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생 시절 나는 특정 신문사를 구독했었는데, 그 신문사를 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본지와 함께 실려 오던 ‘ESC'라는 신문 속 신문을 읽는 재미가 정말이지 쏠쏠했기 때문이다. 'ESC'속 여러 코너를 좋아했지만, 그 중 이기적인 상담실이라는 코너를 참 좋아했다. 그 코너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떤 사람이 어떤 조언을 구하건 간에 매주 상담의 내용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상담실을 연재했던 작가, 임경선 작가님은 그때 만났다.

 

이 책 태도에 관하여로 작가님을 다시 만났을 때, 오랜만에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단편적인 글로만 읽다가 오롯이 책 한 권으로 접한다는 것도 새로웠기도 하고. 그렇게 시작한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 작가님의 글을 나름대로 오래 읽어왔기에 작가님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에 놀랐고, 여전히 다른 시각은 전보다 더 매력 있게 느껴졌다.

 

닮은 구석을 느꼈던 건 이 구절이다.

 

남들이 단체로 어울려 다니며 신나게 놀 때 나는 주로 1 1의 인간관계가 주는 조용한 친밀감에 편안함을 느끼며 성장해왔다. 원래 달변도 아니었지만 같이 있는 사람들이 3명을 넘어가면 말수가 그냥 줄어들었다.

그렇다 보니 나 역시도 살면서 이래저래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쓸데없이 예민하다 보니 누가 나와 맞고 맞지 않고 누가 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너무 빨리 직관으로 알아채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또 견디지 못해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나의 모습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지난날의 슬픈 초상이다. (p.96)

 

책을 읽다보면, 이건 정말 내가 쓴 것 같다 싶은 구절을 만나곤 하는데 이날은 이 구절이 그랬다. 특히 '3명을 넘어가면 말수가 그냥 줄어들었다'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았더랬다.

 

그리고 이 구절.

 

글을 쓰는 일은 건강에도 썩 좋지 않고, 돈벌이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성격은 말할 것도 없이 점점 이상해져가지만 다행히 한 가지 구원이 있다. 이렇게 모든 고통과 슬픔과 사건 사고에서도 무언가를 건질수가 있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고독이 뼛속 깊이 사무칠 때,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고통의 감정은 내 안의 여러 생각과 감정을 미친 듯이 자극시킨다. 비관으로 무너져 내리기보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글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다. (p.127)

 

나는 글을 업으로 삼고 살고 있진 못하지만, 글을 쓰는 일이 주는 구원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다 생각하는 그 어렴풋이 이런 것이었구나, 이 구절을 덕분에 정리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배울 수 있었던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구절은 이 구절이다.

 

노력하는 일의 변하지 않는 소중함에 대해 가열하게 얘기했건만 노력을 미화하거나 긍정하는 일에는 조심스럽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실패했을 때 목표 성취보다 노력하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의 반절만 믿기로 한다. (p.171)

 

내가 작가님의 글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든 건 이런 구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단어라는 책에서, 그 책을 가장 믿음직하게 만들었던 구절이 여러분께 좋은 샘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저를 믿지 마세요. 책 한 권 읽고 사람을 알 수는 없습니다.(p.156)’였던 것처럼, 글을 읽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동적으로 읽는 나를, 한 발짝 물려 세우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구절들이, 그런 생각들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 내가 이래서 작가님을 좋아했구나 싶었다.

 

책 뒤편에 실린 김현철 쌤과의 대담에서 작가님의 말마따나 이 책은 어떤 완벽한 인간상을 빚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가고자 하는 개인적인 시도인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님에게 중요했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각자 어떤 태도가 중요하게 다가오는지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답을 내기 바라지만, 결코 서두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요 몇 달, 혼자 고민도 많고, 생각은 더 많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시기에는 그 어떤 책도 위로가 되지 않고 힘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렇게 좋은 책이라면 얼마든지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지프 앤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4, 1240g. 이 어마무시한 쪽수와 무게가 이 책 조지프 앤턴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조지프 앤턴은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유일하게 부커 상을 세 번 수상한 작가이자 이슬람의 암살 위협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소설가 살만 루슈디. ‘조지프 앤턴은 그런 살만 루슈디의 도피생활을 위한 가명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래서 집을 떠나는 그 순간을 특별히 의미심장하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그가 5년 동안 살았던 그 집에 돌아오기까지 그로부터 3년이 걸렸고 그때는 이미 그의 집이 아니게 되고 만다. 1988926일 출간한 한 편의 소설 악마의 시때문이었다. 이 책이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도발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을 부른데 이어 급기야 1989214일에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가 신성모독죄로 살만 루슈디에게 파트와(사형선고)’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영국 정보부와 경찰의 경고에 따라 루슈디는 기약 없는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이란의 ‘15 호르다드 재단은 파트와 실행에 현상금 100단 달러를 내걸고, 악마의 시출판사에 협박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주일 뒤, 악마의 시를 판매하던 미국의 서점에서 폭탄이 터졌고, 같은 해 49일에는 영국의 서점 2곳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서점에서 폭탄이 터졌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 뒤 7월에는 악마의 시이탈리아어 번역가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으며 일본어 번역가가 살해되는 등의 테러가 잇따랐다. 그러한 살해 위협 속에서 자신과 작품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루슈디.

