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기를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한사람이 늦게 오면 그사람이 몇시에 올까, 내기도 자주하고 음식을 시키면 도대체 음식은 몇시에 나올까, 내기도 하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 오늘은 누가 떨어질까 내기도 종종 한다. 얼마전엔 팀장님과 설문조사에 과연 몇명이 참여할까, 뭐 이런 걸 두고 만원빵 내기도 했었다. 돈을 얼마를 걸건, 혹은 무엇을 걸건 내기는 내기 그 자체로 늘 즐겁다.
탑밴드를 보며 생방송이 진행된 8강부터 지난주까지 #8989에 내가 보낸 일곱개의 문자는 아래와 같다.
게이트플라워즈
POE
톡식
제이파워
POE
톡식
승률 100%. 이길 것 같은 팀에 보낸 건 아니다. 응원하는 팀에게, 혹은 더 잘한다고 생각한 팀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데 하다보니 100%의 승률이 되어버렸다. 내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지난 1년간 이런 적은 없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늘 떨어지고, 늘 마음에 안드는 누군가 응원을 해서 온갖 짜증을 내면서 방송을 봤다. 위대한 탄생은 성질나서 4강부터는 안봤나? 결승만 안봤나? 김태원과 아이들을 보는 게 너무 힘겨웠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고 ;; -_- 늘 사람들의 취향과 어긋나는 그 지점들 때문에 씩씩거리면서 봤는데,
탑밴드는 정말 다르구나.
어쩌면 시청률이 5%를 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 소수의 매니아들이 보는 방송이고, 사실 편집도 세련되지 못하고, 슈스케처럼 스펙터클한 드라마도 없어서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내 지루해지기 쉬운 방송이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암튼 이렇게 내가 응원하는 팀들이 승승장구하는게 신나고 즐거우면서도 의아했다. 지난 주엔 POE가 질 줄 알았는데 그만 게이트플라워즈를 이겨버렸다. 상대가 게이트플라워즈이다보니 POE가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는 소리를 듣는 날도 생겨버렸다. 살다살다 이런 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귀여워하는 슬옹군이 있는 톡식과 좋아해마지않는 POE가 결승에서 붙다니.
그리하여, 오늘은 탑밴드 방청도 다녀왔다 -_-v 나름 구구절절 사연을 썼더니 (구구절절한 사연은 사실 별로 없는데 그냥 길게 써야 뽑아줄 것 같아서 A4 반매 정도 쓴 것 같다. 늙어서 스탠딩은 힘들고 당연히 좌석으로 신청했다. 스탠딩과 좌석의 평균 연령차가 심해보였다 ㅋㅋㅋㅋㅋ 신대철과 한상원, 그리고 코치들의 축하무대를 9시부터 사전녹화하느라 두번이나 듣고 (귀가 호강? ㅋ) 뻘쭘하게 방송시간 기다리다가 특별히 2곡씩 준비한 POE와 톡식의 무대를 만났다.
사실, 내기를 좋아하는 내기인의 한사람으로, 100%의 승률을 지키려면 톡식에 문자를 보냈어야 했다. 사실 그럴까 싶기도 했다. 뭔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맞힌 게 되어버렸으니까. 뭔가 지켜보고 싶은 마음? 하지만, 저 한 표 한 표가, 이길 것 같은 사람에게 보낸 게 아닌, 진심으로 응원하는 팀에게 보낸 문자였던 만큼, 마지막 문자도 그 마음을 담아 보냈다.
Poe (지못미 100%)
나는 마지막까지 포를 응원했다. 톡식의 무대도 좋지만, 나는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탑밴드를 처음 볼 때부터 포를 응원했고, 베이스의 결원으로 비어 버린 그 여백도 멋지게 살려나가는 그들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처럼, 오늘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한 Poe가 마지막으로 톡식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했듯, 나 역시 톡식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그런데 POE라고 보냈어야했는데 Poe라고 보내서 내 문자 집계 안됐음 어쩌나, 하는 마음이 갑자기 든다. ㅎㅎ
탑밴드 시즌2 갑시다 :)
ps / KBS 별관이 집에서 3정거장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더 자주 신청하고, 자주 놀러갔을텐데 아쉽다, 아쉬워. ㅜㅜ 그러니까 더더욱 시즌2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