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회의 시인들 시작시인선 212
이철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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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상 중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종로 3가에 있는 중고 서점 알라딘에 들러 두 시간여 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본다. 시집 코너엔 이름 없는 시인들의 시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나, 주인을 찾지 못할 듯하다. (...) 신문사 건물 앞에 있는 벽보에 걸린 신문들을 보며 현재 한국의 정치적 흐름과 논조들을 훑어본다. 내 옆에 노인이 벽보에 걸린 기사를 보며 혀를 찬다.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엔 걸인이 유심히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상살이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보인다.

(...)

약속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당도하니 시인 5명이 전날 먹은 세꼬시로 술판을 잇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정치 얘기, 그리고 아이들 얘기로 이러저러한 그리 궁금할 것도 없는 시시한 대화로 우리는 취해갔다.

 

 

노동자들에 관련된 시들이 군데군데 꽤 있는 편이긴 하나, 최근 나온 시집에서도 그렇고 본인의 백수생활에 대한 얘기를 흔히 다루는 듯하다.

 

난 그래서 특히 백수들이 이 책을 보면 동질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시 계열의 성격상 홍보가 제대로 안 된 듯하여 아쉽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이런 책을 많이 읽다보니, 일반 독자들보다도 먼저 이 시인의 매력을 발견하고 폴리매스 얘기를 하더라. 특이한 해석인 건 맞는데.. 그 기자의 말대로 한 우물을 팔 때가 아니라면 앞으로 무슨 직장을 다녀도 다시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단 얘기 아닌감? 그보다 복지 체계가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멀티를 주장하기엔 너무 위험한데; 복지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도엔 멀티서비스로 가자고 그러다가 최근엔 먼저 스페셜리스트부터 되자는 기세이지 말입니다 ㅡㅡ

 

처음부터 대뜸 사막 얘기가 나와서 놀랐는데 몇 장 넘겨보니 다행히 자신의 여행기를 담았다던가 영문모를 외국어들이 등장한다던가 하진 않았다. 인도가 등장하긴 한데 배경도 분위기도 왠지 친숙하다.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듯. 그래서 전반적으로 쉬워보이는 시들이 많지만. 아무튼 시를 지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세월호 얘기도 나오고 한다. 이 시가 좀 이질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패왕별희 1인극 중에서

 

1

(...) 바닷가 해안선 앳된 얼굴로 미소 짓던 눈,

내 사랑 우희와 먼 바다를 바라보았네

편지 행간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듯

젊은 날 눈물로 전송 받은 글은

이미 낙서가 아닌, 내 너를 위하여

긴 세월, 긴긴 밤을 새우리니

그대 마음에 담긴 머나먼 레테의 강을

건너보기로 하노라. 나의 노래여!

 

2

(...) 막이 오르자, 나는 슬픔이 배제된 무대 위에서

기쁘게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검은 공단 수의가 바람결에 출렁거리고

우희의 죽음 뒤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때, 저 어둠의 눈, 반짝이는 패왕의 칼.

이미 죽었던 나를 죽이고

슬픔이 없는 웃음소리를 누른 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흐릅니다.

 

 

힘들게 화장을 하는 여성 연예인들의 묘사가 담긴 시가 두차례나 나온다. 하기사 여성 연예인들 힘들었던 게 어디 한두번이겠느냐마는(...) 이 시가 아닌 작품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슬픔과 시인 본인의 분노를 표현했지만 나는 은근한 이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죽은 사회의 시인들

 

1조 3000억 경감 보험료 이어지나

은행 갈아타기 '계좌이동제' 시행

노년기 성생활 치매 위험 낮춰준다

얼리어답터에 '최신 폰' 유혹 구 모델 밀어내기도,

냉장고 상식 깬 냉장고 유혹

아파트 지금 대형으로 갈아타야

세단 같은 편안함에 힘, 실용성 다 갖췄다

역세권 행정타운 착한 분양가 3박자

"10억은 있어야지"....... 노년 바라보는 무례한 시선

집값 여전히 상승여력 있다

섹시가수 중국을 평정하다

......

 

가난한 시인이 신문을 보기엔 부적절하다

뒷간에서 똥 닦는 호박잎 대용으로 적격일 뿐이다

섹시가수가 똥구녕을 핥고 지나간다

찌라시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시들이 전부 비극적으로 끝난다.

 

이 시집 이후에는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 책을 막 읽고 덮은 내 기억으로는 그나마 자신이 글 쓰는 데 사용했던 낡은 탁자를 수리하던 내용이 그나마 좀 희망적이었던 것 같다. 근데 그나마도 제목이 애인이다(...) 책상을 애인삼아 사는 시인인 것도 서러울텐데 같이 백년해로하다 화장되잰다; 그러나 그는 자학은 하지 않는다. 사실 자학을 하는 사람들 속에는 자기중심주의와 무언가를 원하는 욕심이 담겨져 있다. 그는 텅빈 그릇이 되어,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의 비극을 낱낱이 열거해간다. 그의 시에서 아마 가장 많을 '~같은'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된다. 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시를 읽는 게 부담스럽거나 괴롭지 않았다. 그것은 시인이 진실로 시인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의 동정을 갈구하지 않고 세상에 냉소적으로 응대하는 자세가 내 취향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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