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3 -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3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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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 1903~1985

 

시인이자 평론가. (...) 일본 릿쿄대학에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1922년 5월 형 김복진과 박승희, 이서구 등과 재동경조선인유학생 연극 단체인 토월회를 결성하고, 1923년 5월 귀국 공연을 위해 졸업하지 않고 귀국했다. 1923년 귀국 이후 개벽에 기고하는가 하면 문학 동인지 백조 창립에 참여했다.

 

 

애국자라지만 공연을 위해 학업도 때려친다니 정말 연극을 사랑하시는 분인가보다. 이런 사람들 좋아함 ㅎ

 

시기가 시기인만큼 한국의 사회주의와 관련된 글이 많다. 특히 자유시참변의 혼란스러운 전개가 깔끔이 정리되어 나와서 좋았다. 단체가 분열되었다가 합쳤다가 하는 마당이라 많이 복잡하니 잘 따라가야 한다.

 

1924년 3월 박춘금을 회장으로 하는 각파유지연맹이 발족했는데 각파유지연맹은 총독부의 후원 아래 출범한 친일 단체들의 연합 조직. 이에 동아일보가 4월 3일 사설로 공격했고 같은 날 김성수와 송진우는 연맹의 이풍재에게 초대를 받았다. 초대받은 자리엔 각파유지연맹 간부들이 있었다. 사설을 둘러싸고 언쟁이 있나 싶더니

"이런 빠가야로! 목숨 귀한 줄 알면 나불거리지 말고 정중히 사과해! 그리고 피해 보상금으로 3000원을 내놓는다. 알간?"

상대인 박춘금은 일본에서 잘나가는 깡패 두목.

 

회식 자리에서 총을 꺼낸 듯.

그런데 동아일보가 사과문 쓰고나서 매일신보가 이 일에 대해서 또 기사를 썼다 함 ㅋㅋ 이 당시엔 기레기가 잘 하는 일이 있었네.

 

천도교단은 또한 신여성, 어린이를 발간했다. (...) 방정환, 마해송, 윤석중, 이원수 등 동화 작가들의 동화와 홍난파, 윤극영 등이 작곡한 동요들이 소개되었다.

 

새삼 다시 동시를 사서 읽고 싶어진다. 도서관에서 동시집을 빌리면 사람들은 나한테 애가 딸려 있거나 혹은 지능이 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창간사에서 방정환이 말하는 대로, 깨끗한 생각을 엮어낸 게 아동문학이다. 세상 풍파 얘기에 지친 어른도 그런 것을 접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는가. 20년대가 그나마 문화통치 시대인지라 이런 문학작품들이 소개되어 반가웠다.

 

밀정 중 가장 유명한 이라면 단연 배정자다. 일찍 고아가 되어 기생, 비구니를 거쳐 일본인 밀정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망명객 안경수의 도움으로 여학교를 다니다 김옥균을 소개받고, 다시 김옥균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알게 되었다. 이토는 그녀를 고급 스파이로 훈련시켰다. 승마, 수영, 사격, 변장술 등의 밀봉교육을 받고 귀국한 그녀는 고종에게 접근해 신임을 얻고는 왕실의 주요 정보를 빼내곤 했다.

 

험난한 삶을 사신 듯 ㄷㄷ 다만 그 경험을 대한민국 지키는 데에 썼더라면 좀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밀정이란 영화도 나왔었지만 일본에서도 또한 밀정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이다.

 

이상협 1893~1957

 

언론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 1924년 4월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조선일보로 옮겨 이사 및 편집고문이 됐고,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 연재를 시작했다. 여기자 최은희를 특채하고 지면 쇄신을 단행하는 등 조선일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나 1924년 9월 필화 사건이 일어나 무기 정간되자 사직했다.

 

한국인이 일제강점기에 만화를 연재했다고 해서 관심이 있었는데 친일파였구만; 역시 일본이 만화 강국이다보니 그런건지.. 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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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북 - 평범한 레즈비언 기무상의 평범한 커밍아웃
기무상 지음 / 휴먼카인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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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동성애가 낯설거나 불편하신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과감하게 지금 당장 이 책을 덮으셔도 좋습니다.

여전히 동성애라는 주제가 불편하지만 어떤 호기심과 의문으로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앞으로 제가 하는 이야기를 굳이 동성애라는 틀 안에서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야기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난 얌전해보이는 제목만 읽고 이 책을 집어서 표지가 어떤지도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여자 찌찌가 매우 적나라하게 잘 보이더라.

