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세영 - #너에게_말하는_대신_시로_썼어
김세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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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말이지만

항상 생각하곤 해
너의 이름이
사랑이었다면,

예쁘다는 표현을
이 세상에서
너한테만 쓸 수 있다면,

흔한 표현이지만
마음은 흔하지 않기에
예쁜 너를 나는 사랑해

 

 시쓰세영은 시집인가?

 

 근데 이거 쓰면 다시 내가 일하는 곳은 동네서점인가?로 돌아가는데...
 게다가 왠지 자꾸 시쓰세영이 시집이 아닌 이유를 위주로 찾게 된다. 아... 복잡해지네.
 김세영 님은 나한테 모든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치만 내가 시를 쓸 수 있나? 그리고 시와 글의 차이는?
 소설가와 작가의 차이인가.
 내가 뭐 읽어보시집 같은 책들을 즐겨보는 것도 아니고 되려 현대시 미래파 시들을 즐겨 보는 편이다만 가끔씩 보면 좋은 걸 알고 있기에, 최대한 사랑시집 같은걸 구석에 들여놓고 시를 찾는 고객들에게 말한다. "이게 시집 코너입니다. 시에요." 난감한듯 안색을 찌푸리며 좀 더 고급스런 시를 원한다고 말하는 고객들을 보면 나도 속상하다. 알고 싶어진다. 왜 이들은 제대로 시 취급을 받지 못할까? 읽기 쉬운 시들을 좋아한다면서 왜 시쓰세영은 시집이라고 부르기 꺼려할까? 다시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째 '그들이 말하는' 시란 무엇인가? 로 되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많다.

 

 이 책을 보다보면 일단 한남들이 연애에 너무 매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마치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도 없는데 솔로인 게 싫어서 어떤 여자와 사귀자고 해놓고 카톡도 별로 주고받지 않다가 다른 여자가 생기면 헤어지는 경우를 최근 너무나 많이 보았다. 낭만주의 귀족들이 아! 내가 사랑에 빠졌다니! 사랑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에서 배덕감을 느끼니 내가 이렇게 그리스 영웅 같다!라는 자뻑에 가까웠다면, 한남들의 그런 특유의 행동은 사회적 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도 뭣도 아닌 가장 최악의 케이스로 보고 있다. 일단 (이성애를 하고 있다면) 남자는 사귀는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은 소시민의 연애를 강조한 데서 현실을 드러내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강조하느라 문학적 깊이가 너무나 얇게 드러났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수준이 낮아지면, 자본주의라는 달콤한 꿈에게 쉽게 지게 되고, 그저 공장에서 찍어낸 인간이 되어 살 수밖에 없다. 확실히 애니메이션에서도 일상물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판타지도 중세 영웅들이 현대 사람들의 일상에 감탄하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현대 문명에 그렇게 감탄하기만 할까?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아무리 내세워봤자 점점 비참해질 뿐이라는 걸.

 

사랑한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하루를 마감하며 나는 기대했어

너와 시시콜콜하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5분에 한 번, 10분에 한 번

성의 없이 오던 그 답장들

 

나에 대한 귀찮음과

나에 대한 무관심을 말해주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에 사랑하냐고 물을 때면

언제나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너

말론 사랑한다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은 너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단 걸 나는 알아

항상 니가 하던 말처럼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항상 니가 하던 말처럼 나를 대해주길 바래

 

 

 

 

 

사랑을 하면 좋다. 몹시 좋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삶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고칠 생각을 하지 말고 당장 걸러내야 하고, 집안의 반대가 심하다거나 그 집안이 나와 인생 설계가 맞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성애의 경우) 남자 쪽이 굉장히 똑똑해야 한다. 세상에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다가 병 걸려 죽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들리지 않은가. 근데 정말 과학도 발전했다는데 인간관계 해결해주는 로봇은 왜 안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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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키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332
신대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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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중에서

2. 바이칼에선 누구나 한 영혼?

