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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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끼다가 오래간만에 미미여사를 들었다.
작년에 읽은 호와 우사의 에도시대가 아직도 생생하다.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다.
독서삼매경 ^^*
미미여사가 있어 행복한 순간이다.  


2.
오하쓰와 우쿄노스케 한쌍은 썩어울리는 탐정팀이다.
보통 여성과 남성을 한쌍의 탐정으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밝고 명랑한 오하쓰와 순하고 머리회전이 빠른 우쿄노스케.
진취적이고 활달한 여성과 잘 보조해주는 속깊은 남성

미미여사의 탐정스럽다.

착한 사람들의 씩씩한 이야기. 
외딴집에 비하면 소품.
유쾌하니까 머리식히기에는 좋다.

오하쓰의 두번째 시건기록부를 기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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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희망입니다 -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아름다운 약속
자이납 살비 지음, 권인숙.김강 옮김 / 검둥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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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은 학살이고 강간이구나, 내가 모르는 전쟁이 지구촌에 이렇게 많구나.  
어쩌면 전쟁과 학살이 이렇게 쉬울까.

전쟁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
눈 똑바로 뜨고 들어야할 피해자들의 이야기
여러대목에서 참담하고 마음아프다.  

원인을 알수없는 난폭한 폭력에 아무때나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두려움이다.


2.
유엔이 '평화'를 위해 뭘 하기는 하나?
'유엔 평화유지군'은 평화가 있을때만 유지하고 학살이 시작되기전에 내빼는 구만
혹 어딘가에 점령군의 이름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3.
자이납 살비의 아버지는 이라크 사담후세인의 전용기 조종사였단다.
1990년대에 이라크를 탈출해 미국으로 왔다.  
어린 시절을 대통령 궁에서 보낸 그녀는 '세계여성을 위한 여성'을 조직했다.
전쟁과 학살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운동에도 돈은 필요하니까.

그녀들 에스페랑스, 마리, 루시아, 밀카, 파타.....들은 모두
전쟁을 만나 끔찍한 경험을 하고 황폐해 졌다가 세계여성을 위한 여성의 후원으로 이제
재활이 되고 희망을 갖고 씩씩하게 살고 있다.

음---, 불쌍한 그녀들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너무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들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 대해나눈다는 느낌보다는
자이납 살비의 세계여성을 위한 여성 홍보 팜플릿을 위한 샘플들로 소개되는 느낌이다.


4.
주로 미국의 후원자들이 세계여성을 위한 여성을 후원한다.
좋은 일이다.

2차대전후 지구촌의 전쟁은 어느지역이든 모두 미국과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든 배후를 조종한 전쟁이든, 그렇다는 거다.

부디, 미친 전쟁을 더이상 하지말라는 반전운동도 외면하지 말길 바란다.

전쟁이 일어나 다 파괴하고 학살하고 강간한후 고통스런 시간이 지난후
평화협정에 싸인을 한 후에 돈을 들고 찾아가
여성들을 교육하고 돈을 빌려주는 것만 하는것이 아니라

전쟁, 학살과 강간, 그 짓을 더는 하지 말라고 당신네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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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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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교수님의 겸손함에 힘이 있습니다.
'헌법의 풍경'에서 이미 그점에 대해 쓴바있습니다.  

당췌 알아듣지 못할 말로 사람들 기를 죽이는 법원은 정말 재수없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판사는 못나고 멍청한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알아듣지 못할말로 망가뜨릴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과시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두식 선생님은 귀담아 듣지요. 그리고 알기위운 말로 알려주지요.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희망이 없답니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지난겨울 용산에서 학살당한 철거민들과 관련한 재판의 쟁점은
검사가 공개하지 않는 3000페이지 입니다. 
변호사가 요청하는 사건 조사자료 3000페이지를 공개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분리하다고 판사가 공개를 명령했지만 검사는 듣지 않았습니다.
아직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대목에서 저는 검사들이 스스로 하는 일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을 조사하고 그 사실에 기반해서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이 상식인데

'사람을 학살한 경찰' 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숨기며
누구를 위해 봉사하며 법을 집행하고 있는 걸까요.  
용역깡패와 한편이 되어 법을 집행한답시고 재벌을 위해 철거민을 죽인 경찰의 편에서
검사들은 법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리면 시민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하죠.
지네가 힘이 세니까 알아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징역사는 철거민들은 쫓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죠.

판사도 그렇죠.
검사에게 좋은말로 공개하라고 했는데 공개안하고 게기니까 그냥 넘어가네요. ㅎㅎㅎ
검사가 원하는 자료를 시민이 주지 않으면 검사는 영장청구해서 집과 자료를 다 뒤지고
개인정보를 지마음대로 검색하고 공개하고 구속시킨답니다.

