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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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은 있지만

루소의 '민약론'을 다 정독하여도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민주당에 붙고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제2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8.15를 6.25를 4.19를
뒈지지 않고 살아왔으면 알겠지
대한민국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면
사람 따위는 기천 명쯤 죽여보아도 까딱도 없거든

데카르트의 '방법통설'을 다 읽어보았지
아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세
만사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위대한 '개헌' 헌법에 발을 맞추어 가자면
여유가 있어야지
불안을 불안으로 딴죽을 걸어서 퀘지게 할 수 있지
불안이란 놈 지게작대기보다도
더 간단하거든

베이컨의 '신논리학'을 읽어보게나
원자탄이나 유도탄은 너무 많아서
효과가 없으니까
인제는 다시 비수를 쓰는 법을 배우란 말일세
그렇게 되면 미,소보다는
일본, 서서, 인도가 더 뻐젓하고
그보다도 한국, 월남, 대만은 No.1 country in the world
그런 나라에서 집권당이라면
얼마나 의젓한가
비수를 써
인제는 지조랑 영원히 버리고 마음 놓고
비수를 써
거짓말이 아냐
비수란 놈 창조보다도 더 산뜻하거든
만시지탄은 있지만

 

 

  

 일단 맘에 드는 작가나 시인을 접할 때, 나는 전집을 읽거나 그의 작품 전부를 보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을 대신한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니 작품 전부를 읽으려고 노력한 경우는 네 번 있었던 것 같다. 이육사, 무라카미 류, 로레타 체이스(할리퀸 소설가다), 그리고 김수영.

 그런데 교과서나 다른 매체들로 접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일단 시의 후반에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많이 보고 들으며, 거기서 재밌게 느낀 점을 시로 담는 게 그렇다. 아무래도 김수영보다는 그의 아내가 그걸 사 오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한 모양인데, 그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즐겨 듣는다는 게 왠지 츤데레스러웠다. (응?)

  김수영과 그의 아내는 오래 투닥거림으로 알려지긴 했다. 그런데 맞불륜일 줄이야... 그 정도로 셀 줄은 몰랐다. 그걸 시로 담아내는 김수영도 김수영이지만, 생활에서는 이런 어두운 면이 있었다니.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던 장남을 계속 외면하려다 결국엔 의식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려 노력하는 데서 남성의 세계가 느껴진다.

  결국 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으니 자신만, 자신의 성만 불운하게 느껴지고 이 시인처럼 아내한테(혹은 아내와 자식 둘 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겠지. 그러나 어쩐다? 요즘 무려 김수영문학상을 내 또래가 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가 전혀 불쌍해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설령 그가 시인으로서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나름 고등 교육을 받았고 나름 쁘띠 부르주아 계통쯤에 속해 있어 문화를 향유하며 소설과 시를 읽을 정도로 한가한 나로선, 여성들이 폭력을 받는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너무 지쳤나보다. 요즘 백인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매너가 한국 남자보다 월등하게 좋다는 따위의 페미니즘 글들을 보다보면, 최진실의 냉장고 광고가 문득문득 생각난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그녀의 소름끼치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집안 경관에 쫓겨 잠시동안 여성들은 행복한 꿈을 꿨다. 즉, 너도나도 돈을 털어 그 냉장고를 샀다는 거다. 그러나 최진실은 자살했고 그녀의 불운한 삶이 매스컴을 타고 동네방네 폭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최순실이, 정치적인 만행을 넘어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도 공격당하고 있다. 최진실도 사실 정치에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많았다. 무리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유명했던 여배우였으니까. 김수영의 시에서도 개혁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4.19 다음에 쓰여진 시들에서 세 번은 본 것 같다. 김수영은 정면에서 그 단어를 비웃는다. 그리고 새누리당을 나온 무리들이 들고 나온 임시 당 이름은 개혁보수신당이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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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못 하고 서 있기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학고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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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카에 콘돔을 담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잠시 후, 쉰다섯 살인 매형과 함께 통로를 지나가면서, 크게 과시하며 다니는 동성애자 커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다른 것도 넣어야지, 안 되겠어요."
매형은 농산물 코너로 자취를 감췄다가 조금 뒤에 딸기 1.8킬로그램 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딸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동성애자로 보였다. 이제 우리 머리 위에는 만화 말풍선이 떠 있었다. '우리는 항문 성교를 한 뒤에 쇼트케이크를 즐겨 먹어요!'
내가 말했다.
"다른 거, 다른 게 꼭 필요해요."
매형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참 생각했다.
"올리브유가 필요하긴 해."
내가 딱딱거렸다.
"안 돼요. 그냥 계산하고 나가요. 제발, 얼른."
(...)
나는 청소년 독자에게 말하곤 했다.
"줄 게 있어요. 별것 아니고, 감사의 뜻으로 아주 작은 걸 준비했어요."

  

생각해보니 나는 남의 일기를 보는 걸 좋아하는 취향이 아주 어릴 적부터 있었다. 반면 내가 일기를 쓰는 건 취향에 아주 맞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때 매일같이 열심히 내가 쓴 일기를 매일같이 검사했던 선생님은 이 말을 들으면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일기를 누군가가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썼던 듯하다.