우리는 허공으로 숨 몰아쉬고
높은 데로 오르고 오르다가
수심으로 푸르게 숨쉬다가
그대 눈으로 알혼 섬을 보고
내 눈으로 후지르를 생각하고
한 영혼이 되어 호수를 건넜습니다.

 

 

나름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겪은 건 학창시절이었는데, 그 시기가 끝나갈 무렵인 고3시절 팬픽을 쓴 적이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하보로이 커플 중심 BL소설이었는데, 전쟁 이야기였다. 나는 내 빈약한 상상력을 넘어 가장 끔찍한 전쟁 장면을 그려내려 노력했었다. 결국 졸작이었겠지만 당시 쓴 많은 팬픽 중에서 그나마 무난한 작품으로 통했었다. 다른 팬픽들은 개그물만 제외하면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당사자인 나만 알고 있는 내용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처음 시 부분에서는 잘 티가 안 난다. 약간 난해하지만 평범하게 러시아를 여행하는 이야기로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의 군데군데마다 죽음의 분위기가 어려 있는 건 숨길 수 없었다. 평온하고 따뜻한 벌판에서 잔혹한 전쟁이 펼쳐졌을 때 군인이었던 시인은 그 언밸런스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달아나듯이 춥고 거친 황야로 뛰쳐나온 그는 자연의 척박함에 자신을 온통 맡겨버린다. 아주 늑대소년이 되어버린다. 그의 마음 속에 물이 차오를 때였던가. 그는 신나게 자연을 예찬하는 시를 쓴다. 그러나 인간일 때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고 속박되어 있는 그는 자꾸만 자연을 사람으로 본다. 다시 과거의 사람을 찾고 싶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제대로 부르고 싶어 알래스카 벌판에서 천지를 부여잡고 백두대간을 미끄러져 내려가 한계령에 걸터앉았다가 지리산을 향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러시아에서 배운 주문을 읊는다. 아이두세 요하르 아이두세 헤이부룰라. 기적같이 그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번은 전의 독에 가득찬 회상과 다르다. 기억 속 영혼들은 시인을 빙 둘러싸고 강강술래 춤을 추며 정화된다. 이 시는 PTSD를 극복하는 과정이며, 또한 늑대아이가 늑대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집 자체가 대형 서사시다.

 그러나 영혼들이 모두 떠났을 때 그의 마음 속에 소년만 남은 건 아니었다. 전쟁에 마음이 쪼글쪼글 말라붙어 전쟁이라는 현실 생각밖에 없던 시인. 그의 마음에 물이 차오르고 젖어들자 돌연 할머니가 나타난다. 할머니는 벌하고 꽃한테만 일 시키지 말고 골도 파고 물도 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페미니즘이 뭐 별건가. 남자들의 전쟁과 피로 얼룩진 과거를 용서하고 여성들이 대신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겠다는 사상이다. 그 사상은 할머니의 눈주름을 타고 내려 시인의 아내에 이르고 또 그 다음 딸이나 며느리로 계속 이어지리라. 그리고 그들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사이라는 훈훈한 시 두 편에 들어있었다. 내가 시에서 받은 기타 느낌들은 죄다 황광수라는 사람이 시집 뒤 평론에서 썼다. 제법 솔직하고 뛰어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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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의 목록 -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불온한 시 따뜻한 시
안도현 엮음 / 걷는사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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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최세운