 

이걸 도서관에서 당당하게 집어서 사서에게 보여줬다니; 사서가 매우 심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봤지만 어차피 내가 책을 하도 접어대고 자주 들르고 이 책 사주세요 저 책 사주세요 시켜대서 블랙리스트에 적힌 상태이니 뭐 동성애자로 찍혀도 새롭게 아쉽진 않다. 사실 양성애자이지만. 하지만 표지가 이랬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가리던가 e-book으로 구입하던가 좀 더 다른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일단 나도 밖에서 당당히 펴 읽을 수 없어서(...) 소심하게 집에서만 읽었다. 밖에선 시집을 따로 읽고. 남남상열지사도 예전에 e-book으로 사서 읽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여러분에게 미리 알려드리니 조심하세요.

나의 연인 가제루상이 한국어 다음으로 가장 잘하는 언어가 일본어다. (...) 나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가제루상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15년 10월 1일부터 나는 기무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팟캐스트,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레즈비언은 평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팟캐스트 홍보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이 진행중인 레즈비언 방송에 대한 소개가 적나라하게 쓰여져 있지만, 역시 서두에 나온 남의 연애담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오히려 나에게 레즈비언이라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에 가까웠다. 이유는 정말 많다. 한국 사회, 선생님, 친구들, 미디어, 그 어느 것 하나도 나에게 레즈비언을 평범하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이 주제는 언제나 심각한 것이었다. TV 프로그램에서 다루더라도 카테고리는 시사교양, 예를 들면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매거진 2580' 등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심각하고 무겁고, 뭔가 큰 문제라도 있는 주제인 것 같지 않은가.

게이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방송인 홍석천, 김조광수 감독, 김재웅 디자이너 등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했고, 그 외에도 영화, 음악, 미술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이들이 있어 레즈비언에 비해서는 덜 심각한 이미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레즈비언은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는 무겁다.

 

 

나는 그런데 동성애자가 평범하다는 이 사람의 주장과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여성 애인을 사귀었을 때, 이모가 어머니에게 아웃팅을 했었다. 그런데 두 분이 주장하는 바로는 그게 '사춘기 때의 방황'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그리스 시대에서도 여성이 여성을 좋아할 때도 있었으나, 그건 결혼 전의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남성은 오히려 동성을 좋아하는 게 훌륭한 사랑이고, 여성에게 매달리는 걸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자신을 동성애자라 자각하는 때가 대부분 청소년기인 것도 일가족이 그렇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도 내가 여성을 좋아하는 건 한 때의 치기가 아니라 생각했으며, 지금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철저히 여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친동생이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면서도 내 앞에서 동성애자 친구를 공격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이성애자를 대하는 태도로 동성애자를 대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생각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대화를 포함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법을 이성애자들에게 기본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그녀가 전학을 간 이후에 종종 연락을 했다. 2003년, 대학교 1학년 때 싸이월드에서 방명록 대화를 몇 번 주고받은 게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던 것 같다. 아마 그녀는 지금쯤 결혼도 하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의 일에 대해서도 나와는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그저 한 때 친했던 친구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을지도.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 첫사랑이었다.

 

 

나도 첫사랑이(여자이다.) 바람핀 이후 충격받아서 연락 다 끊었더니 싸이월드에 욕하고 그 다음부턴 조용하더라 ㅋㅋ 싸이월드는 항상 30대들 첫사랑과의 마지막 대화창이냐 ㅠ

일본 오키나와 자마미섬의 어느 골목

 

계속 걸어 들어가면

토토로와 고양이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원령공주와 천공의 성이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볼 것만 같다

붉은 돼지가 비행기를 타고 머리 위를 지나갈 것만 같다

센과 치히로, 하울과 포뇨가 모두 저 숲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골목이다 

 

일본 좋아하신다길래 나와 같은 동성애자 오덕이신가하고 설렜는데 지브리에서 그치신 듯.

