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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꾸는 파업
장석준,김덕련 지음 / 이후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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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전지구적으로 관철되는 최근의 현실에서 파업을 논한다는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계급문제와 착취와 그것의 극복으로서 노동자들의, 혹은 전 민중의 직접행동으로 단지 경제의 요구에만 머무르지 않는 대안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논하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동안 노동자, 민중들의 직접행동에 대해 고찰하며 체제극복을 바라는 현제의 '좌파'가 인식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노동자들의 축제로서의 파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극적으로 사고하기 위함이다.

논의가 깊지못하다. 단지 신문의 기고문으로의 한계라 한다면 차라리 객관적으로 각 파업 당시의 상황이나 조건들에 더 치중하든지. 문제의식의 정리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파업당시의 상황과 이러저러한 논점들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고, 결론내지도 않고, 그리고는 '이 책을 보라'고 참고서적을 써놓는다. 결론적으로 논점이 뭔지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면 잘 알수 없다.(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참고서적은 절판된 것들이다.)

파업자체에 대한 논문을 쓰고자 한것이 아니라 20세기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났던 파업들에 대한 소개라면 좀더 사실정황을 전달하는데 노력 했어야 옳다. 대중들의 파업은 그 하나하나의 상황만 제대로 알아도 충분히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제 21세기에는 어떤 파업들이 노동자대중의 환호속에 우리를 기다리는지 기대할 것이 아닌가. 그러한 역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지는 독자의 몫이고. 아무도 말하지 않은 '파업'의 긍정성에 대해 말하며 20세기의 파업들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으로 의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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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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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다. 일본에서 태어나 차별받으며 민족에 대한 자각을 하고,'적극적 민족주의'를 인식하며 그 애정으로 유학을 와서 형 서승은 19년, 동생 서준식은 17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20대에 감옥에 갇혀 40대에 세상으로 나왔다. 난감하다. 젊은날을 온전히 감옥에서 폭력과 폭행을 당하고 살았으면서도 세상에 대해 비관한다거나, 누구를 원망한다는 느낌이 없다. 심지어 고문을 했던 사람과 폭행을 했던 천박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남다른 성품도 있겠지만, 비전향 장기수들이 대부분 그러하게 느껴진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에 의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생존의 위협을 일상적으로 받으며 짐승처럼 살았지만, 또한 세상 어디에도 그만한 공간에 그만한 품성과 인격과 열정을 지닌 인간들이 한꺼번에 많이 가깝게 지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서로 존재에 희망을 걸고 있었겠지. 그리고 서로서로 사상과 정당성과 용기와 지혜를 나누며 누구보다 정의롭게 버티어냈겠지.

정말 그랬을까? 모욕적인 폭력에 방치되어 죽고싶을때를 경험한 그들에게 역사는 어떻게 보상할까. 어머니. 두형제의 어머니 또한 일본에서 살며 두달에 한번씩 감옥을 면회하는 마음은 또 어땠을까. 네가 생각해서 판단하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어머니는,아들의 얼굴이 화상으로 일그러지고, 사형수가 되고, 폭행을 당해 죽어가는 아들을 감옥에 둔 어머니는.

우리는 참 강심장이다. 감히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은 말할것도 없고. 옳바르지 않은 것을 태연히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참 강심장이다. 절제되고 냉정하며 객관적인 말투로 19년 동안 비전향장기수로 살면서의 개인적인 것 뿐 아니라, 그 세월을 함께 살아낸 다른 분들에 대한 표현들도, 모두 정성으로 씌어져 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느껴진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우리의 현대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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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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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젊어서의 한량이 온갖 풍파뒤에 노인이 되어 손자와 함께 소를 몰고가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기억된다. '병아리는 닭이되고 닭은 염소가 되고 염소는 소가된다.' 그 다음이 뭐냐고 묻는 손자에게 잠시 생각하던 노인은 '그 다음은 사회주의지'하고 웃으며 명쾌하게 말한다. 위화와 장이모는 모두 세상을 깊이, 따듯하게 보는 눈을 갖었다. 위화는 낮은곳에서 엄살떨지 않으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가 빠졌다. 그들의 삶이 너무 허무하다.

머리말에 보면 위화의 작가론이 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고상함을 드러내보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한 고상함이란 그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위의 초연, 선과 악에 대한 동일시이며, 동정의 눈으로 세계를 대하는 것이다.' 다 좋은데, 선과악에 대한 동일시를 동의할 수 없다. 옳바른것과 옳지않은 구분이 없어지는 순간, 세상은 허무해지고 희망이 없어진다. 선과악에 대한 동일시는 옳지 않다. 오히려 한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므로 개성적인 한인간과 그 주변의 조건들이 그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애정을 갖고 볼 수는 있겠다.

위화가 못가진 한가지를 장이모는 갖었으니, 아름다운 이야기의 마지막에 뚝심과 배짱으로 희망을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이라는 듯이. 그러나 노인의 주름진 얼굴과 선량한 웃음 위로 가볍게 나오는 사회주의라는 말은 긴세월 중국인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 역사를 넘어서는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위화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위선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는 배짱과 패기가 없다. 위화보다 장이모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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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나랏말쌈 7
박지원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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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시대의 양반을 생각하면 고리타분하고 형식에 치우치고 갑갑하고 권위적이고.....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반성. 반성. 박지원은 호기심 많고 진지하며 유쾌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던 사람이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고, 세계여행이 자유화되었지만,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개방적이며 열린사고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외세의 것을 받아들일때 그 쓰임이나 핵심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오히려 내가 편협하다.

그는 말을 타고, 그의 하인들은 걸어서 중국 여행을 한다. 시골촌닭이 화려한 중국의 마을들을 여행하며 무엇하나 놓지지 않으려 열심히 고민하고 쓴다. 성실하게 깊이있게.
번역이 잘되어 그럴까. 글을 참 잘쓴다. 문장의 흐름이 막힘이 없으며 간결하고 그래도 할말은 다하며, 조선시대 양반의 유머.굳이 민족의식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리스로마신화는 한번쯤 읽어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문학적 생산품들을 음미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박지원의 인용들 중에도 중국의 것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문학은 참 오래동안 천대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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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이야기
이이화 / 역사비평사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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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10년쯤전에 이 책을 봤었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지만, 과거 한시대를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그전에 역사는 주로 왕들의 역사였고, 중요하고 잘난 사람들은 따로 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고민하며 열심히 시대를 살아간 한 인간의 이야기는 소설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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