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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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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세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녀를 깨우지 말고 다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서 새로운 꿈의 씨앗을 낳게 할 만한 단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고 있어." 하고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당신은 별을 보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땅바닥을 보고 있어요."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별이 우리 아래에 있지."
"아, 그런가요?" 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일단 이 책은 전부 무겁다. 가벼움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가벼움을 자유연애에서 찾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목숨걸고 여자를 찾는 토마스가 목줄 묶인 개처럼 보이냐. 차라리 아내 따로 여학생 애인 따로 둔 프란츠가 훨씬 자유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사비나라는 여성 빼면 대체로 마음대로 집어치우고 집을 나설 수가 없는 상류층 이야기라서 분위기가 무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그 사비나도 우울증에 걸려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생각으로는 아내 테레사가 겁나 마음대로 휘두르는 토마스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마음 속 깊은 곳으론 그들의 심각한 사랑이 부러워서 그런 애정을 애인 프란츠에게서 찾으려 했는지도. 아무튼 운동권의 그 복잡한 사랑 이야기 생각나고 재밌다. 토마스는 여자랑 섹스를 하면서 그녀에게서 백만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고 한데, 아무래도 그 이론이 운동권 마초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생물심리학을 보자. 씨를 광활하게 뿌리려는 게 수컷이라 함으로서 토마스의 이론이 완벽한 개소리라는 게 입증된다. 생각해보면 과학의 발전도 어느 정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 지가 절제를 못해서 테레사가 저렇게 고통을 받는 걸 보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예 무성애자로 사는 게 나을텐데. 결국 테레사의 호기심으로 인해 사건이 커지면서 소설의 재미도 더욱 커진다.

 자유연애 자체로 보면 진짜 여자가 손해보기 딱 좋은 듯. 이 소설에서도 관계의 결실(혹은 현실과 연관된 귀찮은 존재)이라 볼 수 있는 애는 등장도 안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하면 다 여자가 책임을 져야 하고, 안 하면 여자가 혼자 정절을 지켜야 하고 아무튼 다 여자가 불리하지 않은가. 남자들은 좋은 여자 잡았으면 한눈 팔지 마라...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급진 페미니즘으로 가면 어떻게 되느냐? 테레사가 된다. 일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닮기 위해 바람을 폈다지만, 결과는 미러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인해 마초들이 주장하는 '성적 이분법'은 남게 되는 것이다. 거울에 비춰서 좌우를 반대로 바꿔도 일단 대상은 같기 때문에. 그런데 여자는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간에 남자와는 다르기 때문에 남자가 바람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겪을 수 없다. 이 책은 피해자중심주의에 빠진 급진 페미니즘의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토마스가 바람을 피는 이유에 대해 온갖 변명을 하듯이 그녀도 온갖 변명을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결국 결혼의 붕괴와 죽음이었다. 급진 페미니즘 또한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그들이 펼치는 시위도 '검은 시위'이지 않은가. 물론 지금 젠더라는 개념이 나왔지만 이 책에선 시대가 시대니만큼 아직 미숙하고.

 

  

많이 힘들지만, 절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개와 인간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의 사랑보다 더 위대하다 생각된다면, 심지어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용서못할 건 없다고 생각된다. 법의 심판을 얌전히 받는다는 가정 하에. 하얀 거짓말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투표를 아예 안 하고 침묵하는 게 자신의 소신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냥 가만히 넘어가도 될만한 것들이 산적해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왜 남이 나에게 저지른 부당한 일에 대해선 침묵하지 못하는가.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해는 하지만 나는 특히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한 후 여성이 그것을 SNS같은 데다가 퍼뜨리는 경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추문을 그런 식으로 퍼뜨린 적이 있지만, 그래봤자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하게 될 뿐이며 나는 미묘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해결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냥 상대방의 키치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와 키치가 맞다고 생각되는, 혹은 착각되어지는 사람을 찾아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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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젊은 시
이승하 외 지음 / 문학나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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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송승언

언젠가 우리는 극장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너는 나를 모르고 나는 너를 모르는 채. 각자의 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이제 어두운 실내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채. 의자를 찾아서 두리번거리지. 각자의 연인에게 보호받으며. 동공을 크게 열고, 숨을 잠깐 멈추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볼 것이다. 우리가 함께 본 적이 있는. 어둠 속에서 사건들은 빛나고. 어둠의 그늘을 밝히고. 우리가 잊힌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팝콘 한 웅큼 쥐려다 서로의 팝콘 통을 잘못 뒤적거리고. 손이 엇갈릴 수도 있겠지. 영화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는 채. 깊이 없는 어둠으로부터. 너와 나는 혼자 나올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눈 깜빡이며. 그때 너와 나는 텅 빈 극장의 내부를 보게 된다. 한 속에 빈 콜라병을 들고서.