나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아직 만 명도 되지 않는다(하지만 2016년 올해의 목표를 십만 명으로 잡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몇 만, 몇십 만, 몇백 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파워블로거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도 나는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안 봐서 도움을 주긴 힘들겠네 ㅠㅠ 지금도 계속 방송하고 계시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팟캐스트에서는 검색해봤는데 방송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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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팝스 2020.11
굿모닝팝스 편집부 지음 / 한국방송출판(월간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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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디 데이는 사람과 반려동물 간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각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연애, 우정, 가족 등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인기 뉴스 캐스터 엘리자베스는 강아지 '샘'과 변치 않는 사랑을 찾아 나가고, 카페 알바생 타라는 유기견 '거트루드'를 보살피면서 사랑과 진로에 변곡점을 맞이한다. (...) 영화 속 주인공을 맡은 바네사 허진스, 핀 울프하드, 에바 롱고리아, 니나 도브레브는 브라운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그동안 출연한 TV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 바네사 허진스는 영화 하이 스쿨 뮤지컬 시리즈에서 '가브리엘라 모테스' 역을 연기하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는 청춘 스타로 급부상했으며, 최근 넷플릭스의 세컨드 액트와 폴라로 여전한 연기력을 평가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부터 굿즈 얻는 것 빼고는 영화관에 가는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요즘에는 훨씬 더 심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상영되었으나 그닥 뜨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하기 시작한 굿모닝팝스의 스크린 잉글리시는 훨씬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클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액션물 빼고 영화관에 가서 보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에게는 액션물 아닌 영화들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어 좋다. 넷플릭스에 대한 소개가 자주 나오는 면도 흥미롭다. 광활한 넷플릭스 컨텐츠에서 뭘 봐야 할지 헤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간간이 소개되는 것들을 리스트에 첨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를 소개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보는 걸 추천한다. 중국인들이 쓰레기를 팔기 위해 마을 단위로 쓰레기를 차곡차곡 모아놓았다는 다큐멘터리인데 꼭 한 번 보시길. 온갖 고어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설명해주니 디스토피아 영화를 다큐로 착각힌 것 아니냐며 믿지 않았음. 나도 그 영화를 안 봤다면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그런 일 벌어질 줄 생각도 안 했을 것임. 현재는 2017년 고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불법이 되었다지만,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에서 금지해봤자 숨어서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어서 서서히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소수 민족들. 그 중 하나였던 부톤 섬에 위치한 찌아찌아족에게 10년 전 한글 교육이 시작됐다. (...) 찌아찌아족의 인구가 강원도 삼척시의 인구와 비슷한 7만 명 정도 되는데, 7만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고 있을 뿐더러 한 번에 모여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가르치기가 힘들었어요. (...) 찌아찌아족이 아닌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지방 공무원들을 통해 건의한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보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 또한 제가 여기 오기 전부터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인기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점점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한국어의 인기와 위상이 높아졌어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인기폭발인 듯하다. 교사도 더 양성하고 건물도 넓히고 싶은데 자본이 딸려서 고민중이신 것 같다 ㅠㅠ 사람들이 K-POP에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데에도 투자하셨으면 싶다.

 

특별한 뮤직비디오의 제목은 'Blueberry Eyes'로 제목처럼 블루베리 빛깔로 가득한 영상미와 음악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다. (...) 참고로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후 하루 만에 유튜브 400만 뷰를 기록했으며, 랩 파트에서 잠깐 등장하는 고양이는 직접 출연하지 못한 슈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 슈가뿐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정국도 좋아한다는 맥스는 과연 어떤 뮤지션일까? 본명은 맥스 슈나이더로 1992년생인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유명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한국 좋아한다고 하던데 한남들은 닮지 말길 ㅡㅡ 뮤직비디오에서 부인이 임신한 모습이 나왔다고 하던데 일단 노파심이 들어서. 맨날 술 마시고 애는 방치하는 게 한남 전형적인 모습인지라.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팝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유니버설 뮤직과 소니 뮤직을 통해 기념 앨범을 발매했다. 이번 30주년 기념 앨범은 그동안 방송을 통해 송출된 20만여 곡 중 청취자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20곡을 엄선해 총 2장의 LP에 나눠 담았다.

 

 

라디오야 뭐 이 잡지가 라디오방송에 기반하는 것이어서 소개하는 거겠지만, 의외로 LP가 꾸준히 소개되는 것 같다. 새로운 음악보단 옛날 음악들을 다시 올리는 수준이지만, 꽤 인기가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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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자서전 시움시선 7
황인학 지음 / 시시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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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 중에서

낮에는 회사원 두 딸의 아빠

바둑알 놓듯 살아온 아빠

그런데 강간만 마흔다섯

가스 배관을 타고 들어가

아이의 엄마까지 강간했네

(...)

