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고 나니 무슨 부동산 페이퍼 같다. 참고로 난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며 땅은 한뙈기도 없다. 그저 내 방과 침대 정도에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 전 시사인을 보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건물이 나왔다. 강남역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건물이 뉴욕제과 건물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그 근처 땅값들이 쭉쭉쭉 나와있는데 맞은편에 있는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소개됐다. 땅값은 예상대로 더럽게 비싸더군. 7번 출구 도보 1분도 안걸리는 최적의 위치. 덕분에 선거철마다 귀를 막고 살아야 하는 곳. 이라고 말하면 꽤나 럭셔리한 곳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건물, 강남역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낡았다. 그래서 사무실 임대료가 근처 건물에 비해 저렴다는 소문이다. 1층 건물에 머릿돌이 있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연도가 새겨져 있다. 헉, 정말 그 때 지은 건물인거야? -_- 건설회사 건물이어서 그런지 오지게 튼튼한가보다. 보수공사 이런 것도 잘 하는 편이지만 일단 건물 외양이 낡아서 어쩐지 여기가 내가 일하는 건물이라고 말할 때는 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때 그시절엔 최첨단 건물이었을텐데 말이다. 좀 좋은 건물, 새건물로 이사가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출근시간에 일단 뛰더라도 얼마 안뛰어도 되는 그 달콤함- 외근이 많은 광고실 사람들의 그 접근성. 길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내가 퀵 아저씨한테 우리 회사 위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그 짜릿함, 등등이 복합적으로 혼재돼있어 섣불리 이사가자는 말도 못한다. 물론 내 말의 영향력은 전혀 없다. (역시나 또 여담이 길어졌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닌데-)
남들 놀러 오는 이 중심가에 나는 직장인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는 회사 뒷골목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사람들이 '놀러' 꾸역꾸역 몰려오는 게 참 신기하다. 여지없이 사람이 몰리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는 사람들 많이 다니는 7번출구를 피해 8번 출구로 피해 다니기도 하고, 애매한 시간을 택해 퇴근하기도 한다. (남들 한참 놀 8시쯤?) 우리 회사가 있는 7번, 8번 출구 쪽은 특히나 젊은 사람들의 노는 문화가 발달한 번화가이다 보니 식사 메뉴를 정하기도 참 애매하다. 2,3번 출구 쪽만 가도 사무실이 많아 밥집이 좀 있는데 이쪽은 그나마 점심 메뉴도 안하는 저녁 시간에는 참 뭐먹을까 뭐먹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오늘은 오므토토마토에서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사람이 많아 10분이나 기다렸다. (느끼한 것을 좋아해 사람들의 만류에도 트리플치즈퐁듀오므라이스를 먹었는데 아직까지 속이 느끼하다 욱)
저녁을 먹으며 음식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비교적 오래된 춘천닭갈비 앞에 깔끔한 건물의 유가네 닭갈비 체인이 들어왔고- 얼마 전 춘천닭갈비가 망했다. (망한건지 없어진건지는 모르나 유가네의 승리였나보다) 강남역 상권의 음식점들은 사실 다 고만고만하다. 특별히 맛있는 집은 많지 않고 그냥 대부분 평작 정도는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강남에 왔는데 뭐가 맛있니? 라고 물어볼 때 가장 난감하다. 그냥 종류를 말하면 갈만한 데를 알려줄게, 라고 말을 돌린다 ㅋㅋ) 암튼 유가네와 춘천닭갈비를 비교한다면 춘천닭갈비 쪽이 더 나았다. 유가네는 한번 갔다가 맛이 없어서 더 이상 가지 않았던 집. 춘천 닭갈비가 훌륭했던 건 아닌데 유가네가 맛이 없었다. 그런데 망한 건 춘천 닭갈비 쪽이었다. 춘천 닭갈비 건물엔 깔끔한 이탈리안 스파게티 가게가 들어왔다.
사실 그런 집이 좀 더 있다. 회사 앞에 커리스토리라는 카레 집은 3분 카레 수준의 카레에 돈가스, 소세지 뭐 이런 것들을 내주는 음식점. 처음 이 가게를 갔을 때 나는 당연히 석달도 못가 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2년도 지난 지금까지 이 집은 건재하다.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우리는 여전히 놀란다. 혹시 그 때가 처음이어서, 음식 솜씨가 숙련되지 않았던건가, 하는 의혹에 다시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음식맛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었다. 진짜 맛있는 집은 골목을 조금 더 올라가 구석진 곳에 있는 탄이라는 인도커리전문점이었다. 진짜 인도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커리였는데 점심 메뉴 가격이 난까지 포함해 6000원 수준이어서 우리는 매우 사랑해줬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인도로 돌아가버렸고, 주인이 바뀌었다. 더이상 예전의 탄이 아니었다.
또 한군데. 골목을 사이에 두고 커리스토리 옆에 있는 김찌몽이라는 김치찌개 가게. 웬만하면 김치찌개는 참 맛없게 하기도 어려운 음식인데, 여기 김치찌개는 참 맛이 없었다. 그래서 역시 다시 안간 음식점이다. 여기는 한달만에 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벌써 1년 이상을 살아 있다. 여기는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갈 생각도 안했다. 강남역에서 김치찌개가 맛있는 집은 그 골목 옆골목으로 올라가 코너를 돌면 나오는 바우골이라는 음식점이다.
강남역 상권의 음식점들은 붙박이가 아닌, 뜨내기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맛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냥 좋은 위치, 적당한 수준의 맛, 그리고 깔끔함, 정도만 갖추면 대략 장사가 되나보다. 춘천닭갈비와 유가네의 승부에서 볼 수 있듯 - 강남역에 놀러온 손님들의 마음에 흡족한 깔끔함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왔다 맛없어 다음에 다시 안온다 해도 워낙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라 또 다른 손님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서 하루 최소 한끼 최대 두끼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음식점들이 우리의 생활 먹거리들을 잠식해나가는 것이 참 안타깝지만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인테리어가 매우 세련되거나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다. 여기가 말만 강남역이지 그다지 고급 동네는 아니어서 그냥 젊은 트렌드에 맞는 깔끔하다는 느낌, 정도만 주면된다. 커리스토리의 인테리어는 4계절이 공존하는 인테리어다. 해바라기와 크리스마스 전구라니 크크 김찌몽 역시 귀여운 간판을 단 그냥 깔끔한 가게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유가네 닭갈비를 보니 심지어 손님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 E대리는, 어휴 저기 2층까지 있는데 꾸역꾸역 다 찾나보네, 라며 혀를 끌끌끌. 나도 덩달아 혀를 끌끌끌. 하지만 우리는 초췌 야근모드의 직장인. 누구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단 말이냐. 알고보면 우리가 더 불쌍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