  

 

영화보단 사실 극장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다. 좀처럼 대학로 갈 시간을 내지 못해서 그렇지(...)

 인상적인 건 젊은시를 뽑는 데에 나이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에 읽었던 2012년 신춘문예에 허영둘이라는 연세가 제법 있어보이는 시인이 많이 등장했었는데 젊은 시로 뽑더라. 열 명 이내의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대체로 미래파라거나 산문시 중에서 잘 쓰인 것들을 뽑는 듯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심사위원단들은 젊은 시인 중에서 고전적인 서정시를 쓰는 사람도 뽑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서론을 썼는데, 처음 젊은시를 발표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시인들이 심사기준을 잡고 늘어진다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젊은시를 올린다고 하면서도 서정적인 산문시를 그렇게 반가워하고 시대의 아픔을 담은 시의 약점을 찾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군데군데 쓰여져 있는 짧은 평론들이 시에 대한 선입견을 더욱 공고히하는 느낌이었다. 이러니 문학가들이 평론가의 개입이 없는 잡지를 찾아서 자신들의 작품을 올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시가 너무 많아서, 시집에서 가장 인상깊은 시를 찾는 일은 이야기 시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시를 찾는 일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오히려 서정시가 인상적일 정도였달까. 이야기 시가 실험적 소설과 구별되려면(요즘엔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허영둘처럼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아예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도 알 수도 없는 어떤 것을 내세워야 한다. 여기에 뽑힌 시인들 중 몇몇은 그 강박에 너무 시달려서 오히려 시 자체의 흐름이나 완결성을 놓치고 있었다. 특히 성동혁은 정말 아까운 시인이었다. 하지만 반도네온이란 시를 볼 때 시적 배경은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할까. 여태까진 기성세대의 시인들이 아무리 외국에 대한 시를 써도 여행자의 시각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동혁은 화자 자체가 불투명한 그의 단점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여 낯선 세계에 잘 스며들었다.

 장수진 시인을 만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최근 떠오르는 급진페미니즘의 노골적인 표현을 시로 잘 담아내서 그로테스크의 미학으로 소화시켰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이 그녀의 시는 전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냈다고 본다.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여성을 사물로 취급했던 먼 옛날의 역사를 담아내었다고 할까. 시각으로만 표현이 다채로운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의 모든 시가 마치 한 편의 고어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흥미진진했다. 앞으로도 이런 시인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요즘 세상의 키워드는 뱀, 여성, 무당인 듯한데 셋을 합치면 센고쿠 나데코가 된다.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 절대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어느 작품에서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걸 보면 니시오 이신이 정말 굉장한 작품을 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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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 - 어쩌다 내가 회사의 가축이 됐을까
강백수 지음 / 꼼지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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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씨 구출작전

부장은 또
"허허, 은혜 씨는 아주 남자들 잘 홀리게 생겼어.
눈빛이 야릇하다니까! 허허! 한잔 받지!"와 같은 개소리를
해대고 그 옆에서 수도 없이 억지 술을 받아먹은 그녀는
몸조차 못 가누고

"이거 너무 심하잖아!
은혜 씨 뭐하고 있어요! 나갑시다!"

하며 거칠게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박차는 상상만 한다.
차장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귀만 부장님과 은혜 씨의 테이블을 향한다.

 

  

 내가 신입때 저런 식으로 여자 한 명 구해줬는데, 그 때부터 왕따하고 술 마시면 옆에서 젊은 게 발랑 까져서 잘 마신다고 비아냥거리다 급기야는 지네 회식에 초대도 안 하더라. 젊었을 땐 무조건 주먹 날렸어요 부장님. 그리고 직장에서 짤리거나 목숨이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왠만하면 도와주지?