 

 아무튼 내가 쓴 일기를 내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남의 일기를 들여다볼지언정 절대 일기를 쓸 마음은 없다. 적어도 인터넷에다가 무엇인가를 쓰면 누군가 보지 않겠는가. 애초에 종이 위에 자신만의 입장을 잔뜩 적어놓고 시간이 지난 뒤 들여다보는 건 악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실용적이지 못한 일을 하는 건 죄악이라고 단호하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일기를 잘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다. 그도 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위인이지만 어차피 인간인지라, 원균의 입이 딱 벌어지는 멍청함에 뚜껑이 열려서 자신만의 입장을 길게 쓴 적은 있다. 하지만 태반은 선박을 지었는데 예산이 얼마가 들었고, 그 일에 매달린 백성들은 몇 명이었고, 군량미는 얼마가 들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들이어야 대게 다시 내가 쓴 일기를 들여다볼 때 만족스러울 수 있다.

 

  

 이 에세이는 파격적인 유머가 담겨져 있다. 물론 유명한 코미디언들이 늘 그렇듯 애써 밝아지려 노력하는 측면도 있다.

 가족에 대한 애증과 회의주의적인 시선도 그렇지만,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오바마의 연설을 좋아하지만 당선 이전에 동성애자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 데 대한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는 미국 사람들의 광란을 액면 그대로 써낸다. 그의 글로 볼 때면 이번의 트럼프 당선은 미국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는 명확히 자신의 일기와 공적인 글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대체로 수위가 높은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풀어냈다. 그의 솔직함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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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회장님은 메이드사마 13 회장님은 메이드사마 13
후지와라 히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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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우스이 씨! 식사준비를 해준다면 뭐가 먹고 싶어요?" "..죽."

 

 

  

 먼저 사진은 더 이상 읽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진은 텍스트라기보다는 곧장 (사진 찍힌) 대상의 표정이 된다. 사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세계의 한 조각을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제시되는 피사체와 그 배경 너머에 외부가 있음을 떠올리는 것, 지배적인 표면을 넘어 너머의 세계를 암시하거나 비유하고 있다는 상상이나 충동을 길어내는 것은, 더 이상 사진을 보는 것에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VOSTOK>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걸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라는 만화책에서 느끼게 되었다. 이 작가가 그린 첫 단편에 투명한 세상이라는 제목을 붙인 게 미묘. 내용은 돌발적으로 죽은 첫 사랑이 억울해서 성불하지 못한 채 있는 걸 여자애가 발견, 성불하기 직전에 자신이 원하던 장소에서 그의 사진을 찍지만 상대가 유령이라서 배경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인물사진을 노렸지만 훌륭한 배경사진이 된 셈인데, 이걸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고보면 우스이는 훌륭한 모델같은데, 어째 무뚝뚝한 여자애는 배경같은 느낌(...) 아유자와가 우스이를 남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무렵부터는 미묘하게 사진찍는 장면이 줄어들지만, 본편 초반에 유달리 둘이서 사진찍는 모습이 많이 나왔었다. 메이드 카페라서 더더욱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메이드 일을 하는 아유자와가 그런 일을 더 거북해하는 게 모에포인트... (응?) 아니, 미묘한 긴장감을 준다. 아유자와가 워낙 학교에서 가면을 쓰고 귀신 이미지를 갖겠다고 고집하는지라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별로 마음에 드는 전개는 아니다. 정말로 솔직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올곧은 사람이라면 점잖게 각잡고 충고할 것이다. 나의 남자친구를 더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우스이는 확실히 뭔가 오해하는 듯한데, 그녀는 우스이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의지가 생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막연히 집안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나온 게 아니란 걸 보여주기를. 단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생각보다 우스이의 집안 족보가 꼬여있어서 생각 정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 생각된다. 

 굳이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잡자면 여러 군데에 민폐를 끼치는 사쿠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놓고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은 아니지만, 연애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점에선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런 핑크핑크한 점이 귀찮으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있고, 남성이 꼬이지 않을 리가 없다. ... 자만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때문에 내 연애 생활엔 굴곡이 많았다. 사쿠라의 입장에서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아유자와일 것이다. 단지 친구이니까 자신에게 상담하고 의지하기를 기다려줄 뿐이겠지. 나도 정확히는 그런 마음으로 이 커플들을 지켜볼 뿐이다. 현실로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인내심이 결여되어 성이라도 왈칵 냈겠지만, 내 입장과는 관련이 없는 2차원 세계의(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완결난 작가 뇌 속의) 흐름이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실해야 할 경우에도 항상 돌려 말하는 우스이가 좋은 남자이진 않지만, 인간은 누구나 단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유자와의 적극적인 대쉬에 맞서 아주 작은 용기를 보여준, 그 정도면 봐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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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1 스켑틱 SKEPTIC 1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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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잘났어! 모든 게 잘될 거야!'를 굳이 날마다 스무 번씩 복창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걸로 얻을 수 있는 건 당신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주위 사람의 시선이 전부다.