 

이 일을 두고 루슈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에서 최악의 측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다.’(p.21)

 

일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슬람 사회의 지도자, 이맘이었다. 괴물이 되어버린 지도자 이맘. 사람들은 이맘을 소리 높여 규탄하기 시작했고 그의 혁명도 인기를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방법이 절실했는데, 때마침 등장한 책 악마의 시의 저자 루슈디가 그 해답을 주게 된 셈이었다. 책은 악마의 소행이고 저자는 악마. 그렇게 이맘은 원하던 적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의 대략적인 요약이다. 본인이 소설가여서 그런지 몰라도, 거기다 유일하게 부커 상을 세 번 수상한 작가여서 그런지 몰라도 막상 책을 읽으면 824쪽이라는 어마무시한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소설보다 소설 같은 삶. 처음에는 루슈디의 도피 생활이 어떠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문학가로서의 루슈디에 관심이 갔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없었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루슈디도 매번 정신적, 언어적, 형식적, 정서적 여행을 했다. 책은 그 여행에서 얻은 메시지였다. 그는 독자들도 자신과 함께 여행하며 즐거워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그는 깨달았다. 어느 시점에선가 독자들이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오지 않는다면 물론 아쉬운 일이지만 그로서는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론가들에게 소리 없이 말했다. 나와 함께 걷지 않겠다니 안타깝구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겠소. (p.799)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라던가, 프로듀서 브라이언 그레이저가 사무실로 초대하더니 루슈디 자신의 삶에 대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혹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면 책으로 먼저 내겠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일로 엮이지 않고 지내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뭐랄까, 그게 더 근사하니까. 시나리오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부터 한낱 고용인 신세로 전락할 테니까.)’(p.794) 라고 말했다는 것도 그의 말마따나 참 근사해보였다.

 

예술은 그렇게 강하지만 예술가는 약하다. 어쩌면 예술은 스스로를 지켜내는지도 모른다 (p.812)고 루슈디는 말했지만, 그의 자서전을 읽고 있으면 예술, 그 중에서도 문학만큼은 루슈디 자신이 역량껏 지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낸 13년이 말해주듯이.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에 대해 놀라운 책이다. 오랫동안 내 책상을 스쳐간 자서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말했다. 난생 처음 읽어본 자서전이었지만, 난생 처음 읽은 자서전이 이렇게 멋진 자서전이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스릴러이자 한 편의 서사이며 정치적 에세이이자 사랑 이야기이고 자유에 대한 송가, 아니 그 무엇보다 다만 루슈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저마다에게 추억이 되었을 싸이월드’. 유독 싸이월드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내게도 좋은 기억이 하나있다. 바로, 귀 큰 토끼 베니와 그런 베니를 그린 구작가님을 만난 일이다. 블로그에서 직접 스킨을 만들어 쓰는 게 익숙했던 나로서는 스킨을 구매해서 꾸며야하는 싸이월드의 서비스가 불편했다. 상술이라기보다는 싸이월드의 스타일로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스킨을 찾고 또 찾던 어느 날 베니를 만났다. 높디 높은 책 앞에, 그 책만한 높이의 의자를 두고 책을 읽던 베니. 여러 가지 버전의 베니 스킨을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베니를 그린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귀여운 토끼를 그리는 걸까, 싸이월드 스킨말고 또 다른 그림은 없을까 하고. 그러다가 구작가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요 글에서 의뢰나 문의는 메일로만 받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전화를 받지 못하니 메일로만 받는다는 그 말에 나는 한참을 먹먹해했다. 작가님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런 사연 옆에 누구보다 밝고, 행복해보이는 토끼 베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니를 다시 만났을 때, 작가님의 사연은 조금 더 먹먹해져 있었다. 청각 장애에 이은 망막색소변성증. ‘왜 내 것만 자꾸 뺏어가는 걸까요?’하고 생각하셨다는데, 충분히 이해갔다. 사연을 전해 듣는 나도 어떻게 이럴 수 있나싶었으니까. 앞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만 마음속에 커져가던 그때, 작가님은 선교 프로그램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었기에 설명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새까맣게 탄 마음을 안고 어쩔 수 없이 떠난 그때의 일화가 인상 깊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싶었던 작가님은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태풍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아이. 사진작가가 되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며 수줍게 웃으며 말하던 소년. 그런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그냥 그림 한 장을 소년에게 그려준 게 전부였던 작가님. 그런데 그 아이는 그 그림이 그저 너무 좋았는지, 밥도 먹지 않고 한참을 보더니, 소중하게 자신의 품에 감싸 안았다고 한다. ‘그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문장을 읽는데 나 역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소년도 저렇게 꿈을 꾸며 좋아하는데 자신에게는 그래도 많은 것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 작가님의 작은 그림이 그 아이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작가님을 180도 변하게 만든 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에 가득했던 빨간 덩어리를 서서히 녹였듯, 소년 덕분에 조금은 투명해지고 깨끗해진 마음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보게 된 첫눈. 하얗고 깨끗하고 순수한 눈을 보면서 작가님은 다짐한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앞으로의 시간은 행복하게 살아보자. 아무런 후회도 없이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해도 미련이 안 남게 살자.

