”

그러자 효정이가 어항을 콩콩 치며 말했어요.

“에이, 나쁜 놈!” (p.45)

 

다른 열대어들을 괴롭히는 파란색 열대어를 보면서 효정이는 “에이, 나쁜 놈!”이라는 말과 함께 어항을 콩콩 쳐가며 파란색 열대어를 혼낸다. 자신 역시 학교라는 어항 속 파란색 열대어임을 모른 채. 결국, 효정이는 어항이 깨짐으로써 나리네 집의 푸른 열대어처럼 밉상이 되었지만 효정이의 심리는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어항에 홀로 남아 외톨이가 된 푸른 열대어를 불쌍히 여기는 나리의 심리로 드러난다. “외로워 봤으니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지?” 효정이 자신이 친구들을 따돌려서 괴롭힌 것처럼, 효정이 역시 따돌림으로 외로움을 겪게 되는 건 아니지만, 따돌림 끝에 혼자 남아 처절히 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반성해야 하는 게 못된 놀이 끝에 돌아온 효정이의 몫일 것이다.

 

이런 책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널리 읽혀서, 학교라는 어항 속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따돌림’으로 고민할 아이들에게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따끔한 교훈을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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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 -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베르나르 뷔페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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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해, 『길모퉁이 카페』로 처음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이었던 『독약』.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사강은 석 달 동안 불쾌한 통증으로 인해 ‘875(팔피움)’라는 모르핀 대용약제를 매일 처방받게 되었는데, 석 달 뒤에는 약물중독 증세가 심해져 결국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입원 기간은 짧았으나 그때, 사강은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바탕으로 묶인 책이 바로 『독약』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라는 부제답게, 그녀의 일기는 확실히 ‘환각’의 그 어디쯤에서 쓰인 일기임은 확실하다.

 

결국 간호사는 수간호사를 불렀고(아주 좋음), 나에게 그걸 줬다(앰풀).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학대받고 싶지 않다. 다른 방법이 있으니. 통증은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p.3)

 

일기에서 환각 속을 헤매는 그녀가 느껴졌다기 보다는, 환각 속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나를 감시한다’거나 ‘나는 다른 짐승을 감시하는 짐승’이며 그 짐승은 ‘내 안에 있는 짐승’이라 표현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담배를 입에 문 건강한 작가의 건방진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놀란 참이다. (p.18)

 

약물의 포로가 되었음에도 여느 날의 사강이 그러했던 것처럼 글을 쓸 때 나오는 그녀만의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독약뿐만 아니라 독약과도 같은 고독, 독약과도 같은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강의 의지. 어쩌면 그 의지는 사강에게 있어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일기일지라도―, 보들레르와 샤토브리앙과 아폴리네르와 랭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그 아무리 글 쓰는 것이 천직인 작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작은 해독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중독치료는 가벼웠고 일기는 유익했다. (p.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려고 했던 그녀의 의지가 약물중독의 늪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훗날, 마약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 그녀이지만― 또, 그녀의 말마따나 교훈적인 혹은 교훈적이지 않은 마지막 문장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삶을 살아가고 글을 잘 쓸 것’이라 다짐 할 수 있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그 약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또다시 다른 약물에 의존해야만 했던 그 지독히도 불행한 아이러니 속에서 말이다.

 

p.s. 사강의 일기가 더 와 닿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글과 묘하게 닮은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덕분이었고, 거칠고 날카롭기 짝이 없으며, 창백하고 여윈 뷔페의 그림은 사강의 글로 인해 더 쓸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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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행복한 길고양이 2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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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 고양이 간식을 샀다. 살 것이 있어 잡화점에 들어갔다가 애완동물 코너에 눈길이 갔더랬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위한 강아지 간식과 나란히 놓인 고양이 간식 중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을 먼저 집어 들었다. 이 책,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을 읽고 난 후의 변화였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길냥이를 위해 사게 됐는데, 나는 이렇게 캣맘이 되고 내가 주는 고양이 간식을 받아먹을 길냥이는 나의 작은 식객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인연이 ‘오늘도 날 기다릴 거야.’라는 믿음과 ‘오늘도 내게 밥 한 그릇을 내어 줄 거야.’라는 믿음이 만나 생겨난 작은 기적이라는 것도.

