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의 이념 -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에드문트 후설 지음, 이영호 이종훈 옮김 / 서광사 /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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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이렇게 적고나니 스스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입문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 때 동기가 읽고 있던 책을 물물교환을 통해 입수한 후, 책 두께가 만만해 보이길래 한달음에 읽어내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이해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현상학의 이념>과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번역해 묶은 것이다. 이렇다는 것도 이 번에 책장 구석에 낑겨있는 것을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살펴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현상학의 이념>은 이미 여러 판본으로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한국어 판으로 다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현상학의 이념>은 후설이 현상학적 환원을 주제로 강의한 것을 묶은 것이다. 내가 만약 후설의 저 강의를 당시의 강의실에 앉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설에게 넘어갔을까? 그에게 설득되었을까? 아마 두 가지 태도를 보였을 것 같다. 우선, 환원을 통해 절대 순수 영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기괴한 생각이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그때에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원을 통해, 제5강에서 특히 잘 드러나듯이, 어떤 광대한 탐구의 영역이 새로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감할 정도로 그 당시의 내가 우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우둔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후설에게 설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환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환원을 실재(reality)에 대한 주체성(subjectivity)의 기여 부분을 측정하는 한 방편으로 간주했을지도 모른다. --- 지금의 내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은 이번에 이 한국어판으로 처음 읽은 것이다. 전혀 예기치 않게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 아마 철학에 대한 나의 생각, 고민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들 중에는 스피노자를 마지막 철학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삶과 동행하는 것으로서의 철학은 스피노자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칸트나 헤겔은 철학 교수, 혹은 철학 전문가이지 철학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철학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런 것이 혹 있다면, 시야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른바 테크니컬한 철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설은 세계관으로서의 철학과 엄밀한 학이라는 이념으로서의 철학을 구분한 후, 전자에 십분 동의하는 가운데, 후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내가 느끼기로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저작에서 저자의 인격, 고민, 고투가 독자의 가슴으로 이렇듯 곧장 와닿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후설의 이념에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설의 진정성, 그 울림은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나의 가슴에 남아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네덜란드의 고흐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들 앞에 섰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도대체 그 그림 조각들이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 고흐의 삶, 고흐의 동생 테오의 삶, 그리고 테오의 부인의 삶의, 고민, 오해, 갈등, 사랑, 고단함, 결단들의 종합으로 지금 거기에 고흐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는 그 사실 말고 무엇이 예술 작품의 존재를 지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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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2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클리 님 오랜만입니다!!
이 책 저도 있어요!! 근데 번역이 좀..
그래서 읽다 말았습니다요..ㅎㅎ

설 연휴 잘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셔요~~

weekly 2023-01-22 04: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야무님, 오랜만이예요! 아직 절 기억하고 계시군요.:)
야무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건강하세요!
올해도(야무님), 그리고 올해는(저), 책을 많이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3-01-30 1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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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0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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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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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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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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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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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 0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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