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영화에서 보던 좁은 골목들을 택시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숙소는 4, 5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 건물이었다. 페인트 조각이 덜렁거리는, 그런 매우 낡은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현관문 열쇠는 바지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이 정도가 피렌체에 대한 첫 인상이다. 안내인 아저씨가 근처에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기에 그러려니 하고 가 본 식수대. 약 탄산수였다. 물맛이 좋아 여행 내내 아침 저녁으로 여기서 물을 뽑아 마셨다. 그립다.


(보기엔 이래 보여도 물맛은 최고였다.)


피렌체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도시 구석 구석이 시선을 요구한다. 날씨도 좋고, 특히 두오모 성당 근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두오모 성당 종탑도 올라가고 우피치 박물관도 가고 등등 피렌체에서 해야 할 것들은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로스코 전시회 등은 예약을 해두었지만 포기해야 했다.


(어느 도서관의 야외 테라스. 주로 젊은이들이 노트북과 책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한다. 두오모 성당의 돔이 잘 보이는 곳이고 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이고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웬지 유럽 문명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렌체, 시에나 등의 그 유래가 없고 생생한 환경에서 물빠지고 무미건조한 환경으로 옮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카푸치노의 맛을 새로 들여버렸다. 이탈리아에서 먹던 카푸치노 생각이 나서 이곳 영국의 카페들에서 먹어보았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차라니 내가 만들어 먹는게 낫겠다... 문에 도어벨을 새로 달아야 했다. 와이파이를 잡고 이메일 인증을 하고... 밖에서 누가 벨을 누르면 안에서 그 벨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만인 장치에 현대 기술이 총동원된 이 복잡함이란 도대체 무엇이람! 나는 단순한 일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이 그리워졌다. 바지 주머니 속의 큼직한 열쇠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도나텔로라는 조각가를 발견했다. 두오모 박물관에서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을 보는 순간을 돌이켜 보게 되는 지금 이 시점에도 나는 그때 느낀 충격과 전율과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다. 그런데 나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서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이 소장되어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산 로렌초의 설교단 부조는 그것이 도나텔로의 것인지도 모른 채 쓱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그 설교단 부조를 내 눈으로 다시 직접 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사진으로 먼저 보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피렌체의 그 골목 골목들이 너무도 그립다. 과장하자면 한 집 건너 카페(바)가 있고 식당이 있고 가죽 공방, 가구 공방이 있는 그 골목들이 그립다. 피렌체에 가면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봐야 한다기에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또 한번 먹어야겠다고 맛집이라는 데를 찾아갔다. 개시 전인데도 줄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먹는 데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지 않다. 노동절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맛좋다고 온라인에 소문난 집들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결국 숙소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 여기가 맛집이네 하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다 맛집이다. 다들 좋은 스테이크를 내놓고 맛있는 커피를 내놓는다. 이탈리아의 가게들이 다 맛집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삶의 양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어떤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상)


이탈리아에서 기념품으로 막달라 마리아상의 마그넷, 그리고 13유로짜리 단테상을 사왔다. 나는 <신곡> 중에서 '지옥편'을 읽었을 뿐이고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와 어떤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궂이 궂이 단테상을 사왔다. 그런데 단테의 옷깃이 살짝 깨져 있다. 아마 이탈리아에 다녀오기 전이었다면 이런 작은 결점은 나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문제가 된다. 나는 그걸 어떤 식으로 수선할까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저 작은 단테상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사람 머리 크기의 단테상을 사자.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단테를 읽고 단테를 사랑하도록 해보자. 


이상이 피렌체를 다녀온 후의 휴유증이 되겠다...   