그런데 시민이 요구하는 정보는 안주고 싹 씹네요.
저는 이런 검사와 판사들이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참많이 없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것들이 나중에 대법관되고 뭐 권력의 핵심에서 힘자랑하며 지들끼리 잘먹고 잘살자는
천박한 욕망으로 살며 잘난척을 할테죠.

이런상황에 바른말하는 검사나 판사들의 목소리를 저는 못듣는 답니다.
그런 검사나 판사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것이 죄가 되는 시대를 지키기 위해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천박한 욕망을 저는 용서할수가 없답니다.


3.
철거민에게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에게 장애인들에게 여성에게
이른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법은 매우 폭력적이랍니다.

정의의 실현이란 한쪽으로 치우치는 권력과 부를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한쪽으로 독점화된 권력의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부자들에게는 아부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호통치는 법은 치사하고 재수없습니다.


4.
이런상황에서 소통을 희망이라고 김두식 선생님은 말하시네요.
좋은말로 잘 얘기해서 바뀔수 있다는 김두식 선생님의 그 착한 철학을 존중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러면 정말 좋겠어요.

그래서 천안검찰청앞에서 용산에서 감춘 3000페이지 공개하라고 1인시위도 한답니다. ^^* 
소통할려구요. 속이 터진답니다.

이런상태에서 소통할려면
강제로 그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안듣는 다니까요.
가난한 것이 죄인걸 어쩝니까.
돈이 없으면 재벌이 재개발하는 용산에서 살아온 30년을 뒤로 하고 닥치고 떠야지요.
어디로 갈건지는 알게 뭡니까.
대한민국 법은 가난한 사람의 집을 빼앗은 적은 많지만 가난한 사람의 집을 찾아준 적은 없거든요.
중립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부자편을 들어도 최소한의 합리나 투명함은 있어야 말로 잘해보지요.


5.
김두식 선생님이 말하시는 희망, 소통을 위해서라도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혹은 선생님이 말하시는 소통은 '혁명'으로 가는 길이 되어야 겠죠.

요 혁명이 빠지면 선생님의 진지한 문제의식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신성가족은 '원만한' 책이 된답니다.


6.
이제야 다 읽고 씁니다.
착한 철학, 좋은책 감사합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읽어 우리 법이 야만적인 야수의 얼굴을 버리는데 기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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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10월 만도기계 문막공장으로 입사했던 전부호씨는 입사 17년차로 위니아만도에서 일하다가 얼마전 98년에 이어 두 번째 정리해고를 당했다. 전부호씨에게 들었다.

군제대후 부여에서 농사짓고 있는데 “독신 아들이 농사지으면 어쩌냐”며 어머님이 수소문해서 동네형님이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만도기계에 입사했다. 기계가공, 조양사업부로 입사해 핸들과 바퀴의 축을 연결해주는 자동차 부품을 조립했다. 잔업특근 120시간을 한 후 받은 첫월급이 90만원 정도, 당시에도 주야간 맞교대 였고 같은 공정에 14명이 일했다.

처음에는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다. 부품들고 가다 기름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져 손가락이 다쳤는데 산재고 공상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다치고 나니까 일하기 싫어서 회사에 말도 안하고 집에 가버렸다. 동네에서 난리가 나고 그러거나 말거나 회사 때려치웠다고 놀고 있는데 2주쯤 후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왔다. 회사에서 관리자가 집으로 찾아오고, 어머님이 회사에 안가면 당신이 집 나가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회사에 다시 갔다. 말썽많은 놈이 노동조합 해서 사람된거다.

사람들은 그때보다 지금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이 말하지만, 내느낌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현장의 일하는 조건은 비슷하다. 바닥에 기름이 많고, 늘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 현장이고 작업복이고 기름때가 묻어있는 것이 익숙하다.

94년 여름에 야근하면서 깜빡 졸고 있는데 그당시 직장이 와서 “너 아산가라.” 그래 일하면서 “아산이 어딘데요?” 하니까 “충청도에 있다.” 해서 집이랑 가깝구나 해서 잠깨자마자 바로 가방싸서 옮겼다.

언제부터 노동조합을 알았냐면 아산공장으로 와서 코일반에서 일했는데, 김창한 위원장 시절인데 전환배치를 가장많이 당한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코일반의 그많은 공정들을 7,8번을 옮기며 안가본 공정이 없다. 

 나중에는 화가났다. 그래서 못가겠다고 했다. 프레스쪽에 마지막에 있었는데 그때 버티면서 싸우고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했다. 대의원이 되었냐고? 떨어졌다. 떨어지면 뭐 어떤가. 그때부터 현장활동도 하고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고 아산공장에 현장모임도 있었다. 거기 활동도 했다.