 

그렇게 작가님은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버킷리스트를 쓴 적이 있고, 지인들과 버킷리스트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타인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와 닿은 버킷리스트는 처음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끝내고 작가님은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버킷리스트를 고민해보라고. 그럼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된다는 게 정말로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내게는 내일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겐 버킷리스트에 적어 넣는 일이라는 것을. 소소한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동을 전해준다.

 

그렇지만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의 또 다른 인생이 있겠죠.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제게 남아있으니까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꽤 괜찮은 오늘 하루가 선물처럼 오니까요. 아직 혼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오늘, 오늘이 저에게는 기적이에요.’

 

평생을 먹먹하게 살아왔을 작가님. 내게도 먹먹함을 안겨주는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먹먹함 가운데 굳건하게 자리한 희망. 그리고 이 희망은 이 책의 제목처럼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모여서 그래도 괜찮은 나날이 될 거라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번 달에는 5권을 고르는 게 나름 애먹었을 정도로 읽고 싶은 책이 많았다.

그렇게 고른 5권의 책들.

 

 

 

1.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 문학동네

 

 

 

<보다> - <말하다> - <읽다> 삼부작 중 두번째로 선보이는 산문집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일반적인 대담집 형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직접 인터뷰와 강연을 해체하고 주제별로 갈무리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이번 책에서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 등 작가 김영하를 구성하는 문화 전반에 이르는 그의 생각들이, 때론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때론 작가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맞물리며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창의력에 대한 그의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의 메인 강연으로 소개되어 136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2014년 12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했던 청춘 특강은 젊은층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KBS 라디오의 [문화포커스]를 진행한 방송인이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단에서 서사창작을 가르쳤던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진행자인 작가 김영하.

이미 거의 모든 형식의 '말하기'를 경험한 그는 <말하다>를 통해 빼어난 말솜씨로 어느 순간 청자의 허를 찌르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귀기울여 듣고 되새길 만한 말들로 가득하다.

 

 

무엇을 왜 쓰는가, 자기해방의 글쓰기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SNS, 블로그 글쓰기에서부터 신춘문예까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간다. 그러나 무엇을 왜 쓰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김영하는 부모나 선생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 억압된 환경에서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정확한 문법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기록을 남겨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일 때,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해야 할 때, 인간은 글을 쓴다. 그러하기에 글쓰기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_본문60쪽

 

*

 

'말하다'가 주제인 책이지만, 글쓰기를 말하는 이 구절에 매료되어서 이 책에 눈이 갔다.

작가의 말처럼,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고 나면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2. 옹동스 1 -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 예담

 

 

 

스노우캣이 4년 만에 신작을 냈다. 고양이 '나옹'과의 이야기를 담은 <TO CATS>, <고양이가 왔다>에 이은 세 번째 책으로 '은동'이 가족으로 들어온 그 후의 이야기다.

스노우캣은 2000년 소소한 일상을 그린 만화가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초창기 귀차니스트라는 별명이 늘 따라 다녔고 이 점이 20, 30대들에게 어필하며 '나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공감을 샀다. 이후 꾸준한 작업으로 스노우캣 캐릭터의 인지도를 쌓으면서 트렌드를 뛰어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스노우캣'이라는 필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에게 고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다. 모든 삶이 고양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는 반려묘 나옹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까지 마련한다. 그리고 둘째, 은동을 데려온다. <옹동스>는 여기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

 

읽은만큼 보인다고, 지난 달과 이번 달에 걸쳐 스노우캣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신간 코너를 살펴보다가 스노우캣의 신작을 발견하니 이리 반가울 수 없다.