추) 두오모 성당의 파사드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나를 진정으로 감흥시킨 것은 그 앞에 있는 세례당이었다. 세례당 안도 사람으로 북적였고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허투른 논쟁과 고뇌와 악다구니를 다 내려놓고 스스로를 침묵 속에서 쉬게 하도록 이끄는 분위기, 성소의 분위기.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나는 이 성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을 살다 아침이나 저녁에 모퉁이 한 두 군데를 돌면 나타나는 성소, 그 안에서 잠시 서서 묵상하고 다시 나설 수 있는 그런 성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걸 보려고 네플릭스를 한 달 결제했다. 초반 에피소드 세 편 정도를 보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나? 너무 엉망인데... 6편이 감동적이라는 얘기도 있으니 좀 나아지면 알려줘.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다 못해 마지막 두 세 에피소드를 찾아보았다. 여전히 엉망이었다. 최종적으로, 아내는 졸작이라 말했고 나는 방송 사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나의 가장 커다란 문제 제기는 이렇다. 이 작품은 작가 노트 속의 기록들이 충분한 육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본으로 납품된 것 같다는 것. 에피소드의 대부분의 시간이 지지부진, 중언부언, 별 영양가없는 대사들과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즉, 각 에피소드의 상당한 시간이 그저 낭비되고 있다는 것.


취향상 나는 박해영 스타일의 작가들에게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나의 아저씨"나 "나의 해방일지"가 수작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들에 내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더라도 이 작품들이 이뤄낸 성과들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닌 작품,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이 작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없다. 한 사람이 길고 길게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듣는다. 역할을 바꾸어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이 작품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계도 없다. 언제나 황동만 옆에서 사람 좋은 미소만 짓는 그 사람은 황동만의 친구인가? 변은아와 황동만은 연인 관계인가? 그들은 키스하고 섹스를 나누는 그런 관계인가? 작가는 그런 진정한 관계를 그리는데 많이 서툰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서툼이 이 작가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만일 황동만과 변은아가 키스하고 섹스하는 연인 관계, 아마도 진정한 쏘울 메이트 관계로 그려졌다면 사람들이 이 작품에 그토록 감정이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황동만은 탁월한 독설가다. 드디어 그의 첫 작품이 나온다. 어떤 작품일까? 황동만의 독설의 희생자들은 이 작품에 어떤 독설을 쏟아낼까? 잔뜩 기대하고 마지막 장면들을 본다. 그리고 작가가 급하게 메가폰을 들고 "평가 중지!"를 외치는 꼴을 보게 된다. 극중 인물들은 황동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격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동만 독설의 가장 큰 희생자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급기야 황동만은 신인감독상을 탄다. 평가하려 들지 말고 그저 보고 듣고, 그리고 추앙하라!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진정한 관계도, 진정한 대화도, 진정한 열림도 없이, 저마다 자신들의 고뇌, 상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므로 단지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을 극화하고 이상화한 작품에 제대로 된 비평 한 줄 발견하기 힘든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


철학도로서 말하건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라는 제목은 폭력적이다. 나는 나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지 않다. 왜 나를 그 싸움에 끌어들이는가? 나의 존재가, 세계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은 사실성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이해,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내가 카푸치노보다는 에스프레소 마시는 것을 선택했다면 나는 에스프레소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사실성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나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동만의 형이 술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삶이 원초적으로 무가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술 마시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다른 방식의 삶보다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원초적 사실성은 인간 존재가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유한자라는 데 있다. 가치와 의미도 인간이 유한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나의 삶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술 마시는데 쓸지 시를 쓰는데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삶의 조건이 원초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이라면 삶의 자원을 술을 마시는데 쓰든 시를 쓰는데 쓰든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유한한 자원을 사용하는 데 있다면, '잘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삶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잘 사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선험적 기준은 없다. 그 기준, 그 가치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삶을 산다는 것은 실재와 만난다는 것을 뜻한다. 실재란 나의 의도, 기획 등이 실현을 보기 위해 뚫고 지나가야 할 나 아닌 어떤 타자를 뜻한다.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냉장고까지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내 마셔야 한다. 이런 일은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실재는 불투명하며 저항값을 갖는다. 산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인데 행동에는 항상 실재라는 저항체가 개입한다. 우리는 실재라는 저항체, 인간 타자라는 또 다른 종류의 저항체를 무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그 욕망은 삶은 무가치하다, 사람은 무의미하다 라는 말로, 추상적으로나마 실현을 본다. 열려 있음은 실재를 개입시킨다. 그러므로 관계를 닫고, 대화를 닫아야 한다. 인간 타자는 나에게 나 자신의 사실성을 직면하게 하고 그것은 종종 고통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타자성도 무화시키자. 그러면 남는 것은 완전한 고립 또는 추앙 밖에 없다. 나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 진절머리나는 자폐성에 답답함을 느낀다.   


