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090으로 시작되는 전화가 온다. 광고전화인 것 같아 받지 않으려다가 혹시나 하며 받았다. 군대에 있는 M의 수신자부담 전화였다. 전화가 끊길새라, 엘레베이터 문이 열린 틈을 타 얼른 내렸다. 그리고 컴컴한 계단을 내려가며 M과 통화를 했다.
요즘같은 때 군대에 있는 너도 참 답답하고 힘들겠다,고 말했다. 예전에 M이 내 방명록에,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친구들이 우경화돼있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하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나서였다. 그리고 오늘은 전경으로 가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했다. (어제 시사인을 보니 전경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데, 분노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권리, 옳다 믿는대로 행동할 권리, 모든 권리들을 박탈당한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더 화나는 건 현장에는 전경을 보내놓고 자신은 승진 시험을 준비한다는 현직 경찰들의 모습이다. 암튼 이건 곁가지이고) M은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 있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만큼 여러 부분들에 대해 고려해보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군대에는, 휴가에 나가더라도 절대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라고 들었다. 물론 나는 7월에 휴가를 나온다면 군인 불복종을 몰래 해볼 것을 권유할 생각이지만.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니까.
너가 아마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 우리는 한 두어번쯤은 같이 촛불을 들지 않았겠니. 라고 얘기했고, M역시 동의했다. 교회 사람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나들목교회의 니나와 성공회교회의 E언니를 보며 나는 정말 부러웠던거지. 그러면서 M이 있었다면 예배 마치고 한두번쯤은 같이 나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밤새 메신저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며 균형을 잡아가던 대화상대 하나가 사라지니 이리 아쉽구나. 요즘의 우리는 정말 할 말이 많았을텐데. 함께 안타까워하며, 분노할 현실이 이렇게도 많은데.
돌아와 M에게 책을 보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매월 보내기로 했던 뮤지컬지와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 한권. 그리고 쫀쫀하게 400자로 제한돼 있는 100원짜리 알라딘 선물 메시지에 (알라딘은 메시지 글자수를 늘려달라! - 귀찮아서 편지는 못쓰는 1인) 짧은 바람을 담았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한국 교회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프레임이 되고 싶다고. 물론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를 통해. (어후, 지금의 나는 절대 안되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다듬어져야하고, 내가 좀 더 올바르게 서야겠다고. 평생 노력해도 되기 어려울 확률 매우 농후한, 그리고 자칫 보면 매우 교만하고 위험해보일 수 있는 이런 바람이 요즘 자꾸만 생각과 마음에 스민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올바르게 서고, 그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요사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