1권인 걸보니 후속 책도 이어서 나올 것 같고 *_*

기대된다, 옹동스.

 

 

 

 

3.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 갤리온

 

 

 

베스트셀러 작가 김혜남이 7년 만에 최신작을 펴냈다. 이 책에는 그녀가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삶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2001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정신과 의사로 할 일이 많은 나이였다. 게다가 꿈을 펼쳐 보겠다고 개인 병원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문득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 하루를 살았고, 그 다음 날을 살았다. 그렇게 15년을 살면서 그녀는 환자를 진료하고, 아이를 키우고, 다섯 권의 책을 쓰고, 강의를 했다. 물론 몸 상태는 지속적으로 나빠져서 작년에는 병원도 접고 건강관리에만 전념하고 있지만, 그녀는 아픈 와중에도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의 자신처럼 인생을 숙제처럼 살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사느라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참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사는 게 재미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제발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하지 마라', '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행운에 대하여', '소수의 성공자와 다수의 실패자 사이에서 산다는 것',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등 하루하루 잘 버텨 내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

 

그간 심리학에 관련된 책의 저자로 알고 있던 김혜남 작가님이 이런 사연을 가지고 사셨을줄은 몰랐다.

책 소개를 읽고 목차를 하나 하나 읽어봤는데, 이 책이 더 궁금해졌다.

 

 

 

prologue 내가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

chapter 1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
·내가 쉽게 절망하지 않는 까닭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나는 참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파킨슨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나는 가족들에게 유쾌한 짐이 되고 싶다

chapter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해 봤자 안 될 게 뻔하다는 말부터 버려라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결혼하고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그러나 끝까지 믿어야 할 것도 사람이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행운에 대하여

chapter 3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나는 지금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제발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하지 마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열등감을 가지고도 즐겁게 사는 비결
·늘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충고를 잘 하지 않는 까닭
·아무리 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에 대하여

chapter 4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은 너희들을 낳은 일이었다
·나는 나의 삶을 살 테니, 너희는 너희의 삶을 살아라
·사랑을 할 땐 그 사랑에 미쳐 보아라
·너희가 직장 생활에서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알을 깨고 나가는 건 원래 신나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 들지 마라
·딸아, 아무리 늙어도 섹스는 중요한 거란다
·소수의 성공자와 다수의 실패자 사이에서 산다는 것
·언젠가 결혼할 딸에게, 한 여자의 남편이 될 아들에게

chapter 5 삶과 연애하라
·나는 요즘 연애 중이다
·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10
·한 번쯤은 공부에 미쳐 보아라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
·결국 인생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삶과 연애하라

 

 

마침 책 선물 할 때가 왔는데, 사려고 계획했던 책 말고 이 책을 사서 선물해야겠다

마음먹게 만든 책 :)

 

 

 

 

4. 하기 힘든 말 / 애니북스

 

 

 

마스다 미리 에세이. 어떤 말이 하기 힘든 데엔 분명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젊은 여성들의 삶과 고민을 예리하게 그려내며 많은 지지를 받아온 마스다 미리가 이번에는 말의 영역에 도전했다. 평소 자신이 하기 힘든 말과 그 이유를 곰곰이 들여다본 만화 에세이를 펼쳐낸 것.

어떤 까닭에선가 입 밖으로 내기 꺼려지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건 괜찮은데 내가 하기는 쉽지 않은 그런 말. 어쩌면 그런 '하기 힘든 말'들이 그 사람을 잘 보여주지 않을까? 그 '하기 힘든 말'들은 상황이나 상대를 의식하고 하는 말이 아니기에 스스럼없이 꺼내는 말보다 말하는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말에 민감한 여자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명민하게도 마스다 미리는 그런 '하기 힘든 말'의 특성을 간파하여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하기 힘든 말>은 그녀가 평소 자신이 입에 담기 어려웠던 말들과 그 이유를 특유의 솔직 담백한 화법으로 전개한 만화 에세이다. 그녀가 고백하는 '하기 힘든 말'의 이유는 다양하다. 시대가 변해 옛날 말이 되어버려서,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어떨 때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그 말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말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이미 말의 위력과 존재감을 알고 있다. 한 번쯤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아본 적이 있고, 오랜 경험과 몇 번의 고민 끝에 나에겐 도저히 맞지 않아 '하기 힘든 말'이 된 그 말들을 입 안 저편에 하나씩은 묵혀두고 있다. 그래서 <하기 힘든 말>은 마스다 미리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

 

오랜만에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를 만난다.