흰 말들이 달려 나갔다. 오르간은 비어 있었다. 라라는 예배당 가운데에 앉아, 달리는 말들을 세고 있었다. 말들이 사람들을. 차례차례 밟아 쓰러뜨리는 것을. 라라는 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라라는. 긴 호수가 되고 있었다. 라라 옆에서 라라가 말을 했다. 강림을 알리는 차임벨은. 확고해간다. 성전의 커튼은. 죽은 이교도의 튜닉을. 떠오르게 한다. 라라 옆에서 라라는 들었다. 성호를 그으며 사라지는. 놀이터와 수몰된 마을과 비대칭이 되는 망루를. 사람들은 라라가 펄럭거리지 못하게. 손목에 밧줄을 감았다. 교부가 줄을 당겨 거대한 향로를 흔들 때. 라라가 노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귓속에서. 모래가 흘러나왔다. 라라는 죽지 않는 라라. 라라는 죽지 않는 라라. 라라를 처음 본 것은 손등이었다. 창밖에서. 해변의 윤곽들이 재로 질 때. 라라는 춤을 추었다. 라라는 폐가의 창문. 라라는 생크림. 라라는 웃고. 라라는 벽에서 들린다. 믿음에 가까이 있거나 황홀경에 휩싸인 칼과 포크를 쥐고서 흘러내리는 낙원. 라라는 껍질. 라라는 화산재가 쌓이는 복도. 얼굴을 쓸어내리는 목동. 혹은. 목공. 믿음에 가까이 있거나 황홀경에 휩싸인. 라라는 단 위에 서서.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매만졌다. 라라 속에서 눈이 그쳤다. 흰 말들이 강대상을 돌아. 차례차례 사람들을 밟아 쓰러뜨리는 것을. 라라는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불을 당겨 내가 정신없이 태워질 때. 나는 라라의 이름을. 불렀다.

  

이 책이 지어진 계기는, 지금은 누구나 알겠지만 블랙리스트로 시작되었다. 문단계에 정치와 관련된 모임에 참가했거나 수상한 어조로 시를 짓는 문인들의 이름이 정부에 리스트로 올려져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다들 설마했지만 전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이 JTBC 사장에 의해 끄집어내지면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리스트가 상세히 공개되면서 분노는 극에 치달았다. 자신도 그 리스트에 끼워 달라고(...) 조롱하는 가수들이나 아마추어 문인들도 반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몇몇 여성에게 추행을 보여 쫓겨난 문인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에 꽉 차있기 때문이었다. 금지된 것일수록 더욱 맛나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문제는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여성에게 추행을 저지른 문인이 낄 만큼 리스트가 너무나 방대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유명한 어느 시인이 이 시집을 편찬했다는 말을 듣고 구입하기를 조금 망설였다. 너무 메이저한 책이 아닌가. 그러나 생각보다 메이저하진 않았다. 지역 특색이 보수적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밖에서 들고 읽으면 유독 사람들의 시선이 책등과 내 손등을 쿡쿡 찔렀다. 아버지에게 회식 때 말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받았던 시선보다 어찌보면 더 노골적이었던 것도 같다.

 책을 펴보면 독자들의 기대대로 시국을 걱정하는 우울한 시들이 많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확 깨뜨리는 시도 많다. 예를 들면 박찬세 시인의 시를 들 수 있다.

 

엄마의 초경

박찬세

열두 자식 중 열하나를 땅에 묻은 외할아버지는
하나 남은 엄마마저 열여덞이 넘도록 초경을 하지 않아서
말수 대신 술만 늘어갔다고 합니다
엄마가 초경을 하던 날
외할머니는 신발도 못 신고 외할아버지의 방앗간으로 달려갔다고 하는데
소식을 들은 외할아버지는 나르던 쌀가마니를 내던지고
친구들을 불러 술을 사셨다고 합니다
그날 꽉 취한 외할아버지는 붉게 물든 얼굴로
돼지고기와 브래지어를 양손 가득 사오셨다고 합니다
모든 게 더디기만 한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맞지도 않는 브래지어를 채워주셨다 하고
엄마는 그때만큼 맛있는 고기를 지금껏 못 먹어봤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의 제삿날이면 절을 하는 사 형제를 보며
엄마는 엄마의 초경 얘기를 하고 또 합니다

 

박찬세 시인은 파문 팟캐스트 방송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남들은 다 욕해도 나는 좀 동경했음 ㅋㅋㅋ 미치려면 저렇게 작정하고 미쳐야지.

