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재인의 기자협회 토론회를 보았다. 경륜과 강단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론사(중앙일보)의 질문을 받아치면서 이슈를 정치적인 것에서 정책적인 것으로 이끌어나가는 대목이었다. (중앙일보에서 나온 기자는 다음날 아침 헤드라인을 얻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 같더라. 노무현처럼 순진하게 먹잇감을 내주어서는 안되는데 문재인은 노련했다.)
기자: 노무현의 NLL 관련 발언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고, 그 부분에 후보직을 걸겠다고 했다. 그 입장 아직 유효한가?
문재인: 질문을 명백히 하자. 논란은 이미 해소되었다. (이하 발언 계속)
기자: 그래, 후보직 걸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는 건가?
문재인: 이미 다 말했다. 한가지 걸려 있는게 공동어로구역 설정인데... (이하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관한 정책 설명. 그의 비젼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파악 능력이 돋보이는 답변이었다. 만점.)
2. 나는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많았었다. 그동안 뉴스를 제대로 챙겨본 것은 아니지만 나의 기대는 이미 꺽였고, 안철수 현상은 현상으로 끝날 것 같다는 주변의 판단에 나도 결국 동조하게 되었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안철수의 출마 결단이 너무 늦었다. 출마 선언 이후에 후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후보는 그저 얼굴 마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결단을 내리고 비젼, 전략, 인적 구성 등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고해야 했다. 안철수에게 이런 준비가 되어 있다는 흔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무소속 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그러한 전략 중의 하나가 선거 전략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 하나만 들자면 단일화 전략이 될 것이다. 안철수는 단일화를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단일 후보가 될 전략은 마련해 놓았는가? 안철수가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으려면 출마 선언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진보적 정책 발표와 줄기찬 단일화 요구로 민주당을 공세적으로 괴롭혀야 했다. 후보 지지율이 낮은 민주당은 이리 저리 피해가기 바빴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안철수는 내내 수세적이었고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에서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정말 바보같은 일 아닌가!
셋째, 내가 보기에 안철수의 가장 커다란 실책은 주된 의제로 정치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본다. 첫째, 정치 개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특히 대선 판국에서는 말이다. 봐라, 박근혜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그러므로 뭔가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 개혁은 내용에 있어서도 추상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 개혁인가? 제도 개선인가? 인적 쇄신인가? 만일 어떤 구체적인 사안을 들어 얘기하면 그 순간 그것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예컨대 정치 제도 개선이 되어 버린다. 인적 쇄신이라고 하면 너무 빈약해 보인다. 둘 다, 혹은 다른 어떤 것을 섞어넣어도 별로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뿐이다. 허망하지 않은가? 셋째, 나는 안철수가 정치 개혁을 주된 의제로 들고나온 이유를, 그가 결국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의 지지자들은 정치가 잘못되었으니 바꿔 보라고 한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다 나쁜놈들이라고 아우성을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를 바꾸는 것인가? 물론, 그 지지자들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안철수에게도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대통령이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국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대통령의 일이라면 대통령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옵션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의제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입장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반대하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정체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 대신 "국민의 뜻"을 내세우는 사람이 주요 후보군 중에 두 명 있다. 안철수와 박근혜. 두 명의 공통점은 자신의 지지층을 흔드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데 있어 박근혜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40% 이상의 굳건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안철수는? 그는 자신의 지지층을 흔들지 않기 위해 구태 정당 민주당에 대한 공세적인 단일화 요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에게 그런 모험을 삼가게 할 만한 굳건한 지지층이 도대체 있기나 한가? 자신의 지지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달을 하는 정치인이 과연 정치 개혁을 주창할 수 있나? 지성, 의지, 행동. 물론, 다 똑같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안철수에게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덕목들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모든 것을 건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에는 자신의 지지층도 포함되어야 한다. 안철수는 정치 개혁을 한다고 한다. 그 정치 개혁의 대상에는 자신의 지지층을 포함한 일반 국민도 속해야 한다. 왜 개혁이 어려운가?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개혁 대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공학적으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한나라당이 어떤 구태를 저지르건 강력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언제나 제1당, 못해도 제2당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치 상황에서 국민을 염두에 둔 책임 정치의 싹이 틀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일 것이다. 이런 정치 상황에서 검찰이 여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조직 보호에만 몰두하는 현상(검경 수사권 갈등)들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 안철수씨, 이런 상황을 어떻게 혁파할 것인가? 국민의 뜻에 따른다? 넌센스!
3. 일요일 비비씨에서 썬데이 모닝 라이브를 보았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가 주제였고 핸드폰 여론 조사 결과 55% 정도가 그 공격은 정당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가자 지구 출신의 한 언론인은 프로그램 내내 격분해서, 이스라엘 민간인이 그동안 수십 명 죽었다면 가자 민간인은 수천 명 죽었다고 외쳤다. 뉴스를 보니 오바마가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었다. 그냥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스타벅스가 유태계 자본인가?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 스타벅스를 가지 않을 테다. 그동안 스타벅스를 거의 가지 않기는 했다. 커피 맛이, 예를 들면 네로보다도 떨어졌고, 종이컵을 너무 많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려는 노력을 간간이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런던이나 파리의 제국주의의 흔적들(거대한 석조 건물들) 앞에서는 늘 시니컬한 기품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여름에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스톤헨지에 갔을 때 나는 이런 말을 날렸다. "이건 지네거겠지? 이렇게 무거운 걸 훔쳐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썬데이 모닝 라이브에서 중립적인 입장의 한 언론인은 이렇게 말하더라. 아랍이고 이스라엘인이고 다 똑같이 생겼다. 그냥 보면 구별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반목하는 건 다 정치인들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 혹, 그 지역에 거대한 분쟁의 씨를 뿌리고 그 분쟁의 댓가로 이득을 취한 그대들의 존경받는 정치인들 때문은 아니고?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이 아니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