98년에 처음 정리해고 됐을때의 느낌은 “왜 내가 해고되어야 하나?” 였다.
당시 노동조합 간부였던 형님들이 무조건 버티라고 해서 버티다가 어느날 보니까 나혼자 남아있더라. 대부분이 투쟁 과정에서 희망퇴직 쓰고 나갔다. 최종적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서 복직 합의된 사람이 14명이었다. 

2009년의 정리해고가 98년의 정리해고와 다른점은, 우리는 투기자본 문제를 이미 2001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다. 처음에 딤채가 매출이 늘어날때는 몰랐는데 외환은행을 비롯한 투기자본 문제가 신문에 나고, 우리회사도 그렇다는 것을 2001년에 이미 알았다.

두 번째 정리해고 당한 후의 느낌은 ‘회사가 순서대로 하는구나.’ 어차피 올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투기자본이란 단물 다빼먹고 마지막에는 인원조정해서 한번더 빼먹고 망하든 말든 내빼는게 투기자본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나는 해고자 명단에 들어가서 싸우는 것이 우리 투쟁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해고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투쟁하며 좋았던 것은 명단발표 후에도 조합원들이 스스로 머리띠 묶으며 열의를 확인하며 함께 했다. 그때가 가장 좋았고 시간이 흐르며 이탈하는 조합원들이 생겨서 마음이 아프다.

4월 16일 집행부에서 43명의 우선 복직을 합의했다. 조합원들은 불안하고, 50명의 남은 조합원들은 어떻게 할건지. 일단 정리해고된 93명이 모두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위원회(정원투)’를 구성해서 전원 복직까지 함께 싸우기로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솔직히 43명은 온전히 복직될지도 불안하고 나머지 50명 포함해서 전원복직 요구하고 싸우면 지금까지 위니아는 비정규직이 없었는데, 식당, 경비 포함해서 현장의 라인까지, 전원복직과 비정규직 받는 문제를 바꾸자고 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살자고 비정규직을 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뭉쳐서 싸워야 하는 것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수로 회사가 공격해 올지 예상하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는데 어려운건 사실이다.

지금 현재의 정원투 동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흔한말로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그런말처럼. 집행부역시 잘못된게 있다고 조합원들이 말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들의 정당성만 말하면 오히려 조합원들과 멀어진다.

금속노조 충남지부와 지역동지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모두 끝나지 않은 투쟁이라고 말하는데, 끝나지 않은 투쟁 힘차게 하려면 지역 총파업을 염두에 두고 위니아뿐 아니라 여러 사업장의 요구를 모으면서 지역 총파업을 준비하며 투쟁을 조직했으면 좋겠다.

제일 힘들때는 새끼들 볼때. 7살 4살이다. 형수님소개로 결혼했다. 아내는 열심히 싸우라고 한다. 아내에게 쪼끔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믿고.

고등학교때 내꿈은 고물상을 하는거였다. 그냥 공터에 온갖 물건 모아놓고 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지금은 힘 닿는 대까지 이 공장에 다니다가 퇴직한 후에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든지, 크레인 자격증있으니까 쪼그맣게 사업을 하든, 그러고 싶다.

다시 복직할 수 있을까? 조합원들이 두 번 정리해고 되었다고 놀리면 “야구에서도 세 번 스트라이크여야 아웃인데 이제 두 번 정리해고 되었다. 다시 복직되면 10년후에 정년퇴직하기 전에 한번더 정리해고 되는 것이 가능하다.” 고 말하고 웃는다.

언제, 어떻게 복질될지 어떻게 알겠나. 93명 원직복직될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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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사토 다다오 지음, 설배환 옮김, 한홍구 해제 / 검둥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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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홍구의 해제가 명쾌하다.
한국현대사에 대해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해 '소년병'은 '노년병'이 되도록 전쟁을 반성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그의 통찰에 나는 동의한다.
나에게는 부끄러움 보다는 짜증이다.
전쟁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도 파병을 주장하는 노년병들의 파렴치함이 싫다.


2.
전쟁에 대해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역사의 인과관계를 밝히려 한다.
솔직하다.
평화교과서, 중학교 쯤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지만 먼저
노년병들이 읽고 반성하면 좋을텐대....

전쟁 사회심리학.
군국주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사토 다다오가
스스로 반성하고 고민한다.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평화의 길이 진지하고 솔직하다.

어려운 정치경제학의 용어로 말하지 않고
경험한자의 솔직함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낯설지 않다. 
 

3.
그리하여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은 본래 타인을 도와주는 것을 즐긴다는 관점의 신념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약한자를 괴롭히는 것이아니라
공부를 더 잘해서 약한자와 약한나라를 돕기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철학의 착한 단순함.
이러한 착함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
이것이 힘이다.  

나는 이문장도 참 좋다.
"사람이 지닌 저마다의 뛰어난 능력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도울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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