 

 일단 이 책을 쓴 그도 정규직 회사원을 겪은 적이 없고 나도 겪은 적이 없다. 그래서 대리, 차장 등의 단어가 굉장히 낯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있었다. 이 정도면 대중적으로 읽히는 데엔 성공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는 글쎄올시다. 섬으로 표류되었다거나 타임루프 되는 이야기인데 너무 교훈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점이 있어서 되려 가벼워진 점이 있었다. 나로선 아쉽긴 하지만 요즘엔 내용이 가벼운 책이 대세이니 분명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SNS에서 나올 법한 개그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면 되겠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마라. 중요한 건 짧은 글로 회사 생활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노래가사같은 시다. 나는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비유나 묘사는 매우 초보적이지만 비아냥거림에서 제법 연륜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대부분은 인턴이나 신입, 최대한 일해봤어도 5년 정도가 고작인 회사원들인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 이야기나 올린 게 아니라, 흔하게 있을 법한 것들만 골라낸 티가 난다.

 

 지금도 물론 회사에서 야근으로 고생하고 있을 친구가 이 책을 보고싶다고 할 때는 퍽 인상이 깊었다. 정치나 사회면으로 깊이 빠져들었던 그의 책 편식으로 볼 때 더더욱 그랬다. 알고보니 SNS에서 그의 글을 잠깐 보았는데 매우 공감이 갔다나. 사람들에게서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을 빼앗는 기업들에게 유감을 느꼈지만 핵직구로 마음을 울리는 짧은 시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감명이 깊다. 어른이 될 때 인간관계에 대한 솔직한 고민과 토론은 사실상 직장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내 독서토론으로 이 책을 꺼내드는 건... 무리일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목표로 잡은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이 책을 기준점으로 삼아 사회, 정치, 경제 분야의 책에 관심을 가진다면 아주 좋은 일이겠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본론으로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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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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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무덤 앞에 서지도 울지도 말라'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기'에.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 '눈 위에 반짝이는 광채', '무덤 위에 내리는 부드러운 별빛'이기 때문이다. 

 

심경이 상당히 복잡한데 일단 박근혜는 최순실이 없으니 절대로 그녀가 그립다 같은 책을 낼 수가 없을 거 같다.

 

 그녀 한 명 떨어지니까 팔선녀가 모조리 흩어지는 걸 보면 실세를 넘어 생명줄이던 거 같은데 말이다. 반면에 노무현은 탄핵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그를 위해 글을 써서 올릴 사람이 22명은 있다. 그것도 문학적으로 온전하고 기본적으로 정신도 튼튼한 사람들이 말이다. 새삼 그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가끔은 새와도 같이 밥을 먹고 싶댄다. 항상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해보이는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사람들의 선망도 받고 있으니 질투를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존재이니 말이다.

 

  

요망한 미키같은 멤버는 나같이 뭔가 움직이고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겐 상당히 짜증나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가 사무실에서 엎드려 자고 있지 않으면 '또 자냐?' 하고 면박할 사람이 없다.

 얄밉게도 인기까지 많다. 오로지 노래부르기만 치하야가 경멸하는 일까지도 선뜻 해내는 그녀는 스쳐지나가듯이 보면 가벼운 여성으로 보이지만 자신을 괴롭혀 가면서까지 그 누구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사실 그녀가 잠이 많은 이유는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돌 스케쥴다운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에겐 한계점이 있다. 일본 아이돌 캐릭터에 비교하기엔 좀 경박할지도 모르겠지만, 노무현은 적당한 때에 팀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녀의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더민주당이 몸을 사리고 있는 모습엔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 책에서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다.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저렇게 맥없이 쓰러지는데 내가 나대면 대체 어떻게 되는거지?' 결국 만만한 강남아줌마에게는 세월호 같은 거 타다가 죽길 바란다고 큰소리치면서 우병우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판을 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노무현에게 호통을 치고 온갖 이지메를 가해서 자살하게 한 사람이 바로 우병우다.

 

  

결국 다음 대선에서는 더민주당이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미는 없다.