 

 아무튼 박찬세 시인도 세월호와 관련된 시를 써서 올린 적이 있다. 그 자신은 기발했다고 생각했던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그 시를 읽으면서 살짝 지루함을 느꼈었다. 딱딱함까지 느껴지는 그 시는 박찬세 시인 특유의 끼가 없었다. 이 책을 편찬한 시인도 그렇게 생각했던지, 그의 시 중 가장 재밌던 부분이었던 '가족의 역사'와 관련된 시를 올렸다. 이런 의외성이 독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다음에 나올 시를 기대되게 한다. 아직 자신의 시집을 내지 않은 신인들의 시가 많은 것 또한 이 시집을 읽는 즐거운 요소 중 하나다.

 그러고보면 박찬세라는 시인이 참여한 책은 올해의 좋은 시 2011을 제외하고 전부 다 가지고 있는 편이다. 좋은생각이라는 잡지에 연재하고 있다는데 거기에 실린 에세이들은 좀 가식적이다 싶은 게 있어서 항마력 딸리고(...) 아무튼 보지 않는 중이다.
지금 한창 유행중인 황인찬이 나오는 책들은 좀 귀찮아서 중도에 포기했는데 박찬세 시인 책은 꾸준히 모으는 중. 그러면 나는 그 시인을 존경하고 있는건가? 무튼 시집 내셨으면 했는데 여태 소식이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왜 박찬세 씨 이름 검색하면 검은 시의 목록 책은 안 뜨는 걸까...

 

거짓말에 대한 맛

서정원

거짓말에도 맛이 있다
세상 온갖 은어와 말들을 빛깔나는 그릇에 담아 매콤한 맛의 비빔밥처럼 무뚝뚝한 옹기그릇에 멀건 곰탕 국물과 뜨거운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은 후 허무함처럼 찌그러진 깡통에 코를 틀어막고 마시는 쓴 약사발처럼
어찌 거짓말엔 이 맛뿐이겠는가

 

  

꽤나 연세가 있으신 듯한 시인이셔서 죠죠를 알고서 이런 시를 쓰진 않으신 듯하다(...) 그러나 일단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제일가는 명대사와 키워드가 많이 비슷해서 올려봤다.

 이렇게 이 시집에는 시국의 불행한 사태 하나만을 딱 집어서 시를 쓰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정치와 기업의 부정부패, 제주 4.3 사건... 생각해보면 이 나라는 예전부터 바람 잘 날 없었다. 사람들도, 아이들도, 노인들도 많이 많이 죽었다. 단지 지금의 사건이 이전의 수없이 많은 사건들과 같이 덮일 수 없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 같이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뻗어나간 덕분이다. 종편이 만들어져 일정 정도 언론이 국가의 오랏줄에서 풀려난 덕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두운 구석을 굳이 불을 밝혀 보려고 하며 장막으로 가려진 모서리를 굳이 들춰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나는 그게 우리나라 시인들의 특성이라 생각하고,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시의 유행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세상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시가 유행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달하기만 했다면 아무리 집안이 부자라고 해도 사람들이 굳이 돈이 안 되는 시인이란 직업을 그렇게 선뜻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자들이 강제로 역사와 기억을 지우는 게 그들은 어느 정도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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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징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현명하게 사는 법
마티아스 홀위치.브루스 마우 디자인 지음, 한정 옮김 / 청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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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작고 쉬운 행동으로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애물들을 제거한다고 해도, 장애물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평생 원하는 삶을 살려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도 그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30세의 나이에 별 책을 다 읽는다 싶겠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항상 키 순으로 조회할 때 거의 1~2위를 놓친 적 없고 너무 말라서 소말리아 인으로 불린 나로서는 이 나이 자체가 엄청난 성과다(...)

 

 내 혼자서는 맘대로 안 되는 결혼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장래를 정해야 하는 나로서는 미래가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자영업을 하시는 우리 부모님, 특히 최근에 다리 수술을 하신 아버지 또한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절대 은퇴를 하지 말라고 쓰는데, 나도 이 글에 동감하는 바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판단이 흐려지는 건 맞다. 하지만 거기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도 없고, 만일 그건 농사로 어떻게든 때운다 쳐도 돈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분들의 인생을 내가 어찌 해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게 옳다는 게 이 책으로 인해 증명됐다고 할까.