성질이 온순하고 모양이 예쁜,

효자였다고

자상한 아빠였다고

그날도 딸아이 유치원에 데려다 주려다 체포된 발바리...

(...)

아빠 아, 빠

아 씨발 씨발

제가 그 아이를 만나면

나를 사랑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내 가슴 쪽쪽 빨 때 뭐라고 해야 하나요

 

 

실비아 플라스 시 생각나기는 한데, 그래도 이 시가 짧고 핵심이 다 들어가 있어서 더 좋다.

 

대뜸 초반 시부터 구더기가 들끓고 있지만(...)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하기사 눈부신 자서전이라니,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저렇게 이름을 지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기독교 초반기 신앙을 가진 자들의 수행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드는 것도 그가 올곧은 마음을 고수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란 생각이 든다. 종교심에 넘치는 시들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여러 일들에 무심한 것은 아니다. 특히 가식적이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어마어마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권투를 다룬 시 작품이 두 개나 있다. 시 쓰시는 거 보면 얌전하게 생기셨는데 상당히 의외랄까 ㅎㅎ

 

역전 주차장 입구 축산물 종합직판장 중에서

 

대전역 육교 아래 차들도 부르르 몸을 떨고

이런 날 집 없는 집비둘기

육교 상판 받치고 있는 기둥 그 아래 난간에서

균형 잃어 풋잠을 깨고 붉은 발을 동동 떼고

그 직판장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더군

느으끼인그대에로오를마알하고생가악한그대로오만우음지익이며

누구운가마알을해도도올아보지않으며내에가아가아고프은곳으로오가려어했지

얼굴이 잘려나간 돼지들 축축 늘어지고

그러어나너어르을아알게된후우사랑하게에된후우부터나아를두울러싸안모오든것이변해에가네나아의기일을가아기보오단너어와머무을고만씨입네나아를두울러싸안모오든것이변해에가네

새직장을 구한 지 일주일밖에 되질 않는데

돼지들은 말이 없고

왜 발목을 잡고 그러는 거야 너에 대해 특별히 쓸 말이 없단 말야

 

 

여러 동물들을 포함해 심지어 사물마저 배려해주는 시인의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가 많다. 그런 점에선 친환경과 자연 예찬에서 또 한층 벗어나 독특한 관점을 지닌 시집인 듯하다.

울 할아버지 중에서

 

9시 뉴스데스크를 끝으로

잠자리에 드셨지

캄캄한 밤중에 한 번은 깨시어

담배 한 개피 피시거나

두세 모금 냉수 드시었지

새벽이면 어느샌가

자전거에 삽을 걸거나 낫을 들고

논에 다녀오셨지

다녀오시면 샘가에서 낫을 갈거나

흙 묻은 장화 닦아내셨지

울 할아버지 평생을

목수로 농부로 살다가 돌아가셨지

흠 없이 돌아가셨지

그러나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는

여전히 흠으로 집을 만들고 있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

할아버지의 허브큐 사탕

 

할아버지의 대패질 소리

 

 

내가 요즘에 새벽에 일어난다고 하니까, 누가 그 상태로 집안일하면 층간소음 아니냐고 한다. 이 시골 마을에서도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소음'이다. 내가 사람 없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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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회의 시인들 시작시인선 212
이철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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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상 중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종로 3가에 있는 중고 서점 알라딘에 들러 두 시간여 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본다. 시집 코너엔 이름 없는 시인들의 시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나, 주인을 찾지 못할 듯하다. (...) 신문사 건물 앞에 있는 벽보에 걸린 신문들을 보며 현재 한국의 정치적 흐름과 논조들을 훑어본다. 내 옆에 노인이 벽보에 걸린 기사를 보며 혀를 찬다.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엔 걸인이 유심히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상살이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보인다.

(...)

약속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당도하니 시인 5명이 전날 먹은 세꼬시로 술판을 잇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정치 얘기, 그리고 아이들 얘기로 이러저러한 그리 궁금할 것도 없는 시시한 대화로 우리는 취해갔다.

 

 

노동자들에 관련된 시들이 군데군데 꽤 있는 편이긴 하나, 최근 나온 시집에서도 그렇고 본인의 백수생활에 대한 얘기를 흔히 다루는 듯하다.

