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휴대폰을 놓고 이틀을 돌아다녀본 결과 전화기의 '휴대성'보다 절실했던 것은 '전화번호'와 '시계'
외우지 못하는 전화번호가, 가지고 다니지 않는 시계가 문제였다. 그리고 알람도 있었군.
덕분에 이틀째 되던 날은 오래도록 넣어둔 시계를 차고 다녔고, 두세명쯤의 전화번호를 추가로 외울 수 있게 됐다. 집전화기가 알람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휴대폰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엄마는 니가 연애를 안해서 그렇다며)
둘
토요일 찾아갔던 여행카페 ;불라'는 아직 간판도 마련되지 않은 신선한 카페! H님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종로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늑해서 마음에 들었던 곳. 망하면 안된다며 우리는 서로 이곳에 자주 찾아와야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너무 손님이 많아져도 섭섭할텐데 말이다)
사장님은 여행사를 겸해 이곳을 운영하고 계셨다. 사무실을 얻을 돈에 조금 더 보태어 차렸다는 카페는 내부 인테리어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했다고 한다. 녹색 페인트에 분필의 느낌으로 그려진 깔끔한 그림들. 아는 사람이 선물한 것들로 꾸며진 소품들. 간소하니 좋구나. 사장님이 정성껏 내려주시는 이가체프도 한잔 마시고 왔지롱. 운영 및 관리를 혼자 하시고,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하지만, 여유를 다짐하고 갔다면 그쯤이야 뭘- 쫓기듯 먹고 나오는 쪽보다 훨씬 낫지 않은지.
사장님 조언하시길, 정말 좋아하는 방법으로 운영하고 싶다면, 투잡이 있으면 된다는 현실. 역시 밥벌이는 낭만적일 수 없는 거였어.
셋
라면 중 제일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주는 라면! 이란다
나는 H님이 따라주는 차가 세상에서 제일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차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같은 차를 받아가서 또 내가 해보면 그맛이 안난다. 간지나는 폼으로 (처음 봤을 때 휘둥글해지던 눈!!!) 샤라락~ 따라주는 그 카리스마! 홀짝 홀짝 잘 마시니 H님도 나에게 차 따라주는 걸 좋아한다. (나만의 생각인가 하하) 이번에도 난 목책철관음을 마시며 감탄했다. 구매하신다기에 저도 같이 사서 나눠요!!! 라고 얘기는 했는데, 흠, H님이 따라주셔야 맛있는데 말이다. 맛집도, H님을 따라가서 먹으면 꼭 맛있더라. 다시 그집을 찾아가면 맛이 바뀌는게 아니라 (그건 말이 안되고!) 도무지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만난 빈대떡과 동동주. 쓰읍 ^______________^
함께 만난 V언니는 나의 서재를 통해 이미 일상을 모두 꿰고 있었는데 (알라딘에 가입을 안해서 덧글을 남길 수가 없었다며, 언니는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문자로 덧글을 보내줬다. ㅋㅋ) 한마디를 툭툭 하면, 아 그거 읽었어. 라고 해서 매우 신기했다. 알라딘월드가 오프라인에서 나의 지인들과 겹쳐지는 순간. H님과 V언니가 모두 정체를 눈치챘던, 함께만난, 가난한 목소리를 좋아하는 우리 K도 알라딘 서재 월드로 초대했다. 하하하. 아무래도 나는 이런 영업에 초특급 소질 있는듯. 영업의 기본은 대상에 대한 애정인가보다.
넷
어제는 Y와 J와 함께 뮤지컬을 봤다. 나쁜 녀석들, 완전 재밌게 봤다며 감탄하고, 회사에서 같은 뮤지컬을 본 H씨와 과장님께 마구마구 이야기를 했으나, 나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H씨와 과장님, 그리고 D대리님은 함께 그리스와 나쁜녀석들 패키지 표를 끊어서 봤고, 나는 공짜로 봤던 것이 원인이면 원인이랄까. 나는 그리스보다 나쁜 녀석들이 훨씬 재밌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리스는 제값 내고 표를 사서 봤고, 이건 공짜로 봤으니 기대치 자체가 달랐던 거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공연은? 공짜로 보는 공연... 그런가? -_- ㅋㅋ
역시 모든 것이, 아니 꽤 많은 것들이 마음에 달려있나보다
다섯
J선생님께 소분해 받은 차 중 내가 카렐의 스위트하트와 함께 제일 사랑하던 로네펠트의 크림드코코가 조금씩 바닥을 드러낸다. 이건 다 마시면 사야겠다,는 다짐으로 마구마구 사람들에게 주면서 마셨던 차였고, 다 마셔가기에 이제 사려고 인터넷을 좀 뒤져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게 없는 거다. 로네펠트 자체가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크림드코코를 파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아, 우째 이런 일이! 도대체 크림드코코는 어디서 사신 거에요? 라고 물어보니, 돌아온 답변은 절망적이다. 국내에서 로네펠트를 수입하던 곳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추세이며, 본인은 스위스 사는 분께 부탁해서 샀다는...! 아 아껴마실걸. 집에 조금 남았으니 가져가라고 하시는데, 흠, 인천 나들이 한번 해야겠다.
여섯
우리 J선생님은 얼마 전 매우 힘들게 아기를 가지셨다. (선생님이라니 진짜 선생님같지만, 하하. 원래 언니라고 불러야하는건데, 내가 호칭을 못바꿔서 아직도 호칭이 이모냥이다.) 이제 2개월 정도 된 거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조심 조심 조심을 외치고 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는 게 태교에 지장이 있지만, 아가야 너도 알 건 알아야 한단다, 라며 뉴스를 보신다는 J선생님께 나는 차라리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보시라고 이야기했다. 최선-태명-아, 너는 아름다운 것만 보면서 자라면 좋겠는데 말야.) 내가 정말정말정말 좋아하는 J선생님께, 우리 최선이 태어나기 전에 임신 선물을 해드릴 생각이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서, 기껏 생각하는 건 임신하고서도 입을만한 옷, 정도라는 거.(창의력하고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조언해주시면 매우 고맙겠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