블로그에 서이추를 하더니 자주 접속해서 공감을 눌러주는 출판사가 있었다. 마이너한 블로그에 뭔가 정성을 쏟으시는 게 고마워서 뭐 해드릴게 없을까 출판사를 알라딘에서 검색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건축가가 쓰고 디자인 팀이 일러스트를 그렸다는 말을 듣고 당장 솔깃해서 구입했다. 처음에는 자기계발 이야기가 나와서 가볍게 책을 읽으려는 마음을 갖고 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복지시설 건축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와서 재밌게 보았다. 내용은 적었지만 설명은 꽤 세부적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유지비가 뉴욕에서 달러로 얼마가 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해설 부분에서 아예 서울에서의 자동차 유지비 통계를 설명해주었다. 보통 번역책은 이런 돈 이야기엔 친절하지 못해서, 그냥 뉴욕에서의 자동차 유지비를 원으로 설명해주거나 아예 설명 자체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로 볼 때 세심한 책임엔 분명하다. 출판사의 초심이랄까 열정같은 게 느껴졌다.

 

다만 아쉬운 건 글자가 작다는 점이었다. 여백이 많아서 나는 보기엔 편했지만 우리 부모님 나잇대인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은 잘 보이지 않으셔서 뜨개질 하실 때도 돋보기를 쓰시는 편이다. 심지어 책은 오죽할까. 본래 책의 디자인을 고려하여 그렇게 했다고 생각되지만, 번역은 책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기도 한데... 그 쪽으로는 대담하게 가지 못한 듯하다.

P. S 마지막 글에 관하여 페이스북에서 출판사 직원분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올려본다. 우문을 꾸짖지 않으시고 상당히 현명한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꽤나 으슥한 밤중, 남들 다 자는 시간까지 인상깊은 구절을 페북에 올렸는데 하나하나 좋아요를 달아주셨다.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직원분: 책 사주시고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일인데 이런 훌륭한 리뷰까지 널리널리 알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언해 주신 글자크기 문제는 계속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시니어 독자들도 큰글씨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책의 가독성,꾸밈새 등에 계속 신경쓰겠습니다.

나: 일러스트로 볼때 이 출판사가 겨냥하는 시니어 독자층이 확실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ㅎㅎ 민감한 이야기인데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원분: 요즘은 전자책을 이용하시는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합니다. 글자크기가 조절가능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점점 익숙해 지시면서요. 고맙습니다

 

 

  

 뉴에이징 다이어리북 문답도 작성해 보았다.

 

초반 질문 정도가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고, 내 연령대에 맞는 설문인 거 같아서 답해보았다.
 다이어리북의 질문은 현재 내가 작성한 것 말고도 더 있다.

1. 당신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은가요? 어떤 특별한 일을 하고 싶은가요?
일단 책을 선물하는 일은 집에 너무 쌓여서 과제같은 게 되어 버렸고(...) 40대 되면 그냥 만화와 라노벨 사다 남은 것들과 시집들 몽땅 구입해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 매일매일 아침저녁마다 그것들 읽으면 시간도 빨리 갈 테고.
2. 어떤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면 좋을까요?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5가지를 쓴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노벨문학상 독서모임 만들기
- 동남아 등 해외 여행
- 매장의 책 떨어지는 곳들 모조리 자석으로 붙이고
- CD 진열대에 포스터 받아가는 곳 안내판 붙이기
- 위스키 마셔보기

