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내가 첫번째로 논문을 보냈던 교수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편지는 답장이 늦어진 데 대한 변명, 나의 비판에 대한 놀라우리만큼 허약해 보이는 방어 논리, 나의 논문에 대한 입에 발린 칭찬, 그리고 당신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거절의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의 논문에 대한 구체적 비평은 단 한 마디도 없었고, 내가 듣기를 원했던 형용사(fresh, original, strong)들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가볍게 재반박 메일을 써보냈다.


2. 친구랑 펍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양고기, 닭고기, 돼지 갈비, 야채, 납작한 빵 등의 모듬 요리를 맥주에 곁들여 먹었다. 영국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내일은 런던에 가기로 했다. 소호쪽에 있는 왕기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며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코톨드 갤러리에 가서 세잔 등을 감상할 것이다. 그리니치에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웬지 영국을 정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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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작은 논문을 모 대학의 모 교수에게 보냈었다. 읽어 보고 싹수가 보이면 추천서 하나 날려 달라고 했다. 보내놓고 나서 그 분의 논문을 읽어보고는 아차했다. 내가 논문에서 주장한 것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교수의 논문을 열심히 읽고 신랄하게 씹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내가 씹은 만큼 날 씹어달라는 도발이었지만 씹힌 것은 나의 논문이 아니라 메일이었다. -코메디를 한판 벌인 셈...-.-


배운 것: 교수에게 메일을 쓸 때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자.


럿셀에 관한 책을 읽다가, 럿셀의 문장은 만연체라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주로 럿셀의 책을 읽었고 논문에서도 럿셀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문체가 럿셀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코메디다...-.-


나는 나의 작은 논문의 기다란 문장들을 잘라내고 필요없는 내용을 쳐내고 하여 논문의 분량을 거의 반으로 줄였다. 거의 뼈대만 남겼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저자에게 시비꺼리 하나와 나의 작은 논문을 던졌다. 그 교수님은 당장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한 친구에게 선량하신 교수님 한 분이 낚시에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미안했다. 나는 시비꺼리를 미끼 삼아 추천서라는 낚시 바늘에 그분을 걸어버린 것이었으니까...


그 분과의 메일 교환에서 배운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가 "the nature of his objections~" 라고 쓰는 데 비해 그 분은 "as to what his objections were~" 이런 식으로 쓰신다. 철학 교수님보다 내 글이 더 현학적이다!


다른 하나. 그 분은 나의 논문, 추천서 문제는 다음 주에, 그러니까 일주일 있다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분은 할 일 목록을 갖고 있어서 불시에 끼여든 일은 주말에 몰아서 처리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관리하지 않으면 두터운 책을 쓰는 등의 커다란 프로젝트는 도저히 getting things done할 수가 없으리라. 그런 프로젝트는 하루에 몇 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므로. 나는 나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다른 분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 시간도 없고, 두 분 괴롭힌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적어도 논문에 대한 코멘트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짧은 논문 하나를 보내놓고 추천서를 요구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 논문이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면? 그러면 나의 논문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생면부지의 사람으로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대단한 아이디어는 단지 내 환상의 나라에서만 대단한 것일 수 있다. 나는 그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깨뜨려지기를 원한다.


나는 한 친구에게 정면으로 부딪혀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고 말했다.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다는 둥, 공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둥, 영어로 처음 써 보는 글이라는 둥의 변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남의 학설을 죽 나열한 후 그 중 쓸만한 것을 살짝 손 보고는 그걸 나의 아이디어라고 포장하지 않았다. 나의 논문은 거의 나의 아이디어만을 담고 있다. 나는 확실하게 깨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더구나 나는 나의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독창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번 영국 여행이 나의 삶에서 모험이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는 짓을 하기를 원했다. 아마 나는 그런 짓을 벌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다시 되돌아 볼 때 내가 시도를 하기는 했나... 하고 의심하지 않도록 이렇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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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원에 갔더니 승급해서 반이 바뀌었으니 이러 저러한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든 생각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승급시켜버리면 어쩌라는 거냐!!!


이번 달 말에 귀국한다. 어느새 영국에 온지 5달이 지난 것이다. 영어가 좀 늘었는가? 늘긴 했다.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그러나... 학원에서말고는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의 관심과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차지한 것은 ...이었다. 몰두하여 길을 걷다 스타벅스 유리문에 코를 찧기도 하고, 시각장애 여성의 지팡이를 걷어차기도 했다(내가 평생을 살면서 저지른 실수들 중 최악;<). 그럼에도 나는 다시 나의 첫 과제로 돌아와 있다. 나는 다시 럿셀의 책 제4장을 붙들고 낑낑매고 있다. 솔직히 피곤을 느낀다...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You’re the reason I’m trav’lin’ on

I give her my heart but she wanted my soul

You just kinda wasted my preciou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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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5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01-05 18:18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행복하세요~
 

1. 그는 학문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했다. 그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 즉 문경을 찾는 것이었다.

                                                                   (<세한도>, 박상철)


학문의 최고 경지... 이런 말은 좀 과도한 것 같고, 어떤 영역에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빠르고 깊게 접근하는 방법 정도로 문경을 이해하자.


철학에서라면 플라톤이나 칸트가 문경일까? 이상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이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 이 사람들의 철학에 직접 도전하는 것은, 두 도시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라는 신념 하에 도로를 설계하는 것처럼 멍청한 일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이나 칸트가 에베레스트 산이라면 어떤 루트를 선택하여 어디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는가가 아주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베이스 캠프는 당연히 살아 있는 당대의 사람이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죽어있는 글이 아닌 살아 있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문경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추사 역시 당대의 인물 옹방공을 흠모하여 10년을 준비한 끝에 실제로 만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 말로 하면 문경은 멘토와의 만남에서 시작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여기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


2.

(출처: http://www.paul-cezanne.org/Houses-In-Provence---The-Riaux-Valley-Near-L-Estaque.html)


너무 너무 예쁜 그림이다. 나는 요즘 금단 현상을 느끼듯 세잔에 빠져들어감을 느낀다. U2의 노래 가사 "Like powder needs a spark/ Like lies need the dark..." 처럼.


아마 예술가의 절대적인 윤리는 그의 창작이 실제의 모사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실재성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리라. 나는 그 실재성을 실존성이란 말로 대체하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죽. 그리고 그것을 스피노자한테서 배웠다고 생각해 왔다. 출전이야 어떻든 나는 아직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잔은 나의 그러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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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는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예술 형태로 정의한다. 그런데 본 시리즈의 영화들은 1초도 안되는 쇼트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필요없는 영화들이다.


내가 그 영화들을 보는 것이 괴로운 또다른 이유는 주연이 맷 데이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만났다. 두 말할 것 없이 좋은 영화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맷 데이먼은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거기서 맷 데이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게 "좋은 발견"이었다. 본 시리즈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좋은 발견"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그가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걸어놓은 동영상은 "굿 윌 헌팅" 중의 한 장면이다. 아주 예전에 본 것이지만 유튜브는 찾는 대로 다 찾아주더라. 저 동영상에서 맷 데이먼과 하버드 거드름피우는 놈 중 누가 최후의 승자인가? 두 말할 것 없이 하버드 놈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더 많이 당황한 것은 맷 데이먼이다. 맷 데이먼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사고의 독창성뿐이다. 그러나 그것의 팔할은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본 시리즈를 볼 때마다 맷 데이먼에게 당신과 같이 재능있는 배우이자 작가가 왜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거요, 왜 당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방기하는 거요, 라고 묻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게 괴롭다. 그런데 본 시리즈는 테레비에서 자주 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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