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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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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 이가 답하는 게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p.6)

 

이 책은 중앙북스에서 2009년에 출간된 책 한창훈의 향연의 개정판인데, 작가의 말이 책의 제목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재밌는 책이다.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는 작가님의 단호한 말에 미소 지었지만, 이내 부러워졌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테니까. 그래서 왜 사는가를 물어보는 일이 그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나만 혼자 읽고 넘어가기 아쉬웠던 마음에, 블로그에 이 구절과 함께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 한 이웃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한창훈 작가님의 소설에는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좋다고. 과연 그랬다.

 

내륙에서의 내 이력에는 늘 섬과 항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륙 사람들은 산과 벌판을 말하고 나는 바다를 이야기했다. (p.50)

 

변화가 더딘 것이 미덕이며 떠나는 일이 일상이 되는 곳. 전라도의 종착역 여수에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리고 그의 소설보다 먼저 접하게 된 이 산문집을 통해 나는 섬이라는 곳이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이자 이별과 쓸쓸함만큼은 풍족한 곳이며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곳임을 알았다. 나 역시 섬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고 돌아 온 여행객이었기에 생각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의 큰 작가들 글을 한번 찾아 읽어보고 하늘의 뜻과 맞닿아 있는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한 일 년 고민 좀 해봐.”

 

당장 쓰는 기술을 원했던 영민하지도 않고 재주도 없었던 탓에 한 사십 먹어서 괜찮은 소설집 하나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숙제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 아니던가.’ (p.165) 하고 궁리한 끝에,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는 그의 말 역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운동장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바다였기에, 파란색과 더불어 흰색 크레용이 바닥났던 유년 시절. 그리고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바다 이야기를 그려내는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채운 모든 비문학적인 것은, 그의 문학을 키우는 데 분명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 답하는 소설가이지 않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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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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