3. 올해 가장 경험하고 싶은 10가지
- 굿모닝팝스와 이근철의 try again 꾸준히 공부, 지역 녹색당의 보존, 번지점프, 대전 놀이공원 가기, 진해 벚꽃 보기, 풍경화 그리기, 도의 다른 시에 있는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 한 권 읽기, 집들이 참가, 자막없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기, 책 한 달에 10권 이상 읽기
4. 살아오는 동안 계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재능 10가지.
- 악바리, 포커페이스, 능숙하지 않은 거짓말, 멧집, 지구력, 엄살, 때에 따라 얼마든지 나오는 눈물, 약간의 영어, 재빨리 꿇을 수 있는 무릎, 나쁜 것들만 정확히 끄집어내는 기억력. 공유가 가능한가...? 그 다음으로는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싶다. 
5. 현재 참여하고 있는 사회 단체.
녹색당. 앞으로는 워커스에도 모임이 있을 때 참여해서 이야기 정도는 듣고 싶다.
6.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라던 한 가지.
어떤 사람이던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바란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 없이 기본소득 좀 줬으면.
7.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께 나이듦에 대한 그분의 경험, 하루하루 달라지는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기.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고 체력이 약해진다는 점...? 그리고 하루하루 너무 쏜살같이 움직이는 통에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가끔은 멈춰서 자신의 선입견을 점검하고 있다고 하심. 누구신지는 프라이버시상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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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펴야 오것다 황금알 시인선 93
방순미 지음 / 황금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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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중에서

고추잠자리 닮은 소방헬기 덩달아 물바람 나
아랫도리 헐렁하도록 물을 쏟아 붓지만
난 불바람 잡지 못하고 개불처럼 늘어져 간다.
산바람
터진 봄바람
오봉산 낙산사부터 바람이 났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낭자했던 붉은 밤처럼
불은 무성한 청춘 참수하듯 산을 자른다.

  

이한 변호사의 글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잘 못 읽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 4개를 들었다.

 

 그런데 최소 두 가지 문제는 이 시로 다 해결할 수 있다. 2번과 4번의 해결책(?)은 바로 세상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화자로 나오는 것이다. 화자는 처음부터 과음을 하고, 낙산사의 불을 구경하며 어린아이처럼 경탄한다. 이는 강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에 꼽히는 리스트보다는 차라리 반면교사에 가깝다. 화자처럼 살 수는 없지만, 이 얼마나 우리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인물인가. 어찌보면 매혹적인 마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시라는 것이 사람의 올바름을 가르쳐준다는 신념을 가진 채로 이 책을 읽었다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가끔은 책 읽다 뒤통수 맞는 경험도 필요하다. 심지어 성추행범으로 밝혀진 사람도 시인이니 이 얼마나 수비범위가 넓으냐.

 생각해보면 왜 남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호방한 면이 있다 여기고, 여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이리 호들갑을 떨면서 선악에 대한 논리를 펼치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평론가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는 시집에서 윤리를 원한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으니 사서삼경이나 읽으시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산을 찾는 등산객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그녀를 변명해 주는 글이 설명 과정 중에 살짝 들어갔는데, 그건 좀 과한 액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인 자체의 솔직하고 투명한 시작 스타일은 나도 높이 사고 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순진무구하여 시적 기법마저 무시하는 그런 백치같은 시는 아니다. 특히 둔전리의 봄이라는 시 중에서

 

진전사 샛길
대청봉 쌓인 눈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하늘 아래 첫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봄까지 눈이 와서 하얗게 되어 있는 대청봉을 보면서 촛불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문득 아연해지게 된다. 각운만 맞춘다고 라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가 호흡이 좋은 이유는 읽기 좋게 분절하는 데서 생기는 리듬 덕분이다. 아무나 쓰기 힘든 구절로, 시인이 얼마나 기술을 갈고 닦았는지 이 시집을 한 번만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짧고 단순하기에 그런 서정시를 쓰기가 더욱 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본 산 중에서 제일 선호하는 설악산이 자주 나와서 좋기도 하고, 오랜만에 관록있는 시를 봐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맨 뒤의 서평을 보고 매우 놀랐는데, 이런 몽타주 기법은 시집을 하나하나 단어에 집중해서 여러번 읽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지라 생각한다. 그만큼 인상적인 단어들이 많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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