 

 

사진을 잘 모르는 나도 잘 찍은 사진이라는게 느껴지는 길냥이 사진과, '이 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 싶은 글과,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예쁘고 때로는 쓸쓸한 길냥이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사랑스러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건 사랑스러운 길냥이의 모습을 기막히게 포착해내고, 잘 담아낸 작가 종이우산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의 존재가 본래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처럼,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고양이를, 나는 언제부터 좋아했던 걸까.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좋아하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된 건 정화히 기억난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라는 책을 구매했을 때였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좋아해서 눈이 갔지만, 책장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고양이 듀이의 모습을 보는데 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8년 1월의 아침,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희망이 사라져가는 마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동상에 걸린 채 도서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를 발견한 사람은 이 마을 도서관의 사서 비키 마이런.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과 이별하고 외롭게 지내던 그녀는 고양이에게 '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후 듀이는 조용하기만 했던 도서관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둘씩 변화시킨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온 동네를 하나로 묶어준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줄거리)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간혹 그렇게 트랙터의 날 사이에 말려들게 된다. 우리 모두 멍이 들고 베이기도 한다. 때로는 날이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군데 긁히고 약간의 피만 흘리고 빠져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 때 당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꼭 껴안아주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것이다. 수년간 듀이를 위해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남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듀이가 아프고 춥고 울고 있을 때, 내가 곁에 있었다. 나는 듀이를 안아주었고, 모든 것이 다 잘 되도록 보살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진실은 우리가 함께한 긴 세월 중 힘든 날이나, 좋은 날이나, 그리고 사실 우리 인생의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나지 않는 더 많은 나날 동안 듀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듀이는 아직도 나를 껴안고 있다. 고맙다 듀이야. 고맙다. 네가 어디에 있건, 정말로 고맙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본문 중에서)

 

듀이의 이야기처럼 버려지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고양이들로 인해 힘을 얻는다.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 존재를 내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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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퇴근하기 위해 출근한다.”

 

직장에서 출퇴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왔던 말이다. 우스갯소리였기에 대화를 하던 그 순간에는 다 같이 웃고 넘어갔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말이었다. ‘퇴근’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이를테면 피로, 책임감, 월급 같은 단어들. 우스갯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게 남은 이 말은 의외로 자극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 또한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될 때면 ‘오늘은 인정하되 내일은 인정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자’하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위 이야기는『그늘의 계절』과『64』의 거장, 요코야마 히데오 최고의 출세작이며 문예춘추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인 이 책,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말이다.

 

과거 후배 기자의 사고사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데스크 승진을 거부하던 지방신문 기자 유키 가즈마사는 어느 날, 산악회 동료와 함께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 보도의 총괄 데스크로 지명된 이는 다름 아닌 유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로 소환되어 일분일초 피를 말리는 보도 전쟁에 뛰어든다. 한편, 함께 산을 오르기로 약속했던 동료는 의문의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발견되고 유키는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유키는 두 개의 거대한 ‘악마의 산’ 사이에서 점점 궁지로 내몰린다.

 

식물인간이 되어 끝내 그의 입으로 듣지 못했던,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안자이의 말은, 유키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의 말마따나 눈을 뜬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유키가 직면한 신문사 내에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경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마찰로 인해 진정 실으려고 했던 기사를 싣지 못하는,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를 만드는 신문사의 상황과 미스터리에 싸인 사건으로 인해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안자이의 말을 동력삼아 살아가던 유키는 과거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후배 기자의 사촌 여동생 아야코를 만나면서 ‘생명’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제 나름대로 생각한 작은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에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에도 한 번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버려진 듯합니다.”

(중략)

스무 살. 유키의 절반 밖에 살지 않은 여자아이가 미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생명의 무게.

어떤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미디어는 인간을 선별하고 차별하고 생명의 경중을 판단해서 그 가치관을 세상 속에 밀어붙인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

불쌍한 죽음. 그렇지 않은 죽음. (p.381-382)

 

아야코가 투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유키는 생각했을 것이다.