철학도로서 한 마디만 더 하자. 철학자는 눈이 없다. 철학자는 개념으로 사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자, 몸으로 사는 자, 온몸으로 현실에 육박해들어가는 자를 일러 예술가라고 한다. 예술가는 개념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관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논리에 따라 운동하지만 예술가는 그 논리 자체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것이 철학자의 근원적 결핍성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예술 영역을 기웃거리며 뭔가 쉰 밥 남은 것은 없는가 하며 살핀다. 이런 것이 철학자의 운명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온몸으로 현실을 살아낼 자신이 없으면서도 예술가를 자처하는 무리 중의 일부가 철학자들의 서재를 뒤져본다. 거기에서 좀 있어 보이는 귀절을 자신의 작가 노트에 옮겨 적고는 그것을 그대로 대본이라며 연기자, 연출자에게 건네준다. 이 뻔뻔함이란! 이보다 더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술가여, 한국의 예술가여, 그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www.reddit.com/r/iran/comments/1sjsk0q/an_iranian_old_man_whose_apartment_has_been/


위의 클립을 보고 옛날에 터키에 갔었던 기억이 났다.


생판 초면인 우리에게 귤을 나누어 주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던 어떤 할아버지... 홍합밥을 먹고 값을 치르려 하는데 터키 돈에 익숙치 않아 버벅대고 있자 잔돈만 받고 되었다며 손사래치던 홍합밥 리어카 아저씨... 배 타고 가는데 갈매기 밥 같이 주자며 빵을 건네 주던 청년들... 어느 사원에서 누군가 뒤를 툭 치길래 돌아다 봤더니 백발의 꾸부정한 할아버지가 지진이 나면 파르르 떨린다며 작은 대리석 원기둥에 대해 설명해주던 일 등등... 아, 터키에서도 버스 등에서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 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


나는 마치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왔다가 정이랄까 사람 냄새랄까 하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터키에서 그런 것들을, 한국의 사라져 가는 어떤 분위기같은 것들을 느꼈다.


한국의 사라져가는 어떤 것들... 


인류의 역사에서 근대란 딱 한번 있었다. 유럽의 근대.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화. 지구의 나머지 지역들은 유럽의 근대화를 반복할 뿐이다. 제도적인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도 문화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멘탈리티가 공고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한국의 경우에는 IMF 구제 금융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지금 우리는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유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것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이 미국 중앙 은행의 금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머리 속으로 계산해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나는 투덜대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조만간 도래할 AI, 로봇 시대에, 즉 생산성이 급상승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답은 단 하나인 것 같다. 시장이 결정하겠지! 이것이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고의 한계이다. 


이것이 내가 미국의 시대가 이제 그만 종언을 고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지금의 멘탈리티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없을 것 같다. 집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는데도 집에 온 손님에게 대접을 해야 한다고 고지식하게 믿고 있는 저 할아버지를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이란 국민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에 돈같이 간악한 것은 다시 없다.

돈 때문에 도시는 멸망하며 사람도 집에서 쫒겨난다.

돈은 순결한 심정을 타락시키며

염치없는 행위와 간악한 생각과 배신을

사람에게 가르친다." 