 최순실과 비겁한 정부에 대한 비난이 판을 치는데 말이다. 차라리 하야를 당당하게 외치는 정의당이 훨씬 더 흥이 있어 보인다. 노무현 시절 한 자리 얻었던 사람 몇몇이 이번엔 새누리당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으니 힘이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진보 측 내부에서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이 망하고 국가가 한 번 붕괴되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이다. 이런 때 그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따분하다. 잘못된 걸 평범하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줄 리더십 있는 사람이 그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나는 가출했을 때 비로소 집이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청소년같이 촛불시위에 뛰어들었었다. 난 난세에서 잘 살 수 있으며 또 그러길 바라는 인물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촛불시위는 굉장히 재미있었으며 또 난리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겁대가리 없는 시대의 반항아와 함께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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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김영랑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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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중에서

죽어도 죽어도 이렇게 죽는 수도 있나이까
산 채로 살을 깎기어 죽었나이다
산 채로 눈을 뽑혀 죽었나이다
칼로가 아니라 탄환으로 쏘아서 사지를 갈가리 끊어 불태웠나이다
홋한 겨레이 피에도 이러한 불순한 피가 섞여 있음을 이제 참으로 알았나이다
아! 내 불순한 핏줄 저주받을 핏줄
산고랑이라 개천가에 버려둔 채 까맣게 연독한 주검 하나하나
탄환이 쉰 방 일흔 방 여든 방 구멍이 뚫고 나갔습니다
아우가 형을 죽였는대 이렀소이다
조카가 아재를 주였는대 이렀소이다
무슨 뼈에 사무친 원수였기에
무슨 정치의 말을 썼기에
이래도 이 민족에 희망을 부쳐볼 수 있사오리까

 

 

  

11월 5일 모두 촛불시위를 하러 나갔다. 박근혜 정권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대한민국의 현실이 하나의 부조리극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밤까지 일을 했다. 일의 특성상 겨울에는 도저히 쉴 시간이 나지 않는다. 잠도 잘 오지 않을 것 같고 축제날이나 다름없을 이 밤을 어떻게 혼자 즐기지? 그렇다고 아주 경사도 아니라서 집에서 미러볼을 돌릴 수도 없고 말이다. 집에다 촛불을 피웠다가 실수로 아파트를 태울까봐 무서웠다. 결국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그립다라는 책을 빌렸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데서 마치 축제일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바로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같은 서정적인 시를 기대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이 시집이었다.

 

 

 그의 시는 끝부분으로 가면서 점점 노골적이고 정치를 비난하는 부분이 대놓고 드러났다.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그러나 그는 일단 아나키스트를 표방한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한국에 환멸적인 시들을 읽으면서 속은 후련해했지만 시집을 덮으니 돌연 의문이 들었다. 왜 그는 아나키스트이면서 국가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가? 사실 그의 시에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그늘이 조금씩 드러나 있었다. 교과서에도 쓰여져 있듯이 그 점은 시대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그는 왜 아나키스트이면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을까? 국가의 흐름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또한 그가 자신의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사실 이래서 나는 아나키스트를 싫어한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을 혐오한다면서 '어휴 럽폭도들'이라거나 '어휴 @ㅏ재들'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오타쿠를 욕하는 애들과 마찬가지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만일 진정 국가에 관심이 없다면,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사람을 죽이는 데 반대해야 했다고 본다.

 

  

 이래서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면, 아나키스트가 함정에 빠질 경우 아나키 콜로니스트가 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적인 성향을 지닌 아나키스트라는 뜻인데, 아나르코생디칼리즘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파로 가기가 굉장히 쉬운 집단이다. 결국 서정시를 즐겨 쓰고 시형식에 엄격했던 김영랑도 정치계에 뛰어들었을 땐 우파를 도왔다고 한다. 이렇게 아나키스트->생디칼리즘->우파는 사상이 좌파에 비슷했던 사람들이 흔히 우파로 전향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이명박 퇴진 촛불집회를 그만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나키즘 사상이 그 주변에서 판을 쳐서다. 김영랑의 시는 물론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다소 노골적인 면을 보인다. 이 시집을 읽을 때 그런 요소를 보면 좋겠다. 의도치 않게 드러난 것은 그의 국가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처절한 고민도 있다. 사람 목숨이 사상보다 중요하다곤 하지만 결국 사람 정신을 사상이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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