 

“난 신문을 만들고 싶다. 신문지를 만드는 것은 이제 참을 수가 없어. 바빠서 보이지 않을 뿐이야. 긴타칸토는 죽어가고 있어. 위에 있는 인간들의 장난감이 되어 썩어가고 있어. 이 투고를 구겨버린다면 너희들은 평생 신문지를 만들게 될 거야.”

 

생명의 무게와 그에 관한 미디어의 본질이자 역할, 그리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생명의 무게. 크기. 아야코의 투고를 실은 것은 긴타칸토에게, 신문이라는 미디어에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었을까. (p.416)

 

편집국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있었다. 때로는 차갑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따뜻하다고도 생각했다. 행복한 시간.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잠잠했다.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가. 그 기회를 얻어 조직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가슴에 안자이의 말이 떠올랐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곳에서 내려오기 위한 의식. 쓰이타테이와의 등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클라이머즈 하이…….

안자이의 예견이 맞는지도 모른다. 입사 17년, 사람들의 혼잡함 속을 헤치고 나가듯 기자의 길을 돌진해 왔다. ‘내려간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안자이는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아니 내려가지도 머물러 있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려갈 것을 결심한 안자이는 유키에게 쓰이타테이와를 권했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도대체 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가’ 하고. (p.420)

 

신문사를 떠나고 안자이를 다시 찾은 유키는 고백한다. 비웃어 달라고. 자신은 내려가지 못했다고. 앞으로도 꼴불견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의 말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p.429-430)

 

안자이는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읽었고, 유키는 그런 안자이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지만 내려가지 못했다 대답했다. 아니, 내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내려가고 싶어 보였다는 말의 다른 말은 위에 머무르고있다는 말이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건, 유키는 현재의 삶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불우했던 과거와 먼저 떠나보낸 후배 기자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40대 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신을 지켜내며 말이다. 안자이의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유키는 뒤늦게 위에서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유키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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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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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말이 없어져요. 한 사람과 오래 대할수록 더 그렇죠.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말을 시키세요. 말하기 힘들 땐 믹서기를 돌리는 거예요. 청소기도 괜찮고, 세탁기도 괜찮아요. 그냥 내 주변 공간을 침묵이 집어먹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살아있는 집에선 어떻게든 소리가 나요. 에너지라고들 하죠.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자신의 공간을 침묵이 삼키게 두지 마세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임수정이 연기한 ‘연정인’이라는 캐릭터의 대사 중에, 내게 가장 남았던 대사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한낮인데 어두운 방』을 읽고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대사이기도 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과,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에게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아내 역할에 충실하고 집안일에 착실한 주부라는 것. 둘째, 상황은 달랐지만 남편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특별하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의 남편 히로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를 알아채기는커녕, 오로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며 아내를 그저 공기와도 같은 존재로만 여기고 어리석게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의 남편, 이두현은 입만 열면 불평과 독설을 쏟아내는 정인으로 인해 결혼생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수백 번씩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무서워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던 차에, 어떤 여자든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남편들을 둔 탓이었을까, 미야코가 어느 날 미국인 존스에게 빠지게 되고 정인이 카사노바 성기에게 빠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여자가 바랐던 것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과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였고 존스와 성기는 그녀들의 바람을 충만하게 충족시켜줬던 남자들이었다. 존스는 미야코와 필드 워크(산책), 대중목욕탕가기, 초밥 먹기, 차 마시기를 하며 끊임없이 대화했고 성기는 정인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고 놀이공원, 목장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끊임없이 대화했다. 존스와 성기가 그녀들의 남편과 달랐던 점은, 그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면서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었고, 그녀의 말을 이해함으로써 그녀를 이해해주었을 뿐이다. 쉬운 일 같지만,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한 일. 불륜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녀들의 외도는 납득이 갔다. 내가 미야코였다면, 내가 정인이었다면 내 남편이 그런 남편이었다면 나 역시도 그랬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은 그녀들의 ‘자아 찾기’라는 공통점으로 귀결된다. 재밌는 건, 미야코와 정인에게 있어서 존스와 성기는 새로운 자아를 찾는데 통로가 되긴 했지만, 함께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미야코의 말처럼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들과의 불온했던 관계는,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 있는 것 같았던 마음에서 벗어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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