---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차 대면 회담이 실패했다고 한다. 후속 대면 회담이 있을지는 매우 불분명하다. 만일 2차 대면 회담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전쟁을 피할 어떤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 같다. 미국이 이란의 핵무장을 용인할 리도 없고, 이란이 핵 옵션을 포기할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들을 풀어주는 방향의 해결은 정녕 불가능한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이 그동안 여러 번 약속을 어긴 전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약속을 파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조건들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재라는 족쇄없는 이란은, 그 인구, 자원, 영토,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보건대 번영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이 중동 지역의 강국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이란을 친미 국가로 만들던지, 그게 불가능하면 failed state로 만들어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스라엘은 남이 죽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느끼는, 공존은 사치라고 느끼는 그러한 정체이다. 이스라엘은 실존 그 자체가 비극인 정체이다. 그러므로 핵없는 이란의 번영이란 허언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도 이란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이란의 현재 전략은 미국에, 이스라엘에,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에, 그리고 세계 경제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어서, 그러한 피해를 감수할 각오 없이는 다시는 이란 땅을 침공할 수 없다는 것을 침략자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정부는 미국이 막대한 돈과 무기를 이스라엘에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것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1). 미국에서 석유가 풍부하게 나기 때문에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이미 상당히 감소되었다. 2). 막대한 부채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는 지출은 삭감될 것이다. 3). 전세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평판이 너무 나쁘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유대인 로비 그룹의 돈을 받는 문제가 표면화된지는 오래 되었지만 앞으로의 선거들에서 이 문제가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 전쟁은 우리와 상관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미국의 유권자들이 "이스라엘은 미국과 상관없는 나라"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아주 아주 컸다. 그런데 이재명은 그런 과대한 기대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아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의 강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무난한 낙승이 예상되는 이번 지방 선거의 판을 흔들지 않는 시점, 즉 지방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부동산 관련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선거 후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직접 전쟁에 뛰어들었다. 나는 솔직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재명은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예 하나 더. 나는 한국 사회에 부족한 것이 투명하게 토론을 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소양이라고 생각했고, 이재명은 이와 관련하여 좋은 모델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국 순회 타운홀 미팅, 국무회의 공개 등은 솔직히 내가 상상하던 바를 넘어서는 성공작인 것 같다. 어떤 기획이든 진정으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사람들이 거기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재명은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 생각에 60대 이상의 노년 세대에게 이재명이 어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구태의연하고 세금만 축내고 있(다고 그 분들이 늘 생각하)는 공무원들을 갈구어서 실제로 일을 하게 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럴려면 대통령이 업무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재명은 그게 가능한 대통령인 것이다.


국무회의를 공개한다고? 뭐 또 무슨 쇼나 하겠지... ---> 허 이재명 잘 하네. 아주 야무져. 똑똑하긴 허네. 일을 잘 하긴 허네.  ---> 이재명 어제 외국에 있다 하지 않았나? 새벽에 귀국해서 또 저길 간거야? 어이쿠 우리 대통령 몸 상하지 말아야 할텐데...


위에 걸어놓은 동영상은 이재명이 미국 상원의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등 한국의 국방은 한국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재명이 현재 세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쟁이 보여주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대규모 군자산을 한데 모아 놓는 방식의 미국 육상 군기지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구형 미사일과 드론들을 벌떼처럼 쏘아대는 비대칭 전술은 미군 기지의 값비싼 방어 시스템을 손쉽게 포화시켜 버렸고 한 두 발의 정밀한 탄도 미사일만으로 핵심 전략 자산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중동에 산재한 미군 기지의 상당수는 궤멸적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앞으로 5년, 10년 후 한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일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확률이 높을까? 후자일 것이다. 그러할 때 한반도가 그 전장의 일부가 될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은 이를 방지할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이것은 한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미군 철수이다. --- 어쩌면 미국이 자발적으로 미군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도처에 수 백 개의 군사 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든 재정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압박을 심대하게 받고 있고, 또 전통적인 군기지 운용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한반도의 운명에 관한한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상황을 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느꼈다.


다른 하나는 자체 핵무장이다. 일본, 독일 등과 연대하여 동시에 핵무장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점도 이재명 마음 속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정상을 만났다는 뉴스를 봤다. 내가 든 생각은, 어라? 얼마 전에는 브라질이었잖아? 라는 것이었다. 즉, 브릭스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재명은 브릭스에 발을 걸쳐 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적 움직임의 일부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에서 잘 성장하여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휴전 국가로서, 세계 최강의 무기로 보호받으면서 국가의 에너지를 산업 성장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게 미국은 고마운 나라임에 분명하다. 보수를 외치는 노년 세대가 미국을 고마와 하고 보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보은이 미국의 우산 아래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면 이는 분명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다행히도 이번 전쟁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지구 역사상 최강의 패권 국가 미국에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던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이번 전쟁으로, 현재뿐 아니라 미래마저 날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교훈은 누구에게나 자명할 것이다. 아마 보수적인 국민의 힘도 미군 철수 등의 민감한 이슈 등에 대해 이념적 자세를 더 이상은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