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작은 논문을 모 대학의 모 교수에게 보냈었다. 읽어 보고 싹수가 보이면 추천서 하나 날려 달라고 했다. 보내놓고 나서 그 분의 논문을 읽어보고는 아차했다. 내가 논문에서 주장한 것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교수의 논문을 열심히 읽고 신랄하게 씹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내가 씹은 만큼 날 씹어달라는 도발이었지만 씹힌 것은 나의 논문이 아니라 메일이었다. -코메디를 한판 벌인 셈...-.-


배운 것: 교수에게 메일을 쓸 때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자.


럿셀에 관한 책을 읽다가, 럿셀의 문장은 만연체라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주로 럿셀의 책을 읽었고 논문에서도 럿셀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문체가 럿셀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코메디다...-.-


나는 나의 작은 논문의 기다란 문장들을 잘라내고 필요없는 내용을 쳐내고 하여 논문의 분량을 거의 반으로 줄였다. 거의 뼈대만 남겼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저자에게 시비꺼리 하나와 나의 작은 논문을 던졌다. 그 교수님은 당장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한 친구에게 선량하신 교수님 한 분이 낚시에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미안했다. 나는 시비꺼리를 미끼 삼아 추천서라는 낚시 바늘에 그분을 걸어버린 것이었으니까...


그 분과의 메일 교환에서 배운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가 "the nature of his objections~" 라고 쓰는 데 비해 그 분은 "as to what his objections were~" 이런 식으로 쓰신다. 철학 교수님보다 내 글이 더 현학적이다!


다른 하나. 그 분은 나의 논문, 추천서 문제는 다음 주에, 그러니까 일주일 있다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분은 할 일 목록을 갖고 있어서 불시에 끼여든 일은 주말에 몰아서 처리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관리하지 않으면 두터운 책을 쓰는 등의 커다란 프로젝트는 도저히 getting things done할 수가 없으리라. 그런 프로젝트는 하루에 몇 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므로. 나는 나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다른 분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 시간도 없고, 두 분 괴롭힌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적어도 논문에 대한 코멘트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짧은 논문 하나를 보내놓고 추천서를 요구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 논문이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면? 그러면 나의 논문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생면부지의 사람으로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대단한 아이디어는 단지 내 환상의 나라에서만 대단한 것일 수 있다. 나는 그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깨뜨려지기를 원한다.


나는 한 친구에게 정면으로 부딪혀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고 말했다.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다는 둥, 공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둥, 영어로 처음 써 보는 글이라는 둥의 변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남의 학설을 죽 나열한 후 그 중 쓸만한 것을 살짝 손 보고는 그걸 나의 아이디어라고 포장하지 않았다. 나의 논문은 거의 나의 아이디어만을 담고 있다. 나는 확실하게 깨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더구나 나는 나의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독창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번 영국 여행이 나의 삶에서 모험이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는 짓을 하기를 원했다. 아마 나는 그런 짓을 벌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다시 되돌아 볼 때 내가 시도를 하기는 했나... 하고 의심하지 않도록 이렇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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