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에이아이 도구(거대 언어 모델)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너무 간략하게, 솔직히 말해서, 너무 성의없게 쓴 것 같아 나름 반성을 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지만 좀 더 상세하게, 다시 하기로 한다.
중국의 딥싴 모델이 화제가 되면서 나도 거대 언어 모델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가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래 저래 알아보니 클로드에 대한 평판이 가장 좋았다. 나는 거대 언어 모델이 실제 작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서문, 혹은 제1장 부분을 거대 언어 모델이 작성해 줄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았다. 다음은 내가 클로드에 처음 제시한 프롬프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나는 현대 "스피노자를 찾아서" 라는 책을 쓰고 있다. 그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것이다. 헨리 올덴버그가 영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어 독일 집을 떠나 프랑스의 깔레 항으로 마차를 타고 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였다. 각국은 과학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영국에선 왕립 협회를 창설했다. 경제적 부흥과 군사적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맹렬히 자라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투기가 일기도 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 올덴버그는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시대의 지식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네덜란드 지역을 마차로 지나다, 그의 최신 지식인 목록에 스피노자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스피노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이상을 참고하여 기다란 글을 써주길 바란다."
사실 위 프롬프트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좀 더 극적인 서사를 기대하며 만든 프롬프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클로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마차의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1661년 초여름, 헨리 올덴버그는 독일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차가 프랑스 깔레 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네덜란드 국경을 통과하는 동안, 그의 눈은 창 밖 풍경을 흘깃거리며 새로운 시대의 징후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창고들, 멀리 보이는 항구의 돛대 숲, 그리고 바쁘게 오가는 상인들의 모습은 이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특히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며, 얼마 전까지 튤립 한 알에 집 한 채 값을 지불하는 광기 어린 투기 현상까지 목격했던 곳이었다.
올덴버그는 자신의 가죽 서류가방에서 조심스럽게 편지 뭉치를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유럽 각지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서신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보일, 후크, 라이프니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이번이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는 중얼거렸다.
올덴버그는 자신이 특별히 뛰어난 사상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능력이었다. 영국 왕립학회의 서기로 임명된 것도 바로 이런 그의 재능 때문이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첨탑, 운하를 따라 늘어선 풍차들, 그리고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마을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듯했다. 갈릴레오의 발견으로 시작된 과학혁명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되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찰스 2세의 후원 아래 왕립학회가 설립되어,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올덴버그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마차가 잠시 멈춰 선 작은 마을에서, 올덴버그는 스피노자에 대한 소문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 젊은 유대인 철학자는, 이미 네덜란드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의 대담한 사상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었다. 특히 데카르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소문이 올덴버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 올덴버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상가들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서, 올덴버그는 스피노자를 만나 그의 사상을 직접 듣고, 이를 다른 학자들과 공유하며, 새로운 시대의 지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놀랐고, 더 솔직히는 충격을 받았다. 프롬프트를 보면 내가 머리 속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이성, 계몽, 합리, 과학 등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고, 그 새로운 시대 정신을 구축하고 전파하는 학회가 창설되고 있었고, 올덴버그 자신이 그 학회에서 커다란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제 고향인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그 사명을 받아안으려 여행하고 있었다. (배로 갔는지 마차로 갔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나는 올덴버그가 마차로 여행을 했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한 마차 창문 너머로 흐르는 익숙한 풍경들, 아침의 시원한 공기 등, 새 시대를 드러낼 수 있는 온갖 상투적인 표현들로 첫 부분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이아이가 써 준 글은 나의 이러한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멀리 보이는 항구의 돛대 숲" 같은 표현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에이아이는 흠 잡을 데 없는 표현들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물론, 위의 글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예컨대, 저때는 올덴버그가 스피노자와 아직 서신 교환을 시작하기 전이다, 등등.
여튼 나는 바로 OpenRouter라는 사이트에 가입하여 쓰는 만큼 내는 형태의 요금제로 거대 언어 모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수 많은 거대 언어 모델 중에서 나의 목적에 비추어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클로드인 것 같았다.
다음은 내가 최근에 이용한 프롬프트들(Q)과 그 결과들(A)이다.
"Q) 레이든에서 올덴버그에게 스피노자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가?
A) 네, Huygens(하위헌스) 형제가 올덴버그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hristiaan Huygens(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Constantijn Huygens Jr.(콘스탄틴 하위헌스 2세)는:
하지만 정확히 누가 스피노자의 거처를 알려줬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올덴버그의 네트워크:
- 영국 왕립학회 관련 인물들
- 유럽의 지식인들
- 네덜란드의 학자들
(이 정보도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보릴은 아니었을까?
A) 네, Borel(보릴)이 올덴버그에게 스피노자를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Adam Boreel(아담 보릴):
- 콜레기안트(Collegiants) 그룹과 연관
실제로:
- 보릴은 올덴버그의 네덜란드 방문 시기에 라이덴에 있었음
앞서 하위헌스를 언급한 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보릴이 더 유력한 중개자였을 것 같습니다."
위 과정을 보면 거대 언어 모델의 약점과 가능성이 동시에 드러난다. 잘 알려진 에이아이의 약점은 에이아이가 틀린 답변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 에이아이는 정확한 답을 몰랐고, 그러므로 여러 가능성들을 고려하여, 예컨대 올덴버그와 스피노자가 동시에 알았던 인물들 중에서, 아마도 호이헨스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것 등등에 주의하여 그를 중개자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이아이는 답을 전혀 몰랐고, 나는 에이아이가 제시한 인물보다 보릴 등이 더 '유력한 중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에이아이보다 더 신빙성 있는 답을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히 나는 관련 문헌을 읽었고 에이아이는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클로드, ChatGPT, DeepSeek 등등으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어떤 거대 언어 모델도 내가 읽은 그 문헌을 읽은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관점과 기준에서라면 거대 언어 모델은 이제 거의 정상에 다다른 셈인 것 같다. 웹에 쌓인 정보들을 그동안 충분히 소화했다면 이제 도서관으로 가서 책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최고 성능의 언어 모델도 철학적 사변을 전개하는 데는 극히 피상적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언어 모델 자체의 한계 등등의 기술적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거대 언어 모델이 도서관에 비치된 고전들과 관련 연구 문헌 등등을 충분히 읽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헌들을 섭렵하는 것은 이제 단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 온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질문하는, 기획하는, 총괄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영화 감독이라는 사람은 각본도 쓰지 않고 촬영도 하지 않고 편집도 하지 경우가 많다. 거대 기업의 CEO는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 며칠 동안 언어 모델을 사용하면서 내가 받은 압박이 그런 것이다. 내 앞에 거대한 슈퍼 컴퓨터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하기 빼기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진보는 거대한 낭비에 불과할 수 있다. 이 거대한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뿜어낸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의 양을 정당화해야 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