그녀가 그리는 만화 못지않게 그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도 살며시 기대해본다.

 

 

 

 

5. 가구 만드는 남자 -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 달

 

 

배우이기도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 큰 활약을 펼친 예능인이기도 했던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그는 14년차 목수이다. 캠퍼이기도 하고 보더이기도 하고 서퍼이기도 하다. 그리고 2년 전 어엿하게 문을 연 가구 브랜드 회사 HIBROW(하이브로우)의 대표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이 세상 사람 누구라도 어느 한 가지 타이틀로만 한정할 수 없듯이,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또한 많은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배우 이천희는 정말로 다양한 일과 관계 속에서 더디지만 꾸준하게, 가구를 만들고, 취미를 만들고, 스타일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이천희’라는 삶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은 분명히 이천희의 작은 이야기들을 담았지만, 그 누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배우의 은밀한 사생활을 담은 책도 아니고, 하이브로우 대표의 목공기술을 전수하는 안내서도 아니다. 어느 마니아의 캠핑과 서핑 노하우를 담은 책도 아니고, 젊은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기는 더욱 아니다. 그저 이 모든 이야기가 담긴 ‘이천희’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재의 모습일 뿐. 그런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도 한 번쯤 ‘나도 재미있게 살아봐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면 좋겠다.

 

*

 

SBS 예능 프로그램 '도시의 법칙 in 뉴욕'에서 이천희가 가구를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땐 그저 가구를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 싶었는데

2년 전에 어엿하게 문을 연 가구 브랜드 회사의 대표라니.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배우라 그런지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도,

이렇게 책을 내는 일도 죄다 멋져보인다.ㅎㅎ

 

그래서 이 책을 마지막 책으로 꼽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있어 416일은 친했던 친구의 생일이었으며, 한때 좋아했던 남자애의 생일로 기억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의 생일이 같았던 게 나로서는 인상 깊었고, 그 뒤로 일 년에 한 번은 두 사람을 떠올리는 날이었던 셈이었던 것이다. 2014416일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이 굴러간다. 그러나 4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 (p.342)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시 그날로 붙들려갈지라도 나는 이 책을 읽어내기로 결심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밑줄을 쳐가며, 때로는 책 곳곳에서 눈물을 훔쳐가며 읽어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의 무게를.

 

학생들은 3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세월호 참사 희생자중 한 명일지라도, 유가족에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가족. 그런 가족의 마음을, 이 책 덕분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유가족들뿐 아니라 이 사회의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업이라고,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쉽게 또다른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고, 유가족들의 삶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p.8)는 이 책 덕분에 말이다.

 

나는 그 중 2학년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제가 한창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어요. 그분이 고맙게도 위로를 해주고 가시더라구요. ‘, 그 당시에 나는 뭐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남의 얘기였고 나와 먼 얘기였는데 이렇게 내가 위로를 받는구나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잘못한 게 있어요.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그 사람들이 부르짖을 때 저희는 뭐 하고 있었나요? 전혀 생각을 안 했어, 그런 거에 대해서. 나만 보람있게 잘살면 된다는 그런 거였지. 다른 사람의 고충이나 힘든 것들을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예요. (p.330)

 

나 역시 그랬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밀양 송전탑이나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해서는 기사로 언뜻 읽어는 봤어도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사람의 고충이나 힘든 것들을 보는 게 유일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지 않기로 했다. 이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만, 이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이런 다짐이, 3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우리의 가슴 속에 눈물이 되어 돌아온 학생들과 일반인 승객들을 향한 심심(甚深)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간절히 바란다. 8개월여의 시간을 정리한 이 연대기(年代記), 슬플 수만은 없는 연대(連帶)의 기록으로 이어지기를.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 문학동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5-03-2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구입한지는.. 좀 됐는데요.. 차마 책장을 못 넘기다.. 주말에 읽었어요..

남편은 그만 읽으라고.. 생각을 지우라고 하는데.. 잘 안되더군요..
다시 4월이네요..

해밀 2015-04-05 17:49   좋아요 0 | URL
다 읽어내셨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쓴지 조금 지났는데도
16일이 가까워오니 다시 생각나네요.

저도 매번 생각할 때마다 먹먹해서 생각을 지우려고도 했는데,
먹먹하면 먹먹한대로 버텨보려구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니까 생각을 지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지운다는 일이 영영 잊는다는 일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