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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ㅣ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책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사랑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나만 알고 싶은 책들도 있다. 전자는 ‘사랑한’ 책이었다며 기분 좋게 공개하는데 반해, 후자는 대부분 ‘나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책들보다 강해서 그런지 선뜻 공개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하는 것이려나?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괜찮게 읽은 그 책을 공개한다고 해서 그 책이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괜찮게 읽었다고 다른 사람도 그 책을 괜찮게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일생에 한 번쯤 나만 알고 싶은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만 알고 싶을 만큼 그 책에 대한 ‘소중한’ 그 감정을.
유럽도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두 가지 유럽은 대한항공과 33만 여행자가 선정한 유럽과 만나 두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과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이 바로 그 책이다. 두 권 모두 챙겨 읽은 나의 솔직한 감상평은 ‘확실히 유럽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하는 책’이다. 실린 사진들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각 도시에 대한 글이 대부분 짧은 점에서 이 책의 구성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본래 그렇게 기획된 책이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쓴 저자가 문학평론가 정여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 이어 이 책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에서도 책 곳곳에 문학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녀가 읽고 메모해뒀을 책 구절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뒤마 피스의 <춘희>에 나타난 파리의 이미지라던가 런던의 뒷골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는 글을 읽고 있으면, 파리와 런던에 있는 그녀의 곁에서 문학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특히 이 책의 여덟 번째 챕터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에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하면 괴테, 덴마크의 오덴세 하면 안데르센, 스위스의 몬타뇰라 하면 헤르만 헤세 등 유럽 곳곳으로 기억되는 그녀만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여행에세이만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며칠 전 이 책에 대한 독자의 기대평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저에게 힐링을 줄 것 같은 책이에요.” (중략)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당신의 외로움을 향해, 내 글이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마음의 기차표가 되어주기를. (p.16)
이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나 역시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권은커녕 인천공항 한 번 가보지 못한 내게 여행에세이는 ‘글로만 배울지라도’ 늘 가슴 벅찬 책이다. 여기에 문학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만족하게 만드는 책이니 적어도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행에세이다.
이 책의 표지에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는 글이 담겨있다. 꿈만 꾸는 것보다는 당장 떠나는 쪽이 더 좋은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꿈만 꾸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무엇을 수확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판가름하지 말라.
당신이 어떤 씨앗을 심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평가하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녀가 10년 전에 뿌린 여행의 씨앗이 10년 후에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처럼, 오늘의 내가 읽은 이 책의 씨앗이 10년 후에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기차표가 되어 나올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
* 인상 깊은 구절
선배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항변 같았다. "인생은 항상 ㄷ자로 뚫려 있어. 자꾸 억지로 ㅁ자로 메우려 하면 꼭 에러가 나."디귿과 미음이라니.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매혹적인가. 선배의 속 깊은 은유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선배를 다그쳤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선배는 눈치 없는 나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사람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있는 사람의 충만함을 부러워하잖아. 모든 걸 완전한 ㅁ자로 채우려 하면, 삶이 너무 피곤해지거든. 뭔가 살짝 모자란 ㄷ자가 좋은 거야. ㅁ자는 이루지 못할 이상이지." 욕심 많은 나는 갑자기 내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언제나 ㅁ자로 꽉 채우려 하다가 ㄷ은커녕 ㄱ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p.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