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펴야 오것다 황금알 시인선 93
방순미 지음 / 황금알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불 중에서

고추잠자리 닮은 소방헬기 덩달아 물바람 나
아랫도리 헐렁하도록 물을 쏟아 붓지만
난 불바람 잡지 못하고 개불처럼 늘어져 간다.
산바람
터진 봄바람
오봉산 낙산사부터 바람이 났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낭자했던 붉은 밤처럼
불은 무성한 청춘 참수하듯 산을 자른다.

  

이한 변호사의 글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잘 못 읽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 4개를 들었다.

 

 그런데 최소 두 가지 문제는 이 시로 다 해결할 수 있다. 2번과 4번의 해결책(?)은 바로 세상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화자로 나오는 것이다. 화자는 처음부터 과음을 하고, 낙산사의 불을 구경하며 어린아이처럼 경탄한다. 이는 강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에 꼽히는 리스트보다는 차라리 반면교사에 가깝다. 화자처럼 살 수는 없지만, 이 얼마나 우리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인물인가. 어찌보면 매혹적인 마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시라는 것이 사람의 올바름을 가르쳐준다는 신념을 가진 채로 이 책을 읽었다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가끔은 책 읽다 뒤통수 맞는 경험도 필요하다. 심지어 성추행범으로 밝혀진 사람도 시인이니 이 얼마나 수비범위가 넓으냐.

 생각해보면 왜 남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호방한 면이 있다 여기고, 여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이리 호들갑을 떨면서 선악에 대한 논리를 펼치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평론가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는 시집에서 윤리를 원한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으니 사서삼경이나 읽으시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산을 찾는 등산객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그녀를 변명해 주는 글이 설명 과정 중에 살짝 들어갔는데, 그건 좀 과한 액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인 자체의 솔직하고 투명한 시작 스타일은 나도 높이 사고 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순진무구하여 시적 기법마저 무시하는 그런 백치같은 시는 아니다. 특히 둔전리의 봄이라는 시 중에서

 

진전사 샛길
대청봉 쌓인 눈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하늘 아래 첫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봄까지 눈이 와서 하얗게 되어 있는 대청봉을 보면서 촛불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문득 아연해지게 된다. 각운만 맞춘다고 라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가 호흡이 좋은 이유는 읽기 좋게 분절하는 데서 생기는 리듬 덕분이다. 아무나 쓰기 힘든 구절로, 시인이 얼마나 기술을 갈고 닦았는지 이 시집을 한 번만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짧고 단순하기에 그런 서정시를 쓰기가 더욱 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본 산 중에서 제일 선호하는 설악산이 자주 나와서 좋기도 하고, 오랜만에 관록있는 시를 봐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맨 뒤의 서평을 보고 매우 놀랐는데, 이런 몽타주 기법은 시집을 하나하나 단어에 집중해서 여러번 읽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지라 생각한다. 그만큼 인상적인 단어들이 많긴 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