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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이 오늘따라 다 일찍 퇴근을 하는 바람에 저녁 대신 먹을 샐러드 잠시 사러 나가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위해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꺼내 들었다. 원피스에 바바리코트 휘날리며 제목도 표지도 가을같은 책을 가슴에 껴안고 샌드위치가게로 향하는 내가 꼭 가을여자 같다며 혼자 뿌듯해했다. 이런 한심한 여인 같으니, 책을 들고 다닌다고 기뻐하다니, 책을 컨셉으로 여기다니, 그래도, 아무리 욕해도, 뿌듯한 건 뿌듯한거다. 아무도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래서 내가 안되는 거야. 샐러드는 사와서 사무실에서 먹으며 일할 작정이었는데 가을여자 된 김에 앉아서 바바리 휘날리며 고상한 척 책을 읽으며 샐러드도 다먹고 왔다. 물론 책은 몇장 못읽긴 했다. 이건 된장녀도 아니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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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당연히 아니지, 오늘 내 별명은 청국장녀였다. 흑. 친구가 기획한 잡지 기사에 서바이벌 마루타로 출연하느라 (-_-) 일주일에 두번 점심시간마다 한의원을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쌀겨 해독을 하는 해독한의원에 가는 날이었다. 이 쌀겨는 청국장에 들어가는 바실러스균을 이용해 발효시켜 60도 가량의 열을 자연발생시키는데, 그 쌀겨를 산처럼 쌓아놓은 데 들어가서 20분간 쉬고 있으면 찜질을 하면서 해독이 된다고 한다. 한 번 하고 나면 개운해서 매우 좋아하는 프로그램. 그런데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급해 좀 빨리 나온다고 샴푸를 많이 칠하지 않고 씻고 나왔더니 머리카락에 청국장 냄새가 남아있었나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청국장 냄새가 난다며 놀린다. 과장님의 향수로 어찌어찌 수습하려 했지만 이 두 향 어찌나 독립적인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바람에 모두의 코를 더 괴롭게 만들어버렸다. 몰라 몰라 흑흑, 하지만 나 꿋꿋하게 요가까지 갔다 -_-v 그러고보니 나 가을여자라며 바바리 휘날리고 책들고 다닐 때 주위 사람들이 청국장냄새 난다고 코 찌푸린 건 아닌가 모르겠네, 몰라 몰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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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나는 또 도서 금지 구매령을 내렸다, 그리고 잘 지켰고, 고맙게도 11월이 왔다. 그런데 여전히 리스트는 별로 줄지 않았다, 나의 10월이 게을렀던 관계로 11월에도 책 사는 건 좀 더 좌중해야겠다. 꼭 사려고 했던 몇권만 사야지. 그러고보니 나는 꼭 플래티넘이 되고 나면 금지령을 내려서 그 특권을 항상 못누린다. 아무래도 정말 실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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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좀더 좌중해야겠다고 느낀 건 오늘 주말에 주문했던 책꽂이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지극히 떨어지는  나의 공간 지각능력은 책꽂이를 위해 마련한 엄지손가락만한 자리보다 더 큰 책꽂이를 주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책꽂이를 놓기 위해 생쇼맥스 모드로 새벽 2시까지 이리저리 정리를 했다. 새 책꽂이에 아무래도 작가별로 모아서 꼽거나 나름의 컨셉을 가지고 책을 꽂다 보니 헌 책꽂이에 남겨두는 책들에게 미안해 차별하지 않고 꼽기로 했다. 그래도 혼자 '넌 절대 이 칸에 안끼워줄거야'라고 속으로 중얼중얼거리며 즐겁게 책을 정리했다. 그러고보니 앞으로도 책은 계속 살텐데, 이제 더 이상 책꽂이를 사도 놓을 곳도 없는데, 큰일이다. 물론 지금은 얼마간의 여유를 남겨뒀지만, 이건 항상 고민이다. 책보다 먼저 미련을 버리는 게 중요한데,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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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시작하는마음은 10월만큼 스산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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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 정리 같이 피곤하면서 즐거운 일도 없어요.

웽스북스 2007-11-02 20: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실은 좀 신났답니다 흐흐흐
쫌있으면 또 포화상태 되서 여기저기 꽂아두고 난리를 치겠지만요 ㅠ
방이 좁은 게 한탄스러울 뿐이죠

홍수맘 2007-11-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프님 말씀에 동감요!!!
님 얘기 읽으면서 웬지 너무 "귀여운 청국장녀"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3=3=3=3

웽스북스 2007-11-02 20:20   좋아요 0 | URL
귀여운 청국장녀라니요, 흐흐, 저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지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__)

무스탕 2007-11-0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레티넘에서 실버로 내리느라고 허벅지 여러번 찔렀습니다 ^^;

웽스북스 2007-11-04 18:16   좋아요 0 | URL
흐흐흐 역시나 쉽지 않죠? 그래서 성공하신 거에요?

Jade 2007-11-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이사오고 나서 앞으로 책 많이 살거란 생각에 책장만 여러개 샀어요. 덕분에 텅텅 빈 공간들이 늘 제 구매욕을 자극한답니다. ㅡㅜ

웽스북스 2007-11-04 18:17   좋아요 0 | URL
전 책장하나를 더 들여놨음에도 여전히 타이트해요, 틈틈이 방출도 좀 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