 


시간여행이 가능할지에 대해 가타부타를 따지는 글이 심히 재미있었다.

  SF에서 쓰여진 아이디어가 미래기술의 토대가 된다는 건 문과 계열에서는 정설적인 이야기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많은가보다. 올려진 글의 위세로 봐서는 '몇몆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지금도 미세하게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로 결론이 난 듯하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 예로 양손에 손목시계를 차고 한손을 가만히 둔 채로 다른 한손을 아주 빠르게 돌리면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가 있을 거란 흥미로운 실험을 제시한다. 단, 손목에 찬 시계가 원자 시계만큼 정밀해야 한다고 하니 현재의 손목시계로 실험을 해봤자 소용없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도 슈타인즈 게이트처럼 미래에 정해져 있는 어떤 법칙은 바꿀 수 없다는 걸 과학적으로 이야기했다는 사실이다.

 


기타 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믿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도 이 잡지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을 온건한 유신론자라고 표명한 사람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마지막 말에서는 '사람에게 정신상 이득이 있는 행위는 좀 하게 내버려둬라'라는 식으로 툴툴거리는 지라 약간 거부감이 갔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호감이 드는 칼럼이었다. 분명 종교를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하고, 종교에 빠져 돈을 낭비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은 뺨을 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하지만 성서는 문학적으로 정말 중요한 책이며, 헌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면서 봉사를 하라고 사람들을 계몽하는 성직자들이 무수하게 많다. 과학과는 비록 거리가 멀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더라도 반드시 자연에게 유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종교가 반드시 인간에게 유익하리라는 보장이 없듯이 말이다. 아무튼 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기 위해 무리해서 과학적 이론을 끌어들인 것은 잘못된 일이다. 멀티는 좋지만 학문간의 잘못된 만남은 쓰레기같은 이론을 만들며 그것을 똥같은 책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지구가 애써 만든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야 한다. 연말이 될수록 기독교 책을 찾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기독교 책 중에 돈 낭비가 아닌 게 대체 어디 있을까? 읽는다면 시간 낭비죄까지 추가될 것이다. 그런 걸 찾을 시간에 후딱 과학책을 한 권 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뉴톤이나 스켑틱같은 과학잡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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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조심하소 - 조선 후기 김려의 시와 글 겨레고전문학선집 12
김려 지음, 오희복 옮김 / 보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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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앵두 중에서

우물 가 빨간 앵두 몇 천만 열렸던고
긴 가지 짧은 가지 열매 맺어 늘어졌네.
연희가 손수 따서 광주리에 담고 보니
동글동글 하나같이 수정빛이 영롱한데
한 알 집어 입에 넣고 연희 아씨 이르는 말
"내 입술이 붉은가요 앵두 알이 붉은가요."

늙은 이내 몸이 산골에서 귀양 살 때
세 해 동안 그 앵두로 주린 창자 달랬네.

 

  

조선 후기에 김려라는 사람이 쓴 시와 산문을 모두 모은 글이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로 글을 쭉 보았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정약용과 같은 시기에 글을 썼다고 하는데, 그의 유명세에 말려들어 묻힌 모양이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글을 쓴 탓에 정부를 비방했다는 모함을 받고 귀양을 가서 글을 다 수습하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북쪽 태생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무신들만 뽑기로 유명했고 전쟁이 일어나는 등 안정적인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문신이 나는 일은 이례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기반하여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의 밑에 저자가 간단히 설명을 붙이는 점도 특이했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이력 덕분에 조선 후기 여러 곳의 풍속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안타깝게도 이 선비는 높으신 분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가 군주제를 비방하진 못한다. 한시만 너무 좋아해서 멀쩡한 한글시를 한자로 번역해서 다시 쓴 데서도 양반집에서 태어난 옹고집 티가 너무 팍팍 난다. 그러나 아무리 한계에 부딪쳤다 하더라도 명망 높은 집에서 태어났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던 모두가 인간이고 모두가 친구라는 그의 생각에는 군데군데 놀라운 점이 있다. 아무래도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운 듯한 무신이 원님의 자리에 앉자, '국방인가 민생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한탄의 시를 쓰는데 이 고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통하는 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를 핑계로 국민들의 편의는 뒷전으로 했지만, 그게 모두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삼성 재벌 등을 배불리기 위한 수법이었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많이 쓴 점도 독특했다. 경박하기보단 예술성이 돋보인다. 특히 어느 기생으로 짐작되는 연희에 대한 시를 쓸 때 그는 그녀를 극히 찬미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애정하는 마음만 쓰지 않는다. 그녀가 길쌈하는 모습, 술을 마시는 모습, 정세에 대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어낸다. 우리나라 역사 어디에도 적히지 못하고 그저 스쳐갔을 여성이 그의 시에 적혀 앵두같이 아름다운 여신으로 남았다. 그리고 후손들이 지금 그의 글을 읽고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술이란 이렇게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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