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자주 간다는 건, 실은 내게는 매우 밝히기 부끄러운, 마치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 같은 일이다. 일단 좀 치사하지만 핑계를 좀 대보자면 회사 건물 2층의 스타벅스는 회의장소이기도 하고 미팅 장소이기도 하고 사교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저런 목적 이외에, 단순히 커피를 사러 스타벅스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나는 자꾸만 이게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타벅스에 쓰여져 있는, 자신들은 커피농가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에 괜스레 위안을 받는다. 그래그래 저렇게까지 써놨는데 노력하겠지, 하지만 스타벅스의 수익금이 전쟁자금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뭘로 위안을 받을래, 라고 마음은 외치지만 아침이면 나는 피폐한 몸과 마음을 오늘의 커피 한 잔으로 달랜다. 참 대책없는 인간이다. 내가 오늘부터 스타벅스 커피를 끊겠어요~~~라고 외치면 주위 사람들은 나를 양치기소녀 바라보듯 한다 ㅠ 아 무너진 신뢰여, 자초한 슬픔이여
지난 번 쓴 글에 잠깐 언급한 '언니'는 얼마 전부터 아름다운 가게의 매니저로 일한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대안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공정무역이라는 말 대신 대안무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얼핏 듣기로는 공정무역,이라는 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할 가격을 주고 사오기 때문이라는데 직관적으로 듣기에는 대안의 대상이 일단 명확하지 않게 느껴진다. 인식의 확산을 위해 어떤 단어가 더 좋을지는 좀 더 고민해 볼 문제로 생각된다) 토요일날 언니 위로차 노동 봉사를 제공하기 위해 찾아간 나에게 언니는 히말라야의 선물을 한상자 줬다. 티백 12개가 들어있는 1박스의 가격은 5000원이다. 다소 비싸다. 네팔에서 일반 거래 가격의 30배 가격을 지불한 커피다. 아라비카종 100%, 무공해, 무농약 재배 커피라고 한다.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은 확산되야 한다. 거대 기업들이 중간에서 부당 이익을 챙기는 동안 피폐해져 버린 현지인들의 삶에 대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뜨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나는 믿기에 주위에 이런 움직임들이 많아지기 소원한다. 그래야 나 역시, '주위에서 찾기 힘들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는 얄팍한 핑계를 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히말라야의 선물을 받아 들고 오는 내 마음은 참 가볍고도 무거웠다. 맛있어라, 제발 맛있어라, 앞으로 쭉 먹는다, 맛있어라, 맛있기만 해라, 라고 이미 만들어진 커피에게 '부디 맛있어 줄'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했다. 그렇지만 탕약처럼 진한 오늘의 커피에 길들여진 내게, 티백형인 히말라야의 선물이 주는 포스는 한없이 약했다. 아...! 이걸 어쩌나-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회사로는 커피를 가져가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아침이 되면 독한 오늘의 커피를 찾았다
그런데 그후 3일, 나는 처음 히말라야의 선물을 마시던 그 저녁시간만 되면 히말라야의 선물이 떠올랐다. 일요일, 월요일, 그리고 오늘, 저녁을 먹고 3일 연속 잘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그 때 꼭 이 커피가 마시고 싶더라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소화가 잘되고 (커피가 소화제이더냐 -_-)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가 마약이더냐 -_-)
그래서 나는 일단, 히말라야의 선물을 사랑해보기로 한다. 몇개 주문을 더 넣고, 내일은 회사로 가져가야지. 쉽지 않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작해 봐야지- 양치기소녀! 이번엔 잘해보시삼!
|
|
|
|
공정무역, 그건 참 멋진 아이디어죠. 그러나 그 일을 해 내기 위해선 더디고 지루한 과정과 실패의 경험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삶의 호흡으로 나가는 운동은 그만큼 긴 시간이 걸리고, 천천히 변해가는 거니까요 <임영신 - 평화는 나의 여행 中> |
|
|
|
|
더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 기사를 읽어보세요
<한겨레 21 공정무역 특집 기사>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8/021003000200708230674006.html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7/08/021003000200708230674010.html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8/021003000200708230674015.html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8/0210030002007082306740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