 

난 그래서 특히 백수들이 이 책을 보면 동질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시 계열의 성격상 홍보가 제대로 안 된 듯하여 아쉽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이런 책을 많이 읽다보니, 일반 독자들보다도 먼저 이 시인의 매력을 발견하고 폴리매스 얘기를 하더라. 특이한 해석인 건 맞는데.. 그 기자의 말대로 한 우물을 팔 때가 아니라면 앞으로 무슨 직장을 다녀도 다시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단 얘기 아닌감? 그보다 복지 체계가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멀티를 주장하기엔 너무 위험한데; 복지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도엔 멀티서비스로 가자고 그러다가 최근엔 먼저 스페셜리스트부터 되자는 기세이지 말입니다 ㅡㅡ

 

처음부터 대뜸 사막 얘기가 나와서 놀랐는데 몇 장 넘겨보니 다행히 자신의 여행기를 담았다던가 영문모를 외국어들이 등장한다던가 하진 않았다. 인도가 등장하긴 한데 배경도 분위기도 왠지 친숙하다.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듯. 그래서 전반적으로 쉬워보이는 시들이 많지만. 아무튼 시를 지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세월호 얘기도 나오고 한다. 이 시가 좀 이질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패왕별희 1인극 중에서

 

1

(...) 바닷가 해안선 앳된 얼굴로 미소 짓던 눈,

내 사랑 우희와 먼 바다를 바라보았네

편지 행간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듯

젊은 날 눈물로 전송 받은 글은

이미 낙서가 아닌, 내 너를 위하여

긴 세월, 긴긴 밤을 새우리니

그대 마음에 담긴 머나먼 레테의 강을

건너보기로 하노라. 나의 노래여!

 

2

(...) 막이 오르자, 나는 슬픔이 배제된 무대 위에서

기쁘게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검은 공단 수의가 바람결에 출렁거리고

우희의 죽음 뒤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때, 저 어둠의 눈, 반짝이는 패왕의 칼.

이미 죽었던 나를 죽이고

슬픔이 없는 웃음소리를 누른 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흐릅니다.

 

 

힘들게 화장을 하는 여성 연예인들의 묘사가 담긴 시가 두차례나 나온다. 하기사 여성 연예인들 힘들었던 게 어디 한두번이겠느냐마는(...) 이 시가 아닌 작품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슬픔과 시인 본인의 분노를 표현했지만 나는 은근한 이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죽은 사회의 시인들

 

1조 3000억 경감 보험료 이어지나

은행 갈아타기 '계좌이동제' 시행

노년기 성생활 치매 위험 낮춰준다

얼리어답터에 '최신 폰' 유혹 구 모델 밀어내기도,

냉장고 상식 깬 냉장고 유혹

아파트 지금 대형으로 갈아타야

세단 같은 편안함에 힘, 실용성 다 갖췄다

역세권 행정타운 착한 분양가 3박자

"10억은 있어야지"....... 노년 바라보는 무례한 시선

집값 여전히 상승여력 있다

섹시가수 중국을 평정하다

......

 

가난한 시인이 신문을 보기엔 부적절하다

뒷간에서 똥 닦는 호박잎 대용으로 적격일 뿐이다

섹시가수가 똥구녕을 핥고 지나간다

찌라시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시들이 전부 비극적으로 끝난다.

 

이 시집 이후에는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 책을 막 읽고 덮은 내 기억으로는 그나마 자신이 글 쓰는 데 사용했던 낡은 탁자를 수리하던 내용이 그나마 좀 희망적이었던 것 같다. 근데 그나마도 제목이 애인이다(...) 책상을 애인삼아 사는 시인인 것도 서러울텐데 같이 백년해로하다 화장되잰다; 그러나 그는 자학은 하지 않는다. 사실 자학을 하는 사람들 속에는 자기중심주의와 무언가를 원하는 욕심이 담겨져 있다. 그는 텅빈 그릇이 되어,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의 비극을 낱낱이 열거해간다. 그의 시에서 아마 가장 많을 '~같은'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된다. 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시를 읽는 게 부담스럽거나 괴롭지 않았다. 그것은 시인이 진실로 시인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의 동정을 갈구하지 않고 세상에 냉소적으로 응대하는 자세가 내 취향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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