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배가 고파 샌드위치 가게에 들렀다. 회사동네 조샌드위치는 샌드위치맛은 솔직히 좀 별론데, 라떼가 맛있는 편이다. 늘 그렇듯 별로 맛없는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으며 소금꽃나무를 읽고 있는데 어떤 대목을 읽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한다. 샌드위치맛이 뚝 떨어진다. 지금 여기서 여유롭게 샌드위치나 뜯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진다. 샌드위치를 그만 먹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려는데 또 이내 우스워진다. 유난스럽다, 참. 내가 여기서 샌드위치를 그만 먹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건 어쩐지 스스로에게 오기를 부리는 짓인 것만 같다. 그래서 남은 샌드위치를 우걱 우걱 다 먹었다. 더 이상 맛있지 않은 샌드위치지만 그걸 남기는 게 오히려 더 우스운 짓인 것 같았다.
소금꽃나무를 그만 읽어야겠다며, 지하철 가판대에서 시사인을 샀다. 지하철에서는 시사인을 읽었고, 나는 그만 더 속상해진다. 우습지만 그랬다. 곳곳에 우울한 소식들 뿐이다. 늘 그렇지만, 이번 주 시사인은 유난히 더 그렇게 느껴진다. 덕분에 샌드위치는 아직도 소화가 안됐고, 속인지 맘인지 모를 것이 그냥 아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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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을 감을 밧줄을 제 손으로 매듭짓던 그 모진 시간까지
차마 놓을 수 없었을 이름 준하야
밧줄을 목에 거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고 미치도록 안고 싶었을 준하야
힐리스를 사주마 약속했던 아빠가
왜 그 약속을 어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건
이 모순 덩어리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기에
네 나이 열 살은 아직 어리다
아빠가 하시는 일을 적어 오라는 잔인한 숙제를 받아 온 날이거나
아빠랑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거나
아빠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가 버린 아빠가 미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준하야
네 아빤 세상 여느 아빠들처럼
너랑 그렇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거란다
일요일이면 의기양양하게 네 손을 잡고 동네 사람들 다 볼 때까지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 목욕탕에도 가고 싶으셨을 거야
아빠가 사 준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타는 네 등 뒤에서
우리 막내가 저렇게 컸구나
열 살이 된 널 콧날 시큰거리며 지켜보고 싶으셨을 거야
네가 혼자 일어서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때까지
오래오래 널 지켜주며
세상에서 가장 넓고 따뜻한 둥지가 되고 싶으셨을 거야
- 한진중공업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한 김주익 열사 3주기 추모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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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 iN---------------------------------
가난한 사람은 겨울이 괴롭다. 비닐집이나 한잣집에 사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단지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흰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밤중에 눈이 오면 자다가도 소스라치게 깨요. 밤새도록 눈을 치우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요. 농촌의 비닐하우스는 군인들이 와서 치워주기라도 하지만, 정부가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가슴만 칩니다"
꿀벌마을 배광자 할머니는 매년 겨울이면 "우리 마을에는 눈이 안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한다. 국가가 외면하고 사회가 돌보지 않는 주거 빈곤층 사람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은 배광자 할머니처럼 하늘에 대고 두손을 모으는 일 뿐이다.
시사iN 14호 - 비오면 '홍수' 불나면 '